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시민사회 30년, 이제는 ‘감시자’에서 ‘해결자’로… ‘시민사회연찬회’

“국가가 해야할 일을 하게 만들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못하게 견제하는 게 시민사회의 역할이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한국의 시민사회는 비판과 감시 역할을 주로 해왔다.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하는 시점이다. 정부가 세금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늘고 있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공익활동도 활발해졌다. 시민사회에서 ‘사회문제의 해결자’로서의 역할을 고민해야 할 때다.” (손봉호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지난 4일,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시민사회 발전을 위한 연찬회’가 열렸다. 국무총리실에서 주최하고 나눔국민운동본부사단법인 시민에서 주관한 이번 연찬회에는 종교계·자원봉사계·지역재단·전국시민사회협의회·마을공동체·비영리단체(NPO)·중간지원조직 등 전국120여명의 시민사회 리더가 한 자리에 모였다. 지역과 활동 영역, 분야를 뛰어넘어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리더들이 한데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4일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시민사회 발전을 위한 연찬회’에서 손봉호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가 환영사를 하고 있다. ⓒ나눔국민운동본부

시민사회 발전을 위한 이번 연찬회의 주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시민사회 성장 전략을 찾아서’. 시민사회가 그간 해왔던 비판과 감시운동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회문제의 직접적 해결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고, 그에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연찬회 개회사를 연 배재정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국무총리실과 시민사회가 함께 ‘시민사회 연찬회’를 열었다는 것 자체가 낯선 조합인 만큼 갖는 의미가 크다”며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할 수 있는 또다른 고리를 만들어가는 자리”라고 했다. 임현진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은 “과거에는 ‘시민 없는 시민운동’을 고민했다면, 촛불 시위에서 봤듯 이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움직이는데 정작 시민단체 회원은 줄고 있는 역설을 고민해야 할 때”라며 “이제는 정부 감시와 비판 기능을 넘어 세대갈등·일자리·저출산·양극화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를 토론하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역할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국무총리실에서 주최하고 나눔국민운동본부와 사단법인 시민에서 주관한 이번 연찬회에는 종교계·자원봉사계·지역재단·전국시민사회협의회·마을공동체·비영리단체(NPO)·중간지원조직 등 전국120여명의 시민사회 리더가 한 자리에 모였다. ⓒ나눔국민운동본부

◇87년 민주항쟁 이후 30년, 자원·사람… 시민사회 당면 과제들

1987년 민주항쟁 이후 올해로 30년. 한국 시민사회 흐름과 함께 국제 시민사회 변화를 짚은 주성수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제3섹터연구소장)는 “전 세계적으로 기업과 정부, 시민사회가 모두 ‘사회적 임팩트(공익)’를 향해 달려가는 상황”이라며 “시민사회를 정부의 동등한 파트너로 공식 인정하고 정책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영국 ‘콤팩트(Compact)’ 협약 사례를 벤치마킹한 ‘공익증진을 위한 시민사회발전법’은 정부와 시민사회가 보다 더 협력할 수 있는 근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비영리법인·비영리민간단체 DB 등을 분석해 한국 시민사회 지형을 분석한 공석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우리나라 내 민법, 특별법 등 법제도가 복잡하고 데이터베이스가 제대로 업데이트되지 않다 보니 시민사회 지형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흐름을 쫓아가는 데 한계가 있다”며 “DB가 제대로 구축되고 제때 업데이트되어 시민사회 지형이 다양한 각도에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연찬회 2부에서는 시민사회가 마주한 여러 과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전대욱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시민사회의 재정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공공재정’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그는 불안정한 기부금·후원금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 보조금 ▲공공 및 제3섹터를 지원하는 기금 ▲정책금융·사회투자 활성화 ▲공공조달·시민자산화 같은 비현금성 재정지원 등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보조금의 경직성과 공급자 중심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선, 보다 유연한 형태의 ‘기금’이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 “나아가 영국과 같이 여러 국공유재산을 ‘공동체자산’으로 전환하는 등, 자본소득을 늘리고 지속가능성을 확대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람’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김제선 희망제작소 소장은 “시민사회 내부에서의 ‘위기감’을 해소하지 못하면, 그게 곧 시민단체 존재 의미를 묻는 ‘신뢰의 위기’로 이어지고, 후원금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의 위기’가 되고 궁극적으론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든다”면서 “현재의 위기를 제대로 성찰하지 않으면 시민사회가 실패할 수 있다”고 했다.

