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속가능한 기부하려면 분명한 목적·계획 세워야 합니다”

중부재단 이사장부부가 말하는 고액기부 비법 2003년 개인재산 30억원 출연해 민간독립재단인’중부재단’ 설립한 부부 중부도시가스 영업이익 5% 기부금으로 쓰여 “우리의 진짜 비결은 끈기 ‘중부재단처럼 해라’라는말 듣고 싶어요” 최근 고액기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기자는 지난 5일 중부재단의 이혜원 이사장, 중부도시가스의 김항덕 회장 부부를 자택에서 만났다. 2003년 김항덕 회장과 이혜원 이사장은 개인재산 30억원을 출연해 중부재단을 설립했다. ‘개인이 재단을 설립한다’는 개념 자체가 지금처럼 알려져 있지 않았던 시절이다.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가치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입니다. 그 속성상 경쟁에서 도태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요. 나라에서 이 사람들을 다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사회 전체가 같이 고민하고 부담해야 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우리 부부는 이런 일에 대해 오래전부터 고민을 나눴습니다.” 김항덕 회장의 말에 이혜원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단을 만들기 전부터 YWCA나 대한적십자사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보람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니 기부나 봉사를 넘어선 재단 설립이 생각났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사회복지대학원에 다녔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과 공부도 하고 교수님들과 고민도 나눴지요.” 이혜원 이사장이 대학원 문을 두드렸을 때 그녀의 나이는 쉰두 살이었다. 늦깎이 대학원생이 꼼꼼하게 준비해 설립한 중부재단은 민간독립재단임을 강조한다. “기업재단은 기업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제시하면 재단은 그 방향성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의 경영 환경이 안 좋아지면 재단의 사업비가 줄어들기도 하고 때로는 조세회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민간독립재단은 재단의 고유 사명에 따라 일을 하고,

‘섬김과 헌신’ 정신으로 남이 주목하지 않는 복지의 길 개척

하트하트 재단과 함께하는 문화복지의 꿈 하트하트 재단 성장원동력 신인숙 이사장에 묻다 인공와우 수술비 지원… 잃어버린 소리 되찾아줘 안과 전문 인력 양성 등 저개발국 ‘역량강화’ 초점 눈앞의 요구보다 세상과 소통하는 ‘문화복지’에 힘써 “척박하고 험난했습니다. 아무도 걸어가 본 적 없는 길이었죠. 그래도 용기를 잃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하트하트 재단이 걸어온 길이 비슷한 도전을 하는 모든 사랑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그래서 더 도움이 절실한 곳.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 사랑과 나눔을 베푼 지 벌써 23년. 하트하트 재단 신인숙 이사장의 시선은 항상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곳을 향해 있다. 저마다 살아가는 형편이 다르지만, 너와 내가 똑같이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 꼭 이뤄야 할 꿈이 있기에, 그녀의 도전은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다 작은 시도가 세상을 변화시켰다. 지난 2003년 하트하트 재단이 시도한 인공 와우(손상된 내이의 기능을 대신하는 전자 의료기기) 수술비 지원 사업 이야기다. 청각 장애의 경우 수술을 받으면 어느 정도 기능 회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비싼 수술비 때문에 매년 출산 되는 5000명의 청각 장애 아동 중 90%가 평생 소리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었다. 막대한 비용 때문에 당시 어떤 NGO도 이들을 지원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한 명의 청각 장애 아동이 수술을 받으려면 2500만원의 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인숙 이사장은 “그래서 더욱 하트하트 재단이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저출산 고령화사회 방어체계 만들어야”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이시형 이사장 지난 7일 통계청은 ‘장래 인구 추계’를 발표했다. 자료를 통해 ‘저출산 고령화’가 지속될 경우 발생할 인구적 변화를 상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지금으로부터 50년 후인 2060년이면 우리나라 인구 중 절반이 노인과 어린이다. 남자의 기대수명은 86.6세, 여자의 기대수명은 90.3세다. 장래 인구 추계가 발표된 날 기자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이시형 이사장<사진>을 만났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듣기 위해서였다. “곧 100세까지 살 수 있는 시대가 올 겁니다.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내 발로 걸어 다닐 정도로 건강해야 되고, 치매에 안 걸려야 되고, 현역으로 일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시형 이사장은 고령화 정책에서 제일 중요한 것으로 방어체계를 튼튼하게 만드는 건강증진사업을 꼽았다. 이시형 이사장은 요즘 ‘뇌와 스트레스’에 대한 책과 ‘자연으로 돌아가기’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두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방어 체력’이다. 뇌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겨줘서 건강한 생명활동에 지장을 주는 한국인의 생활습관을 고쳐야 하고, 자연과의 재결합을 통해 치유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과학이 발전했어요. 하지만 그러면서 과학에 대한 중독도 발생해서 편의와 효율을 최우선시하는 생활습관이 형성되었죠. 사람이 지니고 있는 본래적인 치유력이 약화되었습니다. 고령사회가 되면 더 심해질 겁니다. 지금대로라면 나이 들어 병에 걸려 있는 시간은 더 길어질 겁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건강 증진사업이 필요한 것이죠. 습관과 생활방식을 바꾸는 일종의 문화운동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고령사회를 견딜 체력이 생깁니다.” 이러한 문화운동은

