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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권의 Écrire<에크리>] 남을 돕는 일이 쉬운 일이라고요?

지난주에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비영리단체의 활동가인데, 자신과 배우자의 월급을 합해봐야 차상위계층 수준이라고 합니다. 남편에게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보육료를 받자고 얘기하자 사회복지 일을 하는 남편이 ‘그런 건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며 반대했다고 합니다. 1년 전에 만났던 사람은 자신의 직장인 기업에서 ‘사회공헌 담당자들은 돈을 벌어다 주는 영업 조직에 감사함과 죄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기업은 돈을 버는 곳인데 당신은 돈을 쓰기만 하면서 월급을 받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의 직무를 무시하는 말을 면전에서 듣고도, 이 사람은 좋아했습니다. 어쨌든 회사가 기부를 한다니 다행이라면서 말입니다. 얘기를 듣다 보니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졌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남을 위해 살아간다는 사람들은 자신을 낮추는 데 익숙합니다. 저는 이런 사람을 존경하면서도 이들의 태도가 꼭 옳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섬기는 마음’이 현실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기부자들의 기부금, 정부의 복지 예산, 기업의 사회공헌 예산이 아닙니다. 기부금을 받고 복지예산을 받아 현장에서 활용하는 사람들의 능력과 열정과 헌신이 세상을 바꿉니다. 세상의 가난과 질병을 극복하는 것은 돈만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강함을 잃어버린 이들을 위로하고 이들이 심지를 가다듬도록 돕는 것이 쉬울 리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자리 잡은 가난의 악순환에 잘못 투자된 돈은 오히려 가난을 부추깁니다. 비영리단체의 활동가들과 복지관에서 근무하는 복지사들은 이런 문제들을 모두 고민해 현장에서 해결하는 전문가들입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필요한 폭넓은 시야와 헌신적인 집중력, 전문적인 지식은 이들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프레임 속 여성 家長은 편견과 싸우는 女戰士”

한부모 여성가장 희망을 담아낸 조선희 작가 아름다운재단 희망가게 100호점 기념 홀로 아이 키우는 여성 애환 담아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라 말하던 어머니 이번 작업 시작한 계기였죠” 사진 속의 그들은 대부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틀어 올린 머리 위에 예닐곱 개의 가위를 꽂고 짙은 눈매로 바라보고 있는 이는 미용실 사장이다. 장비들이 즐비한 세차장 한가운데 작업복 차림으로 한 손에 물 분사기를 들고 당당히 서 있는 사람은 세차장 사장, 기중기가 작동하고 있는 폐자제 더미 위에 절단기를 들고 서 있는 그는 재활용센터 사장이다. 29명의 사장이 모두 저마다의 도구를 들고 결연한 표정과 몸짓으로 카메라 건너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사진 속 그들은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가게를 꾸려가고 있는 ‘어머니’사장들이다. “카메라 앞에 난생처음 모델로 서게 된 그분들에게 말했죠. ‘당신을 전사(戰士)라고 생각한다’고. 미용 가위, 족발용 식도, 세탁소 다리미 등은 무기인 셈이라고.” 사진작가 조선희(39·경일대 부교수)가 올 4월 중순부터 최근까지 전국을 돌며 한부모 여성 가장들의 창업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냈다. 그는 “사람의 눈은 다 보는 듯하지만 원하는 것만 보는 반면, 카메라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 준다”며, 사진가인 본인의 역할은 사람들이 보지 못한 걸 잡아내는 일이라고 했다. 이번 사진 작업의 대상이었던 그네들에 대해, 조 작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편견과 싸우는 사람들”이라 정의했다. 굳이 “싸운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그 어머니들의 삶이 치열하고, 폭발하는 에너지가 싸움에 준하기 때문”이란다.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조 작가는 “나도 한부모가정 어머니의

“부서간 충돌도 음악처럼 소통으로 해결해요”

