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모두의 칼럼] 멈춰버린 엘리베이터

이달 6일,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의 엘리베이터가 봉쇄되는 사건이 있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멀쩡히 작동되던 엘리베이터가 갑작스레 봉쇄된 까닭은 바로 장애인단체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 때문이었다. 장애인들이 시위를 진행해 역사를 혼란스럽게 만드니 아예 시위가 불가능하도록 장애인들의 필수 이동 수단인 엘리베이터를 막아버린 것이다. 이 사건을 접한 많은 이들이 봉쇄 조치에 대해 화를 내며 이의를 제기했다. 장애인 당사자인 나도 이 사건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려 한다. 먼저 엘리베이터 봉쇄의 의도가 악질적이며 노골적이라고 생각한다. 혜화역 측에선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봉쇄했다고 밝혔다. 그들이 말하는 시민의 범주에 이동권 보장을 주장하는 장애인들은 포함되지 않다는 것이 충격을 받았다. 시설물을 보호한다는 표현도 불쾌했다. 장애인들을 공공에 해를 입히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처럼 묘사했기 때문이다. 혜화역은 다른 역들보다 장애인들에게 각별하다. 혜화역 인근에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노들장애인야학, 서울대학교병원 등이 있다. 특히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은 봉쇄당했던 혜화역 2번 출구 엘리베이터에서 도보 1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장애인이 다양한 목적으로 혜화역을 찾는다. 심지어 봉쇄 당일인 12월 6일에는 ‘무장애예술주간’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예술을 즐기기 위해, 공부를 하기 위해, 진료를 받기 위해 혜화역을 찾은 수많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강제로 빼앗아버린 그날의 봉쇄 조치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시위는 주로 유동 인구가 많은 출근 시간대나 주말에 이루어진다. 이에 대해 ‘왜 굳이 제일 바쁜 시간대에 시위하느냐?’ 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은 시간대에 시위를 진행하면

210420-0012
[모두의 칼럼] 워킹(working)과 워싱(washing) 사이, 노플라스틱 캠페인

매월 22일에는 자동차를 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또 그날 저녁 8시에서 9시에는 전등을 끈다. 에너지를 적게 사용해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여보자는 것이다. 고기 없는 월요일(Green Monday)을 시도하는 공공기관과 기업도 많아졌다. 더 나아가 다양한 층위의 채식주의에 도전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메탄을 줄이는 방법이자 동물복지를 고려한 소비다. 상품 포장과 분리배출에 관한 정보 공유도 활발하다. 플라스틱을 사용한 물건과 포장재의 재활용은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발생과 관련이 있다. 플라스틱 생수병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다회용기를 쓰지만 어쩔 수 없을 경우에는 종이팩 생수와 같은 대안적인 물품을 찾는다. 환경에 관한 이슈만이 아니다. 매일 마시는 커피와 차에도 공정함을 담고 싶고 마스코바도로 요리를 하면서 멀리 필리핀의 노동자와 연대감을 느낀다. 장애인들이 만드는 쿠키와 콩나물을 구매하는 것도 소비에 사회적 가치를 더하고 싶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이렇게 자신들의 소비생활에 의미를 담으려는 시도들은 기업들이 이에 걸맞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때 비로소 완전해진다. 기후위기 시대에 소비자들과 기업들의 이런 노력은 놀랍게도 항상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환경을 생각하고 공정무역에 관심이 많으면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의 상품을 소비하는 노력에 대해 ‘유별나다’는 말을 듣기 쉽다. 혹은 ‘너 혼자 그래 봐야 세상 안 변한다’라는 말이 덧붙는다. 완전한 비건이 아닌 경우, 특히 채식을 하되 상황에 따라 육식을 허용하는 아주 낮은 단계의 채식주의자들에게는 ‘선택적 비건이냐’하는 비아냥이 따르기도 한다. 기업의 경우는 더욱 엄격한 잣대가 있다. 그래서 생겨난 용어들이 이른바 ‘워싱(washing)’이다.

김미진 위커넥트 대표
[모두의 칼럼] 미래에 얼마나 투자하고 있나요?