[날아라 희망아] 겨울…집에서 쫒겨날 현우네 5형제

5형제가 라면 한 개 나눠먹고… 난방 안되는 집도 곧 비워야 “함께 지낼 곳만 있었으면…” 다섯 살 현우(가명)와 그 위로 일곱 살, 아홉 살, 열두 살, 열네 살인 현우의 형들은 올겨울을 위태롭게 맞이하고 있습니다. 일용직으로 홀로 다섯 형제를 거둬 오던 아버지 황씨(44)가 지인에게 부탁해 시골 빈집을 얻어 임시로 살아오고 있었는데, 최근 그 집을 비워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집을 떠나 있던 주인이 다시 돌아와 살 예정이어서, 현우네 가족은 이번 달 말까지 새 거처를 찾지 않으면 큰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다. “팔을 다쳐서 그나마 있던 일용직 일도 얻기 힘든 지금,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힘든데 갈 곳마저 없어질 상황입니다”라며 아버지 황씨는 막막한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현우네 가족은 정부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황씨의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황씨는 얼마 전 일을 하던 중 4m 사다리에서 떨어져 팔을 쓰지 못하게 돼 주업인 용접일을 하지 못하고, 현재 폐품 줍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현우네 5형제는 아버지가 일거리를 찾아 이틀이나 사흘씩 집을 비우면 형제들끼리 지내곤 합니다. 근처에 사는 할머니가 가끔 와서 형제들을 돌봐 주시지만, 할머니도 여든 살로 연세가 많으신 데다 삼촌 두 명이 투병 중이라 현우 형제들을 돌보는 일이 여의치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인 첫째가 빨래도 하고 동생들 밥도 차려준다고 합니다. 형제들은 서로 할 일을 맡아 조금 큰 아이들은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을 씻기고, 각각 청소 등의 집안일을 자신이

새로운 인생의 출발 ‘나눔’으로 시작해 뿌듯

‘결혼기부’ 실천한 주봉택·박윤희 부부 둘이 하나 되는 새로운 시작, 결혼을 앞둔 이들이라면 누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결혼식을 꿈꾼다. 일생의 가장 소중한 날인 만큼 평생 기억에 남을 특별한 추억을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주봉택(31), 박윤희(28)씨 부부는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을 실천에 옮겼다. 결혼 자금 중 일부를 떼어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기로 결심한 것이다. “행복한 첫 출발을 내딛는 날, 우리 두 사람의 결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이 됐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습니다. 작은 나눔으로 큰 행복을 얻었죠.” 예전부터 봉사와 나눔에 관심이 많았던 두 사람이다. 결혼 기부 아이디어도 해외 단기 봉사를 갔을 때 떠올렸다고 한다. 마실 물이 없어 목말라 죽어가는 아이들, 누런 흙탕물을 ‘생명수’로 여기는 주민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이들이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깨끗하고 맑은 물을 선물하고 싶었다. 이들 부부가 ‘우물’을 떠올린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지난 6월, 결혼 날짜가 잡히자마자 우물 후원을 위한 금액부터 따로 구별해뒀습니다. 저희가 기부한 금액으로 두 개의 우물을 후원할 수 있단 소식을 들었을 때, 둘이서 손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적은 금액이라 우물 한 개 파기도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부부가 후원한 우물은 베트남에 설치될 예정이다. 바로 지난여름, 이들이 봉사하고 돌아온 지역이다. “베트남 바끄롱 지역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전달하고 마을 운동회를 열어주고 왔습니다. 우물을 보고 기뻐하는 아이들 얼굴이 떠올라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작은 실천이 나눈 사람에게는 생애 최고의 날을, 나눔을 받는