중소기업중앙회 사업 ‘즐거운 예술, 신나는 일터’ 솜피 사내 밴드 Let’s “자, 시작하겠습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편안하게 하세요.” 지난 20일 오후 6시 분당의 한 스튜디오. 긴장과 기대를 품은 표정의 아저씨와 아줌마가 밴드 연주를 시작했다. 자우림밴드의 ‘매직카펫라이드’다. 마법의 융단을 타고 우리 둘만의 세상인 마법의 정원으로 날아가보자는 원곡의 느낌이 조금 묻어 나오지만 아직은 어색하다. 특히 건반을 맡은 차명이씨는 분주하다. 눈으로 악보를 보고 한 손으로 건반을 치면서 귀로는 동료들의 연주를 듣는다. 명이씨는 자동 차양제어시스템 전문기업인 ㈜솜피의 인사, 회계, 총무를 맡고 있는 관리부장이다. 10살과 12살 난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면서 ㈜솜피의 사내 밴드인 ‘Let’s’의 건반 연주자이기도 하다. 연주자라고 하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건반을 쳐본 신참이다. “옛날부터 피아노를 치고 싶었어요. 마음만 있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회사에서 밴드를 모집하고 밴드 지원을 해준다 기에 덜컥 신청을 해버렸어요.” 덜컥 신청을 하고 다섯 번에 걸쳐 연습을 했는데 요즘 명이씨는 살맛이 난다. 밴드를 하고부터 새로운 활력을 찾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연습을 마치고 집에 가서도 아이들 피아노로 연습을 해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과 얘기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이 생겼고 아이들이나 남편이 저의 회사 일에 더 관심을 갖게 됐어요. 엄마가 공연을 한다고 하니깐 벌써부터 난리죠.” ‘Let’s’는 오는 7월 12일 ㈜솜피의 창립 21주년 행사에서 공연을 한다. 맹렬히 연습하고 있는 ‘매직카펫라이드’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곡은 한국 록그룹사운드의 시조라 할 법한 키보이스(Key Boys)가 불렀던 ‘해변으로 가요’다. 사업개발부서장인 안민호

정부 지원 없는 579종 질환까지… 의료 사각지대 해소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희귀난치성질환 지원사업 지난 20일 규빈이는 두 돌을 맞았다. 엄마 김선미씨는 여느 아기들처럼 예쁜 옷도 사 주고 싶고, 맛있는 음식들도 가득 해 두 번째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싶지만, 그 대신 ‘골수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한다. 규빈이는 상세불명 면역결핍이라는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다. 무균실에서 생활해야 하기에 생일잔치는 꿈꿀 수도 없다. 폐렴으로 입원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낫지 않아 결국 큰 병원을 찾으니, 상세불명 면역결핍이란다. 그 날 이후로 규빈이는 무균실에서 5개월째 투병생활 중이다. “규빈이 누나도 희귀난치성질환을 앓았거든요. 선천성 부신장애로 1년 넘게 고생하다가 결국 하늘나라로 갔는데, 규빈이도 희귀병이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게다가 상세불명 면역결핍은 아직 정부 지원에 포함되는 희귀난치성질환 종류가 아니거든요.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죠. 바이러스 수치 때문에 사용하는 희귀 의약품값이 1일치가 33만원이니, 치료비·수술비 등 의료비 들어가는 게 오죽하겠어요? 다행히 기업이나 단체, 재단 등에서 관심 갖고 도움 주는 곳들이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국내 희귀난치성질환자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다. 본격적인 역학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약 13만명에서 많게는 100만명선까지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희귀난치성질환자에 대한 정부의 의료 지원 현황은 크게 세 가지로 차상위 희귀난치성질환자를 대상으로 의료비 본인 부담 부분을 정부에서 전액 지원하는 ‘차상위 본인 부담 경감사업’, 저소득층 희귀난치성질환자의 의료비 본인 부담 부분을 정부에서 전액 지원하는 ‘의료비 지원사업’, 그리고 의료비 본인 일부 부담을 총진료비의 10%로 경감해

“나눔 노하우 공유하고 협력의 끈 만들어요”

