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13만명(0~24세 장애인 수)의 꿈나무, 갈 곳이 없다

장애청소년 교육·취업 현주소
0~2세 무상교육 ‘100명당 1명꼴’… 특수학급 설치 학교, 전국의 50%
난관 이기며 대학까지 졸업해도 장애인 고용 기업 찾기 힘들어

지난 7일, 지체장애가 있는 외아들을 둔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머니에서는 ‘내가 없어져서 아들이 정부 혜택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일을 하는 보호자가 없어질 경우, 오히려 정부 보조금이 늘어날 수 있는 현실을 개탄한 것이다. 빈곤이 장애를 극복할 수 없게 만들고 다시 장애가 빈곤을 키우는 악순환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반영된 사건 앞에, 한국의 장애청소년들이 걷고 있는 길을 조망해봤다.

“제가 죽는 그 순간에도 저는 우리 석이한테 죽음이란 게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할 거예요.” 석이(가명·14)의 성장 과정에 대해 얘기하는 최지영(가명·48)씨의 목소리는 무덤덤했다. “석이가 27개월 되었을 때 이상하다는 걸 느꼈어요. 어디에 물어볼 곳도 없어서 인터넷으로 찾은 자폐 체크리스트를 보니 40개 중 3개 빼고는 다 포함되어 있더군요.”

이후 지영씨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급하게라도 석이를 가르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선생님이나 시설을 수소문했지만 1년이 걸리도록 찾을 수가 없었다. 정확하게 정보를 주는 사람도 없고 도움을 주는 기관도 없었다. 그렇다고 보육시설에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도 없었다.

간단한 공부를 하는데에도 장애가 있는 아이에겐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간단한 공부를 하는데에도 장애가 있는 아이에겐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에 있는 특수교육에 관한 법령은 모두 10개. 이 법령들은 시각장애, 청각장애, 자폐성 장애, 정서행동장애 등 10여개 장애를 가진 사람 중 특수교육이 필요한 사람을 판단해 특수교육 대상자를 선정한다. 2010년 4월 기준으로 0세부터 2세까지의 영아 중 무상교육을 지원받은 아이의 수는 모두 290명. 그러나 2009년 12월 기준으로 전국에 있는 0세부터 2세까지 등록장애아동의 수는 2405명이다. 3세부터 5세까지 무상교육을 지원받은 아이는 2155명이지만, 같은 나이의 등록장애아동은 7111명이다.

“장애를 초기에 발견해서 하루빨리 안정적인 교육을 시키고 싶은” 부모의 마음에서 보면 애가 탈 일이다. 그나마 영아에 대한 교육은 2009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아이의 이상징후를 발견하는 것도, 그리고 아이에게 초기 대응을 해주는 것도 부모의 몫이었다.

석이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지영씨는 거제도의 직장을 버리고 아이를 믿고 맡길 만한 학교를 찾아 서울에 올라왔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의 교육에 대해 컨설팅을 해주거나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일단 충청도 위쪽으로 86개 학교의 리스트를 뽑아 하나씩 걸러냈다. 한 달에 두세 개꼴로 학교를 직접 찾아가 학생들이 석이 같은 아이를 따돌림하지는 않는지 확인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라면을 먹으며 아이들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안양의 한 초등학교에 석이를 맡겼다.

석이 같은 중증장애아동에겐 특수학급이 필요하다. 2009년 기준으로 전국의 초·중·고등학교는 1만1160개, 이 중 특수학급을 설치한 학교는 5586개로 절반을 간신히 넘겼을 뿐이었다. 같은 해에 8세부터 18세까지 중증장애(1급과 2급) 장애인의 수는 4만6719명. 이들은 법률상으로 의무교육이 명시되어 있지만, 사실상 전국에 있는 학교 중 절반은 선택하지 못하는 여건에 놓인 것이다. 실제로 2010년 통계를 보면 특수학급 미설치 초·중·고등학교의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비율은 평균 51%대에 머무르고 있다.

그렇다면 특수학급이 없더라도, 한 반에서 장애·비장애 아동이 함께 배우는 통합교육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통합교육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장애학생들과 한 반을 이룰 비장애 학생들이 장애에 대해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 즉 장애 이해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이 반을 지도할 교사도 잘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2010년 4월 현재 통합학급을 담당하고 있는 교원 4만4937명 중 통합교육과 관련한 연수를 이수하지 않은 교원이 71.7%에 달한다(특수교육연차보고서).

