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사랑의 매’도 결국은 폭력… ‘친권자 징계권’ 사라질까

[더나은미래·굿네이버스 공동기획] 친권자 징계권, 59년 만에 사라질까?

 

1960년 제정된 ‘친권자 징계권'(민법 제915조)이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아동 대상 강력범죄가 갈수록 늘면서 부모에게 자녀를 징계할 권리를 주는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친권자 징계권을 법에 명시한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부모의 자녀 체벌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국제사회도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UNCRC)는 지난 3일 ‘대한민국의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제5·6차 국가보고서 심의에 따른 최종 견해를 통해 “특정 환경에서 여전히 체벌이 합법적이라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며 “‘징계적’ 처벌을 포함한 모든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라”고 권고했다. 아동단체들은 친권자 징계권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은 지난달 10일부터 ‘Change 915: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change915.org)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부모 체벌 정당화” vs. “징계권, 체벌 근거 아냐”

친권자 징계권은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징계’의 의미를 따로 정의하지 않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 법이 부모의 자녀 체벌을 합법화하는 부작용을 가져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노홍 홍익대학교 법대 교수는 “사실상 친권자 징계권이 자녀 체벌권을 인정하고, 민형사상 면책 사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녀 체벌권이 원칙적으로 허용된다는 전제하에 예외적으로 심각한 경우만 금지한다는 식으로 법 해석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친권자 징계권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지금까지 두 차례 나왔는데, 모두 체벌 행위를 부모의 징계권으로 본다는 내용이 담겼다. 첫 판결(1986년)에서 재판부는 “수십 회에 걸쳐 폭행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친권자의 징계권 범위에 속해 위법성이 조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따로 떼어 무죄 판결을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두 번째 판결(2002년)에서도 재판부는 “야구방망이로 때릴 듯이 위협하고 ‘죽여 버린다’고 말하는 것은 아동의 인격 성장에 해가 될 우려가 크다”면서도 “부모의 자녀에 대한 체벌은 원칙적으로 가정의 문제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단법인 두루의 김진 변호사는 “친권자 징계권이 체벌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아동복지법 제5조 2항의 실효성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아동복지법 제5조 2항은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법 조항의 상충 때문에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를 재판부 재량에 맡기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소관 부처인 법무부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5월 보건복지부 등과 함께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면서 ▲권위적 표현이라는 지적에 따른 ‘징계권’ 용어 변경 ▲징계권 범위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등 한계 설정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지속해서 친권자 징계권 폐지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민지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전문위원은 지난달 6일 국회 토론회에서 “부모의 자연스러운 양육과 교육권에 포함되는 징계권 규정의 전면적 폐지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18~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UNCRC 본심의에서도 법무부 관계자는 “부모의 자녀 체벌을 인정하는 친권자 징계권 조항을 개정할 계획이 있느냐”는 필립 자페 UNCRC 위원의 질의에 대해 “아동에 대한 체벌·학대·폭력을 허용하는 근거로 보지 않는다”며 즉답을 피했다. 고완석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옹호팀장은 “용어 변경 등 소극적인 대처로는 아동학대에 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랑의 매에 관대한 사회… “체벌, 부작용 크다”

아동단체들은 부모의 자녀 체벌에 관용적인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친권자 징계권 폐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귀한 자식은 매로 키워라’ 같은 속담이 아직도 통용되는 문화를 바꾸려면 법 개정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전국 아동학대 사례는 2014년 1만27건에서 지난해 2만4604건으로 2.5배 증가했고,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는 평균 78.6%에 달했다.

여론은 두 쪽으로 나뉘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5월 CBS 의뢰로 성인 505명에게 시행한 조사에서 전체의 47.0%는 친권자 징계권이 필요하다고 응답해 개정·폐지돼야 한다는 의견(44.3%)보다 우세했다. 경기도교육청이 지난 6월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친권자 징계권 개정·폐지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전체의 53.2%로 개정·폐지가 필요 없다는 의견(44.8%)보다 많았지만 “우리나라가 ‘사랑의 매’에 관대한 국가라는 것이 재확인됐다”는 쓴소리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자녀 체벌이 ‘훈육’ 효과는 미미하고, 오히려 아동의 신체적·정신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굿네이버스가 지난해 6~7월 전국 17개 시·도 초·중학생 9176명과 해당 학생의 부모 9176명을 대상으로 아동권리 실태 조사를 한 결과, 부모로부터 체벌 받은 경험이 있는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과 비교해 ▲불안 정서 ▲우울 정서 ▲자살 충동을 느끼는 강도가 각각 18.3%, 52.4%, 12.0% 높았다. 체벌 경험자의 학교폭력 피해·가해 수준도 체벌 미경험자와 비교해 각각 1.9배, 2.0배 높았다. 한유정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연구소 팀장은 “수십년 전의 낡은 인식을 담고 있는 친권자 징계권의 폐지가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지훈 더나은미래 기자 jangpr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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