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 커리어의 진화와 분화
희망의 선택지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선택으로

의미와 성장 사이에서 흔들리는 새로운 세대의 선택 Z세대와 조직,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선택하는 이유 밀레니얼 세대에게 임팩트 커리어는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의 선택지였다. 기존의 성장 경로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역시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가 많은 사람을 생태계로 이끌었다. 그렇게 임팩트 커리어는 하나의 ‘희망의 선택지’로 한 사이클을 돌았다. 시간이 흐르며 성과도 분명히 쌓였다. 그러나 동시에 한계도 드러났다. 임팩트 생태계는 여전히 불확실성과 자원 부족 속에서 버텨야 하는 영역에 가깝다. 의미는 분명하지만, 이곳에서 커리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낭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제 막 임팩트 커리어를 시작하는 Z세대는 이 현실을 모른 채 진입하지 않는다.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한계와 가능성이 공존하는 구조를 인식한 채 선택한다. 공정함과 진정성에 민감한 이 세대에게 ‘사회적 가치’는 구호가 아니라 검증의 대상이다. 이 조직이 말하는 가치는 실제로 구현되는가, 그 안에서 나는 성장할 수 있는가를 냉정하게 묻는다. 반대로, 조직 입장에서도 Z세대를 신입으로 채용하는 일은 쉽지 않다. 불안정한 자원 흐름, 체계화되지 않은 시스템, 충분한 온보딩 구조를 갖추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경험이 부족한 인력을 받아들이는 것은 일종의 배팅에 가깝다. 여기에 AI 확산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졌다. 반복 업무가 자동화되는 시대에 신입을 뽑는 일은 효율성의 관점에서 더 복잡한 판단이 된다. 결국 Z세대가 임팩트 커리어를 선택하는 일도, 임팩트 조직이 Z세대를 선택하는 일도 모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결단이다. ◇

임팩트 커리어, 선택지가 아닌 시대의 기준이 되다

소셜벤처의 확장 뒤에 남은 커리어의 균열 시대가 요구하는 연결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임팩트얼라이언스는 대한민국 임팩트 생태계의 다양한 조직이 모인 협의체 네트워크다. 소셜벤처, 임팩트 투자사, 중간지원조직, 비영리 스타트업까지. 서로 다른 미션과 방식을 가졌지만 ‘임팩트’라는 공통의 지향 아래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관찰자가 된다. 누가 성장하고, 누가 어려움을 겪고, 누가 떠나는지 가까이에서 보게 된다. 그리고 질문이 남는다. “임팩트 커리어를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가?”이다. 보람과 의미는 분명하지만, 많은 이들이 불안정한 환경 위에서 버티고 있는 현실 또한 분명하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지속하지 못하는 구조. 이제 우리는 임팩트 커리어의 ‘지속가능성’을 정면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 임팩트 생태계는 어떻게 성장해 왔는가 사회문제 해결은 오랫동안 정부와 비영리의 영역이었다. 정책은 정부가 만들고, 현장은 비영리가 담당하며, 시민은 기부와 자원봉사로 참여하는 구조였다. 사회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였지, ‘사업의 기회’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임팩트투자와 B-Corp 같은 개념이 등장하며 변화가 시작됐다. 이윤을 추구하면서도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이 확산되었고, 문제 해결은 점차 비즈니스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이자, 시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새로운 제안이었다. 비영리 활동을 통해 공론화된 사회문제가 충분한 수요를 형성하면, 자연스럽게 시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흐름은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 변화가 비교적 압축적으로 전개되었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으로 정부 주도의 생태계가 먼저 형성되었지만, 동시에 제도적 한계를 느낀 청년 혁신가들이 글로벌 흐름을

