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50분 일하면 무료식권… 그 식권으로 아무나 식사… ‘한끼알바’가 가져온 나눔의 선순환

일본 도쿄 헌책방거리 진보초(神保町)에 위치한 12석 규모의 작은 식당, ‘미래식당’엔 독특한 시스템이 있다. 누구나 50분 알바로 일하면 한 끼를 무료로 먹을 수 있는 ‘한끼알바’ 제도다. 이 식당의 종업원은 사장 혼자지만, 2015년부터 지금까지 거쳐간 한끼알바생만 400명이 훌쩍 넘는다. 일한 대가로 굳이 한 끼가 필요없다면, ‘한끼알바’로 받은 식권을 벽에 붙여두면 된다. 대신 벽에 부착된 식권을 떼어간 사람이 한 끼를 무료로 먹을 수 있다. 이름하여 ‘무료식권’이다. 음료 반입도 ‘공짜’. 단, 가지고 온 음료의 절반은 가게에 두고 가야 한다. 이 음료 역시 가게에 온 다른 손님이 자유롭게 마실 수 있다.

이 독특한 가게의 주인장은 일본 IBM과 레시피 검색 사이트 쿡패드 등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고바야시 세카이씨. 그녀는 미래식당을 열기 전 준비 과정과 경영 노하우를 책에 담아 공개했다. 세카이씨의 경험을 담은 책 ‘당신의 보통에 맞추어 드립니다(출판사 콤마)’ 번역출간을 맞아,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세카이씨는 “미래식당이 어려운 환경에서 낙오된 사람들에게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길 바란다”면서 경영철학을 풀어냈다.

도쿄 진보초의 미래식당 사장 고바야시 세카이씨. ⓒ콤마

미래식당의 핵심은 ‘한끼알바’에 있다. 한끼알바로부터 무료식권 시스템도 만들어진다. 미래식당의 한 끼 가격은 900엔(약 9000원), 일본 음식점 알바생 평균 시급 1000엔(약 1만원)과 비슷하다. 하지만, 미래식당에서는 돈이 아니라 한 끼 식사로 제공한다. 한끼알바가 제공받는 식사는 원가로 따지면 300엔(약 3000원) 정도다. 식당으로선 알바가 청소 등 단순작업만 해줘도 남는 장사다.

한끼알바를 하기 위한 단 하나의 조건은 ‘한 번 이상 손님으로 미래식당에 왔던 사람’이어야 한다. 돈이 오가지 않기 때문에 사장과 한끼알바생의 위치는 대등하다. 덕분에 1인 식당의 고질적인 어려움인 인건비 및 인력 운영 문제도 해소된다. 미래식당은 매월 매출과 원가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데, 지난 9월에는 114만3100엔(1112만8078원)의 매출을 올렸다.

어떤 사람이 한끼알바로 일하는 것일까. 음식점 개업에 뜻을 두거나, 무료식권을 붙이기 위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특히 미래식당에서 노하우를 배워가고 싶은 사람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는데, 이럴 때는 하루에 일곱 끼 분량의 식권을 받는다. 이들이 벽에 붙인 남은 식권으로 필요한 사람이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세카이씨는 “도시락집 개업을 6개월 앞둔 한끼알바생과 4~5회 시범 제작을 거쳐 ‘도시락 정식’ 메뉴를 미래식당에 내놓은 적이 있다”면서 “개업 전에 메뉴를 선보이고 가게 운영 과정을 경험해보면서 자신감을 얻는 데도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한끼알바 스케줄은 구글캘린더로 공유된다.

미래식당의 분위기는 독특하다. 억지로 희생을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눔의 선순환이 일어난다. 돈이 없어 밥을 못 먹는 사람이거나, 혹은 배가 고픈 사람이라면 식당에서 ‘무료식권’으로 밥을 먹으면 된다. 음료를 먹고 싶은 사람은 가게에 누군가가 기부한 음료를 마시면 된다. 세카이씨는 미래식당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나선형 커뮤니케이션’이라 표현했다. 누군가의 호의를 받았을 때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은혜를 갚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관점이다. 도움을 주고받는 사람이 직접 마주치는 것은 지양한다. 도움을 준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거리낄 것이 없다. 받은 만큼 베풀면 그만이다.

도쿄 미래식당의 정식메뉴. ⓒ콤마

지난해 3월부터는 ‘살롱 18금’ 서비스를 도입했다. 재밌는 것은 18세 미만이 금지가 아니라, 18세 이상이 금지인 식당이다. 매월 둘째 주 일요일 11시부터 18시까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공간을 만든다. 18세 이상인 사람이라도 정회원의 초대를 받으면 입장은 가능하나, ‘살롱 18금’ 운영에 관한 결정권이 없다. 또한 초대 제도에는 ‘정회원의 2촌 이내는 초대할 수 없다’는 제한을 두고 있다. 일상에서 분리된 공간이라는 의미다. 세카이씨는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철학에서 서비스를 도입했다.

“15살 때 처음 혼자 찻집에 갔을 때가 기억납니다. ‘집에서의 나’도, ‘학교에서의 나’도 아닌 ‘나 자신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줬다는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때 처음 지금의 미래식당과 같은 가게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젠 그 당시의 나와 비슷한 또래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미래식당은 ‘각 사람의 보통, 존재 그대로를 받아주는 곳’을 목표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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