부모들은 공교육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사설 치료기관에서 해결하고 있다. 지영씨는 “언어치료를 일주일에 두 번은 받아야 하는데 한 번 받으면 30분에 3만5000원에서 7만원을 달라고 한다”며 감당할 수 없는 교육비라고 했다. “그것도 언어치료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미술치료나 놀이치료, 체육치료를 모두 같이 해야 하는데” 그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석이가 일곱 살 때 조금 싼 복지관에 수영치료를 신청했는데 열네 살로 올라가는 작년 겨울에 처음 수업을 들을 수 있었어요. 그만큼 대기자가 많다는 얘기죠.”

이렇게 부모와 아이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교육을 마친 후 자립할 수 있는 길은 얼마나 확보되어 있을까?

미상_그래픽_장애_장애아동무상교육현황_2010대구에 사는 이영신(가명·27)씨는 최근 꽃집에 취직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꽃집을 나와야 했다. 영신씨는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비장애인에 비해 빠르게 일을 하지 못하고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할 뿐, 다른 장애인에 비해 확실한 취업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신씨의 느린 속도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영신씨의 할머니는 영신씨가 취직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당부했다. 영신씨가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괜히 일을 하다 기초생활수급자 신분을 놓쳐 버리고 해고가 되면” 영신씨나 할머니의 생계가 당장 위태로워진다.

영신씨에게 일자리를 주선해 준 사회복지사 김정옥(45)씨는 “장애인들도 본인이 존중을 받는지 못 받는지, 부당한 대우를 받는지 못 받는지를 다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장애인들도 질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데도, 장애인이 수치심을 느끼며 일을 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영신씨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업을 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 2010년 고등학교 특수학급 졸업생 2195명 가운데 750명이 진학을 했으니 적은 수가 아니다. 특히 일반학급에서 통합교육을 받은 2010년 졸업생 1456명 가운데 456명이 진학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들대로 또 고민이다.

박영희(가명·26)씨는 지방에 있는 국립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평균평점은 3.98. 영희씨는 지체장애2급 판정을 받았다. 중3이 되던 해 목 신경줄 아래에 있는 좁쌀만 한 크기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곤 오른쪽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5월에 병원에 입원해서 8월경에 퇴원을 했다. 집에 돈도 없었고 공부도 해야 한다는 마음에 고향집에 내려와 방 안을 혼자 걸어 다니는 것으로 재활치료를 대신했다. “제가 진짜 독하거든요.” 유쾌한 듯 웃었지만, 표정은 금세 굳었다.

“취업을 하려고 하는데, 서류에 제 장애등급 표시를 해야 하는 거예요.” 가산점을 주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그게 과연 사실일지 의심스러웠다. “전 당시에 비록 뛰지는 못하지만 절뚝거리면서 걸을 수는 있었는데, 이걸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이력서에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자기소개서에다 잔뜩 썼어요. 전 장애 2급이 있지만 일을 해내기엔 아무런 무리가 없다고요. 제가 세상물정을 몰랐던 셈이죠.”

영희씨가 몰랐던 세상 물정은 무엇일까. 얼마 전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간 장애인고용부담금 5817억원 중 90.4%인 5260억원을 정부공공기관과 대기업이 내왔다고 한다. 장애인을 고용하느니 장애인고용부담금을 내겠다는 선택이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09년도 장애인 의무고용 현황’에 따르면 전체 의무고용기관과 민간기업 2만2209곳의 전 직원 중 장애인의 비율은 1.87%다. 법에서 정한 의무고용비율 2%조차 지키지 못하는 현실인 것이다. 2008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실업률은 8.3%로, 전체 실업률(3.3%)에 비해 2.5배가량 높다. 또한 취업 장애인의 직장 유형은 자영업이 47.0%를 차지하고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임순철(47) 정책실장은 “학령기가 끝난 장애청소년들이 졸업을 하고 딱히 진로가 없는 것이 큰 문제”라며 “이 아이들이 복지관 프로그램을 전전하면서 젊은 시절을 보내게 된다면 이후 근로 능력과 의욕이 생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취재 중에 만난 장애청소년들은 영유아 시절부터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 어른이 된다고 해서 이들의 내일이 밝아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어 보였다. 2009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전국의 등록장애인 수는 242만9547명. 이 중 0세부터 24세까지의 장애인이 13만6054명이다. 전문가들은 장애인의 숫자가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측한다. 대부분의 장애는 후천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장애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물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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