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묻다] 자연권 없는 대선 기후 공약, 무엇이 빠졌나

지구는 거대한 유기체이자 서로 긴밀히 연결된 시스템이다. 그러나 우리 법체계는 오직 인간의 권리만을 중심에 두고 설계되어 왔다.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가 현실화된 오늘날, 자연에도 ‘존재할 권리(Rights of Nature)’를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자연권이 법제화될 때 비로소, 인간 활동이 지구 생태계를 어떻게 훼손하는지, 그것이 곧 우리 생존의 위기로 돌아온다는 점을 제도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 ◇ 법정에 선 도롱뇽, 자연물의 권리를 묻다 1994년 천성산 관통 고속철도 사업은 대표적인 자연권 갈등의 시발점이다. 초기 환경영향평가는 통과됐지만, 공사 지연으로 유효기간(7년)이 경과하면서 재평가가 요구됐다. 그 사이 천성산 일대에는 30여 종의 천연기념물이 추가로 발견됐고, 주변은 생태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그럼에도 사업자는 이를 무시한 채 공사 강행을 선언했다. 이에 환경단체는 법정에 도롱뇽을 ‘원고’로 세웠다. “가장 큰 피해를 볼 도롱뇽이 스스로 권리를 주장할 수 없으니, 시민이 대리인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민법상 자연물은 권리 주체로 인정되지 않아, 3심까지 모두 기각됐다. 심지어 환경영향평가 절차의 명백한 하자마저 법적 쟁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 사건은 ‘사전 예방’이라는 제도의 본래 취지가 무력화된 채, 사후 구제만 남은 법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천성산 사건 이후 20여 년이 지나, 자연권 논의는 제주도로 향했다. 2023년 제주도는 남방돌고래를 ‘생태법인’으로 지정하는 조례를 논의하며 생태계 구성원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첫걸음을 뗐다. 돌고래가 서식하는 해역 전반을 보호 대상으로 삼기 위한 이 시도는, 자연권을 지방 행정 차원에서 실험한 의미 있는 사례다.

[청년이 묻다] 혐오·허위의 늪, 상생의 공론장을 어떻게 되살릴까

우리는 매일 뉴스와 커뮤니티, SNS를 오가며 쏟아지는 정보를 접한다. 그중에는 진실도 있지만,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조작된 허위 정보도 있다. 문제는 이 허위 정보가 단순한 착오나 오해가 아니라는 데 있다. 누군가는 악의적으로 가짜뉴스를 만들고, 누군가는 그 뉴스를 이용하여 혐오를 선동한다. 특히 정치가 그 뉴스에 올라타는 순간, 허위 정보는 더 이상 개인의 착오가 아니라 ‘사회적 무기’가 된다.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선거가 조작됐다”는 음모론은 수많은 가짜뉴스를 촉발했고, 급기야 지지자들은 의사당을 점거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있었다. “중국 간첩이 선거에 개입했다”, “선관위 직원이 중국인이다”, “중국인이 탄핵 반대 집회에 집단 참여했다”는 주장은 근거 없이 유포됐고, 실제 국회의원과 공인들까지 그 주장을 퍼뜨렸다. 특히 이 허위 정보들은 보수 유튜버 채널이나 커뮤니티를 타고 ‘사실’처럼 굳어지며, 혐오를 부추겼다. 정보 홍수 시대, 진실은 늘 자극적 허위정보에 밀린다.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 취향에 맞춰 자극적인 콘텐츠를 우선 노출해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과 ‘필터 버블(filter bubble)’을 강화한다. 반면 진실은 검증이 필요해 즉시성이 떨어지고, 복잡한 사실 관계는 클릭을 유도하지 못한다. 결국 진실은 밀리고, 허위는 증폭된다. 이 구조 속에서 시민이 무력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공론장의 붕괴, 민주주의의 위기로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정보 환경이 개인의 오보 인식을 넘어 사회 전체의 공적 신뢰를 파괴한다는 점이다. 허위정보·혐오·음모론이 공론장을 잠식하면, 공동체 감각은 무너지고 정치적 분열은 일상이 된다. 사실을 검증하고 토론하던 광장은 ‘진영의 감정 대결장’으로 전락하며, 민주주의도

