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현지 적응편
UNDESA(유엔 경제사회국) 인턴기
2017년 1월 26일 목요일, 뉴욕 존에프케네디 공항. 약도를 꺼내보면서 4번 터미널로 향했다. 내가 일하게 된 곳은 유엔 경제사회국(이하 UNDESA). 정확한 소속은 국제연합 사무국의 경제사회국(DESA) 내 사회정책개발부(DSPD)의 사회통합실(SIB: Social Integration Branch)이다. 유엔 경제사회국의 사회통합실은 가족, 청년, 노인의 사회통합 및 개발을 다루는 곳이다. 제 45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취임일로부터 정확히 열흘 후인 1월 30일, 나의 유엔 뉴욕 본부 인턴십이 시작됐다.
◇원서 접수 후 합격 통보까지…예비 상사와의 떨리는 이메일 소통
처음부터 국제기구 인턴 취업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기숙대학원인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에 다니면서 교수님, 선후배 및 동기들과 새벽 명상까지 함께할 정도로 동고동락했다. 그런 과정에서 국제 정세를 논할 수 있었고, 3학기엔 자연스레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 경희대 미래문명원의 UN국제기구 인턴십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됐다. 2016년 6월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른다. 파견을 위한 장학금도 받았다. 뉴욕으로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학사 시절 아동가족학을 전공한 나에게 적합한 직무라고 판단했고, 유엔의 핵심지인 본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유엔 본부의 인턴십은 선발 과정이 정해져있다. ‘인스피라(Inspira)’라는 전용 구직 홈페이지에 공고가 올라오면 자체 양식을 채워서 지원한다. 서류에 합격하면 화상 또는 전화 인터뷰, 추가 작문 시험 등을 거친다. 국제기구 진출에 관심이 있는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인턴으로 채용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총 2개월. 기다림과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특히 근무기간이 불명확하게 고지된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만약 파견 기관이 확정되지 않을 경우, 복학을 준비해야할지,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해야할지 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예비 상사가 추가로 요청한 대학원 수강과목 목록을 송부하면서 5~6줄의 짧은 메일을 보탰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건 아닐지 걱정도 됐지만, 혼자서 끙끙 앓느니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다음 날, 답장이 왔다.
독촉을 하거나 성급한 질문이 될까 걱정이 많았는데, 답장을 받고 나니 안심이 됐다. 그로부터 2주 뒤,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파견 서류 산더미…건강증명서가 너무해
재학(졸업)증명서(UN 자체양식), 보험증명서, 건강증명서, Ground Pass 신청서(사원증 양식)···.
UN 뉴욕 본부에서 요청해온 파견 서류였다. 다른 서류 준비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유독 건강증명서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건강증명서는 ‘신체 및 정신적으로 일하기에 적합한 상태’라는 내용의 의사소견서를 말한다. 영문이어야 하고, 의사 서명이나 면허번호 등 개인정보가 필요하다. 처음 UN에서 ‘별도 양식이 없다’는 메일을 받고, 보건소에서 건강진단서를 영문으로 발급받아 제출했다. 그런데 출국을 불과 3일 앞두고, “의사소견서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반려가 된 것.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크게 아픈 적이 없어서 단골 의원이 없었다. 의사에게 소견서를 받으려면 기본 검진을 거쳐야 하는데, 비용이 5-7만원에 달했다. 무엇보다 제 시간에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내가 제출한 진단서가 정말 UN이 요구하는 서류에 미달하는 요건이 맞는지 궁금증도 들었다. 설득을 한 번 해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당장 메일을 보내서 다음날 새벽 중에 답변을 받으면 모르겠지만, 실패할 경우 다음날 아침에 바로 병원을 가야하는 상황.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최대한 정중하고 차분한 어조로 상황을 설명하는 메일을 보냈다. 홈닥터의 개념이 미국보다 덜 보편적인 한국에서 보건소의 건강검진은 젊은 구직자들 사이에서 자주 사용되고, 공신력있는 검사라고 썼다.
브라보! ‘승인’한다는 답변이 밤중에 도착했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구직자를 배려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UN은 ‘원칙주의’일 거란 편견이 깨졌다.
◇출근 전 마지막 단계, 집 구하기
근무 시작을 앞둔 4일간 호스텔에 머물며 집을 보러 다녔다. 처음엔 남녀공용 4인실에 묵었는데, 남녀가 홈메이트로 함께사는 미국식 문화를 체험하는 계기가 됐다. 화장실, 샤워실 이용이 불편해서 며칠 후 여성전용 숙소로 옮겼다.
나의 첫 집은 유대인이 많이 사는 동네로 알려진 포레스트 힐에 있었다. 맨해튼 동쪽에서 강을 건너면 보이는 곳. 깔끔하고 안전하면서도 가격까지 합리적이었다. 뉴욕은 지역에 따라 월세 차이가 많이 나서, 맨해튼이라면 900~1300달러, 퀸즈는 600~800달러 정도를 지불해야한다.
지금은 영어 교육을 전공하는 동갑내기 여학생과 방을 나눠쓰고 있다. 첫 집이 다소 시끄러워서 이사를 결정하게 된 것. 두 번의 집 구하기를 통해 깨달은 점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단 것이었다. 함께 지낼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터넷이 느리거나 화장실이 붐비는 식의 불편함은 결코 결정적인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점!
◇국제기구 인턴에게 요구되는 영어 수준은?
순수 ‘국내파’인 내게 UN본부 파견은 큰 부담이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려면 ‘업무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구사하면 된다’는 고전적인 답변이 있다. UN에서 영어는 모국어가 아닌 공용어다. 그래서일까. 네이티브가 아닌 각국에서 UN본부로 온 직원들의 독특한 발음은 ‘촌스럽다’기보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특징이 된다. 사소한 시제, 단수, 어휘 등은 큰 문제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끊기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발언하는 것이 핵심인 것 같았다.
내 영어공부의 역사는 초등학교 저학년, 사교육으로 시작됐다. 고3때 수능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외국어 과목에 정을 붙였다. 유학을 한 적이 없으니 스피킹(Speaking)이 한계였는데, 대학에서 국제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하며 외국인들과 만나 직접 회화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국제대학원에 진학해선 학술 영어를 접했다. 결과적으로 네이티브 정도의 영어 구사 실력이 되지 않음에도 인턴십에 파견될 수 있었던 건, 영어 공부에 대한 꾸준한 흥미 덕분인 것 같다.
물론 국제기구에서 기대하는 외국어 수준은 끝이 없다. 더욱 세련되고 정확하게 구사할수록 업무 역량이 달라지고, 큰 회의 등에서도 긴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스태프냐, 인턴이냐, 본부냐 현장이냐 등에 따라서도 요구되는 외국어 수준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국제기구 진입을 준비한다면 상대적으로 원활한 소통을 목표로 하되, 공식적이고 예의바른 영어를 좀 더 익히면 좋을 것 같다. 국제개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관련 문서를 읽다보면, 공통적인 어휘와 형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게 바로 시작이다. 지금도 나는 매일매일 영어와 씨름하며 배우는 중이다.
뉴욕 이스트 사이드의 바닷가 옆, UN 사무국 29층에 위치한 사회통합실에서 인턴십 중인 이세연입니다. 사회통합실은 가족, 청년, 노인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의 네트워킹, 행사 주관, 자료 발간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경제, 사
회, 환경 영역에서 국제협력 및 국가개발을 촉진하는 경제사회국(DESA)의 산하 조직이기도 합니다. 2017년 2월부터 7월까지, 이곳에서 펼쳐지는 일들을 열린 마음으로 하나하나 담아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