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10년 후 미래’ 핵심과제 12가지_ ②다문화

다문화 가정의 빛과 그림자 다문화 혜택 전혀 못 받고 한국이 낯설기만 한 ‘리엔씨’ 방 밖에는 커다란 자물쇠… 4년 동안 아무 데도 못 가 호강하러 온 한국땅… 남편 퇴근하는 밤 11시까지 방안에서 갇혀 지내 주변 도움의 손길 있지만 남편이 절대 안 받아 시내를 벗어나 한 시간을 달렸다. 도로 양쪽으로 메마른 논이 펼쳐졌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들어가니, 철판과 나무로 덧댄 집들이 모여 있었다. 논두렁 앞쪽으로 파란 지붕을 가진 낡은 집이 눈에 들어왔다. 싸늘한 바람에 낡은 대문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문틈 사이로 보인 여성의 눈동자엔 경계심이 가득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몇 번의 대화 끝에 마침내 문이 열렸다. 신발을 벗고 방 안에 들어서려는데 무언가 발끝을 건드리며 지나갔다. 아궁이에서 흘러나오는 뿌연 연기 밑으로 회색 쥐 한 마리가 보였다. “저는 잘 때 깨요. 쥐가 얼굴을 때려서.” 리엔(가명·24·충남 아산)씨가 경직된 기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4년 됐어요. 한국에 온 지.” 7개월 된 딸 정은이(가명)를 안고, 리엔씨는 또박또박 단어를 곱씹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열아홉 살 무렵, 베트남 또래 친구들이 “호강하러 간다”는 말만 남긴 채 하나 둘 모습을 감췄다. 어디로 간 걸까. “한국으로 시집을 갔대요. 비행기 타고 가서 결혼한다고 다들 부러워했어요. 한국 가는 게 유행 됐어요.” 1년쯤 지나니, 친한 친구 여섯 중 리엔씨만 남았다. “나도 한국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비행기 탔어요.”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낯선 남자 한

“당신의 아이가 얼어 죽을 수도 있다면 값싼 텐트 보내겠는가”

긴급구호 현장에 셸터박스 도입한 톰 핸더슨 대표 텐트·식기구·모기장 등 생활 물품 넣은 셸터박스 48시간 내 구호현장 도착 시속 200㎞ 바람 이기고 영하 20~영상 70도 견뎌 비 새고 무너지는 텐트는 도움 안 주는 것만 못해 박스마다 고유번호 부여 최종도착지 웹에 보여줘 기부자에게 신뢰 얻어 정부지원 받지 않고 소액기부 통해 운영 10년간 75개국 도와 아이티 대지진, 일본 쓰나미 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체육관이나 길거리에 담요 한 장 깔아놓고 앉아있는 피해자들의 초점 없는 눈초리, 구호트럭 앞에 길게 늘어선 줄….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 모습에 의문을 품은 사나이가 있다. 영국 해군 수색팀 다이버 출신인 톰 핸더슨(62)씨는 1999년 TV를 통해 재난 뉴스를 보면서 ‘왜 이재민들은 구호트럭이 던져주는 물품을 받기 위해 달려들어야 하는가. 왜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모든 걸 잃은 그들이 존엄성까지 잃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었다. 이것이 긴급구호 전문 NGO인 ‘셸터박스(Shelterbox)’가 탄생한 배경이다. “TV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 큰 박스를 떠올렸습니다. 낯선 사람들과 한데 엉켜서 자지 않도록, 자기만의 공간인 텐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그 안에 4인 가족이 생활할 물품을 넣되, 어른 두명이 들고 갈 만큼 너무 크지 않아야 한다고요.” 셸터박스 안에는 텐트와 담요, 식기구, 물 정화시설, 망치, 모기장, 색연필 등이 들어 있다. 이 박스는 24~48시간 내에 지진이나 홍수 등 긴급구호 현장에 도착한다. 2001년 143개의 셸터박스가 인도의 지진현장에 보내졌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열정은 모금 현장을 움직였고, 로터리클럽과 보이스카웃 등에서 재원

