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어디서 죽을지 알면 좋겠다. 거기는 절대 안 갈 테니까.”
워런 버핏과 함께 지금의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룩한 찰리 멍거의 말입니다. 바보 같은 일을 피하는 것이 똑똑한 일을 하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단기간의 큰 수익을 좇으려다 돌이키기 힘든 실수를 범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투자 원칙이기도 합니다.
지역을 살리는 빠르고 가시적인 전략 중 하나가 관광입니다. 관광객을 위해 만든 공원, 문화재, 놀이시설 덕분에 주민의 삶이 즐겁습니다. 텅 빈 거리엔 생기가 돌고 소득과 일자리가 늘어납니다. 반면에 잘못 사용하면 지역을 망치는 도구가 됩니다. 관광객이 빠진 자리엔 공동화가 생기고 대기업이나 외지 자본이 부동산 거품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짧은 탐욕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인구 감소 지역에서는 관광객을 관계인구로 전환하기 위해 더 멀리 바라보아야 합니다.
◇ 시간과 공간
관광객의 체류 일수는 보통 2, 3일입니다. 주말을 이용해 하루 숙박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 짧은 기간에 최고의 경험을 선사해야 합니다. 프리미엄 숙소와 잘 차려진 음식을 멋진 풍경과 함께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1년에 한 번, 어쩌면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핫플레이스는 많이 만들수록 좋습니다. ‘인스타그래머블’은 여행지를 탐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사진 찍기 좋은 곳에는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스카이워크도 만들어야 합니다. 서울은 물론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국적인 느낌의 브루어리와 카페도 많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인플루언서가 주도하는, 누구나 한 번쯤 오고 싶은 지역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관광객이 더 오래 머물거나 지역에 눌러살기를 바란다면 그들의 경험은 지역의 일상에 스며야 합니다. 일주일을 머물기엔 풀빌라나 한옥펜션보다 마을 풍경에 스며든 집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토박이들이 찾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골목길에서 발견한 빵집의 단골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1년을 살아도 혹은 평생을 살아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 사람과 그 사이
관광산업의 성과는 방문객 수로 알 수 있습니다. 매년 더 많은 목표를 수립하고 그에 걸맞은 랜드마크를 건설해야 합니다. 지역 축제는 2019년 884개에서 2024년 1170개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럴수록 독특하고 차별성 있는 축제를 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전국 1위의 방문객 수를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뺏고 뺏기는 경쟁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아는 사람’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축제는 지역에 와야 할 이유를 주지만 친구는 지역에 살아도 될 이유를 줍니다. 열흘 넘는 꽃은 없으나 10년 넘은 우정은 많습니다. 업무로 만나 친구가 된 사람, 단기 유학에서 사귄 딸내미 친구들이 사는 곳은 다른 지역과 다른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이 차별화입니다. 그리하여 아는 사람이 많은 지역은 다른 지역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 복리의 마법
세상을 이루는 시간, 공간, 인간은 모두 사이 간(間)을 쓴다고 합니다. 각각 존재하거나 서로의 사이를 메우는 관계가 없다면 세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광으로 지역을 살리려면 이 사이를 메워야 합니다. 가시적이지도 않고 오래 걸리는 일이므로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의 성공에도 인내심이 있었습니다. 20, 30대부터 투자 활동을 했으나 그들 자산의 90% 이상은 60세가 넘어서 축적된 것입니다. 복리의 마법 때문입니다. 투자해서 번 돈으로 좋은 집과 자동차를 사는 대신, 더 좋은 주식과 기업에 투자했습니다.
관계인구도 복리의 마법이 작용합니다. 한 명이 정착하면 그 친구와 가족이 지역에 방문할 이유가 생기며 새로운 관계인구가 됩니다. 단기간에 지역을 살려야 한다면 맛집을 만들고 축제를 여십시오. 그러나 만약, 복리의 마법을 얻고 싶다면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사이를 메워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해야 합니다.
오승훈 공익마케팅스쿨 대표
필자 소개 마케팅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믿음으로 ‘지역의 미래’를 탐구하는 오래된 마케터입니다. 현재 공익마케팅스쿨 대표이자 공익 싱크탱크 그룹 ‘더미래솔루션랩’의 전문위원으로, 공익 마케팅 전략과 지역경제 정책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슬리퍼 신은 경제학’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