[청년이 묻다] 기후위기를 해석하는 ‘국가의 언어’는 무엇인가요

기후위기는 이미 현실이 되었다. 더 이상 과학적 경고에 머물지 않고, 재난의 형태로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있다. 폭우와 산불, 폭염과 가뭄은 일상의 풍경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기후로 인한 위험을 직접 겪고 있다. 하지만 정책의 언어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재난이 일어나면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이 제시되지만, 이 위기를 어떤 방향성 아래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희미하다.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항목은 많지만, 왜 그것을 하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자 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이번 대선 공약을 살펴보면, 기후위기 대응은 여전히 ‘무엇을 하겠다’는 정책 나열에 머물러 있다. 구체적인 사업과 예산 항목은 많지만, 이를 통해 어디로 나아가고자 하는지 명확한 방향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재난으로 현실화된 기후위기 앞에서, 단편적인 대응 조치만으로는 근본적인 전환을 이끌어 내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의 양이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전환할 것인가’를 보여 주는 전략적 로드맵이다. 대한민국은 곡물·에너지 자립도가 낮고 기후재난에 취약하다. 기후위기를 방치할 경우 일상생활과 생명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동시에 탄소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글로벌 산업 질서 속에서, 기후 대응은 무역장벽을 피하고 새로운 산업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핵심 전략이 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기후대응 역량은 국가 경쟁력과 신뢰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고 있으며, 복지 측면에서도 폭염·침수·에너지 불안정에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는 정책적 연계가 절실하다. 기후위기를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기반은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으며, 지금 필요한 것은 전방위적이고 구조적인 전환이다.

[청년이 묻다] AI 칼바람 넘어 시민의 도구로…‘기술 민주주의’를 묻다

작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자 곧바로 ‘효율적인 정부’를 기치로 내걸었다. 그는 비효율로 지적받아온 공공기관 구조와 예산을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신설된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전격 임명됐다. 머스크는 낡은 미국 정부의 IT 시스템과 관료 조직을 맹렬히 비판하며, 기술만이 비효율의 핵심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실리콘밸리 출신 IT 전문가들이 각 부처로 파견되자 공공기관은 줄줄이 통·폐합됐고, 해외 원조 예산도 대폭 삭감됐다. 1월 한 달 동안만 7만5000여 명이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으며, 5월까지 수십만 명이 더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정부효율부는 공식 홈페이지에 “계약·보조금 취소, 자산 매각, 사기 적발 등으로 1700억 달러(한화 약 238조 원)의 예산을 절감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머스크 본인은 물러났지만, 그가 심어놓은 효율부 직원들이 구조조정 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다. 머스크는 여전히 “소프트웨어만 제대로 작동하면 대부분 문제가 해결된다”며 기술 만능주의를 거듭 주장하고 있다. ◇ 없애고 줄이면 효율적으로 돌아간다는 착각 기술 발전은 필연적으로 ‘효율성’과 직결된다. 과거 우리가 대양을 가로질러 항해하고, 하늘을 비행하며, 시공을 초월해 소통하는 모든 과정에는 기술 혁신이 자리한다. 그러나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환상은 이면의 리스크를 가린다. 메타가 지난 2월 전체 인력의 5%를 해고했고, 마이크로소프트도 최근 3% 감원을 발표했다. AI가 불러온 ‘칼바람’이 현실화된 셈이다. 우리는 ‘AI로 생산성 10배 늘리기’, ‘자동화로 월 1000만 원 벌기’ 강의 앞에 열광하지만, 그 이면에 숨은 조직 붕괴와 사회 안전망의 구멍은 보지 못한다.

