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어로 ‘인간 사랑’을 의미하는 필란트로피는 단순히 어려운 사람에게 돈을 베푸는 자선만을 뜻하지 않는다. 시민들이 사회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돈과 재산뿐 아니라 시간·지식·기술·관계망을 자발적으로 내어놓으며 공동체의 변화를 만들어 가는 공공적 실천이다. 따라서 필란트로피의 핵심은 기부액의 크기보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 타인에 대한 연대, 그리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시민의 믿음에 있다. 한국 근대의 기부문화와 시민정신도 이러한 과정에서 성장했다. 1896년 독립문 건립 모금은 신분과 지역을 넘어 시민들이 공공의 상징물을 함께 세운 근대적 모금운동의 최초 사례였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 이재민을 돕기 위한 모금은 국경과 민족을 넘어 고통받는 타인을 돕고자 한 인도주의적 실천이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는 상인·노동자·농민·학생·여성 등이 나라의 위기를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참여했다. 이후 기부문화는 민립대학설립운동, 물산장려운동, 재해와 기근 구호, 한센병 환자 지원, 해외 한인의 독립운동 자금 모금 등으로 영역을 넓혀 갔다. 이 과정에서 기부는 개인의 선행에 머물지 않고 시민을 조직하고, 공동의 목적을 형성하며, 필요한 제도를 만들어 가는 힘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식민지 권력은 우리 민족의 자발적인 필란트로피 운동을 탄압하고, 전쟁을 위한 국방헌납과 같은 비자발적 모금을 강요했다. 광복 이후에도 독재 정부는 일제가 시행하던 제도를 그대로 답습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필란트로피가 회복되기 시작한 것은 민주화 이후에 이르러서였다. 역사를 돌아보면 필란트로피 운동에는 신문과 언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독립문 건립 당시에는 독립신문이, 국채보상운동 때는 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만세보·제국신문 등이 사회문제를 알리고 모금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시민들의 참여 방법을 안내하는 한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