2020년부터 2030년까지 가장 빠른 속도로 종사자가 늘어날 직업은 뭘까. 최근 미국 노동통계국(The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이 관련 리포트를 발표했다. 리포트에 따르면 1위는 풍력발전 기술자, 2위는 숙련 간호사, 3위는 태양광 설치 기술자, 4위는 통계학자, 5위는 물리치료 보조사였다. 다음 순위로는 정보 보안 애널리스트,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가정 및 개인 간호 보조사, 의료 및 건강 서비스 매니저, 의사 보조사 등이 언급되었다. 에너지 분야, 데이터 및 보안 분야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헬스케어 분야가 10위권에서 무려 네 자리나 차지한 점이 퍽 놀라웠다. 기후위기로 인류의 에너지 생산과 소비 방식이 바뀌고 자동화와 디지털화 덕분에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동시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새로운 노동 수요가 창출되는 것도 당연하다. 미국 노동통계국은 특히 가정 및 개인 간호 서비스 종사자가 2030년까지 100만명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로봇과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빼앗아갈 거라며 걱정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여전히 많고 심지어 새로운 직업도 다수 생길 거란 전망에 조금 희망적인 마음을 갖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미래의 직업, 일자리, 노동을 이야기할 때 개인이 마주하는 진짜 문제는 일자리 수 감소가 아니다. 기존의 일과 새로운 일 사이의 ‘기술 격차(Skill Gap)’를 줄이는 것이다. 우리가 일하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동안은 내가 보유한 기술과 최신 기술 사이의 갭을 최소화해야 한다. 기술 혁신의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메워야 하는 갭은 점점 넓어진다. 맥킨지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모두의 칼럼] 코로나에서 살아남기

나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가 얼마 전 건강하게 회복했다. 설마 내가 감염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표현을 이번 계기로 정확히 이해했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후 흉통과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이튿날 저녁 대형병원 음압 병동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일주일간 치료를 받았고 폐렴 소견과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받고 퇴원했다. 기간은 짧지만 코로나 환자로 지내는 동안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현재 대한민국의 감염병 확진자 대처 시스템이 예상보다 더 혼란 속에 빠져 있다고 느꼈다. 첫 번째는 연락망이 너무나 중구난방이다. 기관 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 확진 판정을 받으면 정말 여러 곳에서 역학조사와 격리장소 마련 등을 위해 연락이 오는데, 그때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답해야 했다. 두 번째는 비상상황 시 바로 의료적인 조처를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양성 결과가 나왔던 두 번째 PCR 검사를 받은 날 새벽에 급성 호흡곤란이 왔었다. 정말 위급했었기 때문에 당장 응급처치를 해야 했다. 하지만 애초 모든 병원의 응급실은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갈 수 없었다. 1339 등 관련 연락처는 상담원 연결도 힘들뿐더러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상황에 ARS 연결 과정이 너무나 길어 불편하고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나마 경증이고, 호흡곤란도 저절로 가라앉아 괜찮았지만, 정말 중증이거나 급성일 경우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그대로 자택에서 숨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코로나 치료를 받는 모두가 가장 바라는 것은 빠른 쾌유다. 하루라도 빨리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모두의 칼럼] 비워낸 만큼 채워지는 것들

아주 어렸을 때, 또래 여자 아이들처럼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금세 깨닫고 말았다. 고작 대여섯살 때의 일이니 남들보다 포기와 좌절을 좀 더 일찍 맛본 셈이다. ‘아이돌’이 되는 것도 나의 오랜 꿈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포기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진학 문제를 고민할 때도 남들보다 선택지가 좁았다. 성적보다는 엘리베이터와 특수학급의 유무를 먼저 봐야 했기 때문에 그게 안 되는 곳은 일찌감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반면 장애인이라서 예기치 않게 얻은 기회와 보람도 있다. 지금 쓰는 칼럼도 그 중 하나다. 나의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의 경험이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정보가 된다는 것은 나를 지치지 않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된다. 소수성을 띠기 때문에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휠체어를 탔기 때문에 더 낮은 곳까지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어릴 적 놀이터에서 뛰어놀지 못해 주야장천 읽었던 책들은 마음의 양식이 됐고, 독학으로 깨우친 컴퓨터는 일상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인생에서의 ‘득과 실’은 쉽게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 큰 손해라고 생각되는 일이 훗날 좋은 결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지금은 이득이라고 여겨지는 일이 미래의 나에게 큰 피해로 돌아오기도 한다. 내가 처음 소아암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이걸 긍정적으로 생각한 가족이나 지인들은 없었을

김미진 위커넥트 대표
[모두의 칼럼] 우리 회사엔 왜 여성 리더가 없나요?

