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바닥에는 흙먼지가 가득하고, 벽지는 누렇게 찌들어 군데군데 흉한 얼룩이 생겼다. 좁은 방을 가로질러 널린 옷가지들과 화장실 한가득 쌓인 빨래가 번잡함을 더했다. 전라도 두메산골, 인적 드문 허허벌판에 자리 잡은 낡고 허름한 이 집이 백만(가명·남·13세)이네 아홉 식구의 보금자리다. 이 집도 사정을 딱하게 여긴 이웃이 이사를 가면서 무상으로 빌려줘 겨우 얻었다.
올해 6학년인 백만이의 오후 일과는 여느 초등학생과 다르다. 또래 친구들이 뛰어놀 때, 백만이는 동생들을 위한 저녁 준비를 위해 팔을 걷어붙인다. 남은 찬밥에 김치를 넣고, 프라이팬에 슥슥 비벼 볶음밥을 만드는 손놀림이 제법 익숙하다. 반찬 하나 없는 밥상에 ‘백만이 표’ 볶음밥을 내놓자 동생들이 우르르 모여앉아 순식간에 해치운다. 백만이는 동생들이 다 먹고 난 뒤, 막내가 남긴 몇 숟가락으로 허기를 채운다.
“하루는 백만이가 냉장고를 열어보더니 먹을 게 하나도 없냐고 묻는데, 아무 말도 못했어요. 반찬이 없어 김치 하나만 놓고 밥 먹일 때도 많아요.”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우울증을 겪었다는 엄마는 아이들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내 눈물을 보였다.
백만이네 가족은 뱃속 아이까지 포함해 총 9명이다. 임신 7개월 차에 접어든 어머니까지 농사일에 힘을 보태지만 벌이가 시원찮다. 아버지도 오래 전부터 앓고 있는 늑막염 결핵과 갑상선암 수술 후유증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잠잘 시간도 부족한 고등학생 형들을 대신해, 또 병약한 부모님을 대신해 셋째 백만이가 5살 막내와 7살, 10살 동생들을 살갑게 챙긴다. 동생들을 먹이고 재우는 것은 물론 틈틈이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고, 각종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백만이의 가장 큰 걱정 중 하나는 정신지체장애가 의심되는 넷째 복만(가명·남·10세)이다. 복만이는 자기 이름을 쓸 줄 모르고, 단순 계산도 불가능하다. 병원 치료는 꿈도 꿀 수 없는 가정 형편 탓에 온 가족은 행여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할까, 상처받지는 않을까, 하루하루 마음을 졸인다.
“백만이는 어렸을 때 경운기에 손을 다쳐서 손가락 하나가 기형이고, 재작년에는 칼에 팔을 크게 다쳐 아직도 상처 자국이 있어요. 안쓰러운 건 그렇게 크게 다쳐도 울지 않더라고요. 아직도 어린 아이인데.” 어린 나이에 투정보다 인내를 더 빨리 배운 듯 보였다.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는 임시 거주지에서 농사로 근근이 이어가는 생계로는 아홉 식구가 더 이상 버텨낼 수 없다. 아버지의 병환도, 어머니의 출산도, 동생들의 교육과 영양상태도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13살에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 백만이네 가족이 희망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
백만이네 가족 도우려면…
백만이네가족의 생계 및 교육지원이나 비슷한 처지의 국내 저소득 가정 아이들을 도우려면 굿네이버스로 연락하면 된다.
●문의: 1599-0300, www.gni.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