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사회혁신 위해 달려온 10년… 이젠 비영리 지원 나선다

[인터뷰] 창립 10주년 맞은 루트임팩트 허재형 대표

공업단지 성수동에
혁신가 공유오피스 조성
입주 기업 간 협업 선순환

임팩트 기금 36억으로
비영리 조직 지원 계획

허재형(40) 루트임팩트 대표는 서울 성수동을 사회혁신가들의 성지(聖地)로 만든 인물 중 하나다. 루트임팩트는 2012년 7월 비영리사단법인으로 출범해 국내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를 발굴하고 지원해왔다. 지난 8일에는 경북 경주에서 열린 ‘제4회 대한민국 사회적경제 박람회’에서 사회혁신 생태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법인 설립 당시 서른한 살이던 허 대표는 1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젊은 CEO에 속한다. 지난 12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에서 만난 그는 “루트임팩트 출범 당시 구성원 중에 유일한 30대였고, 모두 20대였다”면서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사회를 바꿔보자는 목표 아래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모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창업 당시 8명으로 시작한 루트임팩트는 2017년 혁신가들의 공유오피스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1호점)을 조성했고, 2019년엔 서울숲점(2호점)을 열었다. 현재 헤이그라운드에 입주한 혁신 조직은 120곳. 구성원은 1100명이 넘는다.

올 7월 창립 10주년을 맞은 루트임팩트의 허재형 대표는 "앞으로의 10년은 사각지대에 있는 혁신 조직을 찾아 자본과 연결하는 시기로 보낼 것"이라고 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올 7월 창립 10주년을 맞은 루트임팩트의 허재형 대표는 “앞으로의 10년은 사각지대에 있는 혁신 조직을 찾아 자본과 연결하는 시기로 보낼 것”이라고 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공업단지 성수동을 ‘사회혁신 1번지’로

―업계 동료가 10년 만에 엄청 늘었습니다.

“이른바 사회혁신가로 불리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인프라를 만들고, 그 인프라를 바탕으로 커뮤니티를 만든 결과라고 생각해요. 소셜벤처·사회적기업 등으로 표현되는 ‘임팩트 지향 조직’이 한데 모이니까 외부의 여러 이해관계자가 참여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예컨대 투자자 그룹이나 기업 사회공헌팀, ESG 경영을 위해 협업할 벤처를 찾는 기업도 있죠. 지금은 입주 기업들이 또 다른 조직을 발굴해서 성수동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선순환이군요.

“지금은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죠. 헤이그라운드를 처음 세팅할 때 최초 입주 기업 24곳을 모아 1년간 반상회를 했어요. 우리 공간에 어떤 시설이 있으면 하는지, 느슨하게 문화적 코드는 어떻게 디자인하면 좋을지, 커뮤니티는 어떻게 구축할지 등요. 루트임팩트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면서 첫 입주를 했어요. 이렇게 처음 입주한 기업들이 다단계 비슷하게 결이 맞는 팀들을 소개해줬어요(웃음). 그렇게 ‘회사 밖 동료’들이 성수동에 모이게 된 겁니다.”

―’회사 밖 동료’라는 말이 인상적인데요.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마음을 가진 다양한 조직들이 연대감 속에 일하면 가능한 개념이죠. 커뮤니티의 미덕 중 하나가 다양성입니다. 업종의 다양성, 직군의 다양성도 있겠지만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 문제의 다양성도 될 수 있죠. 이렇게 다양한 혁신가들이 모인 커뮤니티가 일정 규모를 갖추고 나면 회사 밖 동료와 협업이 이뤄지게 됩니다. 이를테면 우리 회사에는 디자이너가 한 명밖에 없지만 헤이그라운드에 수십 명이 있으니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거죠.”

―좋은 뜻을 가졌다고 해서 좋은 성과를 내는 건 아닐 텐데요.