한국NPO공동회의 2011 소통과 나눔 콘퍼런스 개최 ‘위드’ 급식사업·’글로벌케어’ 식수 개선… 단체 특징살려 전문적 사업 펼쳐… 우수 사업의 수행과정·방법 공개 1990년대 초반 몽골에서는 학교 급식이 사라졌다. 공산주의체제 아래 시행됐던 일괄 급식 방식이 시장경제로 돌아서면서 바뀌었다고 한다. 이후 몽골 아동들의 영양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육식 위주의 식습관과 넉넉지 않은 경제 형편 탓으로 하루 한 번 또는 두 번의 식사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고자 ‘사단법인 위드’는 2006년부터 몽골 내에서 학교급식 시범 운영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위드의 직원과 관계자들은 대부분 식품영양 관련 전공자들로서 핵심 사업도 먹을거리에 관련된 내용으로 집중돼 있다. 위드는 몽골교육문화과학부와 협정을 맺어 7년 동안 도시 빈민지역, 지방 도시지역, 유목민지역 등지의 3개 시범학교에서 학교 급식을 실시하고, 몽골 전 지역으로 확대 가능한 학교급식 모델을 제공할 계획이다. 한편 올해로 5년차에 접어든 사업이 독립적으로 자리 잡도록 하기 위해 몽골 내 자체 전문 인력 양성까지 담당했다고 한다. 서연경(38) 전략연구 팀장은 “처음에는 우리나라에서 전문 인력이 파견돼 모든 시설을 운영했지만, 차츰 몽골인들이 자체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대학교수를 파견해 식품영양 관련 학과 학생을 길러내는 일을 했다”고 밝혔다. 위드의 영양사업 결과 시범학교 학생들이 매일 점심식사를 섭취하는 비율이 40%가량에서 80%가량으로 약 두 배 늘어났으며, 학생들의 영양 지식 정도도 전보다 유의미하게 높아진 수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런 성과에 주목한 몽골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급식 시범학교를 방문해 상황을 파악하기도 했다. 국내외 저소득

굿네이버스와 함께하는 아동권리교육②

학대 83%가 가정에서… 이웃의 관심이 아이를 지킵니다 1. 우리 아이가 알아야 할 UN아동권리 2.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아동학대 예방 3. 건강한 몸과 마음 스스로 지키기 2010년 한 해 동안 전국 45개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통해 아동학대로 신고된 건수는 총 9199건, 이 중 아동학대로 판정된 사례는 5657건이라고 합니다. 피해 아동의 연령은 만 7~12세가 전체의 44.7%를 차지해, 상당수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동들로 나타났습니다. 한편,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가 83.2%로 가정 내 학대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가해자의 절반 이상이 양육태도와 방법을 잘 몰라서 또는 사회·경제적 스트레스로 학대를 저지르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아동보호 전문기관 설치 대비 추계 아동인구수를 살펴보면 1개 아동보호 전문 기관이 담당하는 아동 수는 평균 22만6732명이라고 합니다. 담당 기관만이 홀로 감시자 역할을 하는 동시에 대상 아동 전체를 학대로부터 보호하고 지켜내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라는 얘기입니다. 아프리카 가나의 아산티 지역에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비단 아프리카 지역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모두가 함께해야만 합니다. 이번 굿네이버스와 함께하는 아동권리 교육 두 번째에서는 아동학대가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체벌인지 학대인지 판단하지 못한 채 어른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해자가 되는 경우를 예방하고, 나아가 누구라도 아동학대 사실을 발견하면 지역 내 관련 시설에 신고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아동학대는 신체학대, 정서학대, 성학대, 방임, 유기 등의 유형으로 나눌

[날아라 희망아] “내 눈이 나아 엄마 눈물 멈추면 좋겠어요”

