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경제학, 새로운 비즈니스 질서 <3·끝>
‘좋은 생태계가 좋은 수익을 만든다’…마스가 보여준 EoM의 계산법
반려동물 사료 판매를 늘리려면 신제품 출시나 광고 마케팅 강화가 떠오르기 쉽다. 하지만 글로벌 사료 브랜드 로열캐닌(Royal Canin)은 전혀 다른 해법을 택했다. 반려동물 병원 현장을 지탱하는 수의사 보조 인력, 즉 동물병원 간호사의 이직 문제에 주목한 것이다.

로열캐닌은 제품 경쟁력보다 간호사 이직률이 반려동물 진료 생태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핵심 요인이라고 판단했다. 잦은 인력 교체로 진료 효율이 떨어지고, 고객 경험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수의사 네트워크와 추천을 통한 ‘신뢰 기반 유통 모델’을 갖고 있는 로열캐닌에게 이 문제는 곧 브랜드 신뢰 붕괴로 연결될 수 있었다.
이에 로열캐닌은 약 25만 달러(한화 약 3억 6000만원)를 투입해 간호사 재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업무 숙련도 강화, 수의사·간호사 간 협업 체계 정립, 그리고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직업적 정체성 회복을 돕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 결과 간호사 유지율은 38% 오르고, 고객 만족도는 25% 상승했다. 이는 반려동물의 건강검진 건수와 사료 재구매율 증가로 이어져 총 440만 달러(한화 약 64억 3000만원)의 매출 확대가 일어났다. 처음엔 ‘비용’으로 보였던 투자가 17배의 수익으로 돌아온 셈이다.
◇ 기업의 이익은 ‘생태계의 건강’ 위에서 자란다
로열캐닌의 전략은 글로벌 식품기업 마즈(Mars)가 옥스퍼드대와 함께 제시한 ‘상생의 경제학(Economics of Mutuality·이하 EoM)’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마즈 산하 기업 로열캐닌은 2015년 이후 이윤 중심 모델에서 벗어나, ‘반려동물 건강 생태계의 조정자(coordinator)’를 자임하는 방식으로 조직 정체성을 전환했다.

EoM은 기업이 속한 생태계의 문제를 해결하면 그 변화가 곧 신뢰와 효율로 이어지고, 결국 기업의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원리다.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를 별개로 놓지 않고 하나의 경영 구조로 통합하는 접근이다. 이는 기업의 윤리적 책무를 강조하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이해관계자의 요구에 대응해 리스크를 관리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성격이 다르다. 단순히 ‘좋은 일을 하는 기업’이 아니라, 문제 해결 자체가 기업의 성장 동력으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6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열린 ‘2025 EoM-한양대 넥스트 임팩트 포럼’에서 제이 자쿱 EoM 재단 총괄이사는 로열캐닌 사례를 언급하며 “기업이 사회적·인적·자연 자본을 얼마나 축적하거나 훼손하느냐는 손익계산서상의 수익과 손실에 직접 연결된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일을 하는 기업이 더 빠르고 수익성 있게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수많은 현장에서 확인했다”며 “EoM은 공익을 위한 비즈니스를 기업 친화적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 코코아 농가 생태계까지 바꾼 글로벌 공급망 실험
이날 포럼에서는 글로벌 초콜릿 기업 마즈가 추진 중인 ‘포레스트 포지티브(Forest Positive)’ 전략도 소개됐다. 마즈는 코코아 생산지의 산림 훼손을 단순 환경 문제가 아니라 ‘농가 생계 구조’ 문제로 규정했다. 안정적 소득이 보장되지 않으면 농민은 삼림을 개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마즈는 산림을 베고 경작하던 관행 농업에서, 나무 아래서 작물을 함께 기르는 재생농업으로의 전환을 지원했다. 또 정부·금융기관·비영리단체와 협력해 장기 구매 약정과 공동 투자 구조를 결합, 농가의 초기 전환 비용과 투자 리스크를 함께 낮추는 생태계를 조성했다.

페이 추 마즈 아시아 코코아 책임조달 디렉터는 “현재 인도네시아에서만 약 20만 농가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를 120만 농가까지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마즈는 앞서 2022년 인도네시아 ‘코코아지속가능성파트너십(CSP)’을 출범하며 4년 안에 농가 소득을 최대 15% 높이고, 최소 20%의 농가가 생계소득 기준을 상회하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알라스테어 콜린-존스 뮤추얼밸류랩스–EoM얼라이언스 총괄이사는 “마즈는 매년 수천만 달러를 농업 교육, 지역 협동조합 역량 강화, 공동체 내 신뢰 회복에 투입하고 있다”며 “겉으로는 ‘추가 비용’처럼 보이지만, 농장의 생산성과 공급망의 회복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결국 공동체 내부의 관계의 질”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본 지원을 넘어 신뢰를 구축하고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접근이 지속가능성을 만드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포럼에서는 ‘한양 아시아 EoM센터(Asia EoM Center at Hanyang University)’가 공식 출범했다. 센터는 한양대학교와 EoM 재단이 축적한 연구·실천 경험을 기반으로 아시아 지역의 지속가능 성장과 포용적 가치 창출 모델을 확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센터장은 최승호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가 맡는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