[Cover Story] 미래 미소(美小) 캠페인④ 난민 아이들의 아픔·긍정적 에너지 함께 담아

미래미소캠페인 지구IN 난민촌 아동사진치료&전시회 ‘지구IN’ 한국 청년 네명 방콕 난민촌 ‘매솟’ 찾아가 아이들에게 사진·그림 가르쳐 그림 속에는 성폭력 등 트라우마의 흔적 담겨 작품 속에는 성장·희망 표현도… “웬 미친놈이 학교 가는 사내애에게 / 황산을 끼얹었다 / 푸른 잎새 넘실거리는 보리밭에서 / 깜부기를 뽑을 때처럼 / 삶은 난감한 것이다.” 시인 이성복은 ‘삶은 난감한 것’이라고 했다. 그 시각 그 자리에 그 아이가 있었고 같은 시각 같은 곳에 미친놈이 황산을 들고 서 있었다. 원인은 있되 이유는 없고 가혹한 결과만 남아 있더라도 삶은 삶이니, 삶은 난감하다.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왠지 이 시를 떠올렸다. 사진 속의 아이는 노란 천을 뒤집어쓴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흑백 사진에 오일 파스텔로 색을 칠한 작품 속 아이의 얼굴엔 파스텔의 질감 속으로 파고든 긁힌 자국들이 선명하다. 파스텔은 코를 지웠다. 빨갛게 번진 입술을 살짝 벌린 아이의 입은 이제 막 말을 시작하려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을 끝내려는 것 같기도 하다. 아픔과 괴로움의 흔적이 엿보이지만 외부인은 그저 삶이란 난감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방콕의 북서쪽, 버스를 타고 9시간을 가야 도달할 수 있는 ‘매솟’에서 만난 아이라고 했다. 매솟은 므이강을 사이에 두고 미얀마와 국경을 마주한 도시다. 미얀마 정부군의 탄압을 받은 소수민족 중 일부가 정부군의 공격을 피해 므이강을 넘어 매솟에 살림을 차렸다. 민족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키며 살아가고 타국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다 보니 난민 커뮤니티가 생겼다. 그러나

미래 미소(美小) 캠페인③ “의료기술·교육체계 노하우 전수… 라오스 국민건강수준 향상되길 바래”

미래 미소(美小) 캠페인③ 이종욱-서울 프로젝트 한국전쟁 끝난 후 미네소타 프로젝트로 美 의료기술 원조 등 교육시스템 전수받아 이종욱-서울 프로젝트로 의료기술 발달하지 않은 국가에 기술 전달해 라오스 외 4개국 확대 계획 “자, 보세요. 제 눈이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볼 때와 느리게 움직이는 물체를 볼 때 각각 뇌파의 그래프 폭이 차이가 있죠?” 서울대 의대 김성준 교수가 얼굴에 신체표면전극을 여러 개 붙인 상태에서 눈을 크게 뜨고 설명을 했다. 웃음이 나올 법도 한 광경인데 참팽(Chanhpheng Pathena) 교수는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이다. “학생들과 실험을 할 때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눈을 움직이지 않아도 그래프에 진폭들이 조금씩 있는데요.” “일단 눈을 감은 상태에서 그래프를 보고 눈을 뜬 후의 그래프와 비교하면 시작점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참팽 교수가 모든 것을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처음 사용하는 기계의 사용법을 익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실습과 토론이 끝나고 참팽 교수에게 얼마나 이해했느냐고 물었다. 참팽 교수는 “반 정도”라고 답했고, “이제 책이나 이론적인 자료를 보고 매뉴얼을 제작하면서 더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팽 교수는 라오스의 국립의대(UHS)에서 생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라오스의 보건의료 교육체계는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고 한다. “생리학 교수님들은 있지만 생리학으로 석사나 박사를 하신 분은 없고 의대를 나와서 도제식으로 공부하신 분들입니다. 기초학문이라 할 수 있는 생리학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 커리큘럼도 없고 강의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훈련 시스템도 없는 이유입니다.”

[날아라 희망아] 소리내 울면 숨 쉬기 어렵지만 “공부하는 건 포기할 수 없어요”

