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미다. 수많은 사회적기업, 비영리단체, 사회복지 등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왜, 세상은 바뀌지 않는 것인가. 점진적으로 더 나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인류의 역사는 문제 해결의 연속이었다. 하늘이 비를 내려주지 않아도 혹은 너무 많이 내려주어도 농사를 잘 짓기 위해 저수지와 수로를 만들었다. 추위와 더위를 견디며 동물로부터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집을 지었고, 질긴 음식을 편히 먹기 위해 날카로운 도구를 만들었다. 각기 기후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하지 못하는 문제, 생명이 보호받지 못하는 문제, 음식을 자유롭게 먹지 못하는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문제 해결을 위해, 문제보다는 해결책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닐까.
포드 자동차의 창업가 헨리 포드(Henry Ford)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동 수단을 원하는지 묻는다면, 더 빠른 말이라고 했을 것’이라 했다. 고객은 자신의 니즈를 잘 모른다는 의미의 격언이기도 하지만, 문제를 제대로 정의해야 좋은 해결책이 나온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된다. 지금의 이동 수단은 느리다는 문제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건만, 말이 느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성공하는 제품은 고객의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데서 나오고, 세상을 바꾸는 일은 사회의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어느 비영리단체가 저개발국가를 갔더니 학교가 없었다. ‘어! 여기에 학교가 없네!’ 생각하고 학교를 지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오지 않는다. 부모님을 설득해도 어쩔 수 없다. 농사로 먹고사는 곳이기에 아이들도 학교 대신 논과 밭으로 가야 한다. 다른 비영리단체는 학교를 짓는 대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전자책과 전자책 뷰어를 건네주었다. 그랬더니 농사짓고 집에 와서 책도 보고 영어도 공부한다. 이곳에는 학교가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배움의 기회가 없는 게 문제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거다.
세상은 바꿀 수 있고, 바꾸고 싶다며 공익마케팅스쿨에 들어온 한 친구가 ‘노인 고독’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기획을 했었다. 필자가 되물었다. ‘너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함께 사니, 아니면 어르신들과 대화를 자주 하니?’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어르신들이 고독하다는 것을 아는지 물었더니, 언론에서 봤단다. 어르신들이 고독하다는 것은 피상적인 현상이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그 친구는 다음날 곧바로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 공원으로 갔다. 음료수와 빵을 사 들고 온종일 할아버지 할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저녁 무렵 전화가 와서 하루를 더 시간을 달라고 했다. 다음 날은 노인복지관에서 온종일 봉사활동을 하며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다음 날은 다시 공원으로 갔고, 하루를 더 고민한 끝에 함께 저녁을 먹으며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물었다.
모든 어르신이 고독하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청년들의 편견에서 문제의 본질을 찾은 점은 놀라웠다. 그 친구는 곧바로 학교 내에 어르신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등의 캠페인을 벌였다. 캠페인의 성과를 떠나 적어도 몇몇 청년에게 할아버지는 문제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로 바뀌었으리라.
사회적경제나 비영리 분야에서도 문제를 피상적으로 정의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떤 청년 사회적기업가는 청소년들의 자존감이 낮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자존감은 필자도 부족하고 그 말을 하는 청년도 부족하다. 그런데 왜 유독 청소년들이 자존감이 낮으면 안 되는지 이유가 없었다. 최근에는 ‘청소년 시기는 실패 혹은 실수를 할 수도 있는 나이지만, 그것을 용인하지 않는 환경의 문제’로 조금 더 본질에 다가갔다. 업사이클링도 마찬가지다. 자원이나 환경 관점에서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해당 자원이 버려지면 안 되는 이유도 없이, 이쁘고 멋진 업사이클 제품을 만들려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 그 자원이 버려지면 어떤 사회적, 환경적 손실이 있는지, 다시 복구하려면 얼마의 비용이 드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오히려 업사이클 제품을 만드는데 소요되는 환경 피해가 더 크다.
문제의 본질을 정의하는 것은 땅을 파고들어 가며 금맥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금맥은 지표면이 아니라 땅 속에 있다.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는 것이지, 넓게 파기 위해 깊게 파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문제의 본질인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또 다른 질문 하나. 공동체, 문화, 지역, 마을, 인권, 커뮤니티, 환경, 관계, 소통, 자립. 이 중에서 모르는 단어가 있는가? 없다면, 이 중에 하나만 선택해서 정의를 내려보자. 사전에 있는 설명 말고, 자신이 생각하는 공동체는 무엇인지, 우리 조직이 지향하는 소통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는가? 아쉽게도 사회적경제나 비영리분야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들이다. 사회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해결 대안도 구체적으로 나온다.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외모에 한정하지는 않을 것이고, 마음의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럼, 마음이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성용 케어 브랜드 도브DOVE는 ‘아름다움이란 자신이 지닌 최상의 모습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다. 다소 모호한 것 같지만 ‘Real Beauty Sketch’ 캠페인을 보면 그들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구체적인지 알 수 있다. (출처: 유니레버 코리아 웹사이트)
몇 명의 여성을 초대해서 그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표현해 보라고 했다. 장막에 가려진 건너편에는 FBI Academy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몽타쥬 그리는 형사로 재직했던 사람이 그 표현대로 외모를 스케치했다. 뒤이어 다른 한 사람이 앞의 여성을 본 후에, 똑같이 그 여성의 외모에 관해 서술해 달라고 했다. 한 사람의 얼굴을 자신과 다른 사람, 두 명이 묘사를 한 거다. 두 개의 스케치를 본 여성은 자신이 표현한 외모보다 다른 사람이 표현한 자신의 외모가 훨씬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도브는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름답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g466eKTfeA
도브가 정의하는 ‘진정한 아름다움’에 공감되는가? 2002년 도브 브랜드팀의 소비 심리학 전문가 그룹은 10개국의 18~64세 여성 3200명을 대상으로 심층 연구를 했다. 이를 통해 2%의 여성만이 본인의 외모를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점을 알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Real Beauty’ 캠페인을 시작했다. 2004년에는 전문 모델이 아닌 6명의 일반 여성을 모델로 기용해, 흰 속옷만 입고 포즈를 취한 광고를 내보냈다. 지금의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아름다움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해결하려는 문제를 모호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정의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Real Beauty 캠페인’은 사회공헌 또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아니다. 브랜드를 알리는 마케팅 캠페인이다. 도브는 다른 기업과 달리 고객을 판매의 대상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수혜자’로 바라보았다. 기업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세상에 존재하는 고객이라는 사람이 기업의 제품을 구매해주기 때문이다. 고객이 제품을 구매해주니 감사의 표시로 사회에 공헌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제품의 범주를 넘어, 기업과 더불어 존재하는 고객의 삶 속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의미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기업의 마케팅과 사회공헌의 경계가 무너질 것이다. 기업과 비영리단체, 사회적경제의 구분도 큰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존재의 형태가 무엇이든 함께 사는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이 같다면, 굳이 그런 구분이 필요하겠는가. 그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며 복지관과 공원을 뛰어다니던 그 친구는 지금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 친구가 다니는 기업이 최근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다. 담당 부서는 아니지만,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아무리 문제 정의가 잘 되었더라도, 초심을 잃는다면 그 또한 의미 없는 일 아니겠는가.
‘문제 정의에 관한 문제’는 다음 연재에서 이어집니다.
마케터.
세 글자로 저를 소개할 수 있는 그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마케팅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