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시·청각·언어 장애인 92.5%, IT 보조기기 지원 못 받았다

정부 IT 보조기기 지원사업, 13년간 5만명 지원
올해 예산 60억원으로 2배 증액… 선정 인원은 4739명

장애인의 ‘디지털 생활비’는 비장애인보다 비싸다. 시각 장애인의 경우 PC로 인터넷을 하거나, 문서 작성을 하려면 화면 정보를 음성으로 전환하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엑스비전테크놀로지가 개발한 ‘센스리더’를 주로 쓴다. 가격은 35만원. 사용자 편의를 위해 LG그램 등 일반 노트북에 센스리더를 설치한 올인원PC의 가격은 290만원이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원클릭 복구 솔루션, 다국어 판독 기능 등이 탑재돼 있지만 일반 노트북 가격보다 2배 높다.

셀바스 헬스케어가 만든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는 텍스트를 점자로, 점자를 문자로 변환해주는 보조기기다. /조선DB
셀바스 헬스케어가 만든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는 텍스트를 점자로, 점자를 문자로 변환해주는 보조기기다. /조선DB

정부는 장애인의 디지털 장벽을 낮추기 위해 2010년부터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각 장애인, 청각·언어 장애인, 지체·뇌병변 장애인에게 보조기기와 특수 소프트웨어 제품 가격의 80~90%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당사자는 나머지 10~20%를 부담하면 된다.

문제는 지원 대상자 대비 수혜자들의 비율이 턱없이 낮다는 점이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올해까지 장애인 IT 보조기기 보급사업에 선정된 대상자는 5만1703명이다. 국내 장애인 수 212만6000명의 약 2.4%에 불과하다. IT 보조기기 주요 신청자인 시각(25만2000명) 장애인과 청각·언어(43만5000명) 장애인으로 대상자를 좁혀봐도 전체의 7.5%에 그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쟁률은 치열하다. 지난해 기준 해당 사업 신청자의 25.9%(3369명)가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는 예산을 작년(31억5200만원)의 2배 수준인 60억원으로 증액했으나, 선정 인원은 4739명으로 137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정부 예산 확대만큼 수혜자 수가 늘지 않는 건 높게 형성된 보조기기 가격 탓이다. 국내 장애인 보조기기 시장은 소수 기업이 과점하고 있다. 기기 종류마다 생산업체는 1~2곳에 불과하기 때문에 수요·공급에 따른 가격조절 기능이 작동할 수 없는 환경이다.

셀바스헬스케어가 개발한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는 점자와 문자를 상호 변환해주는 기기로, 시각 장애인이 독서를 하거나 문자 등을 보낼 때 필요한 제품이다. 한소네 신제품인 버전6은 가격이 580만원에 달한다. 이밖에 음성증폭기는 220만원, 문자판독기는 460만원, 특수마우스는 100만원 수준이다. 특히 보조기기는 소모품이고, 일상에서 용도에 따라 여러 기기가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나 민간 기업의 지원을 받더라도 개인의 금전적 부담은 여전히 크다.

조한진 대구대 장애학과 교수는 “정부나 대기업의 든든한 지원이 없으면 시장에 쉽게 뛰어들 수 없다”면서 “테스트 한번, 제품 출시 한번을 하더라도 실패할 경우 부담해야 하는 리스크가 너무 크니 도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장 규모가 커지려면 장애를 더 폭넓게 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한진 교수는 “미국 같은 장애 선진국은 보조기기 공급 업체도, 품목도, 연구기관도 다양하다”면서 “우리나라는 장애의 범위를 협소하게 규정하지만, 선진국에서는 노인까지 포함해 더 넓게 보기 때문에 소비자가 늘고 거대한 마켓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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