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6일(목)

[제3섹터 인사이트-①] 최호윤 삼화회계법인 회계사 인터뷰, “비영리단체들의 정보 소통이 ‘후원자’ 중심으로 변화해야”

제3섹터 인사이트

더나은미래가 전 세계적으로 제3섹터로 지칭되는 공익법인, 비영리민간단체,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의 통계를 추산해보니, 제3섹터가 국내 GDP의 약 13% 경제 규모를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2017년 8월 29일자 기사). 사회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정부와 시장의 한계가 뚜렷해지면서, 제3섹터는 역할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제3섹터의 현주소는 어떠하며, 앞으로의 방향은 어떠해야할까. 더나은미래는 창간 8주년을 맞아 제3섹터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해온 전문가 인터뷰 시리즈 ‘제3섹터 인사이트’를 연재한다. 첫번째 주인공은 비영리단체 회계전문가인 최호윤 삼화회계법인 회계사다.

최호윤 회계사는 비영리단체 회계에 관해서는 손꼽히는 전문가다. 회계사로 일하면서도 현장에서 수많은 NGO들을 만났고, 회계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단체들을 돕기 위해 2005년 비영리단체 종합관리(회계) 솔루션 ‘나눔셈’을 개발했다. 나눔셈은 일반기업의 ERP(전사적자원관리)와 같은 개념으로, 후원 관리부터 관리 회계까지 가능한 종합 프로그램이다. 1년 사용료만 수억원대인 ERP에 비해, 10만원 내외에 불과한 사용료로 단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최 회계사는 이후에도 현장에서 비영리단체의 회계·세무를 돕는 전문가로 제3섹터와 함께해왔다. ‘후원자가 후원자로 대접받는 사회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그가 바라보는 꿈이다. 교회재정건강성운동 실행위원장, 한국NPO공동회의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해온 그는 올해 3월부터는 한국공인회계사회와 한국NPO공동회의가 발족한 ‘비영리 공익법인 투명성 제고위원회’에서 국세청 공시양식 개선방안과 올해 개정된 공익법인 회계기준 등에 대해 일선에서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호윤 회계사 ⓒ조현호 C영상미디어 기자

─어떤 계기로 제3섹터, 그중에서도 비영리단체의 회계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고려대 법대 82학번인데, 한창 학내 시위가 심할 때라 사회 참여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기존 시스템 속에 들어가는 것이 과연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됐다. 돈 문제를 두고 싸운 십자군전쟁이나, 운동권 진영 내 이해관계를 둘러싼 주도권, 기득권 싸움을 보면서 결국 정치 중심이 아니라시민사회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한때 사법고시를 준비하기도 했지만, 적성에 맞으면서도 시민단체에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회계사로 전향했다.

89년 회계사 합격 후, 여러 비영리단체에서 통·번역 등 봉사를 하면서 단체들 회계 처리의 한계를 발견했다. 당시 기부자와 비영리단체 간에는 정보 소통의 간극이 존재했다. 기업들은 기부할 만한 좋은 곳을 추천해달라는데, 단체들은 결산서류를 만드는 데도 익숙지 않았다. 단체들 대부분이 한글이나 엑셀로 결산서류를 만들던 때였고, 조직의 막내가 회계 업무를 떠맡고 있었다. 그마저도 담당자가 바뀌면 백지 상태가 됐다. 개인적으로는장애인을 돕는 단체에서 10만원짜리 휴지곽을 구매해 후원해달라는 전화가 왔기에 단체의 결산서류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한 달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다가 후원 요청 전화가 끊긴 적도 있었다. ‘하는 일은 좋아보이는데, 제대로 하는지가 보이지 않으니기부자로서는 불신이 싹틀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본질적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중기부문화 활성화에 기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05년 비영리단체 종합관리 솔루션인나눔셈을 출시했다. 회계사 일과 병행해가면서 나눔셈을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 

“후원자와 단체 실무자를 비롯해 수혜자, 자원봉사자, 일반사회가 어우러지면서 정보가 소통되는 마당의 멍석을 깔아주고 싶었다. 필요하다는 열망이 강하다보니, 무작정 개발자들을 찾아가 구상한 바를 설명했고 약 3~4억원의 사비를 들여 나눔셈을 만들었다. 초기 모델은 단체 실무자에게만 용도가 맞춰지는 등 확장성이 떨어졌는데, 자신감이 붙어 이듬해부터 3년간은 직원 25명을 고용하고 20억원 넘는 돈을 투자할만큼 개발에 매진했다. 경기가 힘들어 파산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현재는 직원 3명으로 규모를 축소하고 현상유지 중이다현재는 결산자료 등만 공시하지만, 단체들이 후원자 및 일반사회에 공개할 정보 범위를 스스로 결정하고, 사업과 후원금 사용내역을 정직하게 소통하도록 하는 모델을 꿈꾸고 있다. 내가 3일 전 기부한 후원금이 언제 회계 처리가 됐고, 언제 단체의 행정비나 교통비에 쓰이거나 수혜자에게 전달됐는지를 연결해 보여주는 식이다.”