실명 위기 처한 8살 소녀 카디자 아프리카 대륙 중앙부에 위치한 나라 차드(Chad)의 다사마을은 수도 은자메나에서 동남쪽으로 17㎞가량 비포장도로 위를 한참 달려 들어가야 하는 열악한 지역이다. 여덟 살 카디자가 홀어머니 그리고 세 명의 어린 동생과 함께 이곳에 살고 있다. 벌판 한쪽 편에 있는 작고 허름한 카디자네 흙집으로 들어서자 가정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살림살이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바닥에는 아이들이 헝겊 조각조차 깔지 않은 채 개미떼와 엉켜 그대로 누워 있었다. 카디자의 어머니 니이타(26)는 갓 태어난 동생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그 곁에 카디자가 고개를 비스듬히 옆으로 돌린 채 멍하니 어딘가를 주시하고 앉아 있었다. 카디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가려진 쪽의 눈을 자세히 살펴보니 알사탕만한 혹이 붙어 있다. 카디자가 한 살쯤 됐을 때, 눈에 이물질이 들어갔고 가려워서 눈을 자꾸 비비다 보니 티눈 같은 상처가 생겼다고 한다. 가까운 곳에 병원이 없는 데다 치료비도 없어 적당한 치료를 받지 못했고, 상처는 점점 자라 눈 속에서 혹으로 자리 잡았다. 비위생적인 환경에 상처가 방치 된 지도 벌써 7년째다. 상처 때문에 앞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튀어나온 안구에서는 고름이 계속 흐르고 있었고, 카디자는 계속해서 통증과 가려움증을 호소했다. “저렇게 심해질 줄은 전혀 몰랐다”며, 카디자의 어머니는 “카디자를 위해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병으로 남편을 잃고 어린 나이에 세 명의 아이들을 돌보게 된 그녀는 “카디자의 고통이 모두 내 탓”이라고 말하며

“끼니 걱정하던 꼬마가 대학생이 됐다니…”

방글라데시 소녀 13년째 후원 권미선씨 방글라데시의 소녀 타니아(Tania Akha ter·18)는 지난해 7월 대학에 입학해 어느덧 대학 생활 1년째를 맞았다. 타니아의 대학생활에 대해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끼니마저 걱정해야 할 정도의 지독했던 가난과 여성이라는 난점을 딛고 끝까지 학업을 이어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동 노동 인구가 100만 명에 달하고, 대학 진학률이 20% 이하인 방글라데시의 현실을 생각하면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한국인 권미선(40)씨는 오늘의 타니아가 있기까지 큰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해도 미선 씨가 대단한 재력가이거나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NGO 직원인 것은 아니다. 미선씨는 경상북도 의회에서 속기사로 일하면서, 두 아들을 두고 있는 평범한 주부다. 27살 미혼일 때인 1998년, 미선씨는 타니아를 처음으로 만났다. 직접 만난 게 아니라 사진으로였다. “처음 다섯 살 타니아를 보고는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빡빡 깎은 짧은 머리, 커다란 두 눈에 두려움이 가득했더랬죠.” 미선씨는 굿네이버스의 해외아동 1대1 결연을 통해 타니아와 인연을 맺었다. 그때부터 13년 동안 150여 차례, 매월 3만원씩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타니아에게 보냈다. “큰 포부를 갖고 시작했던 게 아니었어요. 그저 ‘생각에 그치지 말자. 지금 당장 시작하자’ 이런 마음이었다고 할까요?” 사무실 책상 위에 타니아 사진을 올려 두고, 그녀가 일상 속에서 실천한 건 커피 한 잔 덜 마시고 택시 한 번 덜 타는 일이었다고 한다. 미선씨는 “이상하더라고요. 주려고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얻는 게 더 큰 거예요”라며 타니아에 대한 자랑을

한국 최고의 호텔, 기부금은 고작 매출 0.01%?

