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직접 말하는 4人4色 자립 이야기

매년 약 2000명의 청년이 만 18세가 되면 아동보호시설을 나와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우리는 이들을 ‘자립준비청년’이라고 부른다. 서울시 ‘2022 서울청년패널 기초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부모와 동거하는 청년들의 예상 독립 나이는 평균 30.6세. 자립준비청년의 자립은 보호자가 있는 청년층의 자립 시기보다 12년이나 이른 셈이다. 최근 기업 사회공헌의 화두는 ‘자립준비청년’이다. 비극적이지만 청년들의 희생이 거름이 된 탓이다. 지난 2022년 광주에서 20대 자립준비청년 2명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했고, 작년 6월과 7월 충남 천안에서도 2명의 보육원 출신 청년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더나은미래는 창간 14주년 특집으로 자립(준비)청년 당사자 4인을 한자리에 모아 ‘자립의 성공 요건과 바람직한 지원책’에 대해 물었다. 작가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모유진(28)씨, 아름다운재단 ‘열여덟어른 캠페이너’로 알려진 박강빈(26)씨, 전(前)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자 자립준비청년 지원 단체 SOL 대표인 윤도현(22)씨, 한예종 출신 바이올리니스트로 기아대책 음악특기생인 이석원(30)씨가 참여했으며, 좌담회는 모유진씨가 경기도 성남에서 운영하는 아라보다 카페에서 진행됐다. ―각자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로서의 경험과 생각을 세상에 알리는 ‘캠페이너’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각자가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모유진=2년 전, 자립준비청년으로서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낸 에세이 ‘숨김없는 말들’을 출간했습니다. 2021년부터 기아대책 ‘마이리얼멘토’로 활동하며 멘티들과 소통하고 있어요(성악을 전공한 모씨는 여러 장의 음반도 발표했다).   박강빈=봉앤설이니셔티브에서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이주배경청년을 대상으로 장학사업을 하고 있습니다(박씨는 2022년 예능프로그램 ‘유퀴즈 온더 블럭’에 출연해 자립준비청년의 고충을 알렸다). 이석원=바이올리니스트 이석원입니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UIM(United In Music) 콰르텟의 리더입니다(이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지휘과를

늘어나는 지원이 사각지대도 메울까 [자립준비청년 지원책 흐름과 한계]

현금·인력지원 커져도 사각지대 여전해가장 필요한 것은 ‘함께해 줄 어른’ 최근 정부와 지자체는 자립준비청년 지원책을 강화했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 2월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자립 지원 정책 대상자를 기존 18세 이후 보호 종료자에서 15세 이후 보호 종료자까지 확대했다. 보호 종료 후 5년간 지급되는 자립 수당은 올해부터 10만원 추가 인상된 월 50만 원이다. 2023년에는 의료비 지원 사업도 신설해 자립준비청년에게 건강보험 본인 일부 부담금을 지원한다. 전국 17개 지자체는 시설에서 독립한 만 18세 자립준비청년에게 자립 정착금을 지급한다. 서울시의 2021년 자립 정착금은 500만원이었으나, 올해 2000만원이 돼 3년 만에 4배로 올랐다. 현금성 지원에 더해 인력 지원도 강화됐다. 복지부는 17개 시도 자립 지원 전담기관에 배치되는 전담 인력을 지난해 180명에서 올해 230명으로 늘린다. ‘바람개비서포터즈’의 규모도 확대했다. ‘바람개비서포터즈’란 자립준비청년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 보호 아동들의 자립 준비를 지원하는 멘토단이다. 2021년 17명에서 2023년 107명으로 인원이 늘었고, 지난해부터는 월 10만 원의 활동비도 신설해 지원하고 있다. 자립준비청년을 대상으로 지원 사업이 많아지고 있지만,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정부는 2021년 공공·민간의 다양한 자립 지원 사업을 한 번에 확인하고 찾아볼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자립정보 ON’을 선보였다. 장윤주 아름다운재단 연구사업팀 연구원은 “지원책이 늘어나며 쏠림 현상이 생겨 지원 대상자 모집이 어려워졌다”며 “유사한 사업이 많기 때문에 사업 현황을 논의하고 지원 공백을 찾아 조정할 수 있는 민간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현장에서는 연락 두절 등 지원 대상의 사각지대가 있다는 한계도