“일할 사람이 없다”는 탄식, 정말 인재가 없어서일까

사회적 가치 중시하는 청년 4명 중 1명, 그러나 경로는 불투명 취업이 아닌 전환의 설계…생태계가 함께 책임질 때 길이 열린다 “왜 이렇게 일할 사람을 찾기 어렵지?”“사회문제에 관심 있는 인재가 이렇게도 없나?” 사회혁신 생태계에서 반복되는 질문이다. 그리고 종종 “임팩트 인재 풀 자체가 너무 작다”, 혹은 “이 시대에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혁신적으로 일하려는 인재는 거의 없다”는 비관적 결론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감각이 아닌 데이터로 이 질문을 다시 보기로 했다. 전국 대학생 5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하며 “정말 임팩트 인재는 부족한가?”를 처음부터 다시 물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사회·환경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인재는 27.2%였다. 네 명 중 한 명 이상이 이미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소셜임팩트를 정확히 안다”고 답한 비율은 5.5%에 불과했다. 인재는 있었지만, 그 관심을 커리어로 연결할 언어와 구조가 부재했다. ‘인재 부족’이 아니라 ‘연결 구조의 부재’가 문제였다. ◇ 인재는 있다, 그러나 경로가 없다 사회적 변화에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자 하는 청년들은 분명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의 관점에서 다시 질문을 던졌다. 왜 관심 있는 인재가 임팩트 커리어를 선택하지 않는가? 무엇이 결심을 돕고, 무엇이 망설이게 만드는가? 이 경로를 선택했을 때 미래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결국, 인재가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보와 신뢰 자원이 제공되고 있었는지를 되돌아보게 했다. 동시에 우리 자신에게도 물었다. 우리가 운영해 온 수많은 교육 사업 중

좋은 일을 오래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진입은 늘었지만 경로는 불안정한 임팩트 커리어 재원 구조와 고용 조건, 이제는 ‘지속성’을 설계할 때 임팩트 커리어는 지난 10여 년 사이 한국 사회혁신 생태계에서 하나의 선명한 언어로 자리 잡았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선택은 더 이상 낯선 선언이 아니다. 성수동이라는 거점이 형성됐고, 임팩트 투자와 정책 자본이 유입됐으며, ‘소셜벤처’라는 이름도 대중화됐다. 적어도 생태계 안에서 ‘의미 있는 일’은 하나의 선택지로 존재하게 됐다. 그러나 이 흐름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임팩트 커리어는 여전히 일부 네트워크 안에서 공유되는 경로에 가깝다. 얼마나 안정적인지, 장기적으로 어떤 이동과 성장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지 않았다. 의미에 대한 언어는 빠르게 확장됐지만, 그 의미를 떠받치는 노동 조건과 경로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이 간극은 개인과 조직 모두의 경험에서 드러난다. 임팩트 생태계로 유입되는 청년은 늘었지만, 일정 시점 이후 커리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직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조직 역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장기적으로 고용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구조를 자연스럽게 확보하지는 못한다. 생태계는 커졌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시간은 여전히 불안정하게 배치돼 있는 경우가 많다. ◇ 하이브리드 조직의 딜레마 : 미션과 시장 사이의 줄타기 한국 임팩트 생태계의 성장은 정부 지원과 맞물려 전개돼 왔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과 이후 이어진 청년 일자리 지원 사업은 사회문제 해결을 표방한 조직들이 시장과 고용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다만 이 모델은 구조적 한계를 내포하고

사회혁신적인 대학이 사회혁신가를 키운다

전공과 진로를 넘어 ‘경험’으로 설계된 사회혁신 커리어의 출발점 한양대 사례로 본 사회혁신 이니셔티브의 조건과 한계 사회혁신은 특정 전공이나 직업군의 전유물이 아니다. 실내건축디자인, 경영학, 산업공학을 전공한 세 명의 청년은 각기 다른 출발점에서 사회혁신을 접했고, 이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재설계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대학에서 사회혁신을 개념이 아닌 경험으로 접했다는 점이다. 실내건축디자인을 전공한 이정인 씨는 수업을 통해 사회혁신을 처음 알게 됐다. 사회혁신은 전공과 무관한 영역이라고 생각했지만, 수업에서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는 단체를 인터뷰하며 돌봄의 사각지대를 접했고, 이후 전공 수업에서 수용자 부모와 자녀가 만나는 접견 공간을 설계 주제로 삼았다. 공간 디자인이 사회문제 해결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파이낸스경영학을 전공한 조수연 씨는 취업 준비 과정에서 사회혁신융합전공 수업을 선택했다. 사회혁신을 막연히 사회복지와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하던 그는 수업과 인턴십을 통해 이 영역이 요구하는 전문성과 가치지향성을 체감했다. 졸업 후 대기업인 삼성전자에 입사했지만, 의미와 효능감을 느끼기 어려웠고 결국 회사를 떠나 사회혁신 조직 임팩트리서치랩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산업공학을 전공한 백경은 씨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사회적기업 동아리 활동을 통해 캠퍼스 내 자원순환을 촉진하는 기부 모델을 개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임팩트 지향 조직에서의 인턴십 경험을 거쳐 영리 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녀는, 현재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자신의 업무를 임팩트 관점에서 해석하며 일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한양대학교에서 사회혁신을 경험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양대는 2018년 사회혁신융합전공을