우리기업 사회공헌 현주소_ 호텔신라 금융감독원 자료엔 390만원에 불과… 호텔신라 “사랑의 기금 등 2억원 이상”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커진 이후, 기업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공헌에 나서 왔다. 하지만 아직도 활동이 시가총액 상위 50~60개 기업에서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외형적 성장에 따른 ‘의무 방어’성격이 짙은 셈이다. 더나은미래는 기업 사회공헌의 활성화를 위해 업종별 대표 기업들의 사회공헌을 들여다보고,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증진시키려는 시리즈를 시작하게 됐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호텔신라다. 편집자 주   호텔신라는 회사 홈페이지에 소개한 것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서비스 기업’이다. 작년 11월 G20 서울 정상회의 때 VIP들이 호텔 신라에 투숙했다. 2001년엔 FIFA가 월드컵 VIP투숙호텔로 선정하기도 했다. 당연히 그 사회적 책임감도 남다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호텔신라의 홈페이지는 호텔신라를 ‘한국을 대표하는 호텔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우리의 사업이 사회적인 책임과 환경 변화에 균형을 맞출 수 있게 최선을 다 합니다’라는 문구도 있다. 그러나 이런 포부와는 달리 호텔신라가 보여주는 사회적 책임은 그 수준이 낮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등록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호텔신라의 매출은 1조4522억원이다. 이 중 손익계산서상에 표현된 기부금 액수는 390만원에 불과하다. 입에 오르내리는 명품 가방 한 개 값 정도의 기부금 액수다. 취재에 나서자 호텔신라측은 “손익계산서에 표현된 기부금만을 사회공헌 금액으로 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작년 한 해 임직원들의 참여로 ‘사랑의 기금’ 2억1000만원 정도가

소셜이노베이션캠프36_아이디어 제공자·IT 개발자 함께 36시간… 봉사 어플·홈페이지 탄생

제안된 아이디어 145개 중 6개 선별 ‘스스로 봉사활동 찾는 시스템’, ‘길거리 공연 실시간 알리미’ 등 개발 고생을 사서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토요일 자정부터 일요일 정오까지, 36시간에 걸쳐 여섯 개 팀으로 나뉜 60명의 젊은이들이 체육관에 책상과 컴퓨터를 죽 늘어놓고 앉아 문자 그대로 쉼 없이 프로그래밍 작업을 했다. 이들의 머리 위에서는 카운트다운 시계가 초단위로 움직이고 있었고, 주말을 전부 반납하는 일정임에도 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지난 18일 0시부터 19일 12시까지 이어졌던 ‘소셜이노베이션캠프36’의 모습이다. 소셜이노베이션캠프는 전 세계적으로 개최되고 있는 국제 행사로,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가 2010년에 이어 유일하게 개최하고 있는 사회혁신 캠프다. 개인이나 비영리기구(NPO)가 사회를 혁신할 수 있는 공익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9명이 모여 이 아이디어를 웹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으로 실현시킨다. 올해 소셜이노베이션캠프에 제안된 아이디어는 145개이고 그중 6개가 선정됐다. 캠프엔 6명의 아이디어 제안자와 자발적으로 모인 54명의 IT업계 종사자들이 모였다. 이들에게 돌아가는 금전적인 보상은 없다. 36시간을 하얗게 태울 수 있는 열정이 이들의 에너지다. 제안자 이주희씨는 “청소년들이 의미 있는 자원봉사를 찾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최근 봉사시간을 학교에서 강압적으로 채우게 하면서 엄마들이 봉사활동을 대신하거나 아이들이 시간 때우기로 수동적인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자원봉사는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이 성숙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자원봉사를 같이 기획하고, 모이고, 소개하고,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고 제안했어요.” 추상적으로 아이디어만 제시한 것이 아니다.

