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회사는 ‘판’ 깔고 직원은 ‘모험’… 새로운 일하기 방식에 눈길

합병한 ‘슬로워크’ 임의균·권오현 공동대표 인터뷰

디자인과 IT로 비영리·사회혁신 조직을 돕던 두 곳, 슬로워크와 UFO팩토리가 하나가 됐다. 합병 이름은슬로워크’. 2005년 문을 연 슬로워크는 10여 년간 월드비전, 유니세프, 세이브더칠드런, 아름다운가게 등 내로라하는 비영리 단체의 브랜드 아이덴티티(Identity) 작업을 함께 해왔다. UFO팩토리는 2013년부터 그린피스, 유네스코, 열정대학, 동그라미재단 등의 웹페이지를 개발하고 IT 솔루션을 제공해 왔다. 두 법인의 합병 소식은소셜섹터에서 화제가 됐다. 새로운 일하기 방식이 화제인 지금, 두 곳이 함께 그리는 그림은 무엇일까. 임의균·권오현 공동대표를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났다. ☞500명의 체인지메이커가 모인 공간, 헤이그라운드가 궁금하다면?

디자이너 임의균(왼쪽)대표와 개발자 권오현 대표. 둘은 서로를 소사(임의균)와 시스(권오현)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렀다. ⓒ슬로워크 제공

ㅡ합병 소식에 관심이 높다. 두 조직을 합친 배경이 궁금하다.

임의균(이하 임)=시스(권오현 대표의 닉네임)님과는 원래 알던 사이다. 종종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 조직이 해온 일도, 지향점도, 대표로서 고민도 비슷하더라. 합치면 시너지가 날 것 같았다. ‘에이전시방식을 탈피해 새로운 모델을 찾는 실험이 필요하단 생각도 있었다. 제가 먼저합치면 어떻겠냐고 운을 띄웠다(웃음).

권오현(이하 권)= UFO팩토리 3년을 해오면서 사회 혁신 영역에서 IT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걸 봤다. 그런데 혁신이든 임팩트든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일하는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기반을 만들어 줘야겠단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수익 구조나 규모에서 변화가 필요했는데, 합병으로 그 시기를 당길 수 있겠더라. 소셜 분야에 규모가 큰 조직이 많지 않은데, 규모에서 오는 임팩트와 상징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4, 슬로워크는 합병을 공식 발표했다. 1년간온도를 맞추는시기를 보낸 뒤였다. 슬로워크 이름은 가져가되, 기존 UFO팩토리가 해왔던팀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각각의 팀별 실험을 ‘UFO’라 부르기로 했다.

ㅡ팀제라고 하면 어떤 방식을 말하는 건가. 대부분의 조직엔이 있지 않나.

=UFO팩토리엔 총 5개 팀이 있었는데, 연봉도, 휴가도, 출퇴근 방식도 팀 내에서 자율적으로 정했다. , 본인이 정한 연봉을 주면서도 회사가 생존 가능한 선이최소 기준선이 된다. 팀별로 그 기준만 달성하면 다른 모든 건 자율에 맡긴다. 목표치를 초과하면 절반을 인센티브로 줬다. 자유와 권한,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제도다. 조직원을 아이처럼 대하지 않는, 책임 있는 어른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조직에 이 방식 그대로를 밀어넣을 순 없고, 올해부턴 조금씩 경험해보려 한다.

=합병 몇 개월 후, 슬로워크에서도 함께 일하고 싶은 이들끼리 팀을 짜도록 했다. 12개 팀이 꾸려졌다. 로고를 만든 팀도 있고, 여성으로만 구성된 팀도 있다. 팀별로 최소한의 목표도 정했다. ‘헤이그라운드가 입주한체인지메이커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연결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려는 것처럼, 새로운 슬로워크의 비전은 각 팀과 개인이 하고 싶은 걸 하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각 팀이 모험을 떠나는 ‘UFO’이고, 조직은기지(基地)’가 되는 거다.

일하고 싶은 이들끼리 팀 꾸려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 실행, 

“새로운 조직문화 실험 중”

ㅡ어떤 실험까지 가능할까.

=우리는 그동안디자인·웹 에이전시모델로 일해왔는데, 이 방식은 한계가 분명하다. 장기적으론우리의 일이 필요하다고 봤다. 새로운먹거리를 찾으려면 다양한 실험이 필요한데, 전통적인 조직에서 해왔듯 리더가 거대한 비전을 던지고 조직원들이 본인과 맞든 맞지 않든 따라가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했다. 회사는 판만 깔아주고,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작당모의를 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혁신이 나올 거라 봤다.

=팀의 원칙은 이런 거다. 스스로가 성장하고 있는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불편해하지는 않는가. 우리가 만든 서비스를 사람들이 만족하는가. 재무적으로 생존하고 있는가. 각 팀이 하는 일이 전체 회사의 방향과는 일치하는가. 기준만 빗나가지 않으면 나머지는 자율이다.

=합병 전 슬로워크에서 출시했던, 스타트업의 브랜드 아이텐티티를 잡아주는뭐든지스튜디오사업이 비슷한 실험에서 나왔다. 새로 짠 팀에선 이제 슬슬우리는 뭘 해볼까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서로 학습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팀별로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들이 나올 거라 본다.

ㅡ실험을 했다가 실패해도 괜찮나. 팀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땐 어떻게 되나.

=UFO팩토리에서 팀제를 운영할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다. UFO팩토리에서는 팀장들과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하나, 누가 봐도 그 사람이 불성실했다면 책임을 묻자. , 만약 노력했는데 목표를 맞추지 못한 거라면 같이 번 돈으로 메워주자. , 메워줄 수가 없다면 회사 문을 닫자. 3년차까진 문은 안 닫고 어찌저찌 살아남긴 했다(웃음).

=회사가 망하지는 않게 해야 하는 게 대표의 역할이라, 대표는 힘들다(웃음). ‘뭐든 실험해보고 실패해도 괜찮아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조직 문화만 실험적이고 수익이 나지 않아 생존 불가능하면 의미가 없다. 올해는 경험치를 쌓고 근육을 만드는 시기다. 아직 카오스이지만 실험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ㅡ앞으로 슬로워크가 그리는 그림은.

=지금은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대부분이지만, 장기적으론 사회 변화를 지향하는 이들의 네트워크를 지향한다. 2015년에 최고지속가능성책임자(CSO)를 모셨고, 올해 3월엔 법률 및 전략 전문가도 새롭게 합류했다. 회사 안팎을 엮는 네트워크를 넓혀, 사회 변화를 위해 창의적이고 영감을 주는 솔루션을 만들고자 한다. 시스님이 주도하는빠띠(온라인 직접 민주주의 플랫폼)’와도 다양한 실험을 해나갈 거다.

동그란 안경을 걸친 임의균 대표가 “제가 워낙 시스님을 좋아하고 믿으니까, 그거면 된다고 하자, 권오현 대표가 멋쩍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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