내 맘대로 고르는 ‘뷔페식’ 봉사 기업·NGO 연결할 매개자 필요

개러드존스 ‘포인츠 오브 라이츠’ 부회장 선진국 자원봉사 흐름 퇴근 후·주말 등 바쁜 생활방식에 맞춘 유연한 자원봉사 만들고 스타벅스 ‘5시간 약속’은 지역사회에 5시간 기부한 시민에게 커피 무료 제공 시민의 참여 극대화시킨 사회공헌 봉사 많아져 “앞으로는 시민 참여와 맞춤형봉사로 독창적 방법 발굴해내야” “Give a Day, Get a Disney Day(하루 자원봉사 하면, 디즈니에서 재미난 하루가 공짜)” 지난 2010년 1월 진행된 디즈니의 사회공헌 캠페인이다. 가족이나 개인이 일정기간 자원봉사를 하면, 디즈니랜드 테마파크를 이용할 수 있는 1일 자유이용권을 제공하는 것이다. 디즈니에서는 이를 위해 미 전역에 250개 자원봉사센터가 있는 핸즈온 네트워크와 손을 잡았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원봉사에 참여한 사람은 100만명에 달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시민들의 자원봉사 참여율을 높였고, 재정이 열악해 자원봉사 혜택을 주기 어려운 시민단체에는 간접지원을 했고, 디즈니에서는 잠재적 소비자를 확보했으며, 이들이 디즈니를 찾아 부대시설을 이용하면서 매출까지 증가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는 미국의 대표적 자원봉사단체 ‘포인츠 오브 라이츠(Points of Lights·일명 촛불재단)’의 개러드존스(Gared Jones) 부회장이다. 그는 전 세계 자원봉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미 스탠퍼드대와 노스웨스턴대 MBA 과정을 마친 후 딜로이트 컨설팅의 수석매니저로 일하던 그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비영리조직으로 전업했다. 그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영리조직에서 비영리조직으로 커리어를 바꾸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며 “나눔과 경영을 접목하기 위해, 남아공의 주말학교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은 경험을 했다”며 전업 이유를 밝혔다. 아쇼카 재단의 디렉터로 일하며 5년 남짓

처벌로 일관 말고 교실 분위기 바꿔야

문화학습협동 네트워크 사토 요사쿠 대표 이지메(왕따),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등교 거부…. 일본의 청소년문제는 우리보다 훨씬 역사가 깊다. 청소년문제에 집중하는 일본의 NGO 또한 다양하다. 일본 문화협동네트워크 대표 사토 요사쿠씨는 1993년부터 등교거부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프리스쿨)를 운영해오고 있으며, 1999년부터 히키코모리 청소년을 위한 비영리법인 ‘문화학습협동네트워크’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시립 하자센터에서 열린 한·일 교육포럼 ‘청소년 폭력과 부적응을 말하다’에 참석한 그를 만났다. ―한국에선 학교폭력·왕따·자살 등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다. 일본의 청소년 문제는 어떤가. “일본에선 세 차례 큰 흐름이 있었다. 1980년대 중반 도쿄의 한 중학교에서 재일동포 아이가 왕따를 당하다 못해 자살했다. 가해학생들은 교실 안에서 그 학생의 ‘장례식 놀이’까지 했고, 담임교사도 관여해 큰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아무도 왕따문제를 자각조차 못하던 시기였다. 1990년대 중반에는 또 한 번 대형 사건이 터지면서 ‘아동권리조례’가 만들어졌다. 이전에는 왕따 피해자에 초점을 맞춰 가해자 처벌을 위주로 했다면, 이후부터 왕따 구조 자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교실 내 스트레스가 쌓이고, 누군가가 교실 안에 있는 누군가에게 스트레스를 풀며, 주변의 친구들은 이를 방관하게 된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사이버상의 왕따가 극성을 부렸다. 왕따 피해자 친구를 집단으로 매도하고, 심지어 하반신 사진을 올려놓는 등 ‘인터넷 왕따’로 아이들이 연속으로 자살했다.” ―일본 정부의 대책은 어떻게 변했고, 효과는 있었나. “일본의 정책은 별로 변한 게 없다. 처벌주의로 일관하고 있다. 수치목표를 정해놓고 ‘모든 학교를 히키코모리 제로를 만들어라’고 하는 식은 별 효과가 없었다. 최근에는 청소년들이 일본 문부과학성에 정책을 비난하는 편지나

