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공익법인 표준 회계기준 내년 시행… 학습하고 적용할 시간이 부족하다

공익법인에 적용되는 표준 회계기준이 마련됐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4일 공익법인 회계 처리의 통일성과 투명성 제고를 위해 ‘공익법인 회계기준’ 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간 공익법인 전반에 통용되는 회계기준이 없다 보니, 공익법인마다 서로 다른 회계기준을 적용해 비교가 어렵다는 지적이 계속됐던 상황. 이에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법)’을 개정해 ‘공익법인이 공시를 할 때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회계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근거법령을 마련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 3일 개최한 ‘공익법인회계기준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기재부 관계자는 “소득 격차 확대나 분배 문제 등 정부 혼자서는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환경에서 정부와 민간 사이 공익법인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이번에 발표한 회계기준은 공익법인 투명성과 비교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차원으로, 기부 문화 활성화를 위한 바탕이 되리라 생각한다”며 회계기준 마련 취지를 설명했다.

공익법인 회계기준은 기부 문화 활성화와 투명성의 토대가 될 수 있을까. 현장에서는 “취지는 100% 공감하지만, 처리되는 절차나 과정이 비영리 공익법인의 현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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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 시행 두 달 전 기준 공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공익법인 회계기준이 발표된 시기다. 지난해 제정된 상증법에 따라 당장 내년 1월부터 새로운 회계기준을 시행해야 함에도, 올해가 두 달 남은 시점에서야 회계기준이 발표됐기 때문. 현장 관계자들은 “통일된 회계기준이 마련되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기준이 현장에 적용 가능한지 논의하고 현장에서 숙지할 기간 없이 당장 두 달 안에 실행하라는 건 무리”라는 입장이다. 실행에 따른 부담은 현장 단체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 셈이다.

장성계 굿네이버스 기획실장은 “회계 기준이 한번 정해지면 현장에선 따를 수밖에 없는데, 나온 안이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지, 타 부처 관리감독 체계와 맞는지 검토하고, 단체 입장에선 새로운 기준을 숙지하는 시간 없이 연말에 일단 발표하고 당장 1월부터 적용한다는 게 부담이 크다”고 했다. 신경근 어린이재단 전략기획실장은 “그나마 큰 단체야 어떻게든 자원을 끌어와 맞출 수 있겠지만 작은 단체는 그조차 쉽지 않다 보니 ‘정보 공개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살 가능성이 커진다”며 “기부 활성화를 위해 투명성이 중요하다는 데 모두가 공감하고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최소한 교육하고 적용할 시간은 필요하지 않으냐”고 했다.

변경된 회계기준으로 인해 바뀌어야 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단식 부기’. 현재 국세청에 공시된 9166개 단체 중 모금액 3억원 미만, 자산 100억 미만 소규모 단체는 총 6275곳이다. 문제는 이번에 공개된 회계기준에 따르면 그간 ‘단식 부기’ 방식을 활용했던 소규모 단체들도 당장 ‘복식 부기’로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이동현 신한회계법인 회계사는 “소규모 사회복지법인에서는 지금까지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시설 재무·회계 규칙’을 따라 단식 부기로 회계를 기록하고 복지부 ‘사회복지시설정보시스템’에 입력해 왔다”며 “영세한 비영리기관의 경우에서는 대부분 사회복지사가 회계 업무도 맡고 있는데, 기존에 따르던 타 부처 규칙과도 상충되고, 바뀌는 안에 대해 충분히 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 달 반 만에 갑자기 바꿔야 한다면 현장에 미치는 충격이 너무 크다”고 했다.

회계기준을 현장에 적용할 때 참고할 만한 실무지침 해설서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컸다. 김희정 한국NPO공동회의 사무총장은 “미국의 비영리 공익법인 공시양식이나 회계기준을 보면 회계 기준보다도 법을 해석하는 해설서 부분이 자세하게 되어있어 회계기준에 대한 논란이 적고 단체간에 비교 가능하다”며 “회계 기준만으로는같은 비용을 모금비용으로 볼것인지 광고홍보비로 책정할것인지 등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공익법인들 “절차·과정 잘못” 볼멘소리

두 달 앞두고 시행 발표 ‘무리수’
참고할 실무지침 해설서도 없어
정부 “영세법인 적용 유예 검토”

◇취지는 기부 문화 활성화, 현실은…

‘비영리 공익법인’에 대한 이해가 낮다 보니, 회계기준이 비영리 특수성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최호윤 삼화회계법인 공인회계사는 “전반적으로 기업 기준을 많이 가져오다 보니, 사회복지법인의 ‘보조금’은 목적 사업을 위한 재원 조달로 봐야 함에도 단체가 벌어들인 ‘수익’으로 들어가게 하는 등, 비영리의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부분이 상당하다”고 했다. 최 회계사는 “회계기준 안의 취지는 재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서 기부 문화를 높이자는 것인데, 세제 관리 측면에 초점이 있는 듯 보인다”고 덧붙였다.

현재 공익법인 관리감독 체계를 보완하지 않으면 회계기준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크다는 의견도 많았다. 박종호 기아대책 모금홍보본부장은 “새희망씨앗의 경우, 국세청 공시 자료에도 제대로 등록되어 있었음에도 관리감독이 안 됐던 부분이 컸다”면서 “단순히 기준을 위한 기준이 아닌, 국민이 단체들의 투명성을 신뢰할 수 있도록 좋은 취지를 잘 살리는 시작점이 되도록 보완돼야 한다”고 했다.

김미라 한국컴패션 경영지원실장은 “현재 공익법인들은 주무부처에 따라 각기 다른 회계기준과 결산공시를 하도록 되어있는데, 이번 회계기준 이후엔 모든 부처에서 같은 회계기준을 적용하지 않으면 실무 비효율이 너무 크다”고 했다. 김희정 한국NPO공동회의 사무총장은 “현재 회계기준이 나온다고 해도 각각의 정부부처에 재정 보고를 하고 관리·감독을 받아야 하는데, 중·장기적으로는 호주나 영국, 싱가포르 같은 기부 선진국처럼 ‘공익위원회’를 통한 관리·감독 일원화 체계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공익법인 회계기준은 올해 안에 발표한다고 했던 상황인데,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심의위원회를 거치는 등 의견 수렴 과정이 길어진 측면이 있다”며 “영세 법인에 대한 적용 유예를 논의 중이며, 지침 해설서는 내년 안에 나올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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