뉴스킨 코리아 사회공헌 활동

제품 판매 1개당 1000원씩 적립… 전체 회원 15%, 모금활동에 동참… 희귀난치성질환자 의료 활동 지원… 소외계층에 도서관·도시락 제공 ‘뉴스킨 코리아’는 화장품을 비롯한 퍼스널 케어 제품과 건강기능 식품 및 기술 제품 등을 판매하는 세계적인 직접판매기업, ‘뉴스킨 엔터프라이즈’의 한국지사로 1996년 2월 설립됐다. 2009년 2172억원의 매출액으로 전세계 51개국 지사 중 매출액 2위를 달성하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뉴스킨 코리아’는 설립 다음 해부터 장학사업을 비롯해 사회공헌 활동을 시작했다. 뉴스킨 코리아의 사회공헌 활동은 크게 수포성 표피 박리증 어린이, 루게릭 환자 등 희귀난치성질환자 대상 지원사업과 도서관 기증, 도시락 나눔 등의 소외된 이웃을 위한 나눔 사업이 두 축을 이룬다. 그중 가장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펼치는 활동은 바로 희귀난치성질환자 대상 지원사업. 지난 2003년 수포성 표피 박리증 환우 가족 정기모임 시작부터 함께 한 뉴스킨 코리아는 그간 수술 및 치료비를 후원하고 정기모임 등 행사를 지원했으며, 나아가 강남세브란스 병원 수포성표피박리증 연구센터 연구비까지 지원하고 있다. 수포성 표피 박리증은 유전적 피부 질환의 하나로 작은 충격에도 쉽게 피부가 벗겨지거나 수포를 형성하는 희귀질환이다. 뿐만 아니라 뉴스킨 코리아는 2003년부터 건강기능제품 ‘레이시맥스’ 제품을 1개 판매할 때마다 1000원씩 적립하는 캠페인을 9년째 이어오며, 매년 약 1000만원의 기금을 ‘한국근위축성 측삭경화증 협회’에 전달하고 있다. 그 외에도 낙후된 시골 초등학교에는 ‘희망도서관’을, 월드비전을 통해서는 결식아동 및 장애인, 독거노인들에게 ‘사랑의 도시락’을 전한다. 이처럼 활발히 사회공헌 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회원들의 관심과 참여 때문. 지난

굶주림의 땅… 농업 교육으로 틔운 ‘희망의 싹’

뉴스킨 엔터프라이즈말라위 ‘가족자립농업학교’ 말라위의 수도 릴롱궤에서 차로 두 시간여 북쪽으로 달려가 기드온씨를 만났다. 환하게 웃으며 맞이하는 가족들 뒤로 집 한쪽이 부서져 있다. 수확량이 서너 배로 늘어난 메이즈(maize, 아프리카 옥수수)를 차곡차곡 쌓아둔 쪽 벽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까닭이다. 그런데 집이 부서진 이유를 설명하는 기드온씨 표정은 내내 웃는 얼굴이다. 먹을 게 없어 굶기 일쑤였던 기드온씨 가족에게는 부서진 집 벽은 ‘행복한’ 고민거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두 아들과 세 딸이 있는데, 아이들을 굶기는 부모 심정을 상상해 볼 수 있겠어요? 참으로 무력하고 처참한 심정이었습니다. 지금요? 메이즈 수확량이 예전의 서너 배로 늘었어요. 우리 몫을 충분히 남겨두고도 시장에 꽤 내다 팔 수 있죠. 앞으로 열심히 농사지어서 우리 아이들 대학교까지 공부시킬 겁니다.” 이처럼 기드온씨 가족에게 ‘미래’나 ‘꿈’과 같은 단어가 생긴 것은 불과 1~2년 전이다. 2009년 가족자립농업학교(School of Agriculture for Family Independence, SAFI)에 입학하면서다. 가족자립농업학교에 입학하면서, 농업기술을 배웠다. 퇴비를 만드는 것도, 인근 수원(水源)에서 물을 끌어대는 것도, 가축을 키우는 것도 배웠다. “수확량이 몇 배로 늘어난 것은 가장 작은 변화입니다. 곡물을 시장에 팔아 번 돈과 농작에 들어간 비용을 계산해, 수익률을 따져 보는 것도 배웠고요, 가장 큰 것은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을 배운 것이죠. 제가 배운 것들을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어요. 저희 가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을 전체의 삶이 변화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7년 하나의 교육 촌락 형태로 문을 연

더나은미래 특별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