마음의 병 치료한 후 아이의 아픔 깨달았죠

청소년 교육 생태계를 바꿔라_’우울증 엄마’가 달라졌어요 남편 장사 실패·별거… 술에 의존하는 나날들 구타·무관심했던 엄마, 상담치료 후 변화 가족관계 돈독 “엄마가 달라진 거 많이 느껴요. 예전에는 심하게 많이 때렸는데, 요즘엔 따뜻하게 대해요. 엄마 노력 보면서 나도 잘해야겠다는 생각 해요.” 경옥(가명·46)씨와의 인터뷰 도중 걸려온 진호(가명·16)군의 전화였다. 기자의 질문에 짤막한 답변을 마치고 나서도, 둘의 통화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가족과의 대화가 늘었다는 것. 변화의 긍정적인 신호다. 진호의 첫 가출은 7살 때였다. 처음엔 하룻밤 주변을 배회하는 수준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나흘 동안 집에 안 들어오기도 했다. 공원에서, 공중화장실에서, 주차장 뒤에서 잠을 청하는 날이 늘어갔다. 나쁜 친구과 어울리며, 싸우는 일도 잦았다. 경옥씨는 “너 때문에 힘들어 못살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이를 때리는 일도 잦아졌다. 진호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경옥씨는 진호와 함께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상담 결과 경옥씨는 우울증, 진호는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판정을 받았다. 변화는 엄마부터 시작됐다. 경옥씨는 “우울증을 치료하고 싶었지만, 정신과 치료가 갖는 사회적인 편견이나 비용 부담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선택한 방법이 ‘상담’이다. 지역가정지원센터, 학교 내 시설, 종교단체 등을 찾아다녔다. “진호가 유치원 때 아빠 장사가 망했어요. 만날 싸우다 결국 별거까지 했죠.” 경옥씨는 “괴로운 마음에 술에 의존했고, 우울증까지 겹쳐 아이를 나 몰라라 했다”며 “상담을 받으면서 ‘진호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미안하다”고 털어놓았다. 동대문구건강가정지원센터의 김은정 상담팀장은 “가출·폭행·절도·학교부적응 등 청소년 문제는 대부분 가정에서 시작된다”며 “상담자 다수가 아이들 문제로 이곳을 찾지만,

“두 눈이 나으면 학교에 가서 마음 껏 책을 읽고 싶어요”

하트하트재단 캄보디아 실명 예방사업 현장 열두 살 ‘초이 쁘럭’ 다섯 살 때 백내장 앓아 치료비 없어 치료 못 받아 캄보디아 여성 대부분 풍진 등 예방주사 못 맞아 선천적 백내장 많이 앓아 1분에 1명씩 시력 잃어 벌판 위로 뿌연 모래 바람이 일었다. 뜨거운 햇살에 피부가 욱신거렸다. 캄보디아의 씨엠립(Siemreap)주에서 한 시간 떨어진 꼬스머 마을에 들어서자, 더위에 축 늘어진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흙먼지를 옷에 가득 묻힌 열두 살 초이 쁘럭(Choi Phruck)이 맨발로 뛰기 시작했다. 나무로 사방을 덧대어 만든 판잣집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쁘럭 엄마는 탁자 위에 가득한 먼지를 한참 동안 손으로 털어내더니, 고개를 돌려 미소를 건넸다. 낡은 의자에 걸터앉은 쁘럭은 눈을 계속 찡그렸다. 다섯 살 때 몸에 열이 나더니 갑자기 앞이 잘 안 보이기 시작했다. 눈을 크게 떠보고, 손으로 비벼도 봤다. 뿌옇게 흐려진 앞은 밝아지지 않았다. 후발백내장(수정체가 혼탁해져 앞이 잘 안 보이는 것)이었다. 3년 전부터는 학교에 가는 날보다 안 가는 날이 더 많아졌다. 그마저도 매번 엄마가 데려다 줘야 한다. 쁘럭은 “글씨를 읽을 수 없게 돼서 제일 속상해요”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캄보디아에는 쁘럭처럼 눈에 질병을 가진 아이들이 많다. 선천적 백내장은 물론 외상 등 후천적인 영향으로 한쪽 눈을 잃거나 약시(교정시력이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된 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가까운 곳에 병원이 없는 데다 치료비가 없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쁘럭네 가족은 총 8명이다. 아빠가

