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육성법 10주년 특집
‘세진플러스’ 박준영 대표 & ‘농사펀드’ 박종범 대표 대담
사회문제를 비즈니스로 해결하는 두 선수가 만났다. 발달장애인을 50% 이상 고용한 의류제조업체를 이끌고 있는 박준영(51) ‘세진플러스’ 대표, 농부에게 투자하고 먹거리로 돌려받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농사펀드’의 박종범(37) 대표. 더나은미래는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 10주년을 맞아 1세대 사회적기업가와 청년 사회적기업가의 특별 대담을 기획했다. 박준영·박종범 대표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선정한 ’10대 사회적기업’ 중 환경과 먹거리를 대표하는 사회적기업의 수장이다. 지난 20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내 세진플러스 연구실에서 만난 두 대표는 “제대로 인사를 나눈 것은 처음”이라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환경·먹거리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기업가 2인이 만나다
세진플러스는 발달장애인 맞춤형 직무 봉제업으로 의류를 만들고, 최근에는 폐섬유로 친환경 건축자재를 개발한 회사다. 박준영 세진플러스 대표는 발달장애인인 둘째 딸 때문에 사업을 시작했다. 1976년부터 옷을 재단하는 일을 했고, 세진플러스를 설립한 건 2010년이다. 봉제업이 직무별로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어서다. 박 대표는 “사비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지인이 ‘사회적기업’이란 걸 알려주면서 인프라를 활용하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들은 회사 내에 사회복지사뿐만 아니라 운동 치료사도 필요하고, 직무뿐 아니라 사회성을 강화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이를 위한 통합 지원이 필요했다. 세진플러스는 2013년 예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고, 2015년엔 (고용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이 됐다. 현재 성북구와 경기도 구리에 장애인표준사업장으로 등록된 공장이 2곳 있고, 12명의 장애인이 봉제 교육을 받고 일을 한다. 노원구 정민학교의 장애인들을 위한 맞춤형 교복을 만들기도 했다.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는 “2003년부터 농촌과 인연이 이어져왔다”고 했다. 농촌마을 컨설팅업체 ‘농촌넷’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정보화마을 운영사업단’과 유통회사인 ‘총각네 야채가게’에서도 일을 했다. 퇴근 후와 주말에 짬을 내서 농부와 디자이너를 연결해 농산물을 패키징하는 프로젝트도 하고, 농촌마을 축제를 기획하기도 했다. “10년가량 농부들을 많이 만났는데,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영농자금 마련이더라. 중소농들은 대출받기도 어려운데, 농산물 가격을 직접 정할 수가 없다. 어느 해는 2000만원, 또 다른 해는 500만원치 농사를 짓는다. 그러다 보면 더 큰 빚이 생긴다. ‘자금 흐름을 역전시켜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킥스타터(해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사이트를 보다가 먹거리에도 적용시키면 되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박 대표는 친환경 농사를 짓는 충남 부여의 쌀 농가 한 곳에서 시범적으로 펀드 운용을 해봤지만 실패했다. 23명의 투자자에게 230만원 모으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해 가을 쌀을 받아 맛을 본 투자자들이 소문을 내면서 이듬해에는 목표액 760만원을 넘어 1300만원이 모였다. 이 비즈니스모델을 검증받아보자는 취지로 2014년 소셜벤처 경연대회에 나갔고, 우수상을 받았다. 그렇게 4명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두 대표가 만난 곳은 세진플러스의 연구실. 세진플러스 직원 25명 중 6명이 연구인력이라 했다. 박준영 대표는 “최근 해외에서 폐섬유를 활용한 친환경 건축자재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알록달록한 무늬의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작년 겨울 상암 공원에 설치한 참새집이에요. 자투리 원단으로 집을 만든 겁니다. 이 무늬는 여성복 티셔츠 프린팅을 그대로 살린 거예요. 옷 소재에 따라 방수용, 비(非)방수용 다양하게 만들 수 있어요. 물이 흡수되는 보도블록도 만들 수 있죠.” 세진플러스의 기술력을 알아본 곳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산업지속가능성센터. 이들은 스리랑카의 섬유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다 ‘플러스넬’을 찾았고, 세진플러스와 함께 플랜트 수출을 논의하고 있다. 세진플러스 직원 2명은 캄보디아에 플랜트 수출 건으로 출장 중이라 했다. 개발도상국일수록 폐섬유 쓰레기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고, 쓰레기를 활용해 집을 짓게 되면 주거빈곤 문제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봉제업에서 친환경 건축자재 개발까지, 성장과정이 다이내믹하다. 두 분은 어떻게 비즈니스를 성장시켰나.
