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칼럼] 우리는 임팩트재단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NGO를 흔히 ‘비영리조직’ ‘비영리재단’ 등으로 부른다. 어떤 조직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비(非)’라는 부정형용사로 불리는 것이 조금은 서글프다. 누군가의 특성을 말하는데 ‘무엇이 아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보편적이진 않다. 그런데 비영리조직에는 이를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공공조직이나 영리조직으로 불리는 곳은 공공성 혹은 영리를 추구한다는 목표가 분명히 드러난다. 비영리조직은 영리가 아닌, 그렇다고 완전히 공공의 이익도 아닌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비영리를 ‘영리가 아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호칭은 마치 영리조직에 비하면 비주류인 것처럼 느껴지게도 한다. 비영리조직이 추구하는 목표는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한 교육 사업을 하기도 하고, 기업이나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연구·전시·사업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임팩트’라고 할 수 있다. 비영리조직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비영리의 존재 이유를 잘 나타내는 명칭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 조직들은 스스로를 ‘임팩트재단(Impact Foundation)’이라 칭하기로 했다. 지난 9월 임팩트재단 다섯 곳이 공동으로 ‘임팩트 측정의 학습과 연습’이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출간했다. 보통의 측정보고서는 방법론과 결과값, 특히 숫자를 중심으로 채워진다. 그런데 이번에 발간된 보고서는 다소 구구절절하다. 참여한 조직의 공동 입장, 임팩트 측정을 하게 된 각자의 배경, 측정방법론을 선택하는 과정에서의 고민 등이 담겼다. 일부러 정제하지 않고 그대로 담은 것처럼 보일 정도다. 측정에 사용된 임팩트 프레임과 방법론도 단체마다 모두 다르다. 측정 결과 역시 숫자, 서술, 도식

이희숙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모두의 칼럼] SH-사회주택, 공존과 경쟁을 촉구합니다

지난 8월 유튜브 채널 오세훈TV는 “2014억 원…사회주택이라는 이름으로 낭비된 서울시민의 피 같은 세금” 등의 표현으로 사회주택을 비판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게재했다. 사회주택 업계는 ‘신뢰할 수 없는 통계로 사회주택을 왜곡하며 주택 정책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서울시장의 SH 공사가 직접 공급할 수 있는 사업을 사회적경제주체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공급한 점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다. 이는 서울시 임대주택 정책이 SH 중심의 공급으로 회귀할 것을 시사한다. 반문하자면, 사회적경제주체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SH가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사의 공공성에 대한 믿음은 LH 사태를 겪으며 이미 무너졌다. 민간이든 공공이든 독점 구조는 부작용을 낳는다. 주거복지 영역에서 사회적가치를 추구하겠다는 민간 조직이 나선만큼, 이러한 사회적경제조직과 공공이 더 좋은 주거를 두고 경쟁·협력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실 사업자 문제는 경쟁 과정에서 걸러지고, 책임 있는 감독을 통해 해결할 부분이다. 서구 유럽의 여러 주거복지 선진국에서는 민간 비영리단체 등이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 안정을 위하여 지방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저렴하게 공급하는 사회주택이 일찍이 활성화되었다. 사회주택의 총량이 누적되면서 프랑스 파리는 20%, 네덜란드는 전체 시장의 30%를 훌쩍 넘는다. 공급자가 많고 다양해질수록 경쟁을 통해 공급 비용은 낮아지고, 주거의 질은 높아진다는 것은 주거복지 영역에서도 동일하다. 민간 사업자의 확대는 민간 자본 확대로 이어져 공급 총량도 늘어날 수 있다. 과거 대단지 획일적인 주택 개발·공급에 있어서는 공공 중심의 공급이 적합했을지 모른다. 이를 통해 빠르게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을 높일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더 이상 물 쓰듯 쓸 수 없는 물

