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직장인의 출근시간 평균 53분. 왕복으로 약 2시간이다. 러쉬아워(rush hour)에는 끔찍한 교통체증도 감내해야 한다. 만일 주거공간과 회사가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다면 어떨까.
최근 ‘도시’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세계 주요 선진국이 ‘N분(分) 도시’ 정책을 내세우면서다. N분 도시는 일자리·여가문화·상업·교육 등 필수 생활시설을 도보 15~30분 내 누릴 수 있는 근린생활권을 말한다. 이를테면 ‘15분 도시’는 도보 15분 이내 거리에 주거공간과 회사, 쇼핑몰, 병원, 교육·복지기관이 조성돼 있는 도시를 뜻한다. 세계도시기후정상회의(C40)는 N분 도시를 코로나 팬데믹 이후 경제회복을 위한 기본계획으로 발표하고 각 나라에 맞는 N분 도시 실현을 장려하기도 했다.
N분 도시를 가장 구체화한 나라는 프랑스다.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2020년 재선에 성공한 이후 ‘파리 15분 도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우선 세느강변 도로를 보행자 거리로 지정하고, 차량 통행을 폐쇄했다. 상업 중심지인 리볼리 거리는 6차선 도로를 1개 차선만 남기고 자전거와 보행자를 위한 공간으로 바꿨다. 2030년까지 1.9km에 달하는 샹젤리제 거리를 교통 청정지역으로 바꾸고, 거리와 이어진 콩코르드 광장은 녹지화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파리 15분 도시의 핵심 원칙에는 시민들이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가 포함돼 있다. 가로변 주차 공간을 테라스·정원으로 개조해 반경 200m 내에서 공원, 숲, 강 등 녹색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N분 도시 개념을 처음 제시한 카를로스 모레노 소르본대학교 비즈니스스쿨(Paris IAE) 교수는 “코로나로 행동반경이 좁아지면서 새로운 도시계획을 통해 도시공간의 사회적가치를 회복하고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다”며 “도시 인프라를 재편성하는 N분 도시는 주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탄소중립과 도시의 균형발전에도 기여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에는 호주 빅토리아주정부가 ‘멜버른 플랜(2017~2050)’을 수립하면서 ‘20분 도시’를 발표했다. 반경 800m 내에서 도보, 자전거, 대중교통을 통해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설과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시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설정이다. 최근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중국 상하이도 15분 생활권을 도입했다. 바르셀로나는 ‘슈퍼블록’을 도입해 차량의 통행과 속도를 제한하고 보행자 친화적인 공간을 조성 중이다. 상하이는 지역사회 기본단위를 도보 15분으로 설정하고, 이 범위 내에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교육·의료·복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했다.
국내에서는 서울, 부산, 제주, 대구 등이 ‘N분 도시’ 개념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부산시는 ‘15분 도시’ 실현 계획을 발표하면서 공공도서관·공연장·미술관 등 문화시설을 생활 반경 15분 거리 내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지난 4월 ‘2040 서울 도시기본계획’의 7대 목표 중 하나인 ‘보행일상권 조성’을 본격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보행일상권은 개인의 생활 반경 안에서 일자리·여가문화·상업 등 다양한 기능을 도보 30분 내 누릴 수 있도록 한 자족적인 근린생활권을 의미한다. 서울 전역에 보행일상권을 조성해 시민들이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다양한 공공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이희정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기후위기 심화로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구체화됐고, 새로운 도시기본계획으로 N분 도시가 부상하고 있는 것”이라며 “N분 도시가 시행되면 역세권이나 주거공간 주변에 일자리를 조성하려는 시도가 이뤄질 거고, 생활 반경 내에 상업공간, 서비스기관이 들어오면 지역불균형도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제주는 지난 1월 ‘15분도시과’를 신설하고 본격적인 15분 생활권 조성에 나섰다. 라해문 제주도청 15분도시과 팀장에 따르면, 제주도는 필수시설을 ▲생활 ▲건강 ▲여가 ▲돌봄 ▲교육으로 분류했다. 도보로 15분 내에 5가지 필수시설은 반드시 구축한다는 설명이다. 라해문 팀장은 “접근성, 근접성, 지속가능성, 포용성 등 15분 도시의 핵심 원리에 따라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15분 도시를 구축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제주시 2곳, 서귀포시 2곳에서 시범지역을 선정한 후 15분 생활권을 조성해볼 예정”이라고 했다.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