박준영=처음엔 내가 가진 봉제 기술로 장애인 맞춤형 직무 시스템을 개발했다. 근데 봉제산업은 하향세에 접어들고 있었다. 발달장애인 아이들이 살아갈 공동체가 필요했다. 큰 자본이 필요하고 새로운 동력도 필요했다.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연구개발(R&D) 아이디어와 인력을 얻었다. KIST에 입주한 것도 이곳의 원천 기술을 접목할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지난해부터 중소기업청에서 R&D 개발비를 받아 폐섬유 소재 슬레이트 ‘플러스넬’을 개발했다. 섬유로 만들어서 파손 위험도 적고, 쓰레기를 재활용하기 때문에 탄소 배출도 줄여 친환경적이다. 섬유 생산량의 70% 이상이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같은 화학섬유인데, 이를 고온에 녹이면 섬유끼리 붙는다. 면·마와 같은 천연섬유와 화학섬유의 자투리 원단을 모아 부직포 형태로 만든 후, 세진플러스가 직접 개발한 프레스에 넣고 수차례 열 접착 과정을 거치면 패널이 만들어진다. 보통 접착제에서 방출되는 유독성분인 폼알데하이드가 플러스넬에선 방출되지 않는다. 이 슬레이트는 벽지, 벽돌, 보도블록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어린이대공원의 ‘맘껏 놀이터’와 보수된 청계천 벤치 등지에서 플러스넬 자재를 확인할 수 있다.
박종범=농사지을 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농부들이 물 손실을 막는다고 비닐로 피복하는데, 농사짓는 분들이 꺼리는 경향이 있다. 친환경적 방법이 아니라는 거다. 세진플러스에서 농사용 친환경 자재도 개발해달라(웃음). 농부들은 영농자금의 불안함 때문에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쓸 수밖에 없다. 가진 땅은 한정돼 있고, 빚을 갚으려면 농사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 농작물을 빼곡하게 심으면 살충제도 써야 한다. 땅의 힘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밥상에서 안전한 먹거리는 멀어지게 된다. 농사펀드 플랫폼에서는 농부의 이야기를 알리고, 공감하는 투자자들이 지갑을 연다. 특히 농사펀드에는 농부의 이야기를 발굴해 전달하는 청년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에디터’라고 부른다. 서울시 뉴딜 청년 일자리 사업의 지원을 받아, 도시와 농촌을 잇는 ‘브릿지’ 에디터들을 키우고 있다. 투자 리워드는 2~3개월을 기다려 그해 농사지은 먹거리로 받는다. 농부들은 이제 빚을 지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농사펀드를 이용하는 농가는 350여 가구, 회원 수는 1만2000명 정도다. 지난해 거래액은 5억원가량. 한 달에 신규로 가입하는 농가가 평균 20가구 정도다.
◇정부 지원과 투자 사이, 향후 10년 사회적기업이 가야 할 길은?
―농사펀드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선정한 10개 기업 중 유일하게 정부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지 않은 곳이다. 소셜벤처라고 부르는 것이 명확할까.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박종범=일종의 알레르기 같은 게 있다. ‘인증’이 아니라 ‘인정’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농부를 찾고, 결제 방식을 더 쉽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에너지를 쏟았다. 만약 인증을 받아서 사업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에 고민을 했다면 인증 절차를 더 빨리 준비했을 것 같은데, 멤버들은 우리가 무엇을 해결하는지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한정적이다 보니,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제도와 상관없이 가능하게 만들면 더 잘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있었다.
박준영=30년 봉제일 하면서 이력서 한장 쓸 일이 없었다. 사회적기업 생태계로 들어오니 ‘페이퍼(paper)’와 행정이 가장 무섭더라. (정부가 인증하는) 사회적기업가가 되려면 만물박사가 돼야 하더라. 사업, 인사, 총무 등 모든 직무를 다 경험해봐야 하니까…. 정부 지원책 중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네트워크였다. 경기도든, 충청도든 관심이 있고 정보가 필요하다면 시간을 내서 가면 된다. 이번에 우리가 오마이컴퍼니에서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는데, 오히려 지방에서 많이 투자를 받았다.
―1세대 사회적기업가들과 소셜벤처 창업가라고 부르는 젊은 사회적기업가들 사이에 교류나 소통이 부족한 느낌이다.
박준영=소통이 잘되지 않는 것 같기는 하다. 1세대 사회적기업들이 어떻게 사업하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른다. 젊은 사람들은 오죽하겠나. 진흥원이나 지자체, 신나는조합 등 중간지원기관의 역할이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나는 배우기 위해서 여기저기 찾아다니지만,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청년들은 어디가 좋은지 몰라서 못 간다. 10곳 찾아가면 1곳 괜찮을까 말까다. 분야나 직능별로 장을 열어주고, 네트워크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만들어줘야 한다.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창업팀에 들어와 있는 청년들이 가끔 세진에도 찾아온다.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방법 정도는 쉽게 알려줄 수 있다.