‘푸른 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 표면의 70% 를 물이 덮고 있는 지구는 그야말로 물의 행성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인간을 비롯한 육지 생명체들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민물의 비중은 3% 정도이고, 빙하와 만년설을 제외하고 실제로 사용 가능한 지표수와 지하수의 비중은 1% 미만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1% 미만의 담수로도 인류 문명은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뤄냈다. 우리가 지금 먹고, 입고, 누리는 모든 것들은 담수 자원을 말 그대로 ‘물 쓰듯’ 하며 만들어낸 것들이다. 그리고 이 연재글의 내용이 항상 그러했듯이, 안타깝게도 이러한 풍요로움도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 이미 물 부족은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이슈다. 이론적으로 담수 자원은 현재 인류의 사용량을 충당할 수 있지만 담수 자원의 지리적 분포와 중저소득 국가의 부족한 인프라로 인해 전 세계 인구의 26%인 20억명이 안전하게 관리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한다. 이로 인해 연간 200만명 이상이 수인성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인류의 비효율적인 담수 자원 사용과 수질 오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담수가 풍부한 지역에서도 수자원이 고갈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지하 대수층 37개를 관찰한 결과, 21개의 수량이 줄어들고 있고 그중 13개는 심각한 수준의 물 스트레스(물 유입보다 유출이 훨씬 많은)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군다나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각종 곡창지대의 기상이변, 특히 가뭄이 증가하면서 지하수 유출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 전 세계 최대의 곡창지대 중 하나인 미국 캘리포니아는 2000년 이후 빈발하는 가뭄으로 인해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 임팩트] 기업 사회공헌의 미래 트렌드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 드라마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1위를 차지했다. 미국뿐 아니다. 홍콩, 대만, 베트남,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싱가포르 등 총 14개국에서 1위에 올랐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39개국에서는 2위에 랭크돼 있다. 드라마에서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오징어’ 등 한국인에게 친숙한 고전놀이가 여럿 등장한다. 게임에서 지면 죽고 살아남으면 수백억원의 돈을 가져간다는 다소 비현실적이며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리 또래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녀의 친구들까지 보고 있으니, 전 세대를 걸쳐서 공감대를 형성한 듯 하다. 드라마를 보면서 어릴 적 친구들과 놀던 생각도 나고 재미도 있었지만, 미래세대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치열한 경쟁 사회의 일면을 본 것 같아 섬뜩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드라마에서는 공정을 말하지만 현실은 공정하지 않다. 참가자들은 스스로 게임에 뛰어들었지만 이면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좌절감, 왜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게임을 하고 살아남아야 하나라는 억울함 등 여러 가지 우리 사회의 문제가 깔려있다. 오징어게임이 기업 사회공헌의 미래 트렌드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싶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에너지와 자원 고갈, 기후변화, 사회갈등의 심화, 인구구조의 변화로 우리는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위험한 게임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아갈 수도 있다. 위험한 게임이 일상화되는 시대에 게임의 탈락자들에게도 재도전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기업의 사회공헌이 비즈니스 또는 자원과 연계된다면 든든한 사회안전망이 될 수 있다. 즉 전략적 사회공헌이 필요한 것이다. 전략적 사회공헌은 기부 중심의 자선적

유지민(거꾸로캠퍼스 재학생)
[모두의 칼럼] 코로나에서 살아남기

나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가 얼마 전 건강하게 회복했다. 설마 내가 감염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표현을 이번 계기로 정확히 이해했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후 흉통과 호흡곤란이 찾아왔다. 이튿날 저녁 대형병원 음압 병동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일주일간 치료를 받았고 폐렴 소견과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받고 퇴원했다. 기간은 짧지만 코로나 환자로 지내는 동안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현재 대한민국의 감염병 확진자 대처 시스템이 예상보다 더 혼란 속에 빠져 있다고 느꼈다. 첫 번째는 연락망이 너무나 중구난방이다. 기관 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처음 확진 판정을 받으면 정말 여러 곳에서 역학조사와 격리장소 마련 등을 위해 연락이 오는데, 그때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답해야 했다. 두 번째는 비상상황 시 바로 의료적인 조처를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양성 결과가 나왔던 두 번째 PCR 검사를 받은 날 새벽에 급성 호흡곤란이 왔었다. 정말 위급했었기 때문에 당장 응급처치를 해야 했다. 하지만 애초 모든 병원의 응급실은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갈 수 없었다. 1339 등 관련 연락처는 상담원 연결도 힘들뿐더러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상황에 ARS 연결 과정이 너무나 길어 불편하고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나마 경증이고, 호흡곤란도 저절로 가라앉아 괜찮았지만, 정말 중증이거나 급성일 경우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그대로 자택에서 숨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코로나 치료를 받는 모두가 가장 바라는 것은 빠른 쾌유다. 하루라도 빨리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우리는 자격 있는 이해관계자인가?

