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수요 급증에 전력망 안정성 우선…미국, 석탄발전 규제 완화
빅테크, 전력 확보 경쟁 속 SMR·저장 기술 투자 확대
인공지능(AI)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에너지 정책이 실제로 바뀌고 있다. 전력 공급을 우선하는 판단이 강화되면서 환경 규제가 완화되고 있다. 그 결과 석탄발전은 연장되고, 동시에 원전과 에너지 저장 기술 투자가 확대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환경 규제 완화는 미국에서 뚜렷한 정책 변화로 확인된다. 올해 2월 트럼프 행정부는 2024년 바이든 행정부가 채택한 강화된 미세먼지 규제를 폐지했다. 이 규제는 2027년 시행될 예정이었으며, 석탄발전소가 계속 운영되려면 배출을 대폭 줄이도록 한 기준이었다. 정부는 데이터센터 증가에 따른 전력 수요 대응과 전력망 안정성을 이유로 들었다.
이 같은 정책 변화는 지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인근 라바디(Labadie) 석탄발전소는 규제가 유지될 경우 미세먼지 배출을 절반 이상 줄여야 했지만, 규제 폐지 이후 별도의 설비 개선 없이 계속 가동되고 있다. 이미 대기질이 나쁜 세인트루이스 북부 지역에서는 미세먼지가 기준치를 자주 초과하고 있으며, 오염 부담이 더 커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연방 정부는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 유지를 위한 자금을 지원하고, 폐쇄를 지연시키는 명령도 내렸다. 수은 등 유해물질 규제도 완화해 설비 개선 부담을 낮췄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석탄을 포함한 저렴한 기저부하 전력 확보는 미국 가정의 전력 공급과 난방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며 “모든 미국인에게 깨끗한 공기를 보장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피해가 특정 집단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세인트루이스 북부의 흑인 밀집 지역은 도시에서 가장 대기질이 나쁜 곳 중 하나다. 미국 흑인 인권단체 NAACP에 따르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78%가 석탄발전소 반경 30마일 이내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비히스패닉 백인(56%)보다 높다. 발전소 미세먼지로 인한 사망률도 평균보다 25%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도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로이터가 2026년 4월 대기질 활동가와 보건 전문가 20명을 인터뷰한 결과, 이들은 AI 붐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이 전력 수요 증가, 특히 석탄과 같은 오염원 사용을 통해 미국 대기질에 주요한 잠재적 위협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값싼 전기라고 하지만, 의료비까지 고려하면 결코 싸지 않다”고 말했다.

◇ AI 데이터센터 확산 전력 수요 급증·석탄 감축 둔화
전력 수요 증가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미국 에너지부는 AI와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2030년까지 약 50기가와트(GW)의 신규 전력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2025년 전체 발전 규모와 비교하면 약 4%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2026년 4월 발표한 단기 에너지 전망에 따르면, 미국 전력 소비는 2025년 약 4195억 kWh에서 2027년 4381억 kWh로 증가할 전망이다.
수요 증가의 핵심에는 AI 데이터센터가 있다. 생성형 AI는 대규모 연산을 필요로 하고, 이를 처리하려면 서버가 24시간 365일 가동되는 데이터센터가 필수적이다. 전력 공급이 중단되면 서비스 자체가 멈추기 때문에 안정적인 전력원이 요구된다. 여기에 암호화폐 데이터센터와 난방·운송의 전기화까지 겹치면서, 전력망 부담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전력 수요가 커지며 석탄발전 축소 흐름도 둔화됐다. EIA 자료에 따르면 2015년에는 15GW 규모 94개 발전소가 폐쇄됐지만, 2025년에는 2.6GW 규모 4곳만 문을 닫았다. 에너지부의 긴급 명령으로 일부 발전소 가동이 유지된 영향이다.
◇ 빅테크, 전력 확보 경쟁·저장 기술 투자 확대
빅테크 기업들은 전력 확보를 위해 원전에 직접 투자하고 있다. 소형 모듈 원자로(SMR)는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저부하 전원인 동시에, 탄소 배출을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데이터센터 기업들은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는 동시에 탄소 배출 부담을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 SMR 투자를 확대하는 모습이다.

메타는 2026년 1월 최대 690MW 규모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테라파워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오클로와는 1.2GW 규모 원전 캠퍼스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아마존은 엑스에너지와 협력해 2039년까지 5GW 이상의 소형 원자로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구글도 카이로스파워와 협력해 2030년 첫 원자로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력 수요 증가는 저장 기술 투자도 자극하고 있다. 장시간 전력을 저장하는 기술(LDES)은 8시간 이상, 길게는 수일간 전력을 저장할 수 있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수단으로 꼽힌다. AI로 인한 전력 수요 증가 속에서도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보완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 구글은 전력 수요 대응을 위해 장시간 저장 기술 도입에 나서고 있다. 2026년에는 폼에너지와 함께 100시간 이상 전력을 저장할 수 있는 철-공기 배터리 기반 시스템 도입 계획을 밝혔다. 이처럼 AI로 인한 전력 수요 증가와 전력망 부담은 장시간 저장 기술의 필요성을 키우고 있다. 다만 비용과 제도, 공급망 문제로 상용화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AI가 끌어올린 전력 수요는 에너지 전환을 한 방향으로만 이끌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석탄발전 유지와 규제 완화로 전환 속도를 늦추고, 다른 한편에서는 원전과 저장 기술 투자를 촉진한다. 그러나 전력 수요 대응 과정에서 환경 규제가 후순위로 밀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에너지 전환의 방향과 속도를 둘러싼 논쟁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