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해외봉사단 뒤엔 ‘그들’이 있다…현장을 움직이는 조력자 이야기

[인터뷰] 김혜은·박종용 지구촌나눔운동 필드매니저 3만 명. 2022년부터 2027년까지 코이카(KOICA)가 해외에 파견할 봉사단원의 목표 숫자다. 해외봉사단은 단순한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얼굴이자 ‘민간 외교관’으로 불린다. 정부는 청년들이 글로벌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해외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확대하기 위해 기존 1년 이상의 장기봉사단뿐만 아니라 6개월 이내의 중기·단기 봉사단 파견을 늘리고 있다. 국제개발협력 NGO 중 한 곳인 지구촌나눔운동은 코이카 및 월드프렌즈코리아와 협력해 청년중기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에도 캄보디아, 동티모르, 피지, 르완다 4개국에 청년 55명을 파견한다. 국내 1개월, 국외 4개월을 합쳐 총 5개월간의 봉사활동을 진행하며, 교육 개발 분야에 중점을 둔다. 지난해 60명에 이어 올해도 55명의 청년을 각국으로 파견한다. 하지만 봉사단원만큼이나 중요한 존재가 있다. 바로 봉사 현장을 조율하고 안전을 책임지는 ‘필드 매니저(이하 FM)’다. 지난 14일, 더나은미래는 지구촌나눔운동의 김혜은 르완다 매니저와 박종용 피지 매니저를 만나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혜은(32) 매니저는 지난해 르완다에 FM으로 파견되며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첫발을 내딛었다. 반면, 박종용(55) 매니저는 이번이 첫 피지 방문이지만, 봉사단 관리 경력만 15년 차에 달하는 베테랑이다. ◇ 르완다에서 평화를 가르치다 르완다 봉사단을 관리하는 김혜은 매니저는 중기봉사가 단기간의 활동이라도 충분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평가했다. 1994년 대학살로 80~100만 명이 희생된 르완다는 봉사단의 목표가 원조를 넘어 평화의 기반을 다지고 주민 간의 화합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그중 하나가 ‘평화 마을’ 프로젝트다. 대학살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살아가는 이곳에서, 봉사단은 지역 주민을 위한 직업 멘토링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선자에게도 커피가 필요하다

애플TV+의 드라마 ‘파친코’가 화제다. 일제강점기 영민함과 자존심으로 스스로를 지켜내던 젊은 여인 선자는 갑작스런 임신으로 고향을 떠나게 된다. 무력으로 조국을 지배하는 제국의 심장에 던져지는 것도 어려운데, 남편은 병약하고 일자리 없는 가족은 자기 앞가림도 못한다. 그러나 선자는 온갖 역경을 이겨, 가정을 일으키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갑자기 고향을 떠나거나 급작스런 환경변화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업루티드 피플(Uprooted people)’이라고 한다. 뿌리가 뽑혀나간 사람이라는 뜻이다. 뿌리를 잘 내려도 흔들리며 갈등하는 것이 삶의 본질인데, 예상치 않았던 사건은 우리를 다른 곳에 데려다 놓곤 한다. 사람만을 다른 곳에 데려다 놓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따라 삶의 총체를 구성한 생활양식과 지식과 기술 등도 함께 이동한다. 업루티드 피플을 따라, 세계 각지를 이동하며 그들의 삶을 달래준 대표적인 상품이 커피다. 별빛을 따라 육로의 무역 길에 나선 아라비아 상인들과 이탈리아에 도착했고, 목숨을 건 대항해의 끝에서 아프리카 노예의 손을 빌려 전 유럽에 퍼져 나갔다. 산업혁명의 시기에는 노동자들의 끼니가 되어 주고, 프랑스 혁명기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념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전쟁만큼 커피의 확산을 촉진한 단일 사건은 없다. 커피는 미국 남북 전쟁의 승패를 갈랐다 할 정도로 병사들의 사기 진작에 필수적이었다. 링컨 대통령은 1862년 남군 지역의 항구 봉쇄령을 내려 남군의 커피 보급을 끊어 사기를 저하시키려고 했다. 남북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간 군인들과 함께 커피의 아메리카 대륙 여행은 시작됐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원두 대신 인스턴트 커피가 병영에 투입되며