심장 류머티즘 앓고 있는 안젤로 뿌연 흙먼지가 날리고 얇은 나무껍질들로 얼기설기 엮은 벽만이 이곳이 집임을 겨우 알려주는 필리핀 난민촌 산이시드로. 쓰레기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 난민촌 한구석에 작은 소년 한 명이 왼쪽 가슴을 손으로 누른 채 옅은 숨을 뱉으며 누워 있었다. 바로 열두 살 안젤로다. 고통스럽게 누워있는 소년에게 어디가 아픈지 물으니 “숨을 쉬기가 힘들어요”라는 희미한 대답이 돌아왔다. 안젤로는 선천성 심장 류머티즘, 좌심방과 좌심실의 경계에 있는 승모판이 완전하게 닫히지 않는 심장 판막증인 승모판 폐쇄부전, 게다가 심장에서 폐로 통하는 혈관의 경화증까지 앓고 있다. 일반 건장한 어른이라도 견디기 어려운 큰 병들을 바닥에 힘없이 누운 가녀린 소년의 몸으로 모두 품고 있었다. 지난 4월 굿네이버스 필리핀 지부가 실시한 건강검진에서 안젤로는 심장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그 당시, 필리핀 심장센터 의사는 엑스레이와 심장 초음파 검사를 받을 것을 권유했지만 안젤로는 받을 수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비싼 진료비 때문이었다. 가빠오는 숨을 참으며 한 달이나 지나서야 안젤로는 처음의 병원보다 조금 더 저렴한 병원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병원에서는 안젤로의 치료를 위해선 심장수술과 더불어 감염을 막을 수 있는 충치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안젤로의 치아 상태 역시 몇 개는 뽑아야 하고 몇 개는 막을 씌워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안젤로를 위해 약 한 알조차 내줄 수가 없었다. 심장에 있는 구멍이 매우 커서 얼른 수술을 시행하지 않으면

[Cover Story] 뉴트리라이트 축구교실 10년

‘아이들이 건강한 세상’ 10년···이젠 ‘재능키우기’에도 도전 “앞으로 20년은 좋은 사회 만들기에 앞장서겠습니다” 박세준 한국암웨이 대표 “4학년 때였어요. 싸움으로 근처에서 저를 당해낼 애가 없었는데, 옆 학교에서 누가 나를 이길 수 있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당장 싸우러 갔죠. 그런데 거기에서 그 학교 축구부 선생님을 만났어요.” 제주유나이티드FC의 공격수 강수일(24) 선수는 그날 선생님 덕에 싸움을 못했고 대신 달리기 시합을 했다. 인생을 바꾼 달리기였다. “그러고는 얼마 후에 그 학교로 전학을 갔어요. 축구를 시작한 거죠.”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강수일 선수는 ‘싸움꾼’이었다. 얼굴을 보고 놀리는 아이들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여지없이 싸운 결과다. 상처 많은 자신의 아이 시절을 담담히 돌아볼 수 있게 된 강수일 선수는 웃으며 얘기했다. “제가 살아보니 다문화가정 아이로 자라거나 소외계층 아이로 자라면 소심해지고 위축되기 쉬운 것 같아요. 저도 그랬고 요즘 아이들도 그렇겠죠. 그런 아이들에게 꼭 운동을 권하고 싶어요. 운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고 아이들과 어울려 웃으면서 피해의식도 사라졌거든요.” 지난 10월 8일 강수일 선수는 ‘뉴트리라이트 축구교실과 함께 하는 지구촌 축구한마당’에서 뉴트리라이트 축구교실과 지구촌 국제학교 아이들을 위해 하루 선생님으로 나섰다. 아이들에게 드리블과 패스, 슛에 대해 가르치고 실습도 도왔다. 발 딛는 위치부터 시선까지 꼼꼼히 챙겨 지도하고 실습을 마친 아이들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강수일 선수는 “지금은 작은 역할 밖에 못하지만 더 유명해지고 더 잘하는 선수가 되어서 더 많은 나눔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축구를

미래 미소(美小) 캠페인② “세계 곳곳 안 보이는 사람에게 빛 찾아 줘 새 기회주고 싶어”

미래 미소(美小) 캠페인② 김동해 비전케어 대표 해외서 1년에 20주 무료 안과진료 캠프 진행 지금까지 6만여명 치료해 8000여명이 시력 되찾아 작년 미국 법인 만들어 중남미·서부 아프리카도 지원 활성화 기대 “처음엔 병원문을 일주일만 닫아도 병원이 망할 것이라는 핀잔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요즘은 환자들이 우리의 활동을 돕고 봉사도 하겠다며 나서고 있습니다.” 신문에 병원 광고를 낼 바에는 파키스탄에서 진료봉사활동을 한 번 더하겠다며 웃는 명동성모안과의 김동해 원장<사진>은 전 세계를 상대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 비전케어의 대표이기도 하다. 병원문을 얼마나 닫길래 주위에서 그런 걱정을 할까. 비전케어는 1년에 20주가량 해외에서 무료 안과진료 캠프를 진행한다. 김 대표는 그중 14주에서 16주 정도의 시간을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보낸다. 24개국에서 102회에 걸쳐 무료 안과진료 캠프를 진행해서 6만여명이 안과 진료를 받았고 이 중 8000여명이 비전케어의 수술을 통해 시력을 되찾았다. 빈곤과 안과질환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전 세계에 시각장애인이 2억9000만 명, 실명인구가 3900만 명 정도 있다. 김 대표는 “2억9천만명 중 80%가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시각장애인들이고 개발도상국가에 거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의 실명률 지도와 개발도상국의 지도를 포개면 두 지역이 겹칩니다. 하지만 안과예방과 실명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관심이 낮습니다.” 안과질병은 말라리아나 결핵, 에이즈(HIV AIDS)에 비해 관심이 낮다. 10년 넘게 현장을 봐온 김 대표는 이런 상황이 긍정적이지 않다고 진단한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일수 있지만 이 상황이 고착되면 개발도상국의 의료환경에 왜곡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결핵이나