성수동에서 시작된 실험, ‘사회혁신 커리어’의 길을 만들다

교육·채용·커뮤니티로 만든 사회혁신 인재 생태계 루트임팩트가 설계한 임팩트 커리어 경로 2014년 서울 성수동에는 막 창업을 시작한 창업가, 사회문제에 관심 많은 대학생, 갭이어를 선택한 직장인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공통 관심사는 ‘사회혁신’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성수동은 사회혁신을 위해 일하는 조직 500여 곳이 모인 소셜벤처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이 짧지 않은 변화의 이면에는 ‘사람이 모이고, 머물고,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당시 국내 사회혁신 생태계는 공공 중심의 제도와 과제형 지원이 주를 이뤘다. 반면 성수동에서는 민간 주도로, 사람과 조직을 중심에 둔 비즈니스 기반의 독립적인 생태계가 자라기 시작했다. 사단법인 루트임팩트는 사회·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를 설계하고 움직일 ‘사람’이 핵심이라고 보았다. 특히 사회문제 해결을 일로 삼을 수 있는 인재가 생태계에 유입되지 않으면 지속가능성은 요원하다고 판단했다. “생태계 초기에 창업가들은 모일 때마다 채용이 쉽지 않다는 대화를 나눴어요. 아직 생태계 규모가 작기도 하고 우리가 하는 일을 설명하기도 어려웠거든요.” 루트임팩트 허재형 대표의 회상처럼 그 시기 사회혁신 조직들은 공통적으로 인재 유입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2010년대 중반, 사회혁신 분야는 청년들에게 하나의 ‘커리어 선택지’로 인식되지 않았다. 당시 주요 청년 고용 통계와 직업 조사에서도 사회혁신·소셜벤처·비영리 영역은 별도의 범주로 다뤄지지 않았다. 관심은 있었지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보이지 않았고, 진입 경로 역시 비공식적이거나 암묵적이었다. 낮은 보상과 고용 불안정에 대한 인식은 사회혁신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데 가장 큰 장벽이었다. 루트임팩트는 이 문제를 사회혁신

‘좋은 일을 업(業)으로’…임팩트 커리어는 어떻게 진화했나

의미와 생존이 만난 커리어의 탄생 ‘임팩트 커리어’ 20년 변천사 한국 사회에서 ‘경제 성장’은 한때 거의 종교에 가까운 신념이었다. 절대적 가난과 결핍의 시기를 벗어나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압축 성장을 이뤘고, 성장 그 자체가 윤리로 작동했다. 성공은 ‘선’이었고, 효율은 ‘정의’였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는 그 신념의 붕괴를 상징했다. 한 세대가 쌓아올린 성장의 성채는 순식간에 무너졌고, 개인은 국가의 이름으로 구조조정됐다. 경제 호황기 베이비붐 세대의 커리어는 ‘서류만 내면 합격하던 시절’을 상징했다. 일자리가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다음 세대에게 일은 생존의 전장이었다. 성장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자 청년들의 장래희망 1위는 공무원과 교사가 됐다. ‘안정’은 곧 생존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러나 위기는 언제나 새로운 관점을 낳는다. 저성장과 경기침체, 금융위기의 여파 속에서 일부 청년들은 안정보다 의미를, 생존보다 방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 글로벌 금융위기와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 이 흐름에 불을 붙인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초래한 이 사건은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남겼다. 미국에서는 이를 계기로 ‘사회적 기업가정신’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했다. ‘이윤을 내되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발상은 낡은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이자 새로운 생태계에 대한 제안이었다. 한국에서도 외환위기의 상처와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교차하던 시점에 이 흐름은 빠르게 수용됐다. 청년 세대는 ‘좋은 일’이 경제의 언어로 작동할 수 있는지 묻기 시작했다. “사회에 좋은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없을까.” 2000년대 중반, 이 질문은 낯설고도 용감한 상상이었다. 사회문제는 비판의 대상이었지, 직업의 언어로 다뤄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