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건 재미없었다. 오래 갈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같이 있을 때는 달랐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생겼다. ‘같이 뭘 해볼까’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다보니 세상에 나오게 된 게 바로 ‘코끼리 협동조합’ 이다.
광주광역시 동명동에 위치한 이들의 공간은 쉽게 볼 수 없던 독특한 구조였다. 1층은 펍(Pub), 옆 쪽에 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면 메이커 스페이스 공간이 있었다. 한 층 더 올라가면 게스트하우스로 이루어진 3층 건물이었다. 이 곳에서 직접 만든 작품들과 메이커 장비들로 가득 차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 공간에서 코끼리 협동조합 김보람 이사를 만났다.
◇재미있는 실험그룹 ‘코끼리 협동조합’
– 코끼리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Co-operative(협동조합)’와 ‘끼리끼리’ 라는 단어를 합쳐서 만든 이름이에요. 협동하다, 그리고 서로 함께하다 등의 의미를 갖고 있는 거죠.”
– 코끼리 협동조합이 나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광주에서 청년문제를 갖고 모인 그룹이 모여 커다란 협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다가 여의치 않아서 저희만(현재의 운영진) 남은 거에요. 우리가 주력할 걸 찾자고 해서 청년 메이커 플랫폼을 하게 됐고 2015년에 코끼리 협동조합으로 인가를 받았어요.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준비를 했는데 쉽지 않아서, 일반 협동조합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저희가 모인건 거창한 이유는 아니였어요. 기본적으로 개인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알았던거죠. 빠르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재미도 없을 거고, 오래 갈 수도 없을 것 같았어요. 무엇보다 우리는 같이 있는 게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 코끼리 협동조합은 어떤 단체인가요.
“재미있는 실험그룹이라고 보시면 돼요(웃음). 메이커 플랫폼이 핵심이에요. 플랫폼 역할을 하면서, 메이커들이 우리 공간에 쉽게 와서 본인 작품도 만들고 사람도 만날 수 있게 하는 거죠. 하지만 그렇게 놀이에서 그치지 않고, 물건도 판매하거나 다른 것들도 창작할 수 있도록 지원 하고 있어요. 메이커 플랫폼외에 게스트하우스나 펍, 공익공간도 운영 하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다른 활동들도 여러가지 하고 있어요.”
– 메이커 플랫폼을 구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2014년에 코끼리 협동조합을 준비할 당시에도 뭔가를 만드는 일을 많이 했어요. 특별히 정해진 분야 없이 ‘이거 문 하나 만들어 줄래?’ ‘ 행사 하나 기획해볼래?’ 이러면 뭐든 다 할 수 있었거든요. 이러다보니까 우리가 ‘메이커’라는 분야를 해보면 재미있겠다 이런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우연한 기회로 3D 프린터를 얻으면서 박차가 가해졌어요.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로 댓글 1등 하면 경품으로 3D 프린터를 준다더라고요. 그 때 저희가 시민단체 활동도 많이 하고, 행사기획도 많이 하다보니까 나름대로 인맥이 쌓여 있었거든요. 그 좋은 인맥들을 여기에다 쓴 거에요(웃음). 좋아요 눌러달라고, 댓글 달아달라고 계속 부탁을 했죠. 그리고 1등을 했어요. 그 당시 200~300만원짜리 프린터를 받아서 일주일 동안 갖고 노니까 더 이상은 할 게 없더라고요. 우리가 모델링을 할 줄 알았던 것도 아니고 기계만 달랑 있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돈이나 벌어보자 해서 쭉쭉 키웠던 게 메이커 스페이스였어요.
지금은 (장비가) 엄청 많이 늘어난 거죠. 장비가 하나씩 더 생기게 되고 두세 개 정도가 갖춰지니까 여기서 출력할 수도 있고 재단할 수도 있는 정도가 됐어요. 그렇게 되니까 주변에서 ‘이거 안쓰는 기계인데 너희들이 일단 보관해줄래’ 해서 하나씩 더 늘어나고, 돈을 벌어서 기계를 하나 더 사고, 또 돈을 벌어서 기계를 하나 더사고 그렇게 갖춰지게 됐어요.”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와서 행복하게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는 거예요. 사람들이 직접 해보면 어려워해요. 직접 손으로 만지면 생각보다 할 게 많고 다르거든요. 그림 그리는 것도 마치 붓칠만 하면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직접 해보면 밑그림도 그려야 하고 번지면 닦아내야 하고 세세하게 알게 되잖아요. 사람들이 만들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힘들어하다가, 희열도 느꼈다가, 집중도 해요.