“입주사를 선정할 때 이미 임팩트를 만드는 곳도 있지만 많은 곳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에 발생할 임팩트를 생각하고 있어요.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에요. 결과가 좋지 못한 경우도 물론 있죠. 하지만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창업의 의도와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창업이라는 게 수많은 의사결정의 연속이고, 많은 순간 유혹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의도와 진정성이 굳건한 곳은 유혹을 이겨내는 힘이 있어요. 그런 곳이 더 잘되도록 하는 게 루트임팩트의 역할이기도 하고요.”

―창업 의도와 진정성이 남달랐던 사람이 있었나요?

“지난해 ‘두손컴퍼니’에서 ‘두핸즈’로 사명을 바꾼 박찬재 대표가 대표적입니다. 초기에는 홈리스 당사자를 포함한 고용 취약 계층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제조업으로 출발했는데, 물류업으로 전환했어요. 물류업이라는 난도가 상당히 높은 업종에 스타트업이 도전하는 경우는 잘 없어요. 그런데도 업종 전환을 꾀한 건 화주(貨主)와 연간 단위로 계약하는 업종의 특성 때문이었어요. 제조업은 발주량에 따라 고용 규모도 큰 영향을 받는데, 물류업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죠. 그리고 그걸 해냈고요.”

혁신가 발굴, 소셜벤처 넘어 비영리로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최초 기획은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지금처럼 헤이그라운드 중심으로 형성한 혁신조직 네트워크 구축, 또 하나는 자선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사회환원 활동이 보다 전략적으로 이뤄지도록 이끄는 거였죠. 그래서 혁신가와 자선가를 연결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지금 평가하자면 절반의 성공이군요.

“당시 자선 자문 사업을 하기엔 좋은 타이밍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지금은 분위기가 다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는 자선가들을 만나기도 어려웠어요. 해외와 달리 닫혀 있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그래서 공동 창업자인 정경선 대표에게 말했죠. ‘우리 포기는 하지 않는다. 잠깐 서랍에 넣어두자. 10년 뒤쯤 재검토하자.’ 이제 그 순간이 왔습니다.”

―자선가들은 보통 재단을 만들지 않나요?

“미국에서는 ‘기부자 조언 기금’(Donor Advised Fund·DAF)이라는 형태로 자선활동을 하는 사례가 많아요. 기금 출연자들이 재단을 설립하는 대신 비영리 중간조직에 위탁하는 방식이에요. 출연자는 재단이라는 다소 무거운 방식보다 가볍고 효율적으로 본인의 의사와 방향에 따라 자선활동을 할 수 있죠.”

―최근 비영리조직의 혁신가들을 찾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선 자문 사업과 연결돼 있어요. 그간 소셜섹터에 자본 쏠림 현상이 조금 있었다고 생각해요. 소위 말하는 벤처캐피털(VC) 투자 관점에서 덜 매력적이지만 사회·환경적 성과를 기대하는 측면에서는 훨씬 더 잠재력 있는 조직이 많거든요. 비즈니스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좋지만, 문제의 특성 때문에 비영리 형태로 나서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생태계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간 자본의 연결이 약했던 비영리 조직에 자원을 연결하는 사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인가요?

“작년부터 준비해 온 ‘임팩트펀드 사업’의 첫 번째 결과가 곧 나올 겁니다. ‘임팩트 필란트로피 제1호 기금’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된 36억원 규모의 기금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나선 비영리 조직 10곳을 선정해 3년간 지원하려고 해요. 김강석 크래프톤 공동 창업자가 전액 출연한 기금이에요. 이제 비영리 조직들도 ‘우리의 지원군, 조력자가 있구나’ 하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10년의 목표는 뭔가요?

“돌아보면 혁신가들의 세상을 열망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아요. 희망이자 꿈 같은 건데, 모든 사람이 모멘텀을 잃지 않게 애써왔어요. 그간 해왔던 사업들은 시대에 맞춰서 진화시켜 나가고, 자선가와 혁신가들을 연결하는 작업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지난 10년은 생태계 형성에 유무형의 인프라를 만들어온 역할을 해왔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자본과 사람, 네트워크, 사회적 인식 등 다양한 유형의 자본을 연결하는 일을 할 겁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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