약 10여년 전 ‘남자의 자격’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라는 부제를 갖고 있던 이 프로그램은 합창단 도전, 실제 라면으로까지 출시된 라면왕 콘테스트 등 유명한 에피소드를 많이 만들어냈다. 비록 목표했던 101가지 모두를 담지 못한 채 97개의 미션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방송에서 보여준 출연진들의 노력은 이들의 자격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자격(資格, qualification)’은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거나 일정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을 의미한다. 최근 진행된 UN 총회에서는 유명 보이그룹인 방탄소년단이 문화특사 ‘자격’으로 연설을 했다. 의사, 바리스타, 제빵사 등의 직업도 ‘자격’을 취득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부적절한 행위가 발견되면 부여받은 자격이 정지 또는 취소되기도 한다. 이처럼 ‘자격’은 어떤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기준이 된다. 최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주주뿐 아니라, 임직원, 고객, 협력회사,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하여 기업경영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ESG(환경, 사회, 거버넌스)가 기업의 중요한 경영전략이 된 이후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그리고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에 당당히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MZ세대와 지역사회의 이해관계자를 신경 쓰기 시작한 기업과 기관이 늘어나고 있고, 조직 내부의 노동조합을 포함한 임직원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기업은 이처럼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경영을 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기업의 이해관계자는 이와 같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이해관계자’는 아무런 조건 없이 부여받은 권리일까? 마땅히 해야 할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월간 성수동] 오늘도 대표직을 내려놓고 싶은 그대에게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제가 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한 초기 스타트업의 창업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하면서도 이렇게 서늘하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이 그만두시면 회사도 함께 문을 닫게 될 겁니다.” 새로운 리더가 갑자기 등장하여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한다는 이야기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다. 창업의 나라인 미국에서는 실제로 스타트업 대표자 교체가 종종 일어난다. 하지만 이런 일은 대부분 회사가 망하기 직전이라 어떠한 선택이라도 해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 벌어진다. 회사의 주요 지표들이 호조를 보이고 있고 자금 역시 1~2년 이상 버틸 정도로 거뜬하다 해도 자신이 창업하지도 않은 스타트업의 대표직을 수행할 정도로 능력 있는 사람을 대표로 모셔오는 일은 무척 어렵다. 그리고 그 정도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이미 창업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재미있는 것은 사업을 계획대로 잘 진행하는 창업자들도 ‘대표자를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종종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 즉 ‘메타인지’ 능력이 뛰어날수록 더 그렇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은 맞나’ ‘내가 대표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은 아닌가’ 등의 의문을 가지게 된다. 내가 없더라도 내가 아끼는 사업은 그 자체로 꾸준히 성장하면서, 동시에 대표직의 무게감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달콤한 유혹을 느끼게 된다. 대표직을 내려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회사를 매각하는 것이다. 근래에도 사업의 초기부터 투자로

[아무튼 로컬] 로컬의 시간: 슬로라이프와 생명의 속도

요즘 요가에 관심이 좀 생겨 이런저런 책과 동영상을 찾아보고 있는데 백서현 작가가 80일간 인도 요가원에 다녀와서 쓴 ‘요가 좀 합니다’를 보니 이런 대목이 있다. “인도에서는 평생 쉬는 호흡의 수가 수명과 연관이 있다고 믿기도 한다. 느리게 쉬면 더 오래 살 수 있다.” 처음엔 인도 특유의 신비주의적 생명관이겠거니 했는데 일본의 유명 동물학자 모토카와 다쓰오 전 도쿄공업대학 교수가 쓴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을 읽으면서 뜻밖에도 이게 과학적 근거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모토카와 교수는 동물들이 몸의 크기에 따라 서로 다른 신체시간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즉 포유류의 심장 박동 주기는 체중의 4분의 1 제곱에 비례하는데, 이를테면 코끼리는 3초에 한 번, 생쥐는 0.1초에 한 번 심장이 뛴다. 몸집이 클수록 심장이 느리게 뛴다고 하니 호흡도 느릴 것이고, 슬로비디오처럼 느린 템포로 100년을 사는 코끼리와 훨씬 빠른 생리적 템포로 허겁지겁 몇 년을 살다 죽는 생쥐의 삶을 비교해 보면 ‘느린 호흡=장수’라는 공식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모토카와 교수의 이론에는 극적인 반전이 있다. 포유류의 평생 심장박동 수는 20억회로 몸의 크기와 상관없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5분짜리 동영상을 빨리 돌려 1분 만에 보더라도 그게 같은 동영상인 것처럼 코끼리와 생쥐의 물리적 수명은 다르지만 시간의 밀도를 생각해 보면 결국 같은 길이만큼을 살다 가는 셈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빠르게 혹은 느리게 흐르는 생명의 시간 속에서 동물들은 각자 독자적 세계를 구축해 살아간다는 멋진 가설을 세웠다. 이