프랑스 SOS그룹 자회사 CID 니콜라 아자르 대표_”영리·나눔 함께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에 투자”

전문 경영인 고용 정부·민간기업 협력 등 매년 8000억원 매출 한국 ‘미스크’와 MOU, 28년 노하우 전수할 것 프랑스의 사회적 기업 SOS그룹은 역사만 28년이 됐다. 직원은 7000명이고, 매년 80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34개의 자회사가 있고, 프랑스와 해외에서 270개 비영리단체를 운영한다.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병원 5곳을 운영하고, 매일 2000명의 노숙자에게 거주공간을 제공하며, 전과자나 장애인, 마약중독자들을 2년 동안 사회적 기업에 고용한 후 일반 기업에 재취업시키는 것 등이 주 업무다. 고용노동부 지원을 받아도 생존하기 버거운 우리나라의 사회적 기업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다. 그 비결은 뭘까. 지난 2월 말 방한한 SOS그룹 자회사인 CID(le Comptoir de l’Innovation) 니콜라 아자르 대표를 만나 들어보았다. CID는 총 4800억원가량을 운용하며 사회적 기업에 투자하는 ‘사회적 기업 창업투자사’다. ―CID가 일반 창업투자사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한 회사에 5년 동안 투자한다. ‘인내심 있는 자본’이라고 할까. 보통 자본은 만기가 1년이다. 일반적으로 A라는 회사가 1년 안에 15%의 ROE(자기자본이익률)를 얻었다고 한다면, 누군가는 15% 손실을 낸 것이니까 현재의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공생이 이뤄질 수 없다. 윈-루즈(Win-lose) 게임일 뿐이다. 우리는 5년 동안 투자해서, 평균 5%의 수익률을 낸다. 유럽에서 이 정도는 꽤 괜찮은 수익이다.” ―CDI에서는 기업들에 대한 사회적 지표 랭킹도 매긴다는데…. “우리는 일반 지표와 사회적 지표 두 가지로 나눠서 50대 50으로 랭킹을 매긴다. A라는 대기업이 큰 수익을 내지만, 환경을 오염시킨다고 치자. 일반 지표에서는 AAA를 받아도, 사회적 지표는 낮은 등급을 받는다. 고용관계, 지역사회 기여, 환경

임영신의 ‘페어 라이프 센터’_동네 주민 사랑방 공정무역 카페 묵혔던 재능 나누는 장소로 활용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카페 ‘맑은샘’.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고소한 커피향이 가득했다. 이곳은 공정여행가 임영신씨가 책임을 맡고 있는 공정무역카페 ‘더불어 숲 페어 라이프 센터(Fair Life Center)’다. 구조나 분위기가 여느 커피숍과는 사뭇 달랐다. 왼쪽 벽 너머로는 동네 주민들의 헌책이 빼곡히 들어찬 도서관이 보였다. 커다란 테이블에선 유모차를 곁에 둔 학부모들이 바느질을 하고, 또 한쪽에선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은 동네 사람들이 언제든 들르는 쉼터이자, 재능 기부 공간입니다. 도서관에서는 대학생들이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어린이들은 사서를 자청해 책을 정리하기도 합니다. 놀이방에서는 바느질에 소질 있는 학부모들이 ‘만들기 강좌’를 엽니다. 커피를 잘 끓이는 분들은 이곳에서 바리스타로 봉사하고 계시고요. 더불어숲 동산교회(이도영 목사)가 교회 공간의 50%를 지역사회를 위해 열어두고 운영을 전적으로 지원해온 덕분입니다.” 절차도 간단하다. 신청서에 영어, 요리, 미술 등 자신 있는 분야를 적고, 수강생이 모이면, 원하는 날짜에 재능을 기부하면 된다. 묵혀뒀던 재주들을 이웃과 나누면서, 경력 단절 여성들은 자신감을 되찾고, 주민들은 보람을 얻는다. 카페 곳곳에 배치된 물품들도 독특했다. 임씨는 “공정여행가들이 가져온 선물”이라고 했다. “이곳은 공정무역 카페이자 공정무역을 통해 동네에서 세계를 경험하는 공간입니다. 네팔 여성 노동자들이 수공으로 만든 인형, 손바느질로 만들어지는 파키스탄의 공정무역 축구공 등 선반 위에 놓인 물품 대부분이 공정무역 상품입니다.” 주민들은 커피를 마시며 공정무역 커피를 알게 되고, 장식품을 보면서 자연스레 공정무역 상품을 이해하게 된다. 주민들도 나누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카페로 가져온다고 한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

