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추석과 한글날 연휴가 끝났다. 팬데믹으로 가족 간 이동량이 줄었지만 선물 택배가 비대면의 아쉬움을 달래는 역할을 했다. 코로나19로 물동량이 증가한 상황에 연휴 간 온라인 소비가 더해져 택배 대란이 예상되고 있다.
택배 내용물은 대부분 플라스틱이다. 완충재부터 비닐커버, 상품포장지, 내용물까지 모조리 플라스틱 소재다.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는 전년보다 약 16% 증가했다. 혹자는 철저한 플라스틱 분리수거가 해결책이라고 하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열심히 분리수거한 플라스틱이 다시 이리저리 뒤섞여 수거되는 현장은 허탈감마저 들게 한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소재별로 분류되고 세척, 분쇄, 재성형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도 막대한 환경·비용 손실이 발생한다. 대부분 15단계 내외의 단계를 거치는데 소각·세척하는 과정에서 대기와 해양 오염을 일으킨다. 또 플라스틱을 분류하고, 운반,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건비, 물류비 등의 총 비용은 재활용 플라스틱 판매 수입의 4배를 넘어선다. 현재 재활용 시스템으로는 지구 마을에 쌓이는 플라스틱 총량을 줄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플라스틱의 ‘생산 감량’이다. 애초부터 만들지 않으면 재활용을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편리와 효율’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플라스틱의 역사를 과거로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체할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하거나 효율적으로 플라스틱 요소를 줄여나가는 것이 인류의 숙제가 됐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해결책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소비와 생산’의 연결고리 때문이다. 편리함과 저렴함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플라스틱 소비가 기업과 정책의 변화를 늦추고 있다.
2018년 아이쿱자연드림에 ‘김‘ 제품을 생산·공급하는 김공방 ‘수미김‘(괴산자연드림파크 소재)은 도시락 김에 들어간 플라스틱 트레이를 과감히 제거하기 시작했다. 제품 포장에 플라스틱 사용을 줄였으면 좋겠다는 아이쿱생협 조합원의 작은 요구가 계기였다. 기존 제품에 플라스틱 트레이만 뺀다고 되는 작업이 아니었다. 절단된 김을 중량에 따라 트레이 없이 반듯하게 포장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결국 2억여 원의 신규 설비를 구매해 국내 최초로 ‘無트레이 도시락김’을 출시했다.
플라스틱 줄이기 시도의 성패는 소비자의 손에 넘어갔다. 불편하거나 낯설다는 이유로 제품을 외면한다면 생산자의 무모한 시도로 끝날 일이었지만, 놀랍게도 아이쿱 소비자조합원은 기존 보다 2배 이상의 소비로 반응했다. 트레이를 제거한 김의 소비량이 늘자 시리즈 제품을 생산했고 이듬해인 2019년에는 도시락김 소비가 2배 이상으로 올랐다. 이 사례는 각종 언론과 주변 시장으로 퍼져갔다. 2020년 9월에는 환경부장관의 표창장을 받았고, 시중 유통업체에서 판매하는 유명 브랜드의 김과 타 친환경매장의 김에도 플라스틱 트레이를 제거하게 만드는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둘러보면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한 기업의 시도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소비자의 요구든 기업의 자발적인 시도든 플라스틱을 줄인 상품이라면 ‘소비’로 반응을 보이는 게 변화의 시작이다. 플라스틱 트레이를 제거하거나 대체재로 교체한 제품들은 김 외에도 다양하다. 플라스틱 트레이를 제거한 생선가공품, 스티로폼 대신 종이 트레이로 대체한 정육 상품들도 있다. 플라스틱 소재의 겉포장 전체를 친환경 대체재로 만든 선물세트도 있었다. 추석 연휴, 플라스틱 쓰레기가 폭증하는 시기에 대안의 씨앗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제품들이었다.
최근에는 통조림의 플라스틱 뚜껑이 화제다. 불필요한 플라스틱을 줄여달라는 소비자의 요구가 일자, 기업들이 플라스틱 뚜껑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소비자가 움직이면 기업이 변한다. 그리고 정책이 달라진다. 하루 800t씩 버려지는 국내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도 ‘행동하는 소비자’들이 해결할 수 있다.
박인자 아이쿱생협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