[정경선의 최적화 인류] 게으른 소비 먹고 자라는 ‘포장 배송’이라는 가오나시

일본 최고의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꼽히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에는 ‘가오나시’라는 매력적인 조연 요괴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지만, 온천 직원들의 물질적인 욕망을 들어주면서 비대하게 커져가는 이 요괴는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풍자라는 해석이 있다.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는 이 요괴만큼이나 능숙하게 ‘편리함’이란 인간의 욕구를 빨아들이며 무럭무럭 자라는 산업이 있으니 바로 포장 배송이다. 전 세계적인 도시화, 고령화, 1인 가구의 증가에 따라 e-커머스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2014년 1조3000억달러였던 e-커머스 매출은 3년 만에 2017년 2조3000억달러로 증가했고,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비대면 문화로 성장세가 폭발, 2021년에는 4조5000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총알 배송’ ‘로켓 배송’ 등으로 익숙한 ‘퀵커머스’도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퀵커머스는 물류 및 플랫폼 투자로 소량 주문이라도 30분 이내로 배송하는 것으로, 터키의 ‘게티르(Getir)’라는 스타트업은 초고속 식료품 배달을 기치로 올해 6월 5억5000만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터키 둘째 유니콘으로 부상했다. 배달 플랫폼 연합체 딜리버리 히어로의 CEO였던 랄프 벤젤도 올해 ‘조크르(Jokr)’란 이름의 퀵커머스를 설립하였다. 게티르가 진출한 영국의 한 매체가 보도한 것처럼,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도 가기 귀찮은 사람들의 욕망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MIT 부동산 혁신 연구소에서는 올해 1월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쇼핑을 비교하며 온라인 쇼핑에서 물품을 구매하는 것이 더 적은 탄소를 배출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단일 배송이 아니라 여러 상품을 묶음 배송하고, 포장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퀵커머스는 소비자 편의성이라는 절대

최재호 현대차정몽구재단 사무총장
[최재호의 소셜임팩트] 미래 사회와 장학 사업

전 세계적으로 가장 역사가 깊고 명망 있는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은 국제 교육사업의 상징이다. 1945년 제임스 윌리엄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이 미국인과 다른 나라 국민 간의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제안한 교환교육 프로그램으로 출발해 지금은 미 국무부 산하 풀브라이트 재단에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전 세계 150여 개국에서 인재들을 선발하여 미국 유학을 지원하고 있으며, 선발되면 왕복항공료와 미국 유학기간 2년 동안의 학비와 기숙사비를 포함한 연간 4만달러의 장학금을 받게 된다. 현재 풀브라이트 장학생들은 세계 각지에서 정부, 학계, 산업계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퓰리처상 수상자만 88명, 노벨상 수상자는 60명을 배출했다. 국내에서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이현재 전 국무총리, 김승수 전 국무총리 등이 풀브라이트 장학생 출신이다. 덕분에 미국이 실행한 대외정책 가운데 가장 훌륭한 프로그램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장학재단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학사업이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 중심으로 미래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학기술, 환경, 사회혁신 분야의 리더 육성에 집중하거나 아세안 국가에서 한국으로 유학 오는 인재들을 지원하는 장학사업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포스코 청암재단은 ‘포스코아시아펠로십’을 통해 아시아 국가 대학생의 한국 유학을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 10개국 16개 지정대학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장학사업이다. ‘포스코사이언스펠로십’은 기초과학 분야 포스닥(박사후연구원) 예정자를 지원하는 포스닥 펠로십과 매년 20여명의 임용 36개월 내 국내 대학 신진교수 또는 1년 내 임용예정인 연구자를 지원하는 신진교수 펠로십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꿈장학재단은 매년 60여명의 개발도상국에서 한국으로 유학하는 전 분야의 대학원생을 지원하는 ‘글로벌 희망장학’ 사업과 매년 170여명의 고등학교