엄소희 대표는 르완다 청년들의 사회경제적 자립을 돕는 레스토랑 '키자미테이블'을 운영한 지 3년 만에 경영권을 현지 청년들에게 이양했다. '키자미(kijamii)'는 아프리카 남동부에서 사용하는 언어인 스와힐리어로 '사회적인(social)'이라는 뜻이다. /키자미테이블 제공
“‘취업난’ 르완다 청년들, 3년 만에 사장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엄소희 키자미테이블 대표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 있는 레스토랑 ‘키자미테이블’은 올해부터 현지 청년들의 손으로 운영된다. 엄소희(39) 키자미테이블 대표가 르완다 청년의 자립을 돕기 위해 2018년 9월 매장을 연 지 3년 만이다. 엄 대표가 고용했던 직원 8명은 지난해 12월 현지에 독립 법인을 설립하고 경영권을 완전히 넘겨받았다. 엄 대표는 르완다 매장을 ‘청년 독립매장 1호’라고 표현했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매장의 존폐를 고민해왔는데, 직원들이 본래 목표였던 독립 운영에 나서면서 이뤄진 결정”이라고 했다. 안정적인 매출이 보장된 건 아니다. 최근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확산으로 미래도 불투명하지만, 현지 직원들은 다시 매장 문을 열었다. 3개월간 르완다 법인 설립을 돕고 한국으로 돌아온 엄소희 대표를 인터뷰했다. 그는 “악조건 속에서도 굳이 독립의 길을 결정한 건 직원들의 강한 의지 덕분”이라며 “귀국 후에도 직원들과 수시로 연락하면서 안부를 나누는데 요즘 어떠냐는 질문에 ‘우리는 느리지만 매일 성장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했다. “표면적인 비즈니스 구조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키자미테이블의 업무 중 절반은 직업 훈련에 집중돼 있어요. 직무 역량을 높이기 위한 훈련은 단순히 기술뿐 아니라 진로 이해, 분야 이해, 업무 이해 등을 포함해요. 사업보고서에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지점이지만요.” 엄소희 대표의 르완다 청년 자립 프로젝트는 10년 전 해외봉사 시절 만난 또래 청년들의 고민에서 출발했다. “르완다 청년들의 관심사는 취업이었어요. 한국에서도 청년 실업이 문제지만 그래도 채용 시장이 돌아가고 창업 지원 프로그램도 있잖아요. 그런데 르완다의 경우 돌파구가 없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현지 청년들에게 직무

르완다 커피, 여성 농부의 손으로 다시 태어나다

[인터뷰] 안젤리끄 튜이센지 르완다 커피여성그룹 쿵가하라 의장 올해 초 아름다운커피는 르완다 여성 농부의 역량을 키우고 소득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뷔샤자 커피협동조합 내에 여성그룹 ‘쿵가하라(Kungahara)’를 결성했다. 쿵가하라는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라는 뜻의 키냐르완다어다. 이들은 흔히 ‘남성의 작물’로 여겨지는 커피를 여성 농부의 손으로 직접 키우고 소비자에게 선보이기 위해 커피 생산의 전 과정을 섭렵했다. 최근 쿵가하라는 첫 결과물로 ‘여성의 커피(Coffee by women)’를 내놓고 첫 해외 수출지인 한국과 연을 맺었다. 지난 9일 서울에서 개최된 월드커피리더스포럼 연사로 나서기 위해 한국을 찾은 안젤리끄 튜이센지(28) 쿵가하라 의장은 “커피 애호가들의 가치 소비로 르완다 여성 농부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커피협동조합 내에 별도의 여성그룹을 만든 이유는 뭔가? “기존 커피 생산 구조는 남성 중심이다. 여성 농부는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받을 수 없다. 여성은 커피 재배와 수확 같은 낮은 임금의 역할만 수행하고, 가공과 테스팅 등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업무는 남성들이 독식하고 있다. 르완다에서 커피 재배 노동력의 약 70%를 여성이 맡고 있지만 높은 소득원은 모두 남성의 차지다. 여성그룹 결성은 그 구조를 깨기 위한 시도다.” ―여성농부가 차별받고 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커피 한 잔이 소비자를 만나려면 씨 뿌리기부터 묘목 재배, 가지치기, 열매수확, 가공, 유통에 수출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는데 부가가치가 높은 업무는 남성들이 맡고 있고 또 당연한 듯 여긴다. 정부 차원의 역량강화 교육도 남성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여성들은 가공과 유통 업무에 대한 교육받을 기회조차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르완다 커피, ‘쏘 머치(so much) 마싯써요!”

