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는 거대한 유기체이자 서로 긴밀히 연결된 시스템이다. 그러나 우리 법체계는 오직 인간의 권리만을 중심에 두고 설계되어 왔다.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가 현실화된 오늘날, 자연에도 ‘존재할 권리(Rights of Nature)’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자연권이 법제화될 때 비로소, 인간 활동이 지구 생태계를 어떻게 훼손하는지, 그것이 곧 우리 생존의 위기로 돌아온다는 점을 제도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 ◇ 법정에 선 도롱뇽, 자연물의 권리를 묻다 1994년 천성산 관통 고속철도 사업은 대표적인 자연권 갈등의 시발점이다. 초기 환경영향평가는 통과됐지만, 공사 지연으로 유효기간(7년)이 경과하면서 재평가가 요구됐다. 그 사이 천성산 일대에는 30여 종의 천연기념물이 추가로 발견됐고, 주변은 생태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그럼에도 사업자는 이를 무시한 채 공사 강행을 선언했다. 이에 환경단체는 법정에 도롱뇽을 ‘원고’로 세웠다. “가장 큰 피해를 볼 도롱뇽이 스스로 권리를 주장할 수 없으니, 시민이 대리인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민법상 자연물은 권리 주체로 인정되지 않아, 3심까지 모두 기각됐다. 심지어 환경영향평가 절차의 명백한 하자마저 법적 쟁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 사건은 ‘사전 예방’이라는 제도의 본래 취지가 무력화된 채, 사후 구제만 남은 법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천성산 사건 이후 20여 년이 지나, 자연권 논의는 제주도로 향했다. 2023년 제주도는 남방돌고래를 ‘생태법인’으로 지정하는 조례를 논의하며 생태계 구성원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첫걸음을 뗐다. 돌고래가 서식하는 해역 전반을 보호 대상으로 삼기 위한 이 시도는, 자연권을 지방 행정 차원에서 실험한 의미 있는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