[지역의 미래] “군수님, 돌연변이가 살아남습니다”

아프리카 남동부에서 2000km 떨어진 인도양에 모리셔스(Mauritius)라는 섬나라가 있습니다. 16세기부터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이 섬은 수백만 년 동안 고립된 생태계로 진화했습니다. 그래서 고유종이 많았습니다. 청둥오리, 앵무새, 거북이, 야자나무, 거미 등이 살았으나 대부분 모리셔스 고유종이었습니다. 그중에는 도도새도 있었습니다. 비둘기의 한 종으로부터 진화했으나 하늘을 날지 못했습니다. 고립된 섬에는 천적이 없었고 땅에는 좋아하는 과일과 씨앗이 풍부했으니 굳이 날 필요가 없었겠지요. 결국 이 녀석들의 몸무게는 10~18kg까지 늘어납니다. 1598년 네덜란드인들이 모리셔스에 도착했을 때도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천적이란 걸 몰랐으니까요. 80년 후 도도새는 멸종되었습니다. 46억 년의 지구 역사에는 10억 종이 넘는 생물종이 살았다고 합니다. 그중 99%는 도도새처럼 사라지고 1% 미만이 살아남았습니다. ◇ 적자생존, Survival of the fittest 영국 맨체스터의 자작나무 숲에는 흰 나방이 많았습니다. 흰 나무껍질에 위장하기 좋은 밝은 색상의 나방이 생존에 유리했습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자 석탄을 태운 연기가 하늘과 나무를 뒤덮었습니다. 흰 나방은 줄어들고 검은 나방이 번성했습니다. 검은 나방은 흰 나방의 색이 변화한 것이 아니라 흰 나방의 돌연변이 중 하나였습니다. 모든 생물집단에서 돌연변이는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대부분은 생존에 불리할 때가 많지만 환경이 급변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불리했던 유전적 특성이 오히려 생존의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살아남는 것은 강한 자가 아니라 변화된 환경에 가장 적합한 자입니다.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초는 도쿄에서 600km 떨어진 인구 6천 명의 산골이었습니다. 25년 전, 지역 주민들은 NPO를 만들고 그린밸리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국내외 예술가를 초대해서 산골마을에 활력을

[청년이 묻다] 불평등 고용시장 바로잡기, ‘한국판 동등대우법’ 도입을

더나은미래 창간 15주년을 맞아 사회적협동조합 ‘스페이스작당’과 함께 연재하는 <청년이 묻다, 우리가 다시 쓰는 나라>에서는 안보·사회·공동체·상생 네 분야에서 청년 12명이 직접 제안한 구체적 정책 대안을 소개합니다. 이들이 고심 끝에 내놓은 구체적 대안들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계약의 초안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청년들은 어떤 사회를 상상하고 있을까요. 그 상상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다시 써야 할 미래의 서문입니다. /편집자 주 대선이 한창이다. 후보들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발이 닳도록 전국을 누비며 ‘새로운 사회’를 약속한다. 낡은 문제에 대한 해법은 늘어나지만, 정작 하나뿐인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는 제각각이다.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수십 갈래인 양, 각 당의 후보들은 자신들이 신뢰하는 길을 자신 있게 제시한다. 그러나 정답이 너무 많아 오히려 혼란스럽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한 문제도 뜨거운 감자다. 비교적 안정적이고 양질의 일자리인 1차 시장(대기업·공공기관 정규직·공무원·전문직)과 열악한 2차 시장(중소기업 비정규직·일용직·플랫폼 노동) 사이의 임금·복지 격차는 한국 사회 불평등의 근원으로 지목된다. 특히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과 정규직·비정규직 간 처우 격차는 OECD 최고 수준이다. ◇ 역대 대선 후보들의 ‘이중구조 탈출구’ 공약 살펴보니 역대 대선에서 비정규직 해법으로 가장 많이 등장한 것은 ‘정규직 전환’이었다. 그러나 무기계약직 전환을 통한 고용 안정성 강화가 처우 개선으로 이어진 경우는 드물었다. 계약 만료로 쉽게 해고되지 않는 정도를 제외하면, 실질 임금 격차나 복지 혜택 차이는 대부분 남아 있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당선자는