나눔셈의 홈페이지 전경. 클릭하시면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현장에서는 국세청 결산자료 공시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하는 곳들이 많다. 작은 단체들의 경우, ‘공시 때문에 정작 할 일을 못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시에 대한 단체들의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영리단체의 재원은 국가나 지자체의 보조금과 기부자의 후원금, 크게 두 가지다. 그런데 단체들은 보조금에 대해서만 고민한다. 정부는 보고의 기준을 만들고, 보조금을 잘못 쓴 것이 발견되면 환수조치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제품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듯, 비영리단체는 사회적 목적을 실현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후원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소통할 책무성을 가진다. 이 두 가지가 모두 보이는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단체들은 후원자는 뒷전이고 국가규제에만 집중한다. 공시자료 등 재무정보는 공시뿐 아니라 홈페이지, 소식지 등도 활용할 수 있는데도 고민 없이 공시했으니 우린 투명하다는 것도 단체 중심의 관점이다. 현재 비영리조직의 재무 관련 소통은생산자중심의 사고다. 돈을 쓰는 입장에서 정보를 제공하다보니, 재정 투명성이나 기부문화 활성화도 안된다. 단체들의 정보 소통이 후원자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 같은 일을 함께 하는동역자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후원금에 대한 정보 소통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등 해외는 외부회계감사만 받아도 투명한 단체로 인식되는데 우리나라는 유독 비영리단체에 과도한 투명성을 요구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역시 관점의 차이다. 평소에 신뢰도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면, 외부회계감사를 받지 않아도 신뢰할 수 있다. 그런데 단체들이 생성하는 정보가 후원자가 원하는 정보가 아닌데다, 어딘가 만들어낸 느낌까지 들 때도 있어 신뢰도가 없었던 것이 문제다. 외부감사에 대해 어떤 공통적인 기준, 공감대 형성이 안된 것도 있다. 단체들이 후원자에 대한 수탁책임을 이야기한다면 외부회계감사보고서의 주석 등에라도 이러한 내용이 나와야하는데, 돈을 쓰는 관점에서 보고서만 달랑 나오니 사람들은 신뢰가 안갈 수밖에 없다. ‘투명성(transparency)’이란 원하는 사람이 원하는 정보를 원하는 시기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후원자에게 문자 보냈다’, ‘메일 보냈다등 행위에만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기부자의 입장에서 보고싶을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후원자가 원하는 정보를 소통한다고 하면 어느 수준까지 소통하며 가야 하는가도 이슈일 것 같다. 예를 들어, 몇몇 비영리단체가 부동산을 매입할 때 매물선정부터 은행대출 등을 진행하면서 후원자에게는 소식지나 문자 등을 통해 차후에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이에 대해 한 단체 관계자는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후원자도 있을텐데, 모든 것을 일일이 소통하고 진행하면 과연 일이 되겠느냐고 하더라.

자기 돈으로 자기가 좋은 사업하겠다면 누구도 뭐라하지 않는다. 그게 아니라 공적으로 후원을 받아왔다면, 단체의 운영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 심각한 이슈로 두고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비영리단체의 운영주체는 후원자다. 그런데 후원자 다수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가 어렵고, 또 대부분이 목소리를 내지 않다보니 예·결산승인 등 의사결정은 결국 이사회에서 3~4명이 한다. 예산승인이라면 단체가 예산을 책정해 이런 일들을 하겠다를 공유하고, 후원자가 그렇다면 이러이러한 것에 더 기부하겠다고 하는 것이 정상적인데도, 정작 단체에 후원할 당시에는 후원금을 상세히 어떻게 쓰겠다는 것은 하나도 이야기되지 않는다. 물론 돈만 던져놓고 참여하지 않는 후원자들도 변화해야 한다. 그런데 좋은 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후원자들을 교육하고, 같이 일하는 동역자로 끌어들이는 것도 단체의 역할이다.”

서울 용산구의 나눔과셈 사무실에서 최호윤 회계사 ⓒ조현호 C영상미디어 기자

─3월 발족한 ‘비영리 공익법인 투명성 제고위원회’에 합류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들었다. 위원회의 올해 활동 계획은?

“비영리단체와 전문가 입장을 조화시켜 ‘비영리 투명성 제고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단체와 일반 사회가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서 함께하고 있다. 올해 진행하는 사업은 두가지다. 첫째는 올해부터 시행되는 공익법인 회계기준의 매뉴얼 작업이다. 현재 기재부 용역사업이 진행 중인데, 앞으로 토론회와 교육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또 하나는 현 국세청 결산공시 양식 개선에 대해서 단체와 전문가의 입장을 반영한 제안서를 작성하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6월 중으로 기획재정부에 전달해 제도를 보완하려 한다. 반영되려면 현재의 결산공시시스템에 전산작업이 필요해 마무리할 계획이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후원자가 후원자로 대접받으면서 만들어지는 사회공동체를 기대한다. 이런 토양을 만드려면 단체도, 후원자도 다 바뀌어야 한다. 단체는 후원자를 존중하는 겸손한 마음을, 후원자는 내가 내는 후원금으로 사회가 변화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기부해야겠다. 나눔셈은 올해 공익법인 출연재산등에 대한 보고서로 데이터를 만들어 기존의 정보들과 연계시키는 작업을 시도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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