젊은 세대 중심으로 시민사회의 ‘은폐된 착취’를 이야기한다.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강요된다는 거다. 시민단체 안에서 세대를 뛰어넘어 함께 일하는 고통이 크다. 둘째로 폐쇄적인 문화다. 열린 가치를 이야기하는 시민사회 단체 중에는 같은 성향, 연고를 가진 이들이 모여있는 경우가 많다. 혁신적인 도전이 어렵다. 셋째, 기술적으로 고착되어 있다. 과거엔 시민사회에서 정부가 안 하는 일을 했지만, 이제는 정부가 다 하는 일도 시민사회에서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다.

그는 “시민사회가 실패하면 결국 시장과 정부의 비용이 늘어난다”며 “사람을 키우고 시민들의 문제해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선 민간위탁제도를 개선하고, 정부의 일을 대신해주는 민간에 경상 경비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광장에서 연대하는 활동가가 조직에선 분절된 사무원으로 일하다 소진되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각각의 활동가가 독립적인 ‘미디어’ 역할을 하도록 판을 까는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시민사회 아우르는 ‘우산조직’ 필요해

‘제3섹터’ 생태계를 아우르고 영역을 대변할 수 있는 ‘우산조직’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됐다. 정선애 한국시민센터협의회 운영위원장(서울시NPO지원센터장)은 “기존의 운동 방식을 뛰어넘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여러 주체가 등장하고 있고, 새로운 연결 방식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지금까지의 시민운동이 거대한 정치 권력을 교체하고 각각의 당면과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냈다면, 시민활동을 위한 토대를 닦는 걸 목표로 활동한 연대조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아름다운재단, 자원봉사센터 등 시민사회를 지원하는 조직이나 센터는 있었지만, ‘영역’을 아우르고 목소리를 내는 곳은 없었다는 것. 지난 몇 년 사이엔 ‘서울시NPO지원센터’를 비롯해, 마을공동체지원센터,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청년활동지원센터, 인생이모작지원센터 등 현장을 잇고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이 다수 등장했지만, 중앙지원조직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고민도 토로했다.

중간지원조직은 여러 도전과제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현장보다 현장을 모르고, 변화를 읽고 판을 까는 역량이 부족했다. 현장을 악화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블랙홀처럼 현장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안정적인 재원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장과 경쟁한다는 거다. 행정의 속도와 방식을 답습하고, 재원을 전적으로 행정에 의존하며, 민간위탁은 언젠가 종료된다는 한계도 있다.

그는 “분절화·전문화를 뛰어넘어 연대하고 정부와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정책 과제를 만들어내는 ‘우산조직(Umbrella Organization)’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선애 한국시민센터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시민사회 ‘우산조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나눔국민운동본부

해외는 어떨까. 정선애 운영위원장은 정책·법률을 제정하고 정부와 협력하는데 큰 역할을 해 온 미국과 영국의 여러 시민사회 우산조직 사례를 소개했다. 1945년 발족한 미국의 ‘재단협회(Council on Foundations)’가 대표적인 사례. 작은 규모의 지역재단부터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 같은 거대 규모의 재단에 이르기까지 아우르는, 공익재단의 ‘우산조직’이다. 전미 재단을 대표해 연방정책, 의회 로비활동, 세금 관련 정책, 행정부와 관련한 자선 파트너십 활동을 한다. 매년 전국대회를 열고 재단의 리더들을 한자리에 모아 ‘미국 사회의 변화나 도전과제, 재단의 역할 변화’ 등을 공유한다.

영국 내 자발적 공익단체 1만1726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NCVO(National Council for Voluntary Organisations) 역시 시민사회의 대표적인 ‘우산조직’. 1919년에 발족한 NCVO는 정부와 ‘제3섹터’의 협력을 제도적으로 명시한 ‘콤팩트(The Compact)’를 추진했던 ‘핵심 조직’이다. 사회적기업 대표, 시민사회단체 리더 1200여명을 회원으로 두고, 시민 단체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공동 캠페인을 진행하는 ‘ACEVO’라는 조직도 있다. 경상비에 대한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고, 시민사회 규제를 강화하는 흐름에 반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기도 한다. 

정선애 운영위원장은 “NCVO의 경우 ‘콤팩트’를 추진하고 영국 정부 내 제3섹터청을 만드는 과정에서 1만2000여곳이나 되는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며 “지금까지 한국 시민사회에선 각 단체에 관련된 이슈 정도에 대해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념과 관계에 따라서만 연대했는데 그게 다시 시민사회의 토대를 취약하게 만들었던 만큼, 오늘의 자리는 우리의 ‘공통분모’를 찾고 가치와 목적을 위해 모이는 첫 번째 자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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