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헌팀 따로 없어요, 당연히 해야될 일이니까”
매달 월급의 1% 기부한다는 내용
고용계약에 넣어 봉사 시작하게 해
억지로 했다가 베푸는 즐거움 느껴사회공헌 활동, 돈 들어도 얻는 것 많아
매달 한번씩 40여곳에서 같이 봉사하니
동료애 생기고 그만큼 조직력 강해져
“요즘 고민이 무엇입니까.” 한미글로벌 김종훈(64) 회장에게 이렇게 물었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한 김 회장은 양미간을 약간 찌푸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앞이 잘 안 보여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때문에 착시효과가 많아요. 둘을 제외하면 다른 기업들은 성적표가 빤합니다. 우리 경제가 그만큼 힘들어요.” 이럴 때일수록 구조조정, 고통분담, 비용절감 등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1996년 국내 최초로 건설업계에 CM(Construction Management·건축주를 대신해 설계와 시공 등 건설사업 전 단계를 챙기는 것) 사업을 도입한 한미글로벌은 창업 1년 만에 IMF 외환위기를 맞았지만, 한 사람의 인원감축 없이 버텨낸 기업이다. 17년 동안 ‘꿈의 직장 만들기’ ‘구성원 중심의 회사’에 도전, 8년 연속 ‘대한민국 훌륭한 일터상’을 받은 한미글로벌의 사회공헌은 여러모로 독특했다. 사회공헌팀도 없는 이 기업의 사회공헌은 직원들에게 삶의 일부였다. 무슨 비결이 있는 걸까.
―한미글로벌은 ‘구성원 중심의 회사’라고 하는데, 모든 기업 CEO는 “종업원을 중시한다”고 한다. 구성원 중심 회사 경영, 핵심은 뭔가.
“진정성이다. 말로만 하고 회사 상황이 안 좋을 때 달라지면, 직원들이 대번에 알아차린다. 방금 자체 구성원 만족도 결과보고를 받고 왔는데, 100점 만점 기준으로 85~87점이다. 특히 회사에 대한 자긍심은 90점이 넘는다. 핵심은 간단하다. 규정이나 해석이 애매할 때, 회사 편에 서지 말고 직원 편에 서라는 것이다.”(한미글로벌은 10여 년 전부터 출산휴가 6개월을 보장하고, 자녀 인원수에 상관없이 유치원부터 대학학자금을 지원한다. 3세 미만 영아를 둔 여직원에게 출퇴근 탄력근무제를 실시한다. 암에 걸린 직원이 완치된 후에도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많은 기업에서 그렇게 못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리더십의 문제가 크다. 이런 식의 생각을 하는 오너가 별로 없고, 월급쟁이 CEO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롱텀(long term·장기적인) 리더십이 필요하고, 오너 레벨에서 이런 생각이 많아져야 한다.”(김종훈 회장은 갑자기 책상 아래에서 일본의 살아있는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교세라 창립자 이나모리 가즈오의 ‘일심일언-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을 꺼내더니 ‘내 생각과 많이 비슷하다’며 읽어보라고 권했다.)
―한미글로벌 직원들은 입사 때 매달 월급의 1%를 기부한다는 내용을 담은 고용계약을 체결한다. 600명이 넘는 임직원이 매달 최소 1회씩 봉사활동을 하는데, 이를 실행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입사하면 사회공헌 입문교육을 한다. 사회공헌 담당자가 사내에 없는 대신 봉사기관별 리더가 있다. 직원들이 매달 둘째 주 토요일에 40여 곳의 장애인 복지시설로 나눠져 봉사하는데, 이곳을 맡는 직원 책임자들인 셈이다. 그분들이 40명 가까이 된다. 어떤 직원은 10년 이상 다니다 보니, 숟가락·젓가락 숫자도 알 정도로 친밀도가 높다. 봉사기관 리더 교육은 1년에 두 번씩 하고, 장애인 이해 및 역량 강화 교육을 한다. 사회공헌도 지식이 필요하다. 봉사활동엔 전 직원의 85% 정도가 참여한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빠지는 직원을 제외하면, 사회공헌 자체가 생활이 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 생각한다. 우리 회사는 고용계약서에도 사회공헌이 의무라는 것을 사인한다. 물론 경력사원은 ‘봉사는 개인적 취향인데 왜 강제하느냐’고 반발하지만, 한두 번 다녀오면 바뀐다. 봉사의 즐거움, 베푸는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배우자와 아이들을 데려오는 가족도 많다.”
