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것보다 중요한 질문…사회적경제의 ‘다음 선택’

사회적경제, 시장에서 도약하는 법 <3·끝> 중장기 전략, 왜 ‘임팩트’부터 다시 묻는가
경기도 소셜벤처 자라나다·돌봄드림, 성장 이후의 선택 앞에서 방향을 재정렬하다

영유아 검진을 바탕으로 AI 발달 분석 리포트와 부모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영유아 발달케어 플랫폼 ‘자라나다’. 부모들은 아이의 언어·인지·정서 발달 상태를 간단한 문항으로 확인하고, 기록된 데이터에서 발달 지연 징후가 포착될 경우 알림을 통해 대응할 수 있다. ‘혹시 우리 아이 발달이 늦은 건 아닐까’라는 막연한 불안을 덜어주는 이 서비스는 입소문을 타며 빠르게 확산했고, 누적 이용자 수는 20만 명을 넘어섰다.

성장은 곧 다음 선택을 요구했다. 이용자 기반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자, 자라나다 내부에서는 서비스의 ‘그다음 단계’를 둘러싼 고민이 깊어졌다. 발달 상태를 점검하는 기능에 머물 것인지, 점검 이후의 개입과 지원까지 확장할 것인지 기로에 섰다. 발달 결과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부모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지원은 무엇인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플랫폼의 확장이 곧 사회적 가치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떠올랐다.

◇ 플랫폼의 확장이 곧 사회적 가치의 확장일까?

비슷한 장면은 발달장애인의 심리적 안정을 돕는 공기 주입식 조끼 ‘허기(HUGgy)’를 개발한 돌봄드림에서도 나타났다. 허기는 조끼 안에 공기를 주입해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방식으로 불안과 긴장을 완화하는 감각 통합 보조기기다. 현장에서 효과가 확인되며 제품은 자리를 잡았지만, 돌봄드림의 고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허기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생체 신호 데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돌봄드림은 이 기술이 발달장애인뿐 아니라 시니어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공기 주입식 조끼에 심탄도 센서를 결합한 시니어 건강 관리 솔루션 ‘클로멘탈’이 나왔다. 그러나 적용 대상이 바뀌자 내부의 질문도 달라졌다. 발달장애 영역의 문제의식으로 모인 팀원들에게, 시니어 돌봄으로의 확장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도 필요해졌다.

자라나다와 돌봄드림은 각기 다른 영역에서 출발했지만, 성장의 문턱에서 비슷한 질문과 마주했다. 더 커지는 것이 곧 더 나아지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변화의 방향을 다시 점검해야 하는가였다. 사업의 다음 선택을 앞두고,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이어갈 것인지가 과제가 됐다.

◇ ‘임팩트’라는 나침반으로 확장의 기준을 세우다

해법으로 두 조직이 택한 것은 경기도사회적경제원의 ‘사회적경제 도약패키지’였다. 성장 단계에 접어든 사회적경제조직이 사업 확장을 앞두고, 스스로의 방향성과 사회적 가치를 구조적으로 점검할 수 있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다.

이 사업의 출발점은 ‘조직이 무엇을 바꾸려는지’를 다시 묻는 과정이었다. 각 조직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짚고, 그 문제가 어떤 변화를 목표로 하는지, 또 그 변화를 만들기 위해 어떤 활동을 단계적으로 이어갈 것인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했다. 이른바 ‘변화이론(Theory of Change)’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이준철 MYSC 연구원은 “대표 개인의 머릿속에 있던 문제의식과 목표를 도식화해 조직 차원에서 공유 가능한 언어로 만드는 과정”이라며 “임팩트에 관심은 있지만, 이를 비즈니스 구조 안에서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하는 조직들이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자라나다는 이를 통해 서비스 확장의 기준을 재설정했다. 단순한 이용자 증가가 아니라, 발달 점검 이후 부모와 아이가 실제로 어떤 선택과 대응이 가능해지는지가 핵심 지표로 자리 잡았다. 백지연 자라나다 실장은 “임팩트가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무엇을 기준으로 봐야 할지는 막연했다”며 “이용자 경험과 변화이론을 함께 정리하면서, ‘발달 조기선별’에 그치지 않고 ‘전문가 연계’까지 이어질 수 있는 플랫폼으로 확장의 방향이 또렷해졌다”고 말했다.

돌봄드림 역시 시니어 돌봄 확장의 의미를 다시 정의했다. 김지훈 돌봄드림 대표는 “기술적으로는 확장이 가능했지만, 그 선택이 우리 조직의 미션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다”며 “변화이론을 정리하면서 발달장애인과 시니어를 관통하는 ‘돌봄 공백’이라는 공통의 문제의식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열린 ‘변화이론 워크숍’에 참여한 사회적경제 도약패키지 선정 기업 관계자들의 모습. /경기도사회적경제원

변화이론 워크숍 운영을 맡은 권혁준 MYSC 팀장은 “사회적경제조직은 생존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우리 비즈니스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변화이론 워크숍은 그 흐름을 조직 내부에서 다시 정리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은 사업을 매출이나 규모가 아닌, 임팩트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줬다. 이승환 비웨이브 대표는 “단기·중기·장기 목표를 어떻게 설정할지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며 “임팩트 이야기를 꺼내면 늘 ‘언제 돈을 버느냐’는 질문이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사회적 기업의 활동 자체에 의미를 부여받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도약패키지의 또 다른 특징은 사회적경제조직을 하나의 성장 경로로 묶지 않았다는 점이다. 투자 유치나 외형 성장 같은 단일 기준을 적용하기보다, 각 조직이 확장 국면에서 어떤 선택을 앞두고 있는지를 먼저 짚었다. 사업 연차나 매출 규모와 무관하게, 현재 조직이 직면한 과제에 맞춰 접근 방식을 달리했다.

학교·공공기관·기업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예방 뮤지컬 등을 기획·운영하는 ‘인뮤직 협동조합’ 구성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인뮤직 협동조합

학교와 공공기관, 기업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예방 뮤지컬 등을 기획·운영하는 ‘인뮤직 협동조합’은 맞춤형 설계가 적용된 사례 중 하나다. 공연 콘텐츠 기반 사업의 특성을 반영해, 도약패키지 과정에서는 투자 유치보다 산업 내 네트워크 연결과 판로, 사업 구조 정리에 중점을 둔 지원이 이뤄졌다. 윤여정 인뮤직 협동조합 대표는 “목표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조차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조직에 필요한 네트워크가 연결되고 사업을 시스템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전유진 경기도사회적경제원 본부장은 “중앙부처를 중심으로 다양한 액셀러레이팅 사업이 운영되고 있지만, 임팩트를 중심에 두고 다루는 프로그램은 많지 않다”며 “도약패키지는 임팩트를 기준으로 기업별 수요에 맞춘 컨설팅을 통해 사회적경제 조직의 정체성과 중장기 전략을 함께 정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임팩트펀드와의 연계를 통해 사회적경제 조직의 투자 준비와 자립·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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