지난 6월말, 위커넥트는 변화하는 일의 패러다임에 맞춰 자신만의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있는 10명의 여성 스피커를 초대해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는 온라인 콘퍼런스 ‘Career Navigation for Women: 계속 일하기 위한 6가지 방법’을 열었다. 이틀간의 콘퍼런스가 끝난 뒤 한 참가자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회사에 여성 리더가 거의 없어 불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덕분에 다양한 레퍼런스가 생겼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해왔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공공기관 및 500인 이상 민간기업의 여성 관리자 비율은 19.8%였다. 대기업 여성 임원 비율은 훨씬 더 낮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내 200대 상장사 등기임원 1441명 가운데 여성 임원의 수는 65명으로 전체의 4.5%를 차지했다. 미국의 경우 포브스 선정 200대 기업 중 여성 등기임원의 수가 전체의 29.9%에 달하는 것과 확연히 비교된다. ESG 평가 기관인 서스틴베스트는 ‘2021년 상장 기업 지배구조 성과’에서 평가 대상 997개 기업 중 여성 등기임원을 1명 이상 선임한 기업이 작년 대비 5.72%p 상승했다고 밝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얼마 전 한 대기업 계열 건설사 대표이사와 여성 매니저들의 차담회에 초대됐다. 여성 임원을 더 많이 뽑고 싶지만 임원 후보로 올릴 중간관리자의 수가 너무 적다는 게 주요 어젠다였다. ▲출산과 육아 등 생애주기 변화에 따른 여성 실무자들의 중간 이탈 ▲남성 중심적 기업 문화와 제도 ▲구성원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하지 않는 경직된 근로 환경 ▲여성 중간관리자의 최상위 직급 승계 경험 부재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모두의 칼럼] 시민단체가 알아야 할 ‘공증 예외 제도’

코로나19 초기의 충격과 혼돈을 지나 시민사회도 웨비나, 온라인 캠페인 등 활동을 다변화하며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는 돌봄,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단체 내부 의결도 대부분 온라인 총회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지역 회원 등 회원 참여가 더욱 확대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동안 시민단체는 상근 활동가 중심의 운영과 활동이 증가하는 것에 대해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회원 모집 시 정기 기부 역할만 하는 기부회원을 모집하거나 대의원제도를 별도로 두고 일반회원에게는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는 구조를 취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단법인의 정의상 회원이 법인의 실체라고 할 것이지만 이사회 수준의 회원 수만으로 총회를 운영하는 곳도 다수 있다. 총회 의결을 위해서는 통상 구성원의 2분의 1 이상이 참석하여야 하고, 정관을 변경하려면 총 사원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위와 같은 정족수를 채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사의 임기가 종료되면 새로운 임원을 총회에서 선임해야 하지만 총회 정족수 미달로 이사를 선임하지 못하고, 장기간 실체와 등기가 불일치한 상태로 운영되기도 한다.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회원이 거의 없어 해산 해야 할 상황이지만, 해산을 의결할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방치된 사단법인도 여럿 있다. 총회에 참석하지 않는 회원이 늘어나면 위와 같이 단체 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이 초래되므로 총회 구성원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운영 효율성을 높여 왔던 것이다. 그러나 제도적 한계를 우회하기보다는 온라인 총회와 연계하여 시민 참여를 확대하는 정면승부가 필요하다. 수백 명의 회원이 온라인 공간에서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모두의 칼럼] 한국서 50년 살았어도 ‘장애인 등록’ 안 해주는 정부

