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수놓은 길
미국 흑인 가족의 8대에 걸친 수난기. 주인공 ‘수니’의 증조할머니가 노예로 팔려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책을 한 장 넘길 때마다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딸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책의 마지막 장에선 헝겊을 이어 붙여야 완성되는 조각보가 나온다. 흑인 노예 제도가 있던 어둡고 무거운 시대 상황 속 여성들의 강한 생명력과 비장한 용기는 아름다운 삽화로 구현됐다. 차별·혐오에 맞서 싸운 여성들이 수놓은 조각보는 잔잔한 울림을 전한다.
재클린 우드슨 지음, 최순희 옮김, 주니어RHK, 1만4000원, 48쪽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1984년 12월 인도 보팔(Bhopal)시. 농약 제조공장에서 유해 화학물질 가스가 누출됐다. 화학물질에 노출돼 사망한 인구만 1만5000여명에 달했다. 공장 주변 지역은 사고 38년이 지난 지금까지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된 상태로 버려져 있다. 환경을 파괴하는 범죄 ‘에코사이드’와 인간을 말살하는 범죄 ‘제노사이드’가 연계돼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환경 파괴는 인간의 행동을 제약하고 인권을 침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환경을 훼손하는 주범은 인간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은가. 이 책은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전환의 아이디어를 공개한다.
조효제 지음, 창비, 2만원, 412쪽
나는, 휴먼
장애인 지하철 시위가 한 달 만에 재개됐다. 타협을 종용받지 않으려는 몸부림에서다. 장애인 당사자들은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투쟁한다. 저자 주디스 휴먼은 1970년대 미국의 ‘재활법 504조 투쟁’부터 1990년 장애인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소송과 시위, 점거를 불사하며 최전선에서 싸웠다.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점자 보도블록, 수어 통역 등이 투쟁의 산물이다. 장애인을 배제하는 공고한 제도·정책의 벽은 결코 무너진다는 것을 저자의 일대기가 증명한다. 그럼에도 쉬이 바뀌지 않는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장애인들에게 저자가 전한다. “우리는 평생을 타협하며 살아왔습니다. 타협은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주디스 휴먼·크리스틴 조이너 지음, 김채원·문영민 옮김, 사계절, 1만7000원, 336쪽
김수연 더나은미래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