김진아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썸네일 가로형
[영리한 비영리] 정치는 흔들려도, 시민사회는 단단하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민사회는 위태로워진다. 예산이 끊기고, 사업이 중단되고, 단체는 해산된다. 지난해 사회적경제 분야 예산은 대폭 삭감돼 현장이 큰 타격을 입었다. 2024년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 지원 예산은 전년(2022억 원) 대비 60% 줄어든 786억 원에 그쳤다.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 예산은 411억 9000만 원에서 88.7%나 삭감돼, 고작 46억 7000만 원이 배정됐다.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 육성 예산도 69억 6000만 원에서 26억 9000만 원으로 줄었고, 중소벤처기업부의 사회적경제 기업 성장 지원 예산은 아예 0원이 됐다. 지자체도 다르지 않았다. 2022년 12월 서울시의회는 ‘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 조례 폐지조례안’을 통과시켜 마을공동체사업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현재 마을공동체사업과 주민자치 지원은 서울시에서 사실상 종료됐다. 정책은 곧 사라졌고, 현장에서 쌓은 성과도 함께 무너졌다. 결국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장애인, 고령자, 한부모 등 취약계층을 고용하던 사회적기업들은 인건비 보조가 끊기면서 존폐의 기로에 섰고, 지역사회에서 이웃을 연결하던 마을 활동가들은 공간을 잃고 흩어졌다. 마을공동체 활동을 통해 대안을 만들어가던 지역의 생명력이 일순간에 침잠했다. 시민의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던 작고 지속적인 실천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 환경은 시민사회의 존속 여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사회의 대안을 만들고, 일상 속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시민사회는 정치가 흔들리거나, 정권의 변화에 따라 출렁인다. 문제는 구조다. 제도와 법률이 뒷받침되지 않는 시민사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사회적 신뢰의 약화, 시민 참여의 위축, 사회 혁신의 퇴보,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이어진다. ◇ 시민사회기본법을 통해 만드는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세대 다양성, 리더십의 시간은 지금이다

이번 달 유엔 청년 사무국과 로마클럽, 장크트갈렌 심포지엄이 공동으로 ‘세대 간 리더십이 비즈니스의 혁신과 지속가능성을 여는 방법’이라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번 보고서를 낸 로마클럽은 ‘성장의 한계’로 잘 알려진 국제 싱크탱크이며, 유엔 청년 사무국은 전 세계 청년의 정책 참여를 제도화하기 위해 설립된 유엔 조직이다. 이들이 발간한 보고서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세대를 아우르는 리더십, 곧 ‘세대 간 거버넌스’가 필요합니다.” 보고서는 먼저 기업 내 리더십 구조에 존재하는 세대 간 불균형을 지적한다. 글로벌 CEO의 평균 연령은 56.8세, 이사회 구성원은 58~64세에 이른다. 반면, 전 세계 노동인구의 중간값은 39.6세에 불과하다. 미국 S&P500 기업 기준으로 50세 미만 이사는 5%에 불과하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한 연령 분포를 넘어, 기업의 장기 전략·기술혁신·조직문화 차원에서 구조적 리스크를 초래한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리더는 조직의 문화를 만들고, 그 문화는 다시 구성원의 판단과 행동을 좌우한다. 특정 세대에만 리더십이 집중될 경우, 이는 기업의 미래 대응력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 젊은 세대는 장기적인 사회·환경 과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기술 변화에도 빠르게 적응한다. 이해관계자들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에도 적극적이다. 그러나 이들이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많은 기업이 “우리는 MZ세대와 소통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내 프로그램과 포럼, 설문조사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다고 주장하지만, 보고서의 질문은 더 본질적이다. “당신의 의사결정 구조에 모든 세대가 실질적으로 포함돼 있는가?” ◇ 세대 간 리더십, 기업에 가져오는 다섯 가지 변화 보고서는 세대 간

