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13만명(0~24세 장애인 수)의 꿈나무, 갈 곳이 없다

장애청소년 교육·취업 현주소 0~2세 무상교육 ‘100명당 1명꼴’… 특수학급 설치 학교, 전국의 50% 난관 이기며 대학까지 졸업해도 장애인 고용 기업 찾기 힘들어 지난 7일, 지체장애가 있는 외아들을 둔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머니에서는 ‘내가 없어져서 아들이 정부 혜택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일을 하는 보호자가 없어질 경우, 오히려 정부 보조금이 늘어날 수 있는 현실을 개탄한 것이다. 빈곤이 장애를 극복할 수 없게 만들고 다시 장애가 빈곤을 키우는 악순환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반영된 사건 앞에, 한국의 장애청소년들이 걷고 있는 길을 조망해봤다. “제가 죽는 그 순간에도 저는 우리 석이한테 죽음이란 게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할 거예요.” 석이(가명·14)의 성장 과정에 대해 얘기하는 최지영(가명·48)씨의 목소리는 무덤덤했다. “석이가 27개월 되었을 때 이상하다는 걸 느꼈어요. 어디에 물어볼 곳도 없어서 인터넷으로 찾은 자폐 체크리스트를 보니 40개 중 3개 빼고는 다 포함되어 있더군요.” 이후 지영씨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급하게라도 석이를 가르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선생님이나 시설을 수소문했지만 1년이 걸리도록 찾을 수가 없었다. 정확하게 정보를 주는 사람도 없고 도움을 주는 기관도 없었다. 그렇다고 보육시설에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도 없었다. 국내에 있는 특수교육에 관한 법령은 모두 10개. 이 법령들은 시각장애, 청각장애, 자폐성 장애, 정서행동장애 등 10여개 장애를 가진 사람 중 특수교육이 필요한 사람을 판단해 특수교육 대상자를 선정한다. 2010년 4월 기준으로 0세부터 2세까지의 영아 중 무상교육을 지원받은 아이의 수는 모두 290명. 그러나

[세계 Top 10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서] ⑥ 인도 ‘베어풋 컬리지’ 벙커 로이 대표

“희망 잃은 주민에 용기 북돋우니 ‘맨발의 기적’ 일어나” 델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차를 타고 장장 10시간을 움직였다. 바로 ‘베어풋 컬리지(Barefoot College)’의 창업자이자 대표인 산짓 벙커 로이(Sanjit Bunker Roy·65)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베어풋 컬리지는 인도의 가난한 시골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고 그 기술과 재능을 개발하도록 돕는 비영리 단체다. 국제구호단체가 전문가들을 파견해 ‘제공’하는 형태였던 기존의 지역사회개발 모델과 달리,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결정해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자력으로 개발해 나가도록 돕는다. 이러한 혁신성 때문에, 베이풋 컬리지는 스콜(Skoll) 재단과 슈밥(Schwab) 재단 등 세계적인 기관들로부터 우수한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올해 초에는 타임(Time)지가 선정한 ‘100명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에도 뽑혔다. 로이 씨가 베어풋 컬리지를 설립한 것은 1971년이다. 지역사회개발에 관심이 있던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가 찾아간 작은 마을, 틸로니아로 왔다. “약 5년간 우물을 파는 기술자로 일했어요. 정말 서툴고 숙련되지 않은(unskilled) 채였죠. 그렇게 5년간 함께 일하고 함께 살면서, 인도의 농촌 마을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등지는 청년들, 남겨진 노인과 여성, 아이들은 결국 소득거리가 없어 가난하고 무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머리뿐 아니라, 가슴으로, 삶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베어풋 컬리지를 시작했죠.” 지역사회개발이란 존중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그는 “마을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삶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는 바로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주민들 스스로에게 있다”며 베어풋 컬리지의 정신을 반복해 강조했다. 그래서 단체의 이름도 맨발의 농촌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도우며

