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채찍 대신 훈장을… 이젠 공익법인 숨통 틔워줘야

지난 20일, 문광부는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 허가를 취소했다. 지난해 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가 불거지고 두 재단의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공익법인에 관한 논의도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여야 정당에서 ‘공익법인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익법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최근에는 ‘비영리법인 관리 개선 방안’을 담은 연구 보고서도 나왔다. 지난 20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한국NPO공동회의와 공동으로 ’40년 규제 공익법인,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라는 주제로 심층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연구 보고서에서 공익법인 연구를 진행한 교수진(김진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박태규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손원익 딜로이트안진 R&D센터 원장, 이상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과 함께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 이일하 굿네이버스 이사장, 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가나다순)이 참석했다.

좌담회_게티이미지
ⓒGettyImage

◇비영리법인 사회적 역할 활성화해야

사회=공익법인법이 제정된 지 40년이 넘었다. 현행 법제가 공익법인의 역할이나 사회 변화를 담아내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지만 지향점은 조금씩 다른 듯하다. 공익법인을 둘러싼 현행 법제도의 문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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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익 딜로이트안진 R&D센터 원장

손원익=시민들은 공익법인 투명성에 대한 불신이 높다. 미르·K스포츠재단이 불신을 더 키웠다. 두 재단의 경우 권력이 개입한 것이 문제지 공익법인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현 제도에서는 설립이나 공익성 검증이 각각의 부처에서 이뤄지다 보니 담당 공무원의 이해에 좌우되기도 하고, 통일성이 없다. 사후 관리도 제대로 되기 어려운 구조다. ‘회색지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개편이 필요하다.

 

 

 

박태규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박태규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박태규=개편이 ‘어떻게’ 되느냐가 문제다. 비영리 영역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할 때가 됐다. 일본 정부는 한신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겪으며 비영리 섹터를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비영리 영역 활성화를 목표로 법제를 재정비하고 정책도 마련했다. 정부 혼자선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거다. 비영리를 활성화시키는 건 일본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정책 흐름이다. 민간은 정부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정책 사각지대도 발굴한다. 증가하는 사회복지 수요에 맞춰 서비스도 제공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선 공익법인과 관련한 모든 제도나 세제가 규제를 위해 만들어졌다. 공익 활동을 활성화시키고 정부에서 못 하는 역할을 적극 맡을 수 있도록 정책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이일하 굿네이버스 이사장
이일하 굿네이버스 이사장

이일하=국가는 지금까지 비영리 영역을 파트너로 여겨 키우기보단 규제하고 통제하는 데 급급했다. 한국 정부가 복지 예산을 투입한 건 90년대 와서다. 이전부터 정부 사각지대를 메운 것은 민간 비영리단체였지만, 이후에는 모금 판도 자체도 기울어졌다. 정부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대한적십자사 등을 ‘법정 기부금 단체’로 만들고, 일반 NPO보다 더 큰 세제 혜택을 줬기 때문이다. 자연히 기업 기부금은 모금회로 쏠렸다. 이런 상황에서 월드비전, 유니세프 등 비영리단체가 개인 후원자들의 기부금을 통해 살아남아 전 세계에서 개인 후원자 1~2위를 차지하는 게 기적이다. 우리나라처럼 법정, 지정 기부금을 나눠놓은 나라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제는 그간의 성과를 인정해주고 민간 비영리단체들이 좀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
양호승 월드비전 회장

양호승=복지 예산이 100조를 넘어섰다. 정부 세금으로 복지 수요를 메우지만 정부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비영리 공익법인은 복지 시스템의 중간 전달 체계다. 정부에서도 민간의 효율성이나 효과성을 인정해야 한다. 파트너로 보고 역할을 분담해 민간에서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정책적,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설립은 용이하게, 세제 혜택은 엄격하게

