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9일(화)

[진실의방] 일 잘하는 사람

코리아나호텔 주차장에 차를 대기 시작한 건 2011년이었다. 수개월간 회사 주차장을 비롯해 여러 주차장을 배회하다가 마침내 정착한 곳이었다. 월 주차비 12만원. 도심 한복판에 있는 주차장치곤 가격이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차 관리하는 분들이 다 좋았다. 세 명의 관리자 중 가장 나이가 많고 책임이 많았던 그분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소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계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는 매우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업무를 했고 바쁜 와중에도 늘 단정하고 친절했다.

두 달 전쯤 주차장 입구에서 뚝딱뚝딱 공사를 하더니 차량 드나드는 시스템이 자동으로 바뀌었다. 예전 시스템이 참 구식이었단 걸 그제야 깨달았다. 사람이 부스에 앉아서 차단기를 일일이 열어주는 방식이었으니까. 시스템이 바뀐 뒤에도 한동안 관리자분들이 보여서 별문제 없나 보다 했는데, 갑자기 모두 사라져버렸다. 소장님과 10년간 매일 얼굴 보며 인사를 주고받았지만 대화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일하는 모습으로 그를 기억할 뿐이다. 일을 참 즐겁게 하는 사람. 그러므로 좋은 사람.

공익제보자 A는 기부금단체에서 20년 넘게 일하다 사표를 썼다. 조직이 갑자기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했고 그 꼴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만뒀다고 했다. 새 직장을 찾은 그는 전 직장의 갑질 비리 의혹을 제보하겠다며 우리에게 연락을 해왔다. A를 만나러 나가는 후배들에게 잔소리를 좀 길게 했다. 우리가 궁금한 건 제보자의 개인적인 사연이 아니라 팩트다, 기사를 쓰는 이유는 개인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진실을 전하기 위해서다, 공익제보자라고 다 좋은 사람은 아니다….

A가 전 직장에서 받던 월급이 700만원쯤 됐을 거란 얘기를 들었을 때 사람이 좀 달리 보였다. 적당히 부역하며 그 월급 받는 사람들이 아직 그 단체에 많을 텐데 분연히 떨치고 나왔구나 싶었다. 공익제보라는 조심스럽고도 어려운 일을 그는 차분하면서도 속도감 있게 진행했다. 전 직장에 관한 제보 내용을 문서로 작성한 것을 보고 똑똑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복잡한 내용을 쉽고 간단하게 보여주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A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확률적으로 그랬다. 일을 잘하고 즐겁게 하는 사람 중에 별로인 사람은 별로 없었다. 반면 일을 이상하게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꽝이었다. 문득 A처럼 일 잘하는 사람을 잃은 그 단체가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주차장도 안 됐다. 주차비가 많이 올라서 더 안 됐다.

[김시원 더나은미래 편집장 blindlett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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