―시작한 지 몇 년 만에 정착이 되었는가. 회장님께서도 매번 같은 단체에서 봉사하는가.
“5년쯤 지나니 봉사가 뿌리내리더라. 우리의 사회공헌은 두 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장애인을 돕는 일이고, 또 하나는 건설업에 맞는 집수리나 리모델링 등을 하는 것이다. 평소 전 직원은 장애인 돌보고, 청소하고, 빨래도 하고, 식단 준비하고, 놀아주는 등의 봉사를 한다. 나는 직원들의 봉사상황을 봐야 하기 때문에 매달 토요일마다 장소를 바꾼다. 복지시설 책임자를 만나서 ‘우리 봉사팀이 개선할 게 있는지 없는지’도 묻는다. 고객의 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졸업 시스템’이 있다. 우리가 안 도와줘도 되는 좋은 시설은 빨리 졸업하고, 형편이 열악한 시설을 새롭게 개척하려고 노력한다.”
―요즘 건설경기가 어렵다. 경기가 어려울 때면 기부금 등 비용을 줄인다. 기업 기부는 영업이익의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는가.
“우리는 직원들이 월급의 1%를 내면, 회사가 그 금액의 2배를 매칭펀드(matching fund)를 통해 낸다. 기부를 어느 정도 할지는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이익의 10%가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관여하는 한 재단은 영업이익의 5%를 내는 가이드가 있더라.”
―2010년 3월에 사회복지법인 ‘따뜻한동행’을 설립해 사회복지시설 100곳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회장 개인출연금 10억원에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기부 10억원을 합해 총 20억원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사회복지법인을 따로 설립한 이유가 있나.
“사실은 기업체 여러 곳을 모아서 연합재단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1년쯤 노력하다 안 돼서 그냥 우리가 만들기로 했다. 직원들이 응모해서 ‘따뜻한동행’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회사 돈을 쓰지 말자’고 원칙을 정했다. 전 직원 모금을 했다. 외국인 직원을 제외한 한국인 직원은 100% 참여했다. 적게는 10만원, 많게는 몇 천만원까지 출연했다. 전 직원이 참여한 재단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을 것이다.”
―CSR에 투자하는 게 기업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돈은 좀 쓰지만 얻는 게 훨씬 많다. 우리는 피플 비즈니스(people business)를 하는 회사다. 직원들이 서로 신뢰하고, 재미있게 일하고, 동료애로 뭉치고, 조직에 대해서 프라이드를 느껴서, 단합된 힘을 발휘하면 그렇지 않을 때와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 모래알 같은 조직과 조직력 강한 조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직원을 하나 되게 하는데 사회공헌이 엄청난 역할을 한다. 오히려 회사가 사회공헌 때문에 도움을 받고 있다. 두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 토끼도 가능하다고 본다.”
―2009년과 2011년을 거치면서 이순광 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왜 딸이나 사위가 아닌 전문경영인을 후계자로 지명했나.
“외국에는 이런 사례가 많은데, 우리나라엔 아직 인식이 부족하다. 그런데 제도나 법도 문제다. 현 시스템에서는 세금 문제 때문에 전 재산을 기부한 유한양행 같은 모델이 나올 수 없다. 중견기업 중에는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거나 자식이 가업을 잇지 않으려는 곳도 많은데, 어떻게 할지 몰라 골치 아픈 곳이 많다. 제도적 탈출구는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 같은 모델이 나오기 위해선 사회적인 공감대가 필요하고, 또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원론적인 질문인데, 왜 사회공헌이 중요한가.
“나는 기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기업의 힘이 엄청나게 세졌다. 기업이 나서면 사회적기업이든 협동조합이든 고용 중심의 기업집단을 만들 수 있다. 기업들이 사회적 이슈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이라고 본다. 특히 중요한 것은 ‘저출산 고령화’문제다. 언론도, 정부도, 기업도 무관심하다. 우리는 신입사원 뽑을 때 ‘아이 4명을 낳겠다’는 각서를 받는다. 대기업에서 탁아시설 사업을 과감하게 해야 하고, 또 협력업체나 인근 사무실에도 개방해야 한다. “
인터뷰=박란희 편집장, 정리=주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