이재현 NPO스쿨 대표
[사회혁신발언대] ‘네왜문화’에서 ‘왜네문화’로 바뀐 비영리 현장의 과제

서구사회는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하면 부하직원이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상사가 그 이유를 납득시키고 나서야 비로소 ‘네’라는 답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상사가 지시하면 우선 ‘네’라는 답을 하고 뒤돌아서 ‘왜?’라고 의구심을 가진다. 직무중심의 조직문화는 납득할 만한 직무를 부여할 때 업무가 작동하는 원리이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직급중심의 조직문화란 사람 사이에 서열을 정해주면 업무가 작동하는 원리를 뜻한다. 따라서 전자는 이유가 중요하고 합의과정이 중시되어 능동성이 개입된다. 후자는 직급에 적합한 권한과 책임의 부여가 중요하고 일정한 당위성이 개입된다. 직무중심이냐 직급중심이냐의 기준으로 미국 기업문화와 일본 기업문화를 조망한 윌리엄 오우치의 Z이론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기인한 조직을 바라보는 두 개의 관점은 수직인가, 수평인가라는 이분법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질서가 있는지(hierarchy, 하이어라키), 아니면 복잡하여 질서가 잘 드러나지 않는지(heterarchy, 헤테라키)에 대한 논쟁이 그 시작이다. 하이어라키는 서열을 뜻하는 위계(位階)로 풀이된다. 질서가 있으되 잘 드러나지 않는 복잡한 상황을 일컫는 헤테라키는 혼계(混界) 또는 비위계라고 불린다. 혼계는 권한이 분산되고 협력과 유연한 작동이 가능하여 수평적 조직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하지만 혼계를 수평적 조직으로 단언하면 안된다. 그 이유는 수직적 조직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수평적 조직으로의 변화를 급속히 이행하는 많은 경우 예기치 못한 변수와 왜곡이 불거지고 구성원들이 느끼는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완벽한 수평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구현되지 않는 까닭이다. 혼계가 지향하는 것은 기계적으로 완벽한 수평이라기보다 각자의 역할에 따른 행동이 보장되고 그 바탕 위에 서로 건강한 관계를

[공익이 이끄는 데이터 과학] 한국의 재단들도 ‘시빅 테크’에 투자할 때다

기술은 편리함과 효율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 혜택이 특정 계층에 집중되면, 불평등은 심화되고 사회적 갈등은 더 깊어진다. 이런 구조 속에서 기술 발전이 오히려 대중의 지지를 잃는 일도 발생한다. 기술은 산업과 시장을 위한 도구를 넘어, 더 나은 정부와 사회를 만드는 수단이어야 한다. 필자는 미국의 대표적 시빅 테크 단체인 ‘코드 포 아메리카(Code for America)’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했다. 지금은 다시 대학으로 돌아와, 기술이 어떻게 더 신뢰할 수 있는 공공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가를 연구하고 있다. ‘시빅 테크(civic tech)’는 공익을 위한 기술(public interest tech)의 한 분야로, 시민이 경험하는 정부 서비스를 기술로 개선하는 일을 말한다. 복지 신청에 걸리던 한 시간을 10분으로 줄이는 것, 시민이 법안에 직접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플랫폼을 설계하는 일, 지역 문제 해결에 시민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도구 설계 등이 대표적이다. 2006년 MIT 오픈코스웨어를 국내 대학에 도입하며 시작한 내 시빅 테크 활동은 올해로 19년째다. 201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에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현 C.O.D.E.)’에서 활동하며 오픈데이터와 디지털 전환, 사회혁신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왔다. 이후 지난 10년 가까이 미국의 학계와 공익 기술 현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민간 재단들이 기술 생태계 설계자 역할을 자처했다는 점이다.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라, ‘공공을 위한 기술’이라는 실험의 출발점이자 성장 플랫폼 역할을 해낸 것이다. ◇ 코드 포 아메리카와 미국 기업 재단의 실험 전자상거래 기업 이베이 창업자가 만든 ‘오미디야르 네트워크’는 2000년대

[기후 유니버스] 대선후보의 기후공약, 무엇을 봐야 할까요?