처음엔 불안했거든요. 사람들이 과연 수업을 많이 들을까 싶었어요. 관심이 있을 것 같긴 한데 ‘직접 발로 걸어올까’ 생각을 했는데, 하나 둘씩 금방 금방 오세요. 그런 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 최근에 ‘메이커냥’ 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요.
“저희가 진행하는 메이커 스페이스 교육 방향을 보면 ‘3D 프린터 수업’, ‘제작기기 수업’ 이런 건 별로 없어요. 정말 필요할 때 외에는 안 해요. 장비 이용하는 건 5분이면 끝나잖아요. 저희가 진행하는 수업에선 늘 뭔가를 만들어요.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서 ‘나의 고양이를 위한 가구 만들기’ 워크숍을 열었어요.”
◇메시지 담는 작품 만들고파
– 본인이 만든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희 공간이지요. 왜냐면 여기는 벽칠부터 바닥 공간 철거하고 뭘 세우기까지 운영진 손이 안 들어간 데가 없어요. 이걸 열었더니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오기도 했고 불안을 확신으로 바꿔준 공간이기도 해요. 그리고 많은 친구들이 여기서 꿈을 꾸고 나가고요.
저는 꼬박꼬박 필요한 물건을 아주 많이 만들어내는 메이커는 아니에요. 진짜 내킬 때나 필요할 때 만들어서 6개월에 한 번씩 작품 내다시피 해요. 게을러서(웃음). 지금은 이곳에서 만드는 친구들이 불편하지 않게 그런 공간을 조성을 해주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했던 작업중엔 ‘소녀들을 밝게 비춰주세요’라는 프로젝트가 스토리 펀딩을 하면서 이슈가 됐어요. 학교 밖 청소년 친구랑 저희랑 프리랜서 디자이너랑 협업해서 만들었어요. 애초에 이걸 판매할 생각도 없어서 아예 모든 제작과정을 오픈했어요. 그걸 보고 카카오에서 연락이 왔고 스토리 펀딩을 하게 됐어요. 전도성 잉크를 활용해서 만든 미디어아트였어요. 저희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대한 목소리도 내면서 만들었던 작품인 것 같아요.”
-작품 제작을 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게 있다면요.
“메이커는 자기가 필요한 걸 스스로 만드는 이들이에요. 빠르고 쉽게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거요.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으면 되거든요. 작품 만들 때는 개인적으로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서 만드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5월이 되면 매년 5.18 수레를 만들었어요. 예전에 확성기 역할을 하면서 ‘안녕하세요. 시민 여러분’ 하던 그런 트럭이 있었잖아요.”
-코끼리 협동조합에서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많죠. 저희 모토가 디지털 사회 혁신이에요. 사회문제나 사회이슈를 바꾸거나 던지려고 하는 것이 저희 목적이거든요. 삶 속에서 이런 기술들을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 사회문제를 바꾸기 위해 우리는 어떤 기술을 활용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과정에서 좀 많은 프로젝트 스페이스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또 주위를 찾아보면 드릴도 잘 박고 모델링도 잘하고 목공도 잘하는 친구들도 많이 있거든요. 그런 친구들 그룹을 만들어서 재미있는 것들을 하고 싶어요. 기술뿐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기술에 대한 물음이라든지, 기술과 노동에 대해 심오하게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하고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 메이커 스페이스의 입지가 좁은 편인데, 발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제가 어렸을 땐 집 옆에 공업사가 있었어요. 떨어진 철 붙여서 뭔가를 만들어보고, 가지고 놀고, 공기놀이도 그런 걸로 대신하곤 했어요. 메이커 스페이스가 굉장히 트렌드하고 꼭 IT기술이나 3D 프린터 같은 기기가 있어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하지만 이런 공간은 늘 있었어요. 한 마을에 공업사나 전파상 있었고, 그보다 옛날에도 대장간이 있었잖아요. 필요한 거 뚝딱 만들고, 호미 떨어지면 ‘이거 붙여주세요’ 하고 가는 곳이었고요. 지금의 메이커 스페이스를 그런 공간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 코끼리 협동조합의 향후 목표가 궁금합니다.
“팀원들이 건강했으면 좋겠어요(웃음). 다 같이 재미있게 계속하는게 목표에요. 우리가 재미있어야 다른 사람도 재미있겠죠.”
나진희 더나은미래 청년기자 (청세담 8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