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빈곤, 차별과 양극화, 지역 소멸. 우리가 마주한 사회문제는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해마다 심해지는 폭염과 가뭄, 산불과 홍수를 보면 기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하게 된다. 인류가 수백 년 동안 해결하려 애써 온 빈곤 문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처럼 거대한 문제들을 우리는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필자는 영리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취업이나 시험에 실패한 뒤 사회에서 고립된 청년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소셜섹터로 옮겼고, 사회문제 해결에 도전하는 기업가를 육성하고 투자하는 엠와이소셜컴퍼니(MYSC)에 입사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보람도 있었지만, 기후 위기나 빈곤 같은 거대한 문제 앞에서는 종종 무력감을 느꼈다. 특히 회계라는 백오피스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내가 하는 일이 사회문제 해결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체감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대표의 제안으로 책 한 권을 번역하게 됐다. 일본의 사회적기업 플랫폼 ‘보더리스 재팬’을 설립한 다구치 가즈나리 대표의 ‘사회문제의 90%는 비즈니스로 해결할 수 있다’였다.
사회문제의 90%를 해결할 수 있다고? 그것도 기부나 원조가 아니라 비즈니스로? 자신감 넘치는 제목에 의문을 품은 채 책장을 펼쳤다.
◇ 사회문제 해결에 수익을 다시 투자하다
‘사회문제를 비즈니스로 해결한다’는 말은 익숙했다.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비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에서 만난 보더리스 재팬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를 실현하고 있었다.
2007년 설립된 보더리스 재팬은 사회문제 해결에 도전하는 기업가를 육성하고, 이들이 창업하는 기업에 자본을 출자해 소셜 비즈니스의 진입 장벽을 낮춰 왔다. 지금까지 50여 개의 사업을 만들어 왔으며, 외부 투자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창출한 자금을 새로운 사업에 투입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은혜 순환 경영(恩送り経営)’이다. 보더리스 재팬의 지원으로 설립된 기업들은 흑자로 전환하면 이익의 일부를 그룹의 공동 자금으로 적립한다. 보더리스 재팬은 이 자금을 활용해 새로운 사회적기업가를 육성하고 창업을 지원한다. 사업에서 발생한 수익이 또 다른 사회문제 해결 사업의 밑거름이 되는 셈이다.
기업 운영 원칙도 독특하다. 출자금을 초과하는 주주 배당을 하지 않고, 대표의 급여를 가장 낮은 급여를 받는 직원의 7배 이내로 제한하는 등 이윤을 특정 개인에게 집중시키지 않도록 설계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온 보더리스 재팬의 2025년도 매출은 105억 엔 규모에 이르렀다.
소셜 비즈니스만으로 이처럼 큰 매출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에 질문을 던진다. 사회문제 해결과 경제적 지속가능성이 반드시 상충하는 것은 아니라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업을 통해 사람들의 삶에 실제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미얀마의 빈곤 농가들은 판매 가격이 불안정한 담뱃잎 대신 허브를 재배하며 보다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기회를 마련했다. 학력이나 경력이 부족해 취업 시장에서 소외됐던 방글라데시의 취약계층은 가죽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안전하게 일하며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일본에 거주하는 난민들은 중고 PC를 수리하는 일을 통해 소득을 얻는 동시에, 고향으로 돌아가서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익혔다.
이 사례들을 읽으며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말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빈곤이나 차별이라는 거대한 문제를 단번에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구체적인 해법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 작은 벌새 한 마리가 할 수 있는 일
그럼에도 질문은 남는다. 이런 작은 시도들이 모이면 정말 기후 위기와 빈곤, 차별과 양극화 같은 거대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떠오르는 우화가 있다. ‘크리킨디’라는 이름의 벌새 이야기다. 어느 날, 크리킨디가 사는 숲에 큰불이 났다. 동물들은 모두 불길을 피해 달아났다. 하지만 크리킨디만은 작은 부리에 물을 머금고 날아와 불길 위에 떨어뜨리기를 반복했다.
도망치던 동물들은 그 모습을 보고 비웃었다. 그렇게 작은 물방울로 무슨 불을 끌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크리킨디가 말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벌새 한 마리가 옮기는 물로 거대한 산불을 끌 수는 없다. 하지만 벌새가 100마리, 1000마리, 수억 마리로 늘어난다면 어떨까. 저마다 물 한 방울씩을 보태는 작은 행동이 모이면, 혼자서는 불가능했던 변화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사회문제 해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사회적기업가가 될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NGO나 지원조직에서 일하고, 누군가는 기부를 하거나 윤리적 소비를 실천할 수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참여하면 된다.
나 역시 회계 업무를 하면서 사회에 직접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자금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필요한 곳에 적절히 배분하는 일도 중요하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업무라도 누군가의 도전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거대한 사회문제 앞에서 개인의 힘은 미약할 수 있다. 그러나 작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시작한 작은 실천들이 모여 더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다구치 대표는 말한다. “우리는 미약하지만 무력하지 않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묻는 것. 어쩌면 사회문제 해결은 그 작은 질문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김혜원 MYSC 재경팀 책임매니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