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피해 도망친 지 2년…로힝야족, 교육으로 ‘희망의 불씨’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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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 난민촌 이야기]

난민 100만명 육박, 여성·아동이 78%…성폭력·아동실종 등 치안 ‘빨간불’
굿네이버스, 난민 캠프 지원사업…아동기초학습·여성직업교육 진행

아나르(40·가명)씨는 앞만 보고 내달렸다. 폭격 진동음으로 몸이 흔들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2017년 8월 25일. 동이 틀 무렵 미얀마 인딘 마을에 들이닥친 군인과 경찰들은 로힝야족을 대상으로 무차별 학살을 벌였다. 학살 피해 생존자들은 2년 전 그날을 떠올리며 “우리는 평화, 정의, 그리고 미얀마 국적을 원한다”고 말했다.

미얀마 정부군에 의한 로힝야 학살 사건으로 약 90만명이 방글라데시로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됐다. 당시 급하게 꾸려진 난민 캠프는 재난 상황만큼이나 열악했다. 구호 물품을 받으려고 몰린 인파에 여성과 아이들이 압사당했고, 성폭력과 인신매매가 횡행했다. 매년 우기가 찾아오면 토양 침식, 홍수, 산사태가 일어났다. 이들을 돕기 위해 국제구호단체들이 급파됐다. 현재 유엔을 비롯한 30여 국제구호단체가 주거, 식량, 안전, 교육, 의료 등 분야별로 난민 지원 사업을 나눠 맡고 있다. 사정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난민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기약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방글라데시 난민 캠프에 마련된 아동친화공간을 통해 교육 자료와 책가방을 받은 어린이들이 기뻐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난민촌 10명 중 8명이 여성·아동…안전 문제 심각

방글라데시 난민 캠프에 머무는 로힝야족은 지난 7월 기준 91만2373명이다. 세계 최대 규모다. 대부분의 난민은 중부 쿠투팔롱(Kutupalong) 인근에 조성된 캠프 1~22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남부 나야파라(Nayapara) 주변에도 5개의 캠프가 있는데, 이곳에도 12만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난민 캠프는 임시 거처다. 10㎡ 남짓한 움막에 4~8명의 한 가족이 산다. 전기는 공급되지 않는다. 화장실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식수를 길어오고 땔감도 구해와야 한다. 구호 물품이 있지만 쌀, 식용유, 비누, 응급의약품 등 기초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100만명 가까운 사람이 모여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난민촌 안에도 시장이 형성됐다. 생계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상황. 난민들은 미얀마 탈출 당시 미처 돈을 챙기지 못했거나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가진 돈을 다 써버린 경우가 많아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도 쉽지 않다.

난민들은 미얀마 정부의 박해를 피해왔지만, 캠프 안에도 위험 요소는 존재한다.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불안이다. 특히 여성과 아이들은 낮에도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나 시설이 부족하다. 땔감을 구하러 숲으로 나갔다가 성폭력을 당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고, 실종 아동이 발생하기도 한다. 유엔난민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로힝야 난민의 55%가 아동이며, 여기에 여성의 수를 합한 비율은 78%에 이른다.

아동친화공간에서 진행되는 아동 발달 프로그램에 참여한 로힝야 어린이들의 모습(왼쪽)과 동요 가사를 배우고 있는 로힝야 소녀. ⓒ굿네이버스

아동에겐 문해 교육, 여성에겐 직업 교육 제공

국제구호단체들은 난민 캠프에서 취약 계층을 위한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커뮤니티 센터가 어린이, 임신부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지금은 여성 안전을 위한 전용 공간과 상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조금씩 늘면서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의 경우 여성·아동 지원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굿네이버스는 캠프 14·15·16 지역에 여성 친화 공간과 아동 친화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아동 친화 공간에서는 영어와 산수 등 기초 학습과 신체 발달을 위한 야외 활동, 심리 치료, 성·보건 교육 등이 이뤄진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그림 그리기 대회 같은 경진 대회도 개최한다. 현지에서 난민 지원 사업을 담당하는 김민정 굿네이버스 방글라데시 PM은 “로힝야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아동 출석률도 무척 높다”며 “현재 4~14세 아동 360명이 정기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해 교육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캠프 주위를 배회하던 아이들은 매일 배우고, 쓰고, 놀이를 할 수 있게 됐다.

여성 친화 공간에서는 주로 직업 교육이 진행된다. 참가자들은 어망 만드는 법이나 재봉 기술을 배우고, 방글라데시 전통 자수 공예품인 ‘낙쉬 칸타(Nakshi Kantha)’를 만들기도 한다. 여성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인식 개선 교육도 벌인다. 이슬람교도인 로힝야족은 특유의 남성 중심적 정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계획, 개인위생뿐 아니라 성폭력의 위험성에 대한 교육도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 바루(40)씨는 “인식 개선 교육에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참여하는데, 덕분에 남편이 집안일을 돕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로힝야 난민 사태가 장기화함에 따라 국제구호단체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난민을 받아들인 방글라데시도 경제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국가에 속하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로힝야 난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있지만, 국제구호단체의 난민 구호 활동을 쉽게 허가하진 않는다. 난민 구호 활동에는 일반적인 주민 지원에 필요한 FD-6 사업 승인보다 훨씬 까다로운 FD-7 사업 승인을 받도록 해놨다. 김선 굿네이버스 국제사업본부장은 “전 세계적으로 난민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고 로힝야 역시 정착 난민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 차원의 지원은 물론 민간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며, 난민에 대한 학계의 연구도 활발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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