공정여행가 임영신씨 인터뷰_”행복한 세상 위한 ‘희망의 발자국’ 남깁니다”

현지인의 삶 존중할 때 자연스레 공동체 형성 평화 도서관 프로젝트로 분쟁지역 어린이에 선물, 가치있는 여행 위해 공정여행자 수기 모아 희망 지도 만들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삶이 있습니다. 세상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대로 사는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키며 사는 사람.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희망을 전하는 삶을 살았다. 지나온 길을 더듬어 보니, 모든 발자국은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하고, 절망 속에서 평화를 찾아나서는 길. 공정여행가 임영신씨의 여정은 그렇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여행하는 이도, 여행자를 맞이하는 이도 함께 행복한 여행은 불가능할까. ‘공정여행’은 이러한 새로운 물음에서 출발했다. 임영신씨가 공정여행을 시작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관광이 지나간 자리에서 그늘을 마주했습니다. 여행자 한 사람이 여행을 할 때 하루 평균 3.5㎏의 쓰레기를 만들고, 400ℓ의 물을 쓰며,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주민 30명이 쓰는 평균 전기량을 소비합니다. 또한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여행자를 위해 히말라야 숲에서 매일 세 그루의 나무가 베어지고 있죠. 우리가 여행하는 곳이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요 일상이란 것을 기억한다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마음이 새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10년 세계 관광기구(World Tourism Organization)의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관광인구는 9억400만명을 넘어섰다. 한국 역시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2007년 여행자 최대 인원인 1300만명을 돌파하면서 세계 관광 지출국 10위에 올랐다. 여행대국으로의 성장은 또 다른 진통을 낳았다. “2006년, 필리핀 여행 중에 한국 관광객의 문화를

학교에서 1등 하던 자말 손에는 책가방 대신 물동이가…

동영상으로 본 자말의 일상 2년 전 에이즈로 아빠 잃고 엄마도 같은 병 앓아 10㎏ 물동이 온종일 나르며 간신히 가족의 한 끼 해결 가난보다 두려운 건 어느날 갑자기 엄마가 아빠처럼 떠나는 것 가방 대신 물동이를 메야하는 르완다 소년 자말(10). 자말은 2년 전 에이즈(AIDS·후천성 면역 결핍증)로 아빠를 잃었다. 지금 자말의 곁을 지켜주는 유일한 보호자인 엄마도 에이즈로 앓고 있다. 온몸에 힘이 점점 빠져가는 엄마는 자말 곁에 있어주는 것 말고는 해 줄 게 없다. 줄곧 학교에서 1등을 도맡아 했던 똑똑한 자말. 그러나 자말은 지금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책가방 대신, 물동이를 멘다. 르완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1달러 미만으로 한 달을 사는, 세계에서 열째로 가난한 나라다. 자말이 살고 있는 곳은 르완다의 빈민 거주지역 기소지 마을.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는 천 하나로 대문을 삼은 가장 낡은 흙집이다. 자말은 이곳에서 물동이 배달일을 한다. 물이 귀한 르완다는 10곳 중 1곳의 집에만 수도관이 있기 때문에 수돗물을 판매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 걷고 또 걷는 자말. 오랜 시간 걸어 도착한 목적지에서 물동이 가득 콸콸 차오르는 물을 보며 자말은 가족의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쁨에 젖는다. ‘오늘은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엄마는 언제쯤 병원에 갈 수 있을까?’ 10㎏ 물동이를 양손에 들고 가파른 언덕을 하루에 대여섯 번을 오가며 배달해 버는 돈은 100프랑, 우리 돈으로 200원 남짓이다. 이 돈으로 자말의 가족은 간신히 한 끼를 먹을 수

