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8일(토)

[모두의 칼럼] 비워낸 만큼 채워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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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민(서울 강명중 2)
유지민(서울 강명중 3)

아주 어렸을 때, 또래 여자 아이들처럼 ‘발레리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금세 깨닫고 말았다. 고작 대여섯살 때의 일이니 남들보다 포기와 좌절을 좀 더 일찍 맛본 셈이다. ‘아이돌’이 되는 것도 나의 오랜 꿈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포기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진학 문제를 고민할 때도 남들보다 선택지가 좁았다. 성적보다는 엘리베이터와 특수학급의 유무를 먼저 봐야 했기 때문에 그게 안 되는 곳은 일찌감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반면 장애인이라서 예기치 않게 얻은 기회와 보람도 있다. 지금 쓰는 칼럼도 그 중 하나다. 나의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의 경험이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정보가 된다는 것은 나를 지치지 않게 해 주는 원동력이 된다. 소수성을 띠기 때문에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휠체어를 탔기 때문에 더 낮은 곳까지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어릴 적 놀이터에서 뛰어놀지 못해 주야장천 읽었던 책들은 마음의 양식이 됐고, 독학으로 깨우친 컴퓨터는 일상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인생에서의 ‘득과 실’은 쉽게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 큰 손해라고 생각되는 일이 훗날 좋은 결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지금은 이득이라고 여겨지는 일이 미래의 나에게 큰 피해로 돌아오기도 한다. 내가 처음 소아암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이걸 긍정적으로 생각한 가족이나 지인들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완치 판정을 받았고, 매달 병원에서 정기 검진만 받으면 될 정도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또 이런 경험 때문에 앞으로 내게 다가올 어떠한 고난도 결국엔 다 잘 풀릴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

예전엔 걸을 수 있는 비장애인들이 부러웠다. ‘이 지구의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 내가 왜 장애인일까’ 라는 생각을 안 해봤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괴로워해봤자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시험을 볼 때 답안지를 제출하고 나면 되돌릴 수가 없듯이 이미 내 손을 떠난 일과 그에 따라 주어진 결과를 의연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번 시험에서 실수했다면 다음 시험을 더 잘 보면 된다. 이미 장애인이 된 이상 내가 장애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 장애인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특별한 경험을 즐기며 살기로 했다. 실제로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 이후 나에게 더 많은 기회와 소중한 인연들이 찾아온 것을 생각하면 신기하고 기쁘다. 너무 뻔한 이야기이지만,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여러 번의 거친 파도를 만날 것이며 결국에는 종착지에 도착할 것이다. 그곳이 인천 앞바다인지 캘리포니아 해변인지 모르고 헤엄쳐도 괜찮다고 믿는다.

유지민(서울 강명중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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