아름다운재단 ‘열여덟어른 캠페이너’로 알려진 박강빈(26)씨가 지난달 열린 좌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자립은 자립준비청년만의 과제가 아닌 누구에게나 주어진 과제”

“저는 ‘보통의 청년’으로 불리고 싶어요. 수식이 필요 없는, 결국에는 저를 정의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의 인식 수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이너’로 알려진 박강빈(26)씨가 지난달 성남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자립준비청년과 청년간의 구분선을 모호하게 하는 것이 인식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박강빈씨는 현재 봉앤설이니셔티브에서 사회공헌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다. 봉앤설이니셔티브는 배달의민족 김봉진 창업자와 아내 설보미씨가 사회공헌을 목적으로 설립한 회사다. 그는 이곳에서 “당사자성이 곧 전문성”이라는 마음으로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그의 첫 자립은 고등학교 졸업식 날.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찍 취업해 대기업 사원으로 입사한 상태에서였다. 그는 “돈벌이가 좋으니 잘 자립하겠지라며 생각했지만 금융에 대한 현실감각이 없었다”며 “외로움에 취약한 시기라, 누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다 빌려줬다”고 전했다. 시설 내에서는 금융 지식과 같은 자립에 대한 배경지식이 얕았다고 부연했다. 그에게 자립의 두려움보다 더 큰 어려움은 바로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의 원인 중 하나는 ‘부족한 지지 체계’였다. 그는 “자립준비청년들은 진학, 취업, 연애 등 생애주기에 따른 고민을 나눌 지지 체계가 다른 사람들보다 부족하다”면서 “변호사 집에서 변호사가 나고, 의사 집에서 의사가 난다는 말이 있는데 자립준비청년들의 진로 분포도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진로 탐색의 생애주기에서 간접 경험이 부족한 것도 자립을 어렵게 하는 장벽이라는 것이다. 그가 자란 시설에는 대학에 간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에, 고등학교 졸업 후 그의 선택도 취직이었다. 시설에서 자란 자립준비청년들의 간접 경험은 그 공간의 경험이 다였다. 간접 경험의 폭이 좁은 상태에서, 자립의 형태는 저렇겠구나 유추할

전(前)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자 자립준비청년 지원 단체 SOL 대표인 윤도현(22)씨가 지난달 열린 좌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내가 의지할 수 있는 한 사람 덕에 인생의 전환점 맞아

“정치를 해보니 사회적 인식이 아직 부족하단 생각도 들어요. 제가 비대위원으로 들어갔을 때 ‘왜 이 사람이 정치를 하냐’는 말도 들은 적이 있어요. 자립준비청년이 전체 인구 집단으로 봤을 때 많은 수는 아니지만, 청년의 일부기도 하거든요. 결국 당사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적인 공감대도 높여가야 한다고 봐요.” 전(前)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인 윤도현(22)씨가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로서 정치 경험을 풀어냈다. 윤씨는 지난해 말 22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 중 최연소 영입 인재로 주목을 끌었다. 그는 “(자립준비청년이 겪고 있는) 사각지대의 목소리가 사회에 전달되는 다리”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로서, 자립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로 나온다는 것에 주목해 실생활 적응을 돕는 ‘자립준비청년 학교’, 자립 정보 플랫폼 ‘자립 정보 ON’ 고도화 등의 정책을 제시했다. 유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학생인 윤씨는 자립준비청년과 후원자를 잇는 단체 SOL(Shine On Light)을 운영한다. 2021년에는 자립활동가 13명과 함께 자립 준비 경험을 담은 책 ‘우리가 마주한 세상에는 지도가 없었다’를 출판했다. 18년 동안 보육원에서 자란 자립준비청년 당사자인 그가 주목한 것은 ‘사회를 나와서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 그는 “보육원 구조 자체가 일대다(1대多) 이기에 시설에서 의지할 사람을 찾기보다는 외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했다”며 “선생님이 자주 바뀌는 것이 현실이니 시설 선생님이 아니어도 내가 의지할만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운영하는 단체 SOL은 홈페이지에 상담소를 열고, 오픈 채팅을 운영하며, 힘든 일이 생긴 자립준비청년들이 상시 연락할 수 있는 곳을 마련했다. 양부모님을 만나 2년간 함께