쌉싸래한 첫맛 뒤로 부드러운 신맛이 퍼졌다. 고소함을 얹은 은근한 달콤함도 느껴졌다. “르완다 커피는 ‘달콤한 감귤(sweet mandarin)’ 맛이 나는 게 특징이에요.” 커피를 내려준 르완다 청년 조시아스(36)가 설명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베스틴(31)이 서툰 한국어로 한마디 거든다. “르완다 커피, 쏘 머치(so much) 마싯써요!” 지난 달 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8 서울카페쇼’의 아름다운커피 부스에서 만난 조시아스와 베스틴은 “르완다 커피는 이웃나라 케냐, 에티오피아 못지않게 맛과 품질이 우수한데도 해외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두 사람이 장장 19시간 비행기를 타고 르완다에서 한국까지 온 이유도 르완다 커피를 알리기 위해서다. 커피 농가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르완다 커피 시장의 문제점을 지켜봐 온 조시아스와, 여성 커피농부들의 권익을 향상하기 위해 커피 산업에 뛰어든 베스틴은 현재 아름다운커피와 함께 르완다 커피농부들이 공정무역으로 정당하게 수익을 가져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들에게 르완다 커피 이야기를 들어봤다.  ◇쌉싸래한 맛 : 커피농사 풍년에도 농부들은 빚쟁이 되는 씁쓸한 현실 “보통 커피는 1년에 한 번 수확합니다. 문제는 수확한 커피 생두를 유통업체에 팔면 유통업체는 생두를 가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해 최소 6개월 후에나 대금을 지급한다는 거죠. 농부들은 커피 열매를 팔아도 바로 돈을 받지 못하니 다음 농사를 준비할 수도 없고 생계도 어려워집니다. 하는 수없이 유통업체로부터 커피 농사에 필요한 자금을 아주 높은 금리에 대출 받는 경우가 많아요. 악순환입니다.” 조시아스가 어두운 표정으로 르완다 커피농장의 현실을 설명했다. 대학원에서 공공보건을 전공하고 13년 동안 보건 분야에서 일하던 그가 커피 산업에

“이제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어요, ‘희망’ 담은 커피”

“커피 열매를 제값 받고 팔게 되면서 조그만 땅도 사고, 아이 6명의 의료보험도 가입했죠. 커피 열매에서 다시 ‘희망’을 찾았습니다.” 르완다에서 커피 열매를 수확, 판매해온 베아트리스(52)씨는 몇 년 전만 해도 농사를 접을 생각이었다. 구매업자들은 열매 품질에 상관없이 무게로 가격을 일괄 책정해 헐값에 사 갔고, 이마저도 제때 결제해주지 않아 일을 해도 소득이 오르지 않았던 것. 변화가 생긴 건 2년 전, 굿네이버스가 지역에 ‘카페 드 기사가라’라는 사회적기업을 설립하면서다. 이곳에선 열매를 등급별로 나눠 평가해 구매 즉시 대금을 현금으로 줬다. 품질이 좋아 추후 글로벌 시장에서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되면 추가 인센티브도 지급했다. 이뿐 아니라, 농민들에게 커피 열매 재배와 수확 노하우 등을 교육해줬다. 덕분에 농가들은 고품질의 커피 생두 생산량을 늘려 연평균 소득도 84달러나 늘었다. 이제 한국에서도 베아트리스씨의 커피 열매를 맛볼 수 있다. 지난 6월부터 굿네이버스는 르완다 커피 생두를 직수입, 일주일에 두 번 로스팅 과정을 거쳐 ‘기부스토어'(www.givestore.kr)에서 판매 중이다. 일주일 내 로스팅부터 배달까지 이뤄져, 소비자들은 가장 신선한 르완다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안형구 굿네이버스 사회적경제팀장은 “판매 수익은 다시 ‘카페 드 기사가라’로 보내져 르완다 농민들의 커피 열매 매입 대금으로 이용될 예정”이라며 “기부스토어를 통해 맛있는 커피도 즐기고 농민 자립도 돕는 ‘일석이조’ 소비를 해달라”고 했다.  