A씨는 중증 지적 장애인이다. 나이는 50대 초반으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계속 생활하였다. 현재 시설에서 머물고 있는데 조만간 그가 지내는 시설이 폐쇄될 예정이다. 이 경우 다른 시설로 옮겨갈 수도 있고, 시설에서 독립해 생활할 수도 있다. A씨는 식사 및 이동을 혼자서 할 수 있고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애인 활동지원 등이 제공된다면 충분히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이 시설 내 사회복지사들의 판단이다. A씨도 국가의 지원을 받아 자립 생활을 영위하고 싶어한다. 중증 장애인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은 장애인의 생존권을 충분히 보장해 줄 수 있는 예산과 행정력을 갖춘 국가다. 그러나 이런 A씨의 소박한 목표가 좌절될 위기에 처했다. A씨가 미등록 체류 상태의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화교인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 중화민국(대만)의 국적을 보유하고 있지만, 비자 없이 생활한지 오래다. 어렸을 때부터 시설 안에서만 살아온 A씨에게 비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비자가 없으니 귀화할 수도 없다. 한국 국적이 없으니 생계급여를 받을 수도 장애인 등록도 될 수도 없으며, 생존을 위한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지금 머물고 있는 시설에서는 직원들의 사비를 보태어 A씨의 의식주를 지원하고 있으나, 조만간 시설이 폐쇄되면 이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고 장애인 등록이 안 되어 있는 A씨를 다른 시설에서 받아줄 가능성은 적다. 무엇보다 A씨의 탈시설에 대한 욕구, 즉 독립된 주체로서 자립적으로 생활하고 싶다는 의사가

김미진 위커넥트 대표
[모두의 칼럼] 채용에 진심이세요?

채용 플랫폼을 운영하다 보니 조직을 운영하는 대표님들을 만날 때마다 듣는 단골 질문이 있다. “OOO(직무명) 인재풀 좀 있으세요? 요즘 사람 뽑기 정말 어렵네요.” 대표님들의 고민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보면 이렇다. 채용공고를 낸 지 한참 지났는데도 아무도 지원을 안 하거나, 겨우 한두 명 지원해서 면접을 봐도 다른 데에 합격했다며 입사 제안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취업난도 심각하지만 구인난도 못지않게 심각하다는 얘기였다. 채용을 돕는 우리 입장에서도 이해가 된다. 요즘 취업과 채용 둘 다 너무 어렵다. 2020년 상반기 코로나가 막 퍼지고 심각해질 무렵, 경기 악화와 불확실성 증가로 신규 채용하는 회사가 크게 줄었는데, 동시에 지원자도 줄었다. 코로나 전이었다면 충분히 입사 지원을 했을만한 후보자들에게 직접 전화해 왜 지원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어린이집 휴원이나 온라인 수업 같은 어쩔 수 없는 상황 탓에 구직을 하기 힘들다는 후보자도 있었지만 안전을 위해 구직이나 이직 의지를 접은 후보자의 수도 꽤 많았다. 불안하니까 도전이나 모험을 하는 대신 확실하고 안정적인 소위 ‘가성비 좋은 선택’을 하고 싶은 거다. 이런 분위기가 심화될수록 힘든 건 초기 소셜벤처나 스타트업의 대표들이다. 회사가 해결하는 문제, 만들어내는 혁신, 지향하는 가치만으로는 고액 연봉을 내걸고 인재 영입에 박차를 가하는 유니콘 기업을 이기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채용을 포기할 수는 없다, 초기 소셜벤처와 스타트업일수록 사람이 전부니까. 구직자들에게 좋은 조건을 약속할 수 있는 돈도, 보란 듯이 크고 화려한 사옥도 우리에겐 없지만 빛나는 지략과 진정성으로 우리의 매력자본을 만들 수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모두의 칼럼] 내 휠체어 건들지 마라

세상엔 특정 집단에 속해 있기 때문에 드는 비용들이 있다. 여자는 생리대, 남자는 면도기, 학생에겐 교복 등이 여기에 속한다. 장애인에게는 장애 비용이 있다. 장애 비용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휠체어·보청기 등 보조기구 비용, 병원 외래·입원·약 처방 등의 의료 비용, 마지막으로 생활 비용이 있다. 첫 번째, 보조기구 비용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내 경우에도 휠체어, 보조기, 재활 기구 등의 구입비와 유지비가 상당히 많이 든다. 장애의 정도가 심하거나 중첩될 경우 비용은 끝도 없이 늘어난다. 특히 휠체어, 보청기 등 개인에 따라 미세한 조절이 필요한 것들은 주문 제작 형식을 거치기 때문에 부담이 더 늘어난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내 휠체어를 함부로 만지고 장난치는 친구들에게 “이 휠체어 고장 나면 너희 가족 휴대폰을 다 팔아야 한다”고 하면 모두 장난을 멈췄던 기억이 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비용을 물어줘야 한다는 게 핵심은 아니었다. 휠체어는 장애인에게 몸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중요한 물건이니 함부로 만지면 안 되는 것을 납득시키기가 어려웠을 뿐이다. 두 번째, 의료 비용은 셋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루 날 잡아 대형병원의 여러 과를 돌며 진료를 받으면 최소 3만원. 당일 실시된 처방, 검사에 따라 몇 십만 원이 드는 날도 있다. 진료가 끝나고 가만히 영수증을 볼 때마다 먼 훗날 혼자 아르바이트나 취업해 돈을 벌 때는 이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나 싶은 생각이 자주 든다. 매번 처방받는 약의 비용도 만만치 않다.

