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도시 소비자·시골 생산자, ‘반찬 편집 숍’서 연결되죠”

[인터뷰] 민요한 도시곳간 대표

“각지의 소규모 농장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품질이 뛰어나지만 유통 단계에서 가격 경쟁력이 낮아져요. 반찬 브랜드를 통해 도시 소비자들과 시골의 생산자를 만나게 해주고 싶었어요.”

민요한(25) 대표는 지역의 소농에게서 직접 받아 온 농산물로 반찬을 만들어 판매하는 ‘도시곳간’을 운영한다. 숙련된 셰프들이 반찬을 만든다는 점도 특별하다. 매장엔 ‘농부의 제품’이라는 이름으로 신선한 식재료와 농부들이 만든 다양한 친환경·유기농 제품을 판매하는 코너도 갖추고 있다.

도시곳간은 지난 2019년 6월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도시곳간 1호점을 오픈한 이후 생산자에게 안정적 판로를, 소비자에게는 좋은 먹거리와 농산물을 공급하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창업 첫해 월 10만명에 육박하는 고객을 모았고, 전국에 매장이 14개나 생겼다. 창업 3년 차인 지난해 연 매출은 100억원에 이른다.

지난 12일 만난 민요한 도시곳간 대표는 "지금까지 지역의 소농들이 도시의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었다"며 "도시곳간이 이들을 연결해 농부들에게는 합리적인 소득을, 소비자에겐 건강한 식품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했다. /임화승 C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2일 만난 민요한 도시곳간 대표는 “지금까지 지역의 소농들이 도시의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었다”며 “도시곳간이 이들을 연결해 농부들에게는 합리적인 소득을, 소비자에겐 건강한 식품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했다. /임화승 C영상미디어 기자

반찬 가게 고정관념 깨는 ‘반찬 편집 숍’

12일 방문한 도시곳간 매장은 우드톤 인테리어에 은은한 조명이 어울리면서 트렌디한 카페 느낌이 물씬 났다. 단순한 반찬 가게가 아닌 반찬 편집 숍이라는 말에 수긍이 갔다. 민요한 대표는 “상권을 분석해 각 매장 특성에 맞는 인테리어와 제품을 구성하고 있다”며 “누구나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민 대표는 요리계의 하버드라고 하는 미국 뉴욕의 CIA 요리학교 출신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미슐랭가이드 스타 식당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 유학파 셰프가 창업을, 그것도 사업 아이템을 반찬으로 정한 이유는 우연한 계기 때문이다.

“병역 문제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늘 지나던 시장 반찬 가게에서 손님들이 검은 봉지에 넣어달라고 하는 말이 귀에 박혔어요. 국내 반찬 시장 규모가 5조원 정도 됩니다. 그런데 아직 반찬을 사 먹을 때 창피해하는 풍조가 있는 거죠.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마땅한 브랜드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싶더라고요. 반찬 가게의 고정된 이미지를 깨는 프리미엄 반찬 브랜드를 만들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본격적인 창업 준비 과정에서 민 대표는 농식품 유통 체계의 문제를 마주했다. 특히 소농들의 어려움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소규모 농장의 농식품을 도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려면 대부분 도매시장을 거쳐야 해 마진을 많이 남길 수 없었다”면서 “더구나 생산량도 적기 때문에 대기업에 납품하기 어렵고 각 지역에 있는 직판장은 수요가 적어 판매량이 저조했다”고 말했다.

농부와 소비자를 잇다

도시곳간에서 사용하는 식재료는 모두 소농들과 직접 계약해 조달된다. 직거래를 통해 중간 유통 마진을 최소화하면서 소농들은 종전 거래보다 2~3배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소농과 상생한다는 좋은 취지에도 농부들의 마음을 얻기란 쉽지 않았다. 농부들은 반찬 매장 하나밖에 없는 20대 대표를 믿어주지 않았다. 민 대표는 “농부들과 계약할 때 제품을 받기 전에 모두 선입금을 하면서 신뢰를 쌓아갔다”면서 “손님이 하나둘 생기면서 소문이 났고 다양한 식재료를 조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도시곳간과 함께하는 소농은 300여 명에 달한다.

도시곳간에서는 극소량이나 특정 계절에만 납품할 수 있는 소농들의 농식품도 계약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다품종 소량 생산 구조를 만들었다. 작은 양의 반찬을 만들어 매일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는 식이다. 민 대표는 “소량만 납품받았을 때 한정 수량으로 판매하는데 오히려 고객들에게 인기가 더 좋다”고 했다.

“가격 측면에서도 판매량을 예측하고 소량을 수시로 생산해 시중 대비 저렴하게 제공해요. 최근에는 식기류나 주류 등의 제품도 판매하며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를 수 있도록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최근엔 투자 러브콜이 쏟아진다. 도시곳간은 지난 4일 임팩트투자사 소풍벤처스 등에서 프리시리즈 A투자를 유치했다. 올해 안에 전국 매장을 65개로 늘릴 계획이다. 물류 체계를 고도화하고 내년까지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어 각지의 농민들과 소비자들이 직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할 예정이다. 농부들의 해외 판로를 개척하기 위한 제품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수익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농부들이 매장에서 피드백을 들을 수 있어 특히 좋아해요. 이전에는 제품을 납품하고 판매가 잘 되지 않을 때 문제점을 알 길이 없으셨던 거죠. 고객들의 피드백을 통해 잘 안 팔리는 제품은 농부들과 함께 고민하며 개선합니다. 새로운 제품 개발과 기획도 함께하고, 매장을 통해 테스트할 기회도 제공해요. 소농들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것, 진정한 상생은 이런 거 아닐까요.”

강명윤 더나은미래 기자 my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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