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소셜 액션 플랫폼 ‘베이크’ 활용법] 대상자 선정·물품 결정까지 기부자가 결정한다

후원자 투표로 승인을 거쳐야 기부금 집행이 가능한 모금 캠페인이 있다. 지원 물품의 구성도 포장도 후원자들이 투표로 정한다. 캠페인 전 과정은 수정 불가능한 데이터로 기록된다. 그간 재정적 기여만 했던 기부자들은 사업의 의사결정자가 되고, 적극적인 감시자 역할을 수행한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구축된 소셜 액션 플랫폼 ‘베이크’에서 구현한 새로운 온라인 모금이다.

금전적 기여자에서 사회혁신 주체로

베이크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을 만들고, 모금 캠페인도 열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월드비전은 기부 분야의 블록체인 기술 적용과 사업화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한 과정을 최근 마무리했다. 지난해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주관하는 ‘블록체인 기술검증(PoC) 지원 사업’의 결과다. 이번 사업에서 월드비전은 ▲추석에 뭐먹니 ▲달빛방 ▲월간언니 등 3개의 모금 프로젝트를 단계적으로 진행하면서 기술 검증을 했다.

[소셜 액션 플랫폼 ‘베이크’ 활용법] 대상자 선정·물품 결정까지 기부자가 결정한다

1단계로 진행된 ‘추석에 뭐먹니’는 국내 저소득 가정을 대상으로 명절 음식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사업 규모는 약 2294만원. 베이크 사용자 26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캠페인 진행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지원 물품을 투표로 정하고, 가정에 전달되는 격려 메시지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참여했다.

2단계는 중저소득 청년을 대상으로 월세 보증금 300만원을 지원하는 ‘달빛방’ 프로젝트다. 청년금융플랫폼 크레파스플러스와 협업을 통해 청년 주거 지원 사업의 의사결정에 베이크 사용자 30명이 참여했다. 참여자들은 보증금 지원 대상자 선정 과정에 투표하고, 자금 집행 검토와 승인에도 참여했다.

마지막 3단계는 가정 밖 청소년에게 월경 관련 물품을 지원하는 ‘월간언니’다. 사업 규모 5000만원에 베이크 사용자 100여 명이 참여했고, 소셜벤처 ‘이지앤모어’도 합류했다. 월간언니는 앞선 프로젝트와 달리 참여자들이 1만원 이상 기부하고, 캠페인 전반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베이크 모금 프로젝트 ‘월간언니’에 참여한 김명미(34)씨는 “여학생들에게 보낼 월경 관련 물품 구성을 기부 참여자들이 투표로 결정했는데 뭔가 더 뿌듯한 느낌의 새로운 기부 경험”이라며 “투표가 잦으면 조금 귀찮을 수도 있겠지만, 돈만 내는 후원에 비해 훨씬 애착이 가는 캠페인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부자는 연차보고서, 그 이상을 원한다”

기부자들은 모금단체에서 공개하는 연차보고서, 사업 집행 내역, 그 이상의 정보를 원한다. 월드비전은 베이크 구축 당시 기부자들이 원하는 투명성을 충족하려면 기존의 ‘후원금 투명성’을 넘어선 ‘후원자 관점의 투명성’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후원자들이 모금단체에 요구하는 공통된 의견은 ▲기부금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집행 과정 공유 ▲글로 쓰인 보고서가 아닌 후원자 참여로 생긴 변화 체감 ▲수혜자의 소식이나 변화된 모습에 대한 즉각적인 피드백 등이다.

이은희 월드비전 베이크 프로젝트리더는 “캠페인 진행 과정에 깊숙이 참여한 기부자들은 모금 사업에 대한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투명하게 집행된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베이크처럼 기부 참여자가 사업 의사결정에 참여하려면 기술적인 한계도 뛰어넘어야겠지만 모금단체의 조직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기반의 베이크에서 구현된 ‘스마트 기부 관리 시스템’은 크게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됐다. 먼저, 참여자에게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DAO형 거버넌스 디자인’이다. 예를 들어 ‘월간언니’ 프로젝트의 경우 참여자가 1만원을 후원하는 동시에 사업 참여자로 자동 임명되고, 사업 진행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주요 단계를 승인하는 권한도 부여된다.

캠페인 성립 조건과 사업 집행에 따른 기금 배분 규칙을 정의하는 ‘컨트랙트 팩토리’, 베이크 스마트 기부 관리 시스템으로 생성되는 데이터를 기록하는 ‘캠페인 토큰’, 캠페인 전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대시보드 기능인 ‘캠페인 매니저’도 중요한 요소다.

베이크 참여자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이번 블록체인 기술검증 실증 사업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의사결정 투표, 예산 집행 승인 참여는 각각 90.9%, 86.4%로 나타났다. 베이크 모금 캠페인 재참여 의향률도 90.9%로 조사됐다. 이은희 프로젝트리더는 “베이크를 통한 블록체인 모금을 비영리단체뿐 아니라 개인과 소규모 커뮤니티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며 “개인과 커뮤니티는 검증된 후보군을 대상으로 파일럿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은 “월드비전은 베이크로 블록체인 기술 검증 사업을 수행하면서 후원자 참여 방식과 사업비 집행 투명성을 높이는 블록체인 기술 기반 소셜캠페인 모델을 선도적으로 검증해냈다”며 “앞으로도 블록체인, NFT 등의 기술과 비영리·영리 간 조직들이 융합하는 오픈이노베이션 방식의 도전과 실험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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