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6일(수)

[사회혁신가의 두 가지 언어]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가 명확해져야 하는 순간

이호영 임팩트리서치랩 CRO·십시일방 대표

필자가 한양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강의 중 하나는 ‘사회적 기업가 정신’이다. 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사회 문제 해결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팀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중요한 점은 그 아이디어가 ‘수익 모델에 기반한 지속가능한 모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수업을 들었던 학생에게 연락이 왔다. 필자에게 연락이 온 학생은 사회적 가치를 접목한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자신이 초기 창업 자금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 명확한 수익 모델이 없어서 고배를 마시고 있다고 했다.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창업 아이디어의 사회적 가치는 충분했다. 하지만 해당 아이디어에 수익 모델을 접목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다른 예시지만 일하기 어려운 정도가 심한 장애인들의 사회 참여를 돕는 일,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어린아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일 등이 사업 대상자의 특성상 수익 모델을 가지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학생의 아이디어도 위와 같은 맥락이었기 때문에 단체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전부 자체적인 수익 모델을 통해 조달하겠다는 접근보다는, 해당 사회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등의 방법을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럼에도 학생은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수익 모델을 떠올리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필자는 학생이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필자가 만약 수업을 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수익 모델이 있어야만 지속가능한 사회혁신이다’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게 했다면 그것은 필자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으며, 수업의 메시지가 잘못 전달되고 있음을 의미했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첫 주 수업에서 필자는 사회적 기업을 ‘시장 기반의 솔루션(market-based solution)을 토대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조직’이라고 정의한다. 이후 수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사회적 기업은 시장에서 자생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요즘은 사회적 기업뿐만 아니라 비영리 조직들도 자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하는 등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고 있다고도 말한다.

필자는 혹시 이러한 메시지(영리와 비영리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고, 지속가능한 사회혁신을 하려면 수익 모델이 필수적이다)가 학생들로 하여금 수익 모델을 사회혁신을 위한 필수불가결인 요소로 인식하게 만든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또한 학생들이 사회문제 해결 아이디어를 도출해 가는 과정에서 모금과 같은 비영리적 옵션을 떠올리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이는 비영리 또한 영리 기업처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는 달랐다. 어떤 학생들은 비영리적 모금 활동은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므로 시장에 기반한 수익 모델이 필수적인 시대가 도래했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였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모순

필자는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관심있는 사회문제를 자유롭게 선택하라’고 말한다. 이때 학생들은 해당 사회 문제에 수익 모델 접목이 가능한지와 무관하게 자신이 진짜 관심 있는 사회문제를 고른다.

그런 뒤 필자는 ‘이제 선택한 사회문제를 재무적으로 지속가능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 아이디어를 떠올려보라’고 말한다. 애초에 수익 모델 접목이 어려운 사회문제를 선택한 학생들에게는 모순된 요구다.

이처럼 수익 모델 적용이 어려운 경우 필자가 학생들에게 해주면 좋았을 말은 ‘여러분의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을 잠재 후원자를 정의하고, 이들을 실제 후원자로 전환할 수 있는 전략을 도출해보라’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가 정신’이라는 수업의 제목에 필자 스스로 과도하게 얽매여 이런 말들을 못 해주고 어떻게든 수익 모델을 찾아보게끔 학생들을 지도했던 것이 지금에야 하는 고백이자 반성이다.

설령 수업의 주제가 사회적 기업이라고 할지라도 때로는 그것이 유일한 길은 아니며 모금을 위한 역량과 전략을 생각해 보라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했다.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에서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비영리적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영리적 수익 모델이 있으면 좋다. 이러한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에서 성공적인 케이스를 만들어낸 사회적 기업들도 많다.

하지만 모든 사회문제 해결 과정이 비즈니스적 솔루션에 기반할 수는 없다. 어떤 문제들은 명확한 비영리적 정체성에 기반한 모금 전략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사회적 기업가 정신’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영리와 비영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사고보다는, 학생들이 이 둘의 특징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자신이 선택한 사회문제에 적합한 쪽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도출한 방법 중 하나가 ‘수익 모델에 기반한 사회적 기업’이라면 수업의 취지에도 잘 맞을 것이다.

또한 필자는 수익 모델만이 재무적으로 지속가능한 방법이라는 뉘앙스가 학생들에게 전달되지 않게 노력할 것이다. 비영리의 모금은 외부의 선의에 의존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부자들은 돈을 버리지 않는다. 기부자들은 비영리 조직이 어떤 미션과 전략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판단한다. 그리고 이것이 마음에 들면 자신의 돈(기부금)과 그 가치를 교환하는 것이다. 이는 영리 기업이 매력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고객에게 판매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기 때문에 1만 명의 기부자들에게 1만 원씩 기부받는 어떤 비영리 조직의 매력적인 모델은 영리 기업의 수익 모델만큼 안정적일 수 있다.

이호영 임팩트리서치랩 CRO·십시일방 대표

필자 소개

임팩트를 측정·평가하는 전문 기관인 (주)임팩트리서치랩에서 최고연구책임자(CRO·Chief Research Officer)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양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대학생들에게 지속가능경영과 소셜벤처 창업, 임팩트 측정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학교 재학 시절 취약계층 청년들에게 무료 식권을 전달하는 비영리단체 ‘십시일밥’을 설립했고, 현재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무료 주거지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 ‘십시일방’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사회혁신 생태계의 N잡러입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