대선후보들의 본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조기 대선으로 시간이 부족하지만, 유권자는 각 후보의 공약을 냉정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몇 년간 기후재난이 일상화되면서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해 지구 평균 온도가 파리협정 1.5도 목표를 일시적으로 초과했다고 밝혔다. 기후 마지노선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기술 현실성을 감안할 때, 화석연료 신규 프로젝트 중단과 재생에너지 중심 전환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다. 산업·교통·건물 등도 중요하지만, 대통령 임기 동안 가장 시급히 집중해야 할 분야는 에너지다. 온실가스 감축은 미래세대에게 먼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청년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이 관점에서 차기 정부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6가지 기후 공약을 소개한다. ① 탄소예산 기반 2035년 감축목표 수립 ‘탄소예산’이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특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총 온실가스 양을 뜻한다. 올해 9월, 우리 정부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이하 NDC)를 제출해야 한다. IPCC 6차 보고서는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2035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를 60% 감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국내 기후단체인 플랜1.5는 한국의 목표 감축률을 최소 66.7%로 제안한 바 있다. 환경부는 관련 초안을 오는 6월 말~7월 초 공개할 예정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파리협정 탈퇴와 같은 혼란이 있었지만, 국제사회는 기후 대응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새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처음으로 밝힐 감축 목표인 만큼, 한국의 기후 리더십에도 이목이 집중될 전망이다. ② 2049년까지의 장기 감축경로 법제화 2035년 목표뿐

[논문 읽어주는 김교수] 파타고니아에서 만난 사람들

얼마 전,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도시 벤추라에 본사를 둔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를 찾았다. 전현직 CEO와 CFO, 철학 담당 임원 등 주요 경영진을 직접 만나 대화할 기회였다. 2018년 파타고니아 코리아의 도움으로 첫 방문한 인연이 이어져, 한국에서 파타고니아의 경영철학과 행동주의 기업으로서의 운영 방식을 전파하는 활동을 했다. 작년에는 ‘파타고니아 비즈니스 스쿨’을 열고 선후배들과 함께 공부하며 다시 이곳을 찾게 됐다.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 1973년, 등반가였던 이본 쉬나드가 창립한 파타고니아는 이 신념을 지켜왔다. 유엔환경계획(UNEP)으로부터 ‘지구환경대상(Champions of the Earth)’을 수상했고, 세계 여러 지속가능성 지표에서도 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잉거 안데르센 UNEP 사무총장은 “파타고니아는 민간기업이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훼손, 지구 위협에 맞서 싸우는 데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에 도착한 다음 날, 오랫동안 파타고니아의 지속가능성을 책임져온 ‘거북이 할아버지, 릭 리지웨이’와의 미팅으로 일정이 시작됐다. 이후 초대 CEO이자 환경운동가인 크리스 톰킨스, 현 CEO 라이언 갤러트, CFO, 철학 담당 임원, HR 총책임자, 제품 총괄 사장 등 다양한 리더십과 일주일 동안 대화를 나눴다. 짧지만 강렬했던 시간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은 세 가지 질문을 공유하고자 한다. ◇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지구에 도움이 되나요?” 얼마 전 창립 50주년을 맞은 파타고니아는 다음 50년을 준비하며 가장 중요한 과제로 무엇을 삼았을까. 파타고니아 철학 담당 임원이자 비즈니스 스쿨 교장인 빈센트 스탠리는 주저 없이 ‘제품 품질’을 꼽았다. 의류 제조업체로서 품질을 강조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