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정부는 사회연대경제를 우리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장기적으로는 국내총생산(GDP)의 10% 수준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도 함께 밝혔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발표를 접하며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부가 제시한 목표를 뒷받침할 금융 인프라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이미 그 답이 될 경험이 있다. 1961년 설립된 기업은행은 단순히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은행이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중소기업은 담보가 부족하고 정보가 부족해 일반 금융기관이 선뜻 자금을 공급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을 이해하는 전문성을 쌓았고, 그 전문성은 오늘날 대한민국 중소기업 생태계를 떠받치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이렇듯 기업은행은 중소기업들이 충분히 성장한 뒤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금융 인프라를 구축한 사례다.
이제 사회연대경제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물론 그동안 민간에서는 임팩트투자사와 사회적 융자를 공급하는 재단 등이 사회연대경제를 이해하며 투자와 융자를 이어왔다. 정부도 재정지원이나 보증 등을 해왔다. 이들의 노력은 오늘의 사회연대경제를 가능하게 한 소중한 밑거름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규모를 뒷받침하기에는 아직 금융의 규모와 전문성, 그리고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다.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소셜벤처들은 사업 자체보다 금융에서 더 큰 한계를 겪는다. 이는 단순히 자금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바로 사회연대경제 사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금융 인프라가 아직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한 사회주택 프로젝트에 투자한 기관의 사례를 들었다. 정부 정책에 따라 추진되는 사업이고 다양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감사 과정에서는 일반적인 금융 기준이 적용되며 사실상 위험자산처럼 인식되었다고 한다. 개별 회계기준이나 회계사를 탓할 문제는 아니다. 사회주택이라는 사업의 특성과 현금흐름, 공공성과 정책 환경을 이해하는 전문성이 우리 금융 생태계에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낯선 산업은 늘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전문성이 쌓이면 위험은 관리 가능한 리스크가 된다. 벤처투자가 그랬고, 문화콘텐츠 산업이 그랬으며, 신재생에너지 금융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해외를 보더라도 같은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사회연대경제가 이미 GDP의 10%를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그 나라들은 정부 지원만으로 여기까지 왔을까. 그렇지 않다. 네덜란드의 Triodos Bank는 40여 년 동안 사회적기업, 사회주택, 재생에너지, 문화예술 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분야에 특화된 금융을 제공하며 생태계와 함께 성장해 왔다. 이탈리아의 Banca Etica 역시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 조직을 이해하는 전문 금융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착한 금융’이 아니다. 산업을 이해하는 금융 인프라가 오랜 시간 축적될 때 사회연대경제도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연대경제도 이제는 그런 전환점에 서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기본사회 역시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돌봄, 주거, 의료, 이동과 같은 삶의 기반을 강화하자는 방향에는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계속 정부 예산만으로 구현하려 한다면 지속가능성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일방적인 재정 투입을 늘리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금융의 힘을 함께 활용해야 한다.
재정은 좋은 시작을 만들 수 있지만, 금융 인프라는 진정한 생태계를 만든다. 사회주택도, 지역 돌봄도, 에너지 사업도, 공동체 기반 서비스도, 혁신적인 임팩트 프로젝트도 정부 예산만으로는 지속되기 어렵다. 정책자금과 민간자본, 보증과 장기투자, 임팩트투자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 가능하다.
더 중요한 것은 금융 인프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은행이 중소기업 금융의 노하우를 하루 만에 축적한 것이 아니듯, 유럽의 사회연대경제 금융도 수십 년에 걸쳐 투자와 대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경험을 쌓아왔다. 산업을 이해하는 금융 인프라는 기관 하나를 만든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전문 인력과 평가체계, 투자 경험, 회수시장과 정책금융이 함께 성장해야 비로소 하나의 생태계가 된다. 정부가 사회연대경제를 우리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금융 인프라를 키우는 일도 지금 시작해야 한다. 지금 출발해도 정부가 목표한 10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닐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사회연대경제를 이야기할 때 지원사업부터 떠올리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GDP의 10%’라는 목표는 더 이상 지원사업의 논리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규모다.
이제는 질문을 바꿀 때다.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회연대경제를 이해하는 금융 인프라를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새로운 은행 하나를 만드는 문제만이 아니다. 전문성을 갖춘 정책금융과 민간금융, 보증체계와 투자시장, 그리고 산업을 이해하는 금융 인력이 함께 어우러져 성장하는 일이다. 기본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재정만이 아니라, 사회를 이해하는 금융 인프라다.
정부는 사회연대경제를 GDP의 10%까지 키우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제 그 목표를 현실로 만들 차례다. 산업의 규모에 걸맞은 금융 인프라를 함께 키우지 않는다면 10%는 선언에 머물 수밖에 없다. 금융이 자리잡지 못한 산업생태계는 없다.
도현명 임팩트스퀘어 대표
필자소개
임팩트스퀘어 대표이자 임팩트 투자자, 액셀러레이터입니다. 소셜벤처 투자·육성, 대기업 ESG 신사업 개발, 임팩트 비즈니스 전략 수립, 지역 기반 프로젝트 설계, 사회적 가치 측정과 평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본 등으로 활동 무대를 넓히며 글로벌 확장에 힘쓰는 한편, AI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기회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