사회=법제는 어떤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보나. 해외는 어떤 흐름인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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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이상신=설립은 쉽고 사후 절차가 철저해야 한다. 일본 사례가 참고할 만하다. 우리나라 공익법인 법제는 일본법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본에서도 비영리법인 관련해서 법인 설립, 재산 처분 등 일일이 주무 관청 허가를 받도록 돼 있었다. 그런데 2008년 일본은 공익법인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했다. 주식회사 설립과 비슷하게 법률이 정하는 요건만 갖추면 비영리 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준칙주의’를 적용했다. 대신 그 단체가 정말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지 ‘공익인정 위원회’에서 판단하도록 했다. 영국의 ‘자선위원회(Charity Commission)’같이 전문성을 갖고 비영리 영역을 들여다볼 독립기관을 신설한 것이다. 위원회에서 ‘공익성’이 인정될 때만 세제 혜택을 받는데 절차가 훨씬 까다롭고 2~3년은 걸린다. 사업 양도나 합병같이 회사에만 적용됐던 조항들도 공익법인에 적용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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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김진=미국이나 호주 역시 비영리 법인 설립과 세제 혜택이 분리돼 있다. 설립은 용이하게 하되, ‘세제 혜택’은 엄격한 절차를 거쳐 공익성을 인정받을 때에만 준다. 모든 비영리단체를 총괄 등록 관리하는 ‘NPO국’이 있어서 세제 혜택을 심사한다.

 

이일하=소유 재산과 활용에 대한 규제도 완화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재단(일명 Foundation)’과 ‘자선단체(채러티·Charity)’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모금을 하는 자선단체에 대해선 규제가 훨씬 까다롭지만, 자기 재산으로 설립한 재단은 자율성이 높다. 그래서 부동산·주식·유산 기부도 활발하고 자산을 재투자해 창출한 수익이 다시 공익 활동에 쓰이도록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복지법인이면 규제가 심해 꼼짝을 못하고, 재단 또한 제약이 많다. 반면, 사단법인은 대출도 가능하고 투자도 가능하다. 같은 목적을 갖고 비슷한 일을 하는 비영리기관임에도, 각기 다른 법으로 규제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육·문화·사회복지 등 법과 법 사이에 장벽이 높아서 임팩트를 높이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힘들다. 모든 공익법인의 장벽을 허물어서 공익위원회를 설치하고, 국가는 민간을 중요한 사업파트너로 인정하는 민간협치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설립·사후 관리 통합한 ‘한국형 공익위원회’ 필요해

지난 20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한국NPO공동회의와 공동으로 ‘40년 규제 공익법인,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했다. / 주선영 기자
지난 20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는 한국NPO공동회의와 공동으로 ‘40년 규제 공익법인,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했다. ⓒ주선영 기자

사회=비영리법인 관리를 개선하기 위해 연구에서 제안한 결론은 무엇인가.

손원익=한국형 공익위원회가 필요하다. 다른 해외 사례처럼 정부 제도 하에서 거버넌스(Governance)가 통합돼야 한다. 지금은 설립은 각 부처, 사후 관리는 각 부처와 국세청 소관, 세제는 기획재정부 세제실 소관으로 쪼개져 있다. 부처끼리도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지 않고 누가 제대로 사후 관리에 신경 쓸 수도 없는 구조다. 설립부터 공익성 인증까지도 한 기관에서 도맡아서 해야 한다. 그래야 한곳에 자료도 축적되고 공익 활성화라는 큰 방향에 맞는 정책들이 나올 수 있다.

양호승=위원회가 어떻게 구성되든 비영리는 민간의 자율성에 기반해야 한다. 관에서 규제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공무원과 민간이 함께 들어간다고 해도 민간이 중심이 돼야 한다. 통일준비위원회처럼 민간이 중심이되 공무원은 행정 역할을 하는 모델도 생각해볼 수 있다.

박태규=공익법인법은 지난 수년간 개정 필요성이 계속해서 이야기됐다. 현재 정치권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공익법인법 개정안을 이야기하는 건 좋은 일이다. 호주에서 개정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건 국회가 합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역행하거나, 졸속으로 하게 되면 현장에서는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는다. ‘비영리 민간 영역의 활성화’라는 큰 방향을 가져가야 한다. 유엔 통계청에서도 비영리 민간 영역이 고용을 증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창구라고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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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

이제훈=차기 정부에서는 나눔을 통한 사회 통합을 정부의 철학으로 가져갔으면 좋겠다. 이제 시장경제 자본주의 체제가 계속 유지되기 힘들 만큼 심각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빈부 격차나 양극화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통합과 공동체 문화가 필요하다. 앞으로 비영리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민간 재원에 기반한 ‘나눔 문화’ 활성화가 꼭 필요한 이유다.

사회=박란희 더나은미래 편집장, 정리=주선영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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