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날, 지나가다가 노란색 우체통을 봤어요. 익명으로 보내는 편지라는 게 생소하면서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자리에서 바로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나요. 답장을 너무 너무 기다리게 될 것 같아 주소는 쓰지 않았지만 나만 알고 있는 괴로움이나 슬픔을 적어 내려가는 것만으로 마음이 정돈 되더라구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CJ CGV에 설치된 온기우편함 이용후기 中)
주요 도시 CGV 영화관에서는 노란색 우체통을 발견할 수 있다. 고민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명으로 편지를 쓸 수 있는 ‘온기우편함’이다. 마음을 털어놓은 편지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손편지로 답장을 보내준다. 2021년 말부터 지난 5월까지 CGV 온기우편함에 접수된 고민편지는 1만2706통. “반신반의 하면서 이용했는데 너무 정성스러운 편지를 받아 정말 고마웠다”, “영화관 테이블은 그저 대기 장소일 뿐이었는데 용기를 가지게 된 장소가 되었다” 등 손편지를 통해 위로와 힘을 얻었단 후기들도 전해진다.
디지털 중심의 시대, 익명으로 작성한 손편지를 주고 받는 것은 어떤 사회적 가치가 있을까. 지난 28일, 사단법인 온기와 CJ CGV는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오픈 파트너스 데이 : 콜렉티브 임팩트 창출 및 임팩트 화폐가치화 연구’를 개최하며 그 성과를 공유했다.
온기는 온기우편함을 운영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사회구성원 누구나 익명의 고민편지를 보내면 자원봉사자인 온기우체부가 손편지를 답장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온기는 기업, 기관 등 36곳과 파트너십을 맺고 사회의 심리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
온기와 CJ CGV의 파트너십은 올해로 4년차. 용산, 여의도, 왕십리 지점을 비롯한 6곳을 시작으로, 2024년 21곳까지 확대했다. CGV 극장 내 온기우편함을 설치해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CGV 임직원들이 ‘온기우체부’로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관람객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온기우편함이 설치된 공간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이 생겼고,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응답도 92.5%에 달한다. 조정은 CJ CGV ESG경영 팀장은 “온기우편함을 설치해 소비자에게 새로운 극장의 경험을 제공했다”며 “관람객분들이 편지지뿐만 아니라 컵 홀더, 티켓 뒷면 등에도 편지를 쓸 정도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고민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임직원들은 CGV 방문객들의 고민 편지에 답장하면서 스스로 회복을 경험하기도 한다. 온기우체부로 활동한 대다수(89.2%)의 사람들이 답장할 고민 편지를 선택할 때, 자신의 경험과 유사한 고민을 선택한다. 사연자에게 답장하는 과정을 통해 공감, 연결감, 위로, 자기 효능감 등을 느낀다는 것. 조 팀장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면서 본인이 힘든 순간을 이겨낸 경험을 회상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온기우편함의 사회적 가치 측정 연구를 맡은 임팩트리서치랩은 온기가 만드는 사회 변화를 4가지로 구분했다. 긍정적 심리 경험, 마음 관리 인프라 구축, 고위험 사례 조기 예방, 우울감 완화 등을 주요 사회적 가치로 측정했다.
특히 고민 편지 중 자살, 폭력, 극심한 우울증 등 특정 키워드가 노출됐을 때에는, 전문적인 심리 상담을 공부한 온기우체부가 답장한다. 심리 상태에 대한 특별한 케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편지에 기재된 주소지와 연계된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알려주는 등의 정보도 함께 알려준다. 이런 방식으로 심리적 고위험 상태에 있는 사람을 사전에 식별한다.
이호영 임팩트리서치랩 최고연구책임자(CRO)는 “온기우편함은 2021년부터 2023년 총 3개년 동안 약 28억3000만원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다”며 “이는 투입예산 대비 약 6배의 성과를 창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호영 CRO는 연구를 하면서 “온기우체부의 77.5%가 활동 이후, ‘힘들 때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이 강해졌다’고 응답했다”라며 “온기우편함이 구축하는 ‘마음 인프라’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조현식 사단법인 온기 대표는 “기업과 비영리 조직은 사회 문제 해결에 대한 진정성을 바탕으로 파트너십이 구축돼야 한다”라며 “온기우편함이 앞으로 더 많은 파트너들과 함께 곳곳에 설치돼 우리 사회의 심리적 안전망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기용 더나은미래 기자 excusem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