진흙 캐러 매일 4시간 걷는 소녀 그 길에서 의사 되는 꿈꾼다

배우 최송현의 르완다 봉사기_ 마호로를 만나다 “친구와 함께 걷고 있어요.” 손을 잡고 걸으며 어디에 가느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신비로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우리의 첫 만남. 아이의 이름은 키냐르완다어로 ‘평화’를 뜻하는 단어 ‘마호로’라고 했다. 굿네이버스와 함께 떠나게 된 르완다. 떠나기 전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생소해했다. 오로지 미디어를 통해서 보아 온 아프리카 대륙. 그 안에 대한민국 면적 4분의 1 크기의 작은 나라. 1994년 민족 간의 내전으로 수백만의 피와 눈물이 서린 땅에서 나는 내 마음을 뛰게 하는 소녀를 만났다. 마호로 가족은 삼대째 토기를 만들고 있다. 마호로는 물레도 없이 돌 받침대를 손으로 돌리며 금세 하나를 완성했다. 토기를 만들기에 적합한 진흙을 캐기 위해 아이는 왕복 네 시간을 걸었다. 열한 살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50㎝ 이상의 긴 칼과 마대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손을 꼭 쥐었다. 마호로는 평소에 자주 부르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마호로가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며,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과 먹먹함이 동시에 차올랐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귀하게 기억하고 싶은 욕심에 아이에게 부탁해서 휴대 전화기에 노래를 녹음했다. 마호로는 목적지에 도착하자 전문가처럼 눈을 빛내며 좋은 진흙을 찾아 이곳저곳을 관찰했다. 열한 살 아이가 들어갔다 다시 빠져나오기엔 다소 깊어 보이는 흙구덩이에도 마호로는 용감하게 뛰어들어서 가지고 온 긴 칼로 토질을 살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인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땅으로부터 분리된 흙들을 마대에 담아 넣는 것뿐이었다.

[Cover story] 아프리카서 희망농사 짓는 이상훈·이송희 부부

지치지 않는 아프리카 봉사”말라리아도 우릴 못 막아요” 이상훈(43), 이송희(37) 부부는 결혼생활 15년 중 9년을 아프리카에서 보냈다. 세 아이 중 두 딸도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났다. 말라리아와 풍토병에 시달리며 16년째 긴급 구호와 지역 사회 개발에 헌신하고 있는 이 부부는, 이달 말 아이 셋을 데리고 다시 아프리카 르완다로 떠난다. ‘청년’ 이상훈과 ‘젊은 아가씨’ 이송희의 첫 만남이 있었던 바로 그 장소. 200만명이 넘는 르완다 난민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 그곳에서 ‘희망 농사’를 지을 예정이다. 운명은, 소설보다 더 극적이다. 이상훈씨가 르완다에 첫발을 내디딘 건 1994년이다. 종족 분쟁으로 대학살을 피해 수백만 명의 르완다 국민들이 난민이 된 상태였다. 극심한 식량부족과 콜레라 등 전염병으로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다. 신문에 난 ‘기아대책 봉사단’ 광고를 보고 지원한 상훈씨는, 겨우 3개월간의 교육을 마치고 르완다에 파견됐다. 의사 2명, 간호사 5명으로 이뤄진 팀과 함께 난민들을 대상으로 한 의료 봉사를 시작했다. 밀어닥치는 난민들로 의료팀은 하루 종일 치료와 수술로 전쟁을 치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천막으로 돌아오면, 또 다른 ‘먹는’ 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모두 힘들고 피곤하니 밥 당번 때문에 싸우기도 많이 했습니다. 누가 밥을 할거냐, 김치는 왜 없냐며 매일 큰소리가 났지요.” 상훈씨는 젊고 철없던 그 시절이 떠오르는지 싱긋 웃었다. “이대로는 의료 봉사를 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근 국가들의 봉사단원들에게 SOS를 보냈지요. 다행히 케냐 나이로비에서 도와주러 오겠다는 연락이 왔어요.” 반가운 마음에 상훈씨는 공항까지 달려나갔다. 당연히 40~5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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