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언어 넘어 우리는 한 팀… “축구로 배운 ‘평화’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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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평창 피스컵’ 개최

“아나, 패스!” “민준, 골~~!”
지난 9일 강원 평창군 진부면민체육경기장. 등번호 7번을 단 한국인 선수가 골을 넣자, 케냐에서 온 4번 선수가 달려가 등을 두드리며 박수를 보냈다. ‘스포츠로 만드는 평화’를 주제로 7일부터 사흘간 열린 ‘제1회 평창 피스컵(이하 ‘피스컵’)’ 마지막 날 경기가 이날 열렸다. 한국·동티모르·볼리비아·케냐 등 4국 남녀 청소년 36명은 국적을 뛰어넘어 팀을 꾸린 뒤 총 12번의 경기를 치렀다.
①지난 9일 열린 피스컵 혼합 팀전에서 뛰는 볼리비아 청소년(왼쪽)과 한국 청소년.②케냐 청소년과 한국 청소년이 함께 워밍업과 팀 빌딩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웃고 있다. /WFUNA 제공

국적·성별·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하나가 되다

피스컵은 분쟁이나 분단의 아픔을 겪은 나라의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을 국내로 초청해 친선경기를 벌이는 행사다. 한국에서는 기린중·진부중·평창중 등 강원 지역 세 학교 축구팀이 참여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강원도와 평창군,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주최하는 행사로 2018평창기념재단과 유엔협회세계연맹(WFUNA)이 주관하고 홍명보장학재단이 후원한다. 7일에는 평화교육 워크숍을 열고, 8일에는 국가대항전을, 9일에는 4국 선수를 섞은 혼합 팀전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말이 안 통해서 서로 어색했어요. 영어도 잘 못하니까 대화도 거의 없었어요. 본격적으로 경기하면서 어제(8일)부터 좀 친해졌어요. 이름도 외웠고요.” 추진서(16·기린중) 선수가 웃으며 말했다.

남녀 선수들이 함께 뛰면서 한 번 더 벽이 허물어졌다. “볼리비아 선수들이 다 여자라서 우리가 쉽게 이길 줄 알았는데 정말 잘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장성환(16·기린중) 선수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볼리비아 팀은 남자 7명, 여자 2명으로 구성된 기린중·진부중 축구팀과의 경기에서 1승1패를 기록했다. 진부중에는 9대3으로 이겼고, 기린중에는 6대5로 한 점 차로 졌다.

서로의 역사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김보담(16·기린중) 선수는 “첫날 워크숍 때 볼리비아에서 벌어지는 분쟁들에 대해 들었는데, 볼리비아 친구들이랑 친해지고 나니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고 했다. 동티모르에서 온 도밍구스 사비오(14) 선수는 “한국이 빨리 통일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태극기를 가방에 꽂고 다니겠다”고 했다. 동티모르 축구팀을 인솔한 최창원 동티모르국립대 한국학센터장은 “동티모르 사람들은 오랜 분쟁으로 외부인에 대한 배타심이 강한 편”이라며 “함께 축구를 하면서 마음의 장벽이 허물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9일 평창 피스컵 폐회식에 앞서 참가자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폐회식에는 이반 디보스 IOC 위원, 송기동 평창 부군수, 유승민 2018평창기념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분쟁으로 인한 폭력과 차별, 축구로 극복하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해외 축구팀은 ‘스포츠’를 통해 분쟁의 아픔을 이겨내온 팀들이다. 볼리비아에서 온 ‘라스 수페르 포데로사스(Las super poderosas)’팀은 ‘아주 강한 여성들’이라는 뜻을 가진 볼리비아 유일 10대 여성 축구팀이다. 볼리비아 최초 여성 스포츠 저널리스트인 카르멘 포소(Carmen Pozo)가 여성 축구 선수인 스덴스카 바카레사(Zdenscka Bacarreza)와 함께 지난 2014년 설립했다.

피스컵에 참여한 카르멘 포소 코치는 “볼리비아에서는 연간 120건이 넘는 ‘페미사이드(여성 살해)’가 일어나고 있다”면서 “열악한 치안과 심각한 젠더 폭력 문제를 스포츠로 극복하기 위해 축구팀을 만들었다”고 했다. “집 안에서 두려움에 떨던 여자아이들이 훈련장에 나와 ‘우리는 강하다’고 말할 때, ‘무슨 여자애들이 축구를 하느냐’고 비웃던 사람들이 태도를 바꿀 때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케냐에서 온 ‘비자나 아마니 파모자(Vijana Amani Pamoja)’팀은 아프리카에서 축구를 통해 여성 권리 증진 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 네트워크 ‘위민 윈(Women Win)’ 소속 팀 중 하나다. 조혼·할례 등 가부장적 문화로 인한 신체적 폭력이나 성폭력 등을 해결하기 위해 활동한다. 축구 교육을 매개로 여성 청소년들을 집 밖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1차 목표다. 에벌린 안양고 코치는 “남과 눈도 못 맞출 정도로 기죽어 지내던 케냐 여성들이 스포츠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스컵 주최 측은 화합의 정신을 강조하기 위해 우승팀도, MVP도 선정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참가한 모든 선수에게 금메달을 줬다. 임지성 WFUNA 수석담당관은 “참가국 선수들이 서로 상황을 이해하고 국경을 넘어 우정을 쌓는 것이 피스컵의 목표”라고 말했다.

폐회식에 참석한 이반 디보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모든 선수가 ‘스포츠를 통한 평화 고취’라는 올림픽 정신을 잘 구현했다”며 칭찬했다. 선수단을 대표해 단상에 오른 케냐의 리로이 무룽가 옴베바(15) 선수는 “‘평화’라는 열매가 결실을 맺도록 우리가 열심히 나무에 물을 주겠다”고 말했다.

[평창=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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