김민석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사업본부장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한국 기업에 필요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2021년 8월 19일. 미국의 대표적 경제단체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에 참석한 대기업 CEO 181명이 ‘기업의 목적에 관한 성명서’에 서명한 지 2년이 된 날이다. 이날 조슈아 볼튼 BRT 회장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2 년 전,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CEO들은 고객, 직원, 협력회사, 사회 그리고 주주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회사를 운영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기업이 장기적으로 성공하고 이익을 내려면 직원에 대한 투자, 고객과 파트너와의 신뢰 유지 등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고 거래업체와 협력하며 지역사회의 좋은 구성원이 되어야 합니다. 최고의 CEO들은 오랫동안 이러한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전례 없는 위기와 불확실성 속에서도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의 CEO들은 독창성과 혁신, 이해관계자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헌신하며 2년 전에 서명한 성명서에 대한 약속을 강력하게 지켜왔습니다. 그들은 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나는 그들이 계속해서 도전에 임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2년 전, 당시 BRT에 참석한 기업가들이 22년간 지속되어 온 주주중심의 경영정책을 뒤집은 일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더 이상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키는 경영을 해야 한다고 서명한 것이다. BRT는 미국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1972년에 설립된 경제단체다. 시민의 반(反)기업 정서를 누그러뜨리고 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기본적으로 기업과 주주의 이익을 위해 로비하며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주주만이 아닌 고객과 직원,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쓰레기 만드는 기업

‘예쁜 쓰레기’. 형용 모순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월 진행된 ‘화장품 어택(attack)’ 캠페인은 모순된 단어의 조합인 ‘예쁜 쓰레기’의 존재를 우리에게 확인시켜주었다. 환경운동단체 녹색연합은 화장품 용기는 예쁘기만 할 뿐 거의 재활용이 되지 않는 쓰레기이며, 정부는 ‘포장재 재질·구조 등급표시 및 분리배출 표시에 관한 고시’ 개정안에서 화장품 회사만 제외해 특혜를 주고 있다고 폭로했다. 화장품 회사는 소비자의 주목을 끌기 위해 다양한 재질의 장식, 부속품을 화장품 용기에 붙인다. 또 단가가 낮고 휴대성이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대부분 소용량을 선호한다. 그런데 이런 용기는 재질과 크기의 문제로 대부분 재활용이 불가하다. 사실상 90% 이상의 화장품 용기에 ‘재활용 어려움’이라는 라벨이 붙어야 하는데, 화장품 업계는 수출 진작과 브랜드 이미지 하락 등을 이유로 들며 이 행정예고를 번번이 피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민들의 어이없음은 충격과 허탈의 롤러코스트를 거쳐, 분노로 조직됐다. 2주간 8000개의 ‘예쁜 쓰레기’를 모은 시민들은 화장품 회사의 사옥 앞에서 화장품 용기 쓰레기를 펼쳐 놓고 요구했다. “쓰레기를 만든 사람이 책임져라!” 한국사회에 기후시민의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캠페인만큼 풀뿌리가 스스로 움직인 적이 있었을까. 그간 기후변화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개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안타까워만 하던 시민들이, 구체적인 범인으로 화장품 회사를 지목하고 그들을 법과 제도로 규제하기로 한 것이다. 시민들은 SNS를 통해 캠페인을 확산하고, 자신뿐 아니라 지인들을 독촉해 빈 화장품 용기를 모았다. 전국의 제로웨이스트 가게, 로컬푸드 상점, 공정무역 카페 등이 수거장소로 등록하면서 일이 커졌다. 쓰레기가 쌓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