[Cover story] 빈곤퇴치 戰場 방글라데시를 가다

공부는 사치… 가난 탈출의 기회조차 없다 하루 15시간 쓰레기 주우면 간신히 하루 세끼 밥값 벌어 병원비가 두달치 생활비… 열병 걸려도 병원 근처도 못가 지난 18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뒷골목에서 만난 아이 라존(10)은 자기 몸집만한 쓰레기 자루를 메고 있었다. 시장과 주택가 사이에 놓인 쓰레기장은 40도에 가까운 방글라데시의 날씨와 맞물려 숨쉬기 어려울 정도의 악취를 뿜어냈다. 아침 6시부터 라존은 썩어가는 음식과 폐기물 사이에서 종이와 플라스틱을 찾아내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시간은 밤 9시 반. 해가 지고 도시에 어둠이 몰려와 더 이상 물체를 구별할 수 없을 때까지 이곳을 헤맨다. 이날 모은 종이와 플라스틱, 다 쓴 형광등 6개로 라존은 고물상에서 50타카(850원)를 받았다. 라존은 “오늘처럼 형광등을 주운 날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라며 “세끼 밥값을 벌었다”고 웃었다. 시장의 소음과 경적 소리 속에서 라존은 매일의 삶을 굶주림과 노동 속에서 보내고 있었다. 콜포나(10)는 모자를 만드는 공장에 다닌다. 다카에서 380㎞ 떨어진 묵타가차(muktagacha)에 살던 콜포나의 가족은 인력거 운전사였던 아버지가 병으로 일할 수 없게 되자, 어린 여자아이들을 고용하는 공장을 찾아 고향을 떠났다. 아침부터 쪼그리고 앉아 재봉질을 해서 받는 돈은 한달에 3000타카(5만1000원). 얼마 전까지 평균 1800타카(3만원)였던 공장 임금은 최근 노동자들의 시위로 2배 정도 올랐다. 가장 역할을 하는 콜포나는 “집에 도움이 돼서 참 다행”이라고 했다. 어둡고 낡은 공장에서 천을 염색하며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콜포나는 파업을 얘기하며 벌써 어른이 됐다. 방글라데시의 5~14세 아동 노동 비율은 13%로 아시아에서

암웨이 ‘사회복지 전문 해외연수과정’

한국 복지 ‘미드필더’ 교육 현장-정책 다리 놓는다 벨기에의 사회행동센터 10년 자활 계획 등 전문 서비스 제공 입소자 인권 최우선… 직원의 밝은 표정 등이 인상적 정세미(32) 팀장이 지역종합사회복지관에서 근무한 지는 올해로 9년째다. 세미씨와 그 나이 또래의 사회복지사들은 한국 복지 체계에서 ‘미드필더’로 통한다. “현장 사업에 대해 실질적인 결정을 가장 많이 하면서도, 현장에 함몰되지 않는 너른 시야를 갖춰야 할 연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세미씨는 자신이 업무를 관성에 따라 처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 생겼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열심히 일을 하면 할수록 유리벽 같은 것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세미씨처럼 현장을 구석구석 체험한 전문가들의 눈에는, 정부의 복지 정책이 지닌 한계들도 보이고 미래에 발생할 문제들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소통하거나 정책에 반영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세미씨가 일하는 지역종합사회복지관은 지역의 복지 문제와 관련한 거의 모든 현안을 떠맡고 있다. 가족복지사업의 명목으로 상담센터를 운영하거나 가족 지원사업을 해야 하고, 지역사회 보호사업의 명목으로 재가 복지 센터를 운영하거나 이동 목욕사업을 시행해야 한다. 지역의 자원들을 묶어주는 네트워크 사업도 해야 하고, 지역에 있는 어르신과 아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봉사단체들도 조직해야 한다. 미취업자들을 위한 자활 지원사업, 지역 축제, 복지 문제와 관련한 연구 개발 사업에 관련된 행정적인 업무까지 모두 처리한다. 이렇게 민원인을 만나는 것부터 행정 처리까지 사회복지사에게 ‘만능(萬能)’을 원하는 우리나라의 복지 행정 구조에서는, 사람들이 금방 지치고 전문성도 잃어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빈번히 일어난다. 복지 정책과

