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수록 사회적 임팩트 커진다”…유럽 ‘테크 포 굿’ 벤처캐피털의 전략

[인터뷰] 폴 밀러(Paul Miller) 베스널 그린 벤처스(Bethnal Green Ventures·BGV) 대표

“수익성과 사회적 가치는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둘이 교차하는 지점에 투자합니다.”

폴 밀러(Paul Miller) 베스널 그린 벤처스(Bethnal Green Ventures·이하 BGV) 대표는 지난달 26일 카카오임팩트가 주최한 ‘돕는 AI 콘퍼런스(제2회 사회적 가치 페스타 특별 프로그램)’ 참석차 방한해 <더나은미래>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럽을 대표하는 ‘테크 포 굿(Tech for Good)’ 벤처캐피털(VC)을 이끄는 그는 “기술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에 투자해온 선구자로 꼽힌다.

BGV는 2012년 런던에서 설립됐다. 밀러 대표가 2007년 교육 분야 소셜벤처 창업을 경험한 뒤, 초기 자금과 네트워크 부족으로 좌절하는 창업자들을 위해 만든 투자사다. 지금까지 약 200개 기업을 발굴했으며, 이들 포트폴리오가 창출한 매출은 2022년 기준 1000억 원에 달한다.

BGV는 ▲지속가능한 지구(A Sustainable Planet) ▲포용적 사회(An Inclusive Society) ▲건강한 삶(Healthy Lives) 세 분야에 집중 투자한다. 대표적 투자 사례로는 물 사용량을 95% 줄이는 수경재배 기술 ‘에어로포닉스(Aeroponics)’를 개발한 ‘레터스 그로우(LettUs Grow)’, 분쟁광물 사용을 최소화한 친환경 스마트폰 제조사 ‘페어폰(Fairphone)’, 개인 맞춤형 식단 관리 앱 ‘세컨드 네이처(Second Nature)’ 등이 있다.

‘테크 포 굿’ 프로그램으로 발굴부터 성장까지 지원 

모든 투자는 ‘테크 포 굿(Tech For Good)’ 프로그램을 통해 시작된다. 매년 두 차례 열리는 프로그램에서 10개 팀을 뽑아 6만 파운드(한화 약 1억2000만 원)를 투자하고, 기업 지분 7%를 확보한다. 이후 12주간 제품 개발·비즈니스 모델·임팩트 측정 등을 집중 지원하고, 가능성이 입증되면 프리 시드(Pre-seed)부터 시리즈A까지 수백만 파운드 규모의 후속 투자가 이어진다.

밀러 대표는 “우리는 뒷좌석의 잔소리꾼이 아닌, 창업팀과 함께 항해하는 ‘내비게이터’가 되려 한다”며 “특히 ‘팔수록 임팩트가 커지는’ 모델만 고른다”고 했다.

디지털 헬스 스타트업 ‘닥터 닥터(DrDoctor)’는 대표적 사례다. 이 회사는 영국 NHS(국립보건서비스)의 예약 불이행을 줄이고 스케줄 최적화를 지원하는 데이터 기반 환자 참여 플랫폼 ‘하이브리드오에스(HybridOS)’를 개발해, SMS 리마인더와 예측 분석 등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절감된 비용만 병원당 연간 약 37억 원. NHN 병원은 그 대가로 플랫폼 사용료를 지불한다. 그는 “수익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한 전형적인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 창업자 다양성이 사회문제 해결의 ‘열쇠’다  

BGV 포트폴리오 기업의 40%는 여성, 33% 이상은 소수인종 출신 창업자다. 밀러 대표는 “다양한 배경의 창업자가 문제 해결의 지평을 넓힌다”며 “성별이나 배경과 무관하게 누구나 성공적인 테크 포 굿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언어 학습 플랫폼 ‘채터박스(Chatterbox)’는 BGV의 철학을 보여주는 사례다.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 무르살 헤다야트(Mursal Hedayat)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 출신 길르메뜨 드장(Guillemette Dejean)이 공동 창업한 이 플랫폼은 난민과 소수자 출신의 고학력 전문 인력을 온라인 언어 코치로 연결해 기업과 개인에게 원어민 수업을 제공한다. 난민 교사들의 일자리 문제를 풀면서도, 유니레버(Unilever)·맥킨지(McKinsey) 등 글로벌 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해 수익을 내는 구조를 만들었다.

BGV가 후속 투자까지 고려할 때 가장 중시하는 기준은 ‘문제-창업자 적합성(Problem-Founder fit)’이다. 밀러 대표는 “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문제에 대한 진정성은 배울 수 없다”며 “창업자가 얼마나 그 문제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를 본다”고 말했다.

밀러 대표는 한국 임팩트 투자 생태계에 대해서도 조언을 남겼다. 그는 “대형 투자자만 있다면 초기 단계가 무너질 수 있다”며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는 초기 투자자의 존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임팩트 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시대를 열고 싶다”며 “한국·일본·독일 등과 국제 협력 기회도 많아질 것이고, 영국에서는 연기금의 임팩트 투자도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래는 폴 밀러(Paul Miller) BGV 대표와의 일문일답. 

―BGV의 전략과 운영은 어떻게 변화했나. 

“처음에는 창업자들이 제품의 첫 버전을 만들 수 있도록 초기 지원에만 집중했다. 시간이 지나자 기업들이 성장했고, 스케일업을 위한 후속 투자가 필요해졌다. 그래서 단순한 액셀러레이터에서 벤처캐피털로 진화했다.”

―후속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인가.

“첫째, 상업적 성과다. 고객이 실제로 돈을 내고 소비하는지 본다. 둘째는 임팩트다. 제품의 긍정적인 영향을 보여줄 수 있는 단순한 지표라도 필요하다. 셋째는 팀이다. 좋은 팀과 문화를 갖췄는지를 본다. 넷째는 시장성이다. 다른 투자자로부터 후속 투자를 받을 수 있는지 살핀다. 마지막으로, 제품이나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는지를 본다.” 

―임팩트 측정은 어떻게 하나.

“펀드 차원의 공통 지표를 강제하지 않는다. 대신 각 스타트업의 문제 맥락에 맞는 지표를 함께 정한다. 후속 투자가 진행될 때마다 ‘증거 수준’을 높이라고 요구한다. 예컨대 휴대전화 카메라로 피부암 가능성을 판별하는 AI를 개발한 ‘스킨 애널리틱스(Skin Analytics)’는 단순한 변화 이론에서 출발했지만, 임상시험을 거쳐 영국 NHS(국립보건서비스)에 도입됐다. 지금은 ‘우리가 이만큼의 생명을 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BGV의 미래 비전은 무엇인가.

“장기적으로 임팩트 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시대를 열고 싶다. 한국·일본·독일 등과 국제 협력 기회도 많아질 것이다. 영국에서는 연기금의 임팩트 투자 참여도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본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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