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아프리카서 청년 5만명 정신건강 돌봤더니… 구글·페이스북도 주목하더라

[인터뷰] 브라이트 시테미 멘탈360 대표

케냐 자살률 지난 10년간 2배 폭증
사회적기업 세워 5만명 정신건강 관리
페이스북·구글 지원으로 앱 개발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10월 아프리카에 자살 경보를 내렸다. WHO에 따르면, 전 세계 자살률 상위 10위권 국가 가운데 6개국이 아프리카 국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자살률이 높은 한국(12위)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아프리카의 높은 자살률 원인은 전 세계적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이 죽음의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할 전문의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의 정신과 의사 수는 인구 50만명당 1명으로 매우 적다. WHO 권고치의 100분의 1 수준이다.

브라이트 시테미 멘탈360 대표는 “케냐 정부가 한해 보건 예산 중에 정신건강에 배정하는 비율은 0.01%에 불과하다”라며 “경제 성장도 사람들이 건강해야 가능한 것이고 건강 문제는 정신 건강을 고려하지 않고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멘탈360
브라이트 시테미 멘탈360 대표는 “케냐 정부가 한해 보건 예산 중에 정신건강에 배정하는 비율은 0.01%에 불과하다”라며 “경제 성장도 사람들이 건강해야 가능한 것이고 건강 문제는 정신 건강을 고려하지 않고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멘탈360

“동아프리카 지역을 볼까요? 1억7000만여 명 인구를 정신과 의사 100명이 책임집니다. 그마저도 대부분 경제적으로 성장한 케냐 나이로비에 몰려 있어요. 정신건강을 돌봐야 한다는 인식도 낮을 뿐더러 부유한 사람들만 진료나 치료를 받는 상황입니다.”

지난 11일(현지 시각) 더나은미래와 화상회의로 만난 브라이트 시테미 멘탈360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멘탈360은 2018년 케냐에 설립된 정신건강 관리 사회적기업이다. 이듬해 한국의 비영리단체 아프리카인사이트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됐다. 이후 페이스북과 구글로부터 자금과 기술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고 있다.

아프리카는 정신건강 사각지대다.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가 당면한 과제인 물질적 빈곤을 해결하면 정신건강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는 인식 탓이다. WHO에 따르면 케냐의 자살률은 지난 10년 새 2배 증가했고 병원을 찾는 환자의 약 40%는 정신질환, 불안감, 우울증, 중독 문제 등을 겪고 있다. 특히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비교적 경제적으로 성장한 케냐마저도 정신건강 관련 병원도, 의사도, 정부 투자도 극도로 부족하다. 멘탈360은 이 틈새를 파고들었다.

케냐 외진 마을 찾아가 청년 대상 정신건강 상담

멘탈360의 주요 타깃은 청년층이다.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아 도움을 받을 금전적 여유가 부족한 이들에게 손길을 내민다. 이들은 건강관리 서비스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외진 마을 곳곳을 깊숙히 돌아다니면서 테라피 세션과 1대1 상담을 제공한다. 청년층 대다수가 수입이 없다는 점에서 고객의 연령, 거주지, 직업, 경제적 배경에 따라 상품 가격을 세 단계(프리미엄·일반·무료)로 구분했다. 주로 후원자와 후원기관에서 돈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그램들로 수익은 거의 남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으로 도운 고객만 지금까지 5만명이 넘는다.

“어느날 실직해서 우울증에 걸린 한 남성이 저희에게 연락을 해왔어요. 삶의 끝자락에 서서 살려달라고 구호 요청을 보내는 것과도 같았어요. 그분에게 무료로 테라피 세션 수강권을 지급했고 직원들이 매일같이 안부를 확인했어요. 세션 완료 후에 다행히도 그는 삶의 활력을 되찾았고, 현재는 직장을 구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어요. 놀라운 건 그 고객이 이제는 멘탈360의 후원자가 돼서 다른 청년들이 무료로 서비스를 받도록 돕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요 수입원은 법인 대상 서비스에서 나온다. 기업에 웰니스 자가진단 컨설팅과 강연을 제공한다. 출강은 시간당 3만케냐실링(약 29만원) 정도로, 원하는 직원들에겐 1대1 상담 서비스도 제공한다. 현재 멘탈360은 연간 3000만케냐실링(약 2억9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했다.