도움 받은이가 또 도와… 감동 스토리가 ‘선순환’ 만들어

삼성카드의 사회공헌 활동 기자는 간단한 실험을 해봤다. 오며 가며 만나는 기자들에게 “1887년 3월 3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나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반응을 기다렸다. 평소에 호기심 많다고 소문난 사람들이지만 대부분 ‘리플’을 달지 않았다. 무관심하게 지나가려는 기자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이 처음으로 만난 날이 언제인지 아세요?” 무관심하게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길을 돌렸다. 우리는 ‘1887년 3월 3일’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이 만난 날’엔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1887년 3월 3일은 헬렌 켈러의 영혼의 생일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스토리(story)가 숫자에 영혼을 입힌다. 삼성카드는 사회공헌 사업의 일환으로 모 방송사의 퀴즈 프로그램을 후원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도전 정신을 고취하고 국제적 소양을 갖춘 차세대 리더를 육성하자는 취지에서였다. 취지에 맞게 그 지원 내용도 퀴즈프로그램에서 우승한 학생에게 대학 등록금과 해외 배낭여행 연수비를 제공하는 것으로 정립했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77명이 대학등록금과 배낭여행 연수비를 받았고, 305명이 장학금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숫자에 불과했다. 퀴즈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이 ‘청소년들의 도전 정신을 고취하고 차세대 리더를 육성하자’는 본 취지에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선뜻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삼성카드의 사회공헌사업에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시작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출발은 퀴즈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학생들이 모임을 갖게 되면서부터다.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인연인데 얼굴이나 보자며 시작했던 모임이 어느 순간, 자원봉사를 벌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삼성카드에서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계절 캠프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던 것이, 지금은 매주 금요일 5명의

‘공감의 뿌리’ 프로그램 개발자 메리 고든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의 마음 헤아리는 ‘공감’ 알려주고 싶어” 캐나다에 사는 9살, 데이비드는 자폐아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친구들의 생일 파티에 초대된 적이 없다. 반 아이들에게 데이비드는 좀 이상한 아이, 함께 놀기에는 꺼려지는 아이였다. 어느 날, 데이비드 교실에 아기와 아기 엄마, ‘공감의 뿌리’ 전문 강사가 찾아왔다. ‘공감의 뿌리’는 유치원·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1년간 아기의 성장과 부모와의 소통을 경험하며 ‘공감’역량을 키우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친구 사이엔 따돌리면 안 된다는 교훈적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저 아기의 성격, 감정, 아기와 엄마의 관계에 대해 함께 느끼고 나누었을 뿐이다. 그러면서 반 아이들은 조금씩 느끼게 됐다. 따돌림을 당하면 얼마나 괴롭고 슬플지를. 그 후 한 해 동안 데이비드는 생일 파티에 세 번 초대됐다. 이 ‘공감의 뿌리’라는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은 메리 고든이다. 1996년 개발, 2000년 교육 재단을 만들었다. 그녀는 2002년 세계적인 사회적 기업가에게 주어지는 ‘아쇼카 펠로(Ashoka Fellow)’로 선정됐고, 2008년에는 아쇼카의 ‘체인지메이커 상(Changemakers Award)’도 받았다. ‘공감의 전문가’답게 직접 만나 본 메리 고든은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이었다. 목소리에도 따뜻함이 넘쳤다. “유치원 교사로 처음 교실에 들어섰던 때가 생각납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겠다는 열정이 넘쳤던 때죠. 그런데 처음 교실에 들어선 날 모든 열정이 무너졌어요. 불과 대여섯 살인 아이들 사이에서도 어떤 아이는 인기 있는 스타가 되고, 어떤 아이는 패자로 낙인 찍혀 따돌림을 당해요.” 그녀는 그때부터 ‘공감의 뿌리’ 프로그램을 구상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감정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다른