[모두의 칼럼] 삼성家의 상속세와 사회 환원 ‘새로운 기부 문화’ 신호탄 되려면

세계 최고의 상속세 12조원. 지난 29일 발표된 이건희 회장의 상속세다. ‘정직하게 국민이 납득할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이 회장의 신념대로 유족들은 담담히 세금 납부와 사회 환원 결정을 발표했다. 우리 정부 3년치(2017~2019년) 상속세 수입(10조6000억원)보다 많은 돈이 한 번에 세수로 확보되니 정부 입장에서는 대환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최선일까. 다른 나라의 부자들은 상속세 대신 기부를 선택해 엄청난 사회 발전의 밑거름이 되는데 왜 우리는 세금일까. 만약 ‘사상 최고의 기부금 12조원’이 됐다면 어땠을까. 견리망의(見利忘義)라는 말이 있다. 장자(莊子)가 조릉의 정원에서 까치 사냥을 했는데, 까치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까치는 사마귀를, 사마귀는 매미를 노리고 있었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마음을 빼앗겨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닫지 못함을 두고 한 말이다. 미국, 영국 등 기부가 활성화된 나라에서는 당장 정부의 세수가 줄더라도 세금 감면 등 장기적으로 기부를 활성화하고 장려하는 정책을 갖고 있지만 우리는 한 치 앞을 못 보는 것 같다. 기부는 항상 우리 역사에 중요한 변화 동력이 돼왔다. 한강의 기적, IMF와 코로나 위기, 모두 기부의 현장이 됐다. 지금도 기업, 자산가, 개인 기부자를 막론하고 ‘기부 DNA’를 가진 착한 사람들이 사회 빈틈을 메우고 있고 기부가 일상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마치 십일조를 떼놓듯 ‘내 이윤의 일부는 사회 환원을 하겠다’는 정서도 생겼다. 민간 활동은 점점 더 다양해지며 내용도 세밀해지고 영역도 확장되고 있다. 정부의 힘이 닿지 않는 모든 곳에 민간의 유능한 인력과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모두의 칼럼] 내겐 너무나 먼 고등학교

내년이면 고등학교 1학년이 된다. 서울은 고교 평준화 지역이기 때문에 내 친구들은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추첨을 기다리고 있다. 장애가 있는 나는 입학이 1년이나 남았는데도 벌써 고등학교 답사를 다니고 학교에 입학 문의를 해야 한다. 근 몇 개월간 주변 고등학교들을 돌아보며 한국 고등학교, 특히 사립 고등학교들이 장애 학생에게 참 불친절하다는 걸 깨달았다. 소위 ‘명문’이라는 고등학교도 경사로나 엘리베이터 같은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특수 교사가 없는 학교도 있었다. 심지어 장애 학생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은근히 부정적인 의사를 내비치는 곳도 있었다. 이런 학교들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이 나를 충격에 빠뜨렸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매우 가깝고 엘리베이터도 잘 갖춰져 있다. 덕분에 지난 9년간 친한 친구들과 같은 동네에서 자라고 학교도 함께 다닐 수 있었다. 이런 내게 ‘고등학교를 알아본다’는 행위 자체가 어색했다. 어릴 적,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여러 곳에서 거부당했다고 엄마에게 듣긴 했지만 그때는 워낙 어려서 잘 몰랐기 때문에 장애 학생에게 담을 쌓는 듯한 교육 현실을 이번에 처음 느껴본 셈이다. 엉뚱하게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특출나게 잘하는 것이 없어 다행이다’였다. 몇 달 전 누군가 ‘외고를 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 정도 재능은 없는데…’ 하면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인근 외고를 알아봤는데, 엘리베이터가 전혀 설치돼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지역 학생들까지 일부러 찾아와 입학할 정도로 꽤 평판이 좋은 학교였기 때문에 좀 놀랐다. 만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