박종범=시간을 쪼개서 (선배) 대표님들을 만나야 하는데, 사실 여유가 없다. 지인이 예전에 ‘우리 사회에 꿀벌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꿀벌은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가면서 열매를 맺는 역할을 하지 않나. 사회적기업 초창기부터 소셜벤처까지 범위를 넓히면 플레이어가 아주 많다. 근데 이 사람들을 내가 일일이 찾아보기에는 여유가 없다. 살아남는 것이 우선 아니겠나. 꿀벌 역할을 효율적으로 하면서 사업에도 도움이 되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우리 회사도 기보(기술보증기금)를 준비하고 있는데 처음 해보는 것이어서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사업을 해본 선배들의 실질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멘토링? 끝이 없다.
박준영=컨설팅을 위한 컨설팅 말고, 기업을 위한 컨설팅이 필요하다. 사업비 안에서 컨설팅비가 집행되는데, 기간도 정해져 있다. 사업비 정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예를 들어 오늘 농약을 꼭 줘야 하는데, 컨설턴트가 오늘밖에 시간이 안 된다고 말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농사가 먼저니까 컨설팅을 못 받는다. 그러면 지원하는 정부기관도 곤란해진다. 서로 껄끄러운 상황이 만들어지는 거다. 회사가 스스로 연간 사업 계획을 짜고, 원하는 시기에 도움을 받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겠다.
◇사회적기업을 대우해주고, 장려해주는 시스템 필요해
―새 정부가 들어섰고, 사회적경제 비서관도 내정됐다. 현재 사회적기업 생태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박종범=사회적 투자자(임팩트 투자자)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영리 측면에서 성장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는 분명히 있다. 그래야 투자가 가능하니까.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는 경제적인 성장 가능성뿐만 아니라 해결하는 사회문제가 존재한다. 세진플러스만 봐도, 국가에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나. 그걸 비즈니스로 풀고 계신 것이다. 근데 이런 부분들은 일반 투자 시장에서 평가받지 못한다. 농사펀드도 안전 먹거리에 대한 문제, 농촌 생활환경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 부분을 수치화하는 것이 참 어렵다. VC(벤처캐피털) 관점에서 당신네 사업이 의미 없다고 평가받으면, 사회적기업을 꾸려가다가 힘이 빠진다. 기업가들이 포기하면 사회적으로도 낭비다. 좀 다른 관점으로 사업을 볼 수 있는 투자자들이 필요하다. 현재 임팩트 투자자들도 엔젤투자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영리 측면이 아니라 공익적 가치를 결합시켜 투자하는 사람이나 기관이 필요하다. 사회적기업의 모델은 세금을 절약하는 비즈니스가 많으므로, 생산적 복지 차원의 접근도 필요하다.
박준영=사회적기업이 누구 말대로 봉은 아니지 않나(웃음). 사회적기업가들을 대우해주고, 사회적기업 모델을 장려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업의 가치를 영리 쪽에만 초점을 두다 보면, 사회적기업이 살아남을 수가 없다. 기업가들을 대우해주면 힘이 생긴다. 돈도 필요하지만, 사회적기업가들이 응원받는 사회를 만들어주면 좋겠다. 사회문제를 임팩트 있게 풀기 위해서, 규모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기업 산업 특화단지를 조성해 사업을 확장할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다.
박종범=벤처투자자들을 보면 대부분 1세대 벤처사업가들이다. 돈을 번 사업가들이 투자가가 되는 셈이다. 이 사업가들이 모여서 벤처캐피털을 만들고, 신생 벤처도 발굴해 투자한다. 실제 사업 성공 경험이 있는 선배들이 도움을 주기 때문에 굉장히 실질적이다. 사회적기업 영역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찾기 어렵다.
―사회적기업은 어떤 기업이고, 사회적기업가는 어떤 사람인가. 두 분의 언어로 풀어달라.
박준영=그게 제일 어렵다. 음… 사회적기업은 순수하고 착한 기업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품앗이가 생각나기도 한다. 시대가 갈수록 정이 메말라가는 느낌인데, 사회적기업은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주는 곳이다. 사실 나는 사회적기업가라기보다는 세진이 아빠다. 세진이 친구 학부모들이 갈수록 나를 신뢰하고, 아이들 문제로 이야기도 많이 하신다. 아이 때문에 사회적기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나의 결핍이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는 것 같다. 난 참 행운아인 것 같다.
박종범=사회적기업은 상식적으로 일하는 기업이다. 우리가 ‘사회적기업’이라고 단어를 만든 것 같고,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이라는 단어를 덧붙일 세상이 된 거다. 사회적기업가는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고민하면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가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상식적인 부분이긴 하다. 사실, 오늘 자리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어젯밤에 충남 홍성에서 늦게 올라와서 피곤했는데…. 잘 온 것 같다. 오래 사회적기업계에서 일한 선배님도 만나고, 농축된 경험을 들을 수 있어서 어느 강연보다 값진 시간이었다.
대담이 끝나고도 두 대표는 사업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박준영 대표는 “박종범 대표와 함께 시도해볼 사업 아이템이 벌써 2개나 나왔다”며 싱글벙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