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고베 대지진 그 후…돈 넘어 사람·관계가 만든 지역재생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 2026 <2>
6000여 명 숨진 대지진…16조 엔 투입된 재건, 시민 참여·민관협력으로 이어져

1995년 6434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신·아와지 대지진 이후 일본 고베의 복구·부흥에는 10년간 16조3000억 엔(약 144조4000억 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고베의 재건을 이끈 자원은 돈만이 아니었다. 지진 발생 뒤 1년간 연인원 약 138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피해지역을 찾았고, 시민 참여는 이후 비영리조직의 성장과 도시재생, 민관협력으로 이어졌다.

미츠아키 아오야기 일본 사회혁신투자재단(SIIF) 전무이사는 17일 일본 고베에서 열린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 2026’에서 “고베는 지진 이후 많은 자본이 유입되면서 부흥했다”고 말했다. 이어 자본에는 자금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무라카미 다케히데 무라카미공무점 대표와 미츠아키 아오야기 일본 사회혁신투자재단(SIIF) 전무이사가 17일 일본 고베 메리켄파크 오리엔탈 호텔에서 열린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 2026’의 ‘고베의 회복에서 얻은 교훈: 다양한 자본은 어떻게 더 나은 공동체의 미래를 만드는가’ 세션에서 대담하고 있다. /채예빈 기자

아시아 임팩트 나이츠는 아시아 지역의 임팩트 생태계 관계자들이 모여 임팩트 투자와 자본의 역할을 논의하는 행사다. 올해는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D3)와 SIIF가 공동 주최해 ‘아시아의 세 가지 전환: 위험에서 기회로’를 주제로 16일부터 18일까지 고베에서 열리고 있다.

행사 첫날인 지난 16일, 참가자들은 ‘한신·아와지 대지진 기념 사람과 방재 미래센터’ 등을 방문해 지진 당시 피해와 이후 30여 년간 이어진 도시의 복구·재생 과정을 살펴봤다.

◇ 16조 엔 재건·138만 자원봉사…NPO법 제정의 계기로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 46분, 고베 인근 아와지섬을 진원으로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했다. 고베를 비롯한 효고현 남부를 덮친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6434명이 숨지고 4만3800여 명이 다쳤다. 직접 피해액은 약 10조 엔(약 88조6000억 원)으로 추산됐다.

1995년 1월 17일 발생한 규모 7.3의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6434명이 숨지고 4만3800여 명이 다쳤다. 사진은 ‘한신·아와지 대지진 기념 사람과 방재 미래센터(DRI)’에서 당시 피해를 미니어처로 재현한 모습. /DRI

복구·부흥에는 10년간 총 16조3000억 엔(약 144조400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고베시는 부족해진 주택 8만2000호를 공급하고 피해지역에서는 도로 확장과 공원 등 방재공간 확보를 위한 재개발·토지구획정리를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과 토지 소유자가 협의체를 꾸려 도시계획에 참여했다.

재건에는 시민도 대규모로 참여했다. 지진 발생 이후 1년 동안 전국에서 연인원 약 138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피해지역을 찾았다. 이 때문에 1995년은 일본에서 ‘자원봉사 원년’으로 불린다. 재난 대응 과정에서 자원봉사자와 시민단체의 역할이 부각된 것은 1998년 특정비영리활동촉진법(NPO법) 제정의 배경 중 하나가 됐다.

재건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난 2005년에는 주민들이 체감하는 일상의 회복도 나타났다. 효고현이 피해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5.5%는 ‘자신을 더 이상 피해자라고 의식하지 않게 됐다’고 답했다. ‘가계에 대한 지진의 영향이 없어졌다’는 응답도 76.9%였다.

◇ 재난 때 형성된 관계망, 공원·폐교 재생으로

17일 열린 본격 컨퍼런스에서는 대지진 이후 형성된 사람과 관계가 어떻게 지역재생의 자원으로 이어졌는지 사례가 소개됐다.

무라카미 다케히데 무라카미공무점 대표에게 전환점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었다. 그는 대학생이던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을 겪으며 지역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2011년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역에서 “고베는 어떻게 부흥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무라카미 대표는 이후 지역 주민과 기업가, 전문가 등이 함께 배우고 교류하는 커뮤니티 칼리지 ‘고베 모토마치 대학’을 만들었다. 지역문제를 해결하려면 자금뿐 아니라 사람 간 신뢰와 연결망을 축적하는 ‘관계자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관계망은 실제 도시 공간을 바꾸는 실험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곳이 고베 도심의 ‘히가시 유원지’다. 2015년 민간 주도로 공원에 잔디와 카페를 설치해 2주간 사회실험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고베시 담당 부서가 반대했지만 시민들이 공원을 이용하고 야간에도 방문객이 이어지자 시의 태도가 달라졌다.

이듬해부터 고베시도 실험에 참여했다. 3년간 축적된 결과는 이후 공원 전면 재정비에 반영됐다. 무라카미 대표는 “여러 주체가 같은 경험을 공유하면서 가까운 미래를 함께 이야기할 기반이 생겼다”고 말했다.

무라카미 다케히데 무라카미공무점 대표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자신이 고베를 위해 무엇을 해왔는지 돌아보며 지역재생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진은 폐교한 초등학교를 복합공간으로 재생한 ‘네이처 스튜디오’. /네이처 스튜디오

폐교를 재생한 ‘네이처 스튜디오’는 지역재생을 사업과 연결한 사례다. 141년간 운영된 초등학교 터에 수족관과 식당, 의료·복지시설 등을 조성했다. 수족관에는 연간 약 12만 명이 찾는다. 기존 급식실에는 수제맥주 양조장을 들였다. 방문객을 유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안에서 소비와 생산이 함께 일어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무라카미공무점은 이후 건설 시공을 넘어 지역 공간의 기획과 운영까지 맡는 민관협력(PPP)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지역에 필요한 문제를 먼저 찾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 기업의 새로운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무라카미 대표는 민간기업도 지역의 미래를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에서도 ‘사회에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경영자가 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돈을 버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와 모두의 미래를 생각할 힘과 의지, 행동력을 갖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그 힘을 발휘한다면 더 나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고베=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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