시테미 대표는 유년 시절 어머니의 자살 시도와 가까웠던 친구의 자살을 겪은 이후 정신건강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어머니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뒤 스스로 많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면서 “주변에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치유해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역시 부모님 이혼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렸지만, 케냐의 작은 마을에서 찾을 수 있는 의사라곤 전문성이 부족한 전통적 ‘치유자(healer)’뿐이었다. 전문적인 상담을 받고 싶었지만 상담가(counsellor), 심리 전문가(psychologist), 정신과 의사(psychiatrist)를 구분하는 일도 어려웠다. 마땅한 수입이 없어 진료받을 돈도 없었다.

사회적기업 설립을 결심한 건 스물다섯 되던 해에 친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으면서다. 시테미 대표는 “돌이켜보니 어머니도, 그 친구도 죽음을 생각한 시기가 20대였다”라며 “젊은 사람들이 정신 건강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공론의 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18년 10월 멘탈360 직원이 케냐에서 청년층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회복을 위한 그룹 테라피 세션을 제공하고 있다. /멘탈360
2018년 10월 멘탈360 직원이 케냐에서 청년층을 대상으로 그룹 테라피 세션을 제공하고 있다. /멘탈360

정신건강 관리도 애플리케이션으로… 페이스북·구글이 지원

최근에는 정신건강 관리 애플리케이션 ‘보마(Boma)’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일반 대중도 정신건강 관리를 생활습관(life style)으로 확립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시테미 대표는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어려움을 애플리케이션으로 해결해 작은 고민이 심각한 질환으로 번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차원”이라며 “올해 출시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보마 서비스는 세 단계로 구성된다. 우선 라피키(rafiki·친구를 의미하는 스와힐리어) 시스템으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유저들이 익명으로 서포트 그룹을 만들어 교류한다. 이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은 심리 전문가를 거쳐 정신과 의사의 상담을 받는다. 정신과 의사의 수가 한없이 부족한 여건 속에서 급증하는 수요를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전략이다. 상담 가격대는 시장가보다 30% 낮추고, 금전적 어려움이 있는 환자에겐 무료 서비스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6월 정신건강 관리 애플리케이션 ‘보마(Boma)’의 이해관계자와 잠재적 수요자를 대상으로 워크숍이 진행됐다. /멘탈360
지난해 6월 정신건강 관리 애플리케이션 ‘보마(Boma)’의 이해관계자와 잠재적 수요자를 대상으로 워크숍이 진행됐다. /멘탈360

보마의 전망에 세계적 정보기술(IT) 기업과 기술자들은 이미 보증을 섰다. 2020년 페이스북은 전 세계 30여 조직을 대상으로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제공했는데, 멘탈360도 이 중 하나로 선정돼 6개월간 디지털 전환 작업을 진행했다. 이후 페이스북은 멘탈360을 ‘아프리카 지역 1등 모범 기업’으로 선정해 2021년까지 총 6만달러(약 7400만원)를 지원했다. 구글은 지난해 10월부터 글로벌 대기업을 고객사로 둔 임팩트 사업 중개사 ‘베네비티(Benevity)’를 통해 멘탈360에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정신건강 관리 애플리케이션은 아프리카를 넘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전망하기로는 10억달러(약 1조원) 플랫폼 비즈니스로도 성장할 수 있어요. 단순히 돈에 대한 얘기가 아닙니다. 그만큼 아프리카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싶습니다.” 

탄자니아=김소희 해외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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