“나눔을 가르치려다 ‘배려’를 배웠습니다”

굿네이버스 ‘지구촌 나눔가족 희망편지 쓰기 대회’ 딸과 함께 참가해보니… “10㎏이면 얼마나 무겁죠? 책가방보다 무겁겠죠? 제가 아프리카에 산다면 속상했을 거 같아요” “엄마, 근데 이 편지가 어떻게 아프리카에 가요? 영어로 대신 써줘요? 제 글씨를 못 알아보면 어떡하죠?” 연필을 손에 든 기자의 딸(연서·초2)이 종알종알했다. 지난 7일 저녁, 기자와 딸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굿네이버스에서 실시하는 ‘지구촌 나눔가족 희망편지 쓰기 대회’ 동영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홈페이지(www.gni.kr)에 접속하니, 올해의 주인공 자말(10)군의 사연이 나온다. 지난해엔 초등학교에서 나눠준 CD를 통해 캄보디아에서 오리를 키우며 살아가는 락스미(10)군의 동영상을 보았었다. “르완다요? 잠깐만요?” 아이는 쪼르륵 제 방으로 달려가서, 지도를 찾는다. “찾았다. 쪼그만하네~.” 아프리카 중앙에 위치한 르완다의 면적은 약 2만6000㎢. 우리나라(10만㎢)의 4분의 1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동영상에선 아프리카 르완다의 빈민 거주지역 기소지 마을에 살고있는 자말의 일상이 나온다. 2년 전 에이즈에 걸려 죽은 아빠, 에이즈에 걸려 아픈 엄마,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학교 대신 10㎏ 물동이를 양손에 들고 온종일 걸어도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놓지 않은 열살 소년…. 에이즈 정기검진 때문에 병원에서 피를 뽑으며, 결과를 초조하게 지켜보는 자말. “아직 괜찮습니다.” 의사의 한마디에, 자말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는다. 화면 내내 볼 수 없었던 귀한 웃음이다. “엄마. 집이 흙집이네요.” “10㎏이면 얼마나 무거운 거예요? 제 책가방보다 훨씬 무겁겠죠?” “아프리카에도 비행기가 있을까? 비행기가 좀 지저분하겠죠? 흙을 밟고 다니니까. 우리는 신발이 있어서 흙을 안 밟는데.” 동영상을 보는 내내, 아이는 이것저것 질문을

“40년간 쌓아온 노하우 공유하고 한국의 전문가와 성장해 나갈 것”

엠마누엘 고에 ‘국경없는…’ 한국 사무총장 “‘국경없는 의사회(MS F)’의 노하우와 경험들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MSF를 통해 한국인들이 전 세계의 다양한 인도주의 활동을 더 많이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지난 2월 24일 만난, ‘국경없는 의사회’ 한국 사무총장 엠마누엘 고에(Emmanuel Goue)씨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다. 미얀마, 체첸, 수단 등 수많은 긴급구호 현장을 누비며 12년간 책임자로 활동한 그다. 한국에 첫발을 디딘 지금,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더 크다. 한국의 역량 있는 전문가와의 협력은 국경없는 의사회를 한 단계 더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971년, 프랑스에서 설립된 국경없는 의사회는 40년간 무력분쟁, 전염병, 자연재해로 생존을 위협받는 이들에게 긴급 원조를 제공해왔다. 국제사회에 기여한 인도주의 활동을 인정받아 1999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현재 60여개 국에서 3000명에 달하는 국제 현장 봉사자들과 함께 구호 프로그램을 운영할 정도로 전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그리고 2012년, 국경없는 의사회의 27번째 사무소가 마침내 한국에 모습을 드러냈다. “논의는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긴급구호 현장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기관 및 활동가들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국경없는 의사회 내부에서도 한국 사무소 설립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거든요. 한국 사무소에서는 현장 지원 강화를 위한 모금 사업, 한국 인력 파견, 국내 정부 기관 및 다양한 NGO들과의 협력 등 총 세 가지 부문에 중점을 둘 계획입니다.” 고에 사무총장은 “국경없는 의사회가 40년간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인도주의 활동에 기여하고 싶다”면서 국경없는 의사회가 가진 세 가지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