“몸은 아파도 연주를 통해 세상의 벽 허무는 그들”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 지휘자 디트리히 파레데스 그의 손끝이 움직이자 파이프 오르간의 장엄한 음계를 타고 물결 치던 하모니가 화려하게 질주하기 시작한다. 지난 10월 25일 오후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 안을 싱그러운 활기로 가득 채운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의 젊은 지휘자, 디트리히 파레데스(28)를 만났다. 남미 특유의 재치와 낭만이 흘러 넘쳤다. 인터뷰 내내 한 편의 시를 읊는 듯, 감성적인 언어로 답변을 이어갔다. 지난 6년간 함께한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의 원동력을 이야기하는 순간도 그러했다. “카라카스 유스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영혼과 음악의 교감에서 완성됩니다. 연주자의 영혼은 곡에 담긴 빛과 어둠을 따라가면서 특별한 에너지를 만들어내죠.” 파레데스가 이 오케스트라와 인연을 맺게 된 건 마에스트로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를 사사하면서부터다. 엘 시스테마(El Sistema, 베네수엘라 저소득층 음악교육 시스템)를 통해 세계 최고 지휘자로 성장한 구스타보 두다멜로부터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저는 아이들에게 왜 음악을 하고, 왜 악기에 엄청난 열정을 쏟고, 왜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해야 하는지 납득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서 최고가 돼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죠.” 25일 무대는 생상스 교향곡 제3번 ‘오르간’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으로 꾸몄다. 화려하고 명쾌한 생상스와 비극적인 쇼스타코비치, 상반된 느낌의 두 곡의 연주로 카라카스 오케스트라는 기립박수를 받았다. 특히 앙코르 무대가 인상적이었다. 단원들은 멜로디에 맞춰 악기를 빙글빙글 돌리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흥겹게 춤을 추며 연주를 이어갔다. 이뿐만 아니다. 이들은 앙코르 공연이 끝나자 베네수엘라 국기를 상징하는 노랑, 파랑, 빨간색 줄이 겹쳐진

“반짝이는 아이 눈빛, 음악이 되찾아줬죠”

하트하트재단과 함께하는 문화복지의 꿈 동균군과 어머니 성은희씨 발달장애 2급인 동균군 13살 때 플루트 시작 전국 콩쿠르·예술대회 등 참가한 대회마다 수상해 “음악으로 마음 열고 가족에게 용기 심어줘” “연주회 내내 제 신경은 온통 아이의 두 발에 쏠려 있었어요. 악보대로 정확하게 연주하고 있는지, 어떤 음색을 만들어내는지 귀 기울일 여유조차 없었죠. 다만 곡이 끝날 때까지 아이가 제자리를 지켜주기만 바랄 뿐이었어요. 걱정 반 근심 반으로 지켜본 첫 무대에서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선물 받았습니다.” 평안했다. 그리고 따뜻했다. 아들 동균이의 첫 정기연주회를 떠올리는 성은희(47)씨의 미소가 그러했다. 등 뒤로 흘러나오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그녀의 차분한 말씨와 어우러져 또 다른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플루트를 부는 동균이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은희씨는 “작은 용기가 커다란 기적을 낳았다”며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장면들을 하나 둘 꺼내 보였다.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1회 정기연주회 때였죠. 첫 무대라 긴장했을 텐데도 끝까지 집중해서 연주를 해내더라고요. 무대 위에서 의젓하게 박수받는 동균이 모습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에 참 많이 울었어요. 동균이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성장해 있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그날의 감동을 기억하며 이겨낼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어요.” 동균이는 어릴 때 발달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자기 외의 다른 존재에 대해 일절 관심을 갖지 않는 아이였다. 그러던 동균이가 플루트를 만나고 하트하트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면서 차츰 변화하기 시작했다. 13살 때였다. 바이올린, 첼로, 오보에, 클라리넷 등 진열대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