한예종 출신 바이올리니스트로 기아대책 음악특기생인 이석원(30)씨가 지난달 열린 좌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내가 원하는 것을 학습하며 나만의 특기를 찾아야”

“결국에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자립이 돼요. 잘 할 수 있는 나만의 특기를 찾아야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할 수 있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독일 에센 폴크방 국립음대에서 유학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석원(30) 씨는 UIM(United In Music·이하 UIM) 콰르텟의 리더다. 지난 3월 기아대책의 후원으로 첫 정기연주회를 연 UIM은 올해로 창단 9년째인 현악 4중주 그룹으로, 모두가 ‘자립준비청년’ 출신이다. 이 씨가 자립하게 된 것은 2013년도. 이불과 옷가지 몇 개가 가진 것의 전부였다. 아는 형 집에 얹혀살며 LH 대학생 전세주택을 신청했다. 그는 “보증금 백만 원도 없어 주인 할머니가 대신 보증금을 내주며 도장 인감을 찍어준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지원받는 금액은 월 30만 원. 주거 이자와 휴대전화 비용을 내고 나면 사라지는 돈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는 “학식도 비싸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하는데, 누가 보면 손가락질할까 빨리 먹었다”며 “모든 걸 30만 원 안에서 하려고 하니 대학 친구가 없을 정도로 삶이 빠듯했다”고 회상했다. 대회 준비 비용은 바이올린 현까지 아껴가며 마련했다. 그는 도움 받을 생각은 없었냐는 질문에 “이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고 답했다. 그가 악기를 만난 것은 보육원 안이었다. 그는 “보육원에서 다양한 체험을 해보며 재능을 찾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아이들의 능력을 찾아내고 상담도 많이 하면서 자신의 길을 정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자립준비청년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제도도 ‘특기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는

작가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모유진(28)씨가 지난달 열린 좌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건송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자립을 가장 어렵게 하는 것은 ‘실패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는 것

“지구에 운석이 떨어지면 크레이터(Crater)가 생겨요. 그걸 억지로 메우려고 하면 많은 시간이 들죠. 하지만 크레이터에 물이 고이면, 주위 동식물을 살릴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진 샘이 돼요. 자립준비청년은 크레이터를 가졌지만 그만큼 먼저 ‘샘’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청년이에요” 작가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모유진(28)씨가 지난달 그가 운영 중인 카페 ‘아라보다’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강의를 나가면 꼭 해주는 이야기”라며 전한 말이다. 모유진 씨는 2022년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로서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숨김없는 말들’을 출간했다. 그는 자립준비청년이었다. 열한 살 때 위탁 가정에 보내진 그가 ‘자립’을 하게 된 건 스무 살. 위탁 가정에서 학대를 받아 야반도주를 했다. 중학생부터 꿈꿔온 자립의 날. 모두가 잠든 밤에 편지 한 장을 두고 나와 점퍼를 덮고 잤다.  열세 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급 천 원을 받기도 했던 그는 현재 카페이자 공방인 ‘아라보다’를 운영하고 있다. 공간 이름인 ‘아라보다’는 ‘경작하다, 항해하다’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 ‘arare’에서 따왔다. 경작하듯 생명이 자랄 수 있도록 땅을 고르고, 항해하듯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아라보다는 자립준비청년을 돕는 사회적 기업을 목표로 한다. “우리의 경험을 먼저 나누며 위로와 용기를 전할 때 살아있는 기분”이라는 모유진 씨에게 자립의 성공 요인 세 가지를 물었다.  그가 가장 먼저 꼽은 것은 “건강하고 긍정적인 멘토”다. 학원비와 교통비를 지원해 꿈을 꿀 기회를 마련해준 음악학원 원장님부터 식대를 지원해 준 과외 선생님까지. 그에게는 울타리가 되어 지켜준 ‘멘토’가 있었다. 2021년부터 기아대책 ‘마이리얼멘토’로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