“나눔을 배우고 체험하면 자연스레 삶의 일부가 돼요”

나눔 교육의 현장을 가다 “나눔이란 손을 먼저 내미는 거예요. 그런데요, 손을 쭉 뻗어야 해요.” 나눔이 뭐냐고 묻자, 16살 장보문(일신여중 3) 학생이 답했다. 뻔한 대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순간 말문이 막혔다. 보문이가 ‘나눔 교육’을 처음 접한 건 6년 전, 송파초등학교 3학년 때다. 그 또래의 여느 교실처럼 보문이네도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내성적인 성격에 책 읽는 것을 좋아할 뿐인데, 반 친구들은 혼자 잘난 척하는 거라며 오해했다. 아무도 그 친구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먼저 놀자고 하지 않았다. 보문이는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이었지만, 자신까지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 무서워 말을 걸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생뚱맞은 제안을 했다. 여학생·남학생이 각각 두 팀으로 나뉘어 원 모양으로 오밀조밀하게 서 있는 게임이었다. 원을 더 조그맣게 만들수록, 서로 더 가까이 붙어 서 있을수록 이기는 게임이었다. 남학생 대 여학생 경쟁구도에 아이들 모두 열심을 다해 서로를 끌어안았다. 어느새 여학생 팀은 평소엔 말도 잘 걸지 않던 그 친구와 함께 살도 부대끼고 와락 끌어안기도 하며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날 이후 나눔 교육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잘 알지 못하는 상대에 대해 이해하는 것, 제3세계 아이들의 상황을 배우는 것, 조그만 것이라도 함께 공유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교육이었다. 보문이는 “나눔 교육을 받으면서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것이 무섭거나 창피한 일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후 3년이 지난 6학년 때, 보문이는

미등록 이주 아동들도 꿈 키울 수 있는 나라로

다문화 아이들의교육 기회 2020년 다문화 가족 20%로 확대될 것 불법체류 아동은 학교 진학조차 버거워 혜진이는 몽골 국적을 가진 소녀다. 그러나 어느 한국 아이 못지않게 한국어를 잘한다. 7살 때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들어온 지 10년째. 공부도 곧잘 해서 지금 실업계 고등학교 수능 대비반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다. 신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다. “‘끝없는 이야기’라는 소설이 좋아요. 옛날에 드라마에서 ‘모모’라는 작품이 나오는 것을 보고 미하엘 엔데의 작품을 읽었는데 재미있었어요. 이만큼 두꺼워요. 정말 끝이 없더라고요.” 혜진이는 그동안 읽었던 책의 목록을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어른들도 잘 모르는 책 이름도 여러 권 등장했다. 한국 생활에서의 어려움은 전혀 느껴지질 않았다. “한국말을 금방 배웠나보구나.” 넌지시 던진 말에 혜진이가 정색을 했다. “아니에요. 수업 시간에 일어나서 국어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한국 온 지 3년이나 지나서예요. 1~2학년 때는 수업 시간에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혜진이의 한국어 실력은 4학년 때 만난 담임 선생님 덕에 많이 늘었다. “일기 쓰기 숙제를 내주셨는데, 삐뚤빼뚤 쓰는 글에 밑줄을 긋고 댓글을 달아주셨거든요. 그게 너무 좋아서 열심히 썼어요.” 중국·베트남·몽골 등 국적이 다른 3개국 아이들이 모였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아이들의 웃음에는 국경이 없었다. 사진 찍는 내내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뛰어 다녔다. 놀 때는 함께였지만‘미등록 이주 아동’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아이들은 사진 속에 등장하지 못했다. 혹여 신분 노출로 불이익을 당할까 염려해서다. /박자연 객원기자 혜진이의 국어 공부

더나은미래 특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