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나눔을 배우고 체험하면 자연스레 삶의 일부가 돼요”

나눔 교육의 현장을 가다

“나눔이란 손을 먼저 내미는 거예요. 그런데요, 손을 쭉 뻗어야 해요.” 나눔이 뭐냐고 묻자, 16살 장보문(일신여중 3) 학생이 답했다. 뻔한 대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순간 말문이 막혔다.

보문이가 ‘나눔 교육’을 처음 접한 건 6년 전, 송파초등학교 3학년 때다. 그 또래의 여느 교실처럼 보문이네도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내성적인 성격에 책 읽는 것을 좋아할 뿐인데, 반 친구들은 혼자 잘난 척하는 거라며 오해했다. 아무도 그 친구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먼저 놀자고 하지 않았다. 보문이는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이었지만, 자신까지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 무서워 말을 걸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생뚱맞은 제안을 했다. 여학생·남학생이 각각 두 팀으로 나뉘어 원 모양으로 오밀조밀하게 서 있는 게임이었다. 원을 더 조그맣게 만들수록, 서로 더 가까이 붙어 서 있을수록 이기는 게임이었다. 남학생 대 여학생 경쟁구도에 아이들 모두 열심을 다해 서로를 끌어안았다. 어느새 여학생 팀은 평소엔 말도 잘 걸지 않던 그 친구와 함께 살도 부대끼고 와락 끌어안기도 하며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날 이후 나눔 교육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잘 알지 못하는 상대에 대해 이해하는 것, 제3세계 아이들의 상황을 배우는 것, 조그만 것이라도 함께 공유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교육이었다. 보문이는 “나눔 교육을 받으면서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것이 무섭거나 창피한 일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름다운재단이 운영하는 나눔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나눔의 주제를 표현한 티셔츠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아이들은 '나누면 행복하다''우린 모두 친구'등의 문구를 써넣었다.
아름다운재단이 운영하는 나눔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나눔의 주제를 표현한 티셔츠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아이들은 ‘나누면 행복하다”우린 모두 친구’등의 문구를 써넣었다.

그 후 3년이 지난 6학년 때, 보문이는 따돌림을 당했던 바로 그 친구와 다시 한 반이 됐다. 말을 건네고 함께 밥을 먹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돕는 것에 용기가 생겼다. 친구들이 “너 쟤랑 친해?” “너 왜 쟤랑 같이 밥 먹어?”라고 물었지만, 이번엔 “응, 친해. 우린 친구야”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보문이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을 배우게 되어서인지, 먼저 말 거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보문이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정기적으로 봉사 활동도 시작했다. 작년부터는 동네 가까운 곳에 계시는 독거 노인 두 분을 꾸준히 찾는다. 초등학교 시절 함께 나눔 교육을 받았던 친구들 7명과 함께 도시락도 챙겨드리고, 방청소도 하고, 말동무도 되어 드린다.

아이들의 마음에 감동한 어머니들도 동참하고 있다. 어머니 김명희(48)씨는 막내여서 항상 어리게만 봤던 딸에게 놀랐다고 고백한다. “혼자 지내시는 어르신들을 찾아 뵈면, 간혹 냄새도 많이 나고 힘들 때도 있어요. 그런데 오히려 딸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걸레질도 하고, 할아버지 안마도 해 드리고 재미난 얘기도 해드리는 거 보면 참 대견해요.”

미상_그래픽_나눔캠프_아름다운재단_2010보문이의 경우처럼, 요즘 많은 학교에서 나눔 교육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재단·굿네이버스 등 다양한 비영리단체들이 유치원·학교 등에서 나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재 개발과 보급, 교사 연수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나눔을 실천해볼 수 있는 교재도 보급한다. 서초구자원봉사센터처럼 지역구 내 어린이집들을 대상으로 나눔 교육을 보급하고 강사를 파견하는 곳도 있다. 아름다운재단 나눔교육센터의 임주현(31) 간사는 “나눔 교육을 체험한 어린이들은 도와주기, 공감하기, 타인에 대한 이해 등 도덕성과 친사회성이 향상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매년 담당하는 반 어린이들에게 나눔을 교육하는 동광초등학교 전성실(40) 선생님은 “사실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몰라서 나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 2학년 아이들의 점심시간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장애우를 더 잘 이해하고 헤아리기 위해, 점심시간에 팔이 없다고 가정한 채 밥을 먹으라는 과제를 아이들한테 줬습니다. 팔이 없으니, 짝꿍이 먹여 주는 수밖에 없어요. 처음엔 어색하고 잘 모르니까 한 손으로 대충 떠먹여 줍니다. 그런데 번갈아 가며 밥을 먹고, 또 떠먹이다 보면 저절로 상대방이 가장 잘 먹을 수 있는 양으로 떠줍니다. 대충 숟가락으로 뜬 밥을 먹다 보면 자신도 힘들거든요. 한손으로 팍팍 떠줄 때와 두 손으로 정성스레 떠 주는 것은 엄연히 다르죠.” 전 선생님은 “나눔도 ‘해야만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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