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 ‘넷제로’ 선언 유지, 아마존 ‘공급망 탄소 감축’ 요구 지속
“ESG는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기업 생존 전략”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안티 ESG(ESG 반대)’ 기조가 글로벌 ESG 흐름을 뒤집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들도 단기적 변화를 좇기보다 ESG를 장기적인 성장 전략으로 내재화해야 한다는 조언이 제시됐다.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FKI 타워에서 열린 ‘글로벌 안티 ESG 흐름과 국내 기업의 대응 방향’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ESG의 지속성을 강조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과 인플루언스맵이 공동 주최한 이번 세미나는 ESG 반대 흐름 속에서 기업과 투자자들의 대응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는 개회사에서 “ESG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 출발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에서도 ESG 금융 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제도적으로 안착하고 있다”며 “ESG는 규제 변화와 무관하게 기업의 장기적 성장 전략이자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행정부 임기는 유한하지만, ESG는 계속된다”
조영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 원장은 “애플, 테슬라, BMW,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기업들은 여전히 공급망 관리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MS 관계자가 “트럼프 정부의 임기는 4년이지만, 우리는 2003년에 넷제로(Net Zero)를 선언했다”며 “이 기조는 변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도 지난해 탄소 배출량이 높은 협력업체에 탈탄소화 계획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조 원장은 “지금은 ESG 시장이 일시적으로 숨 고르기에 들어간 시점이지만, 이 흐름이 꺾인 것은 아니다”라며 “국내 기업들은 ESG 전략을 점검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실질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탄소세·ESG 공급망 실사 등 다가오는 ESG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명확히 정하거나, 이해관계자 확대에 따라 브랜드 이미지와 수익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ESG 경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 美 반(反) ESG 움직임…“실제론 정상화 과정”
작년 ESG 관련 주주제안 찬성률이 낮았던 점과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폐지가 안티 ESG 영향 때문이라는 해석에 대해 반박하는 시각도 나왔다. 조대현 아시아기후변화투자자그룹(AIGCC) 박사는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 스트리트 등 대형 자산운용사가 ESG 관련 의결권 행사 방식을 투자자가 직접 선택하도록 한 조치를 두고 “ESG가 위축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산 소유자의 책임을 높이는 정상화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블랙록이 2025년 투자 가이드라인에서 이사회 다양성 지침을 삭제한 이유는 S&P 500 기업의 98%가 이미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이라며 “삭제됐다고 해서 다양성 기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국 외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은 여전히 ESG 투자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말, 아시아기후변화투자자그룹(AIGCC)과 아시아기업거버넌스협회(ACGA) 등은 한국 정부에 지속가능성 공시기준과 ESG 관련 입법을 촉구하는 서한을 발송하기도 했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은 “정권이 바뀐다고 기업이 직면한 환경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변화 리스크는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고, 고객사 입장에서도 공급망 내 탄소 감축 요구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ESG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라고 말했다.
국내 상황과 관련해 김태한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22대 총선을 앞두고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각 정당의 ESG 정책 입장을 조사한 결과, 일부 차이는 있었지만 ESG 정보공개 의무화와 지속가능 금융 액션 플랜 등 주요 정책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ESG를 정치적 논쟁이 아닌 기업 경영 환경 변화의 일부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ESG 반대 흐름이 석탄 등 화석연료 산업과 일부 정치 세력의 전략적 개입으로 조성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세진 인플루언스맵 한국팀 매니저는 “미국 내 ESG 반대 움직임은 ESG 규제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우려한 화석연료 기업과 산업협회들이 반대 담론을 적극적으로 주도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아치콜, 머레이 에너지, ARLP 등 미국 석탄 기업과 협회들이 ESG 반대 법안인 ‘모델 ESG 법안’ 초안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매니저는 “안티 ESG 흐름의 핵심 목표는 기후 정책을 무력화하고, 주주들이 기업의 기후 대응에 영향을 미칠 권한을 약화하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