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비영리단체의 활동가인데, 자신과 배우자의 월급을 합해봐야 차상위계층 수준이라고 합니다. 남편에게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보육료를 받자고 얘기하자 사회복지 일을 하는 남편이 ‘그런 건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며 반대했다고 합니다.
1년 전에 만났던 사람은 자신의 직장인 기업에서 ‘사회공헌 담당자들은 돈을 벌어다 주는 영업 조직에 감사함과 죄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기업은 돈을 버는 곳인데 당신은 돈을 쓰기만 하면서 월급을 받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의 직무를 무시하는 말을 면전에서 듣고도, 이 사람은 좋아했습니다. 어쨌든 회사가 기부를 한다니 다행이라면서 말입니다.
얘기를 듣다 보니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졌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남을 위해 살아간다는 사람들은 자신을 낮추는 데 익숙합니다. 저는 이런 사람을 존경하면서도 이들의 태도가 꼭 옳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섬기는 마음’이 현실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기부자들의 기부금, 정부의 복지 예산, 기업의 사회공헌 예산이 아닙니다.
기부금을 받고 복지예산을 받아 현장에서 활용하는 사람들의 능력과 열정과 헌신이 세상을 바꿉니다. 세상의 가난과 질병을 극복하는 것은 돈만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강함을 잃어버린 이들을 위로하고 이들이 심지를 가다듬도록 돕는 것이 쉬울 리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자리 잡은 가난의 악순환에 잘못 투자된 돈은 오히려 가난을 부추깁니다.
비영리단체의 활동가들과 복지관에서 근무하는 복지사들은 이런 문제들을 모두 고민해 현장에서 해결하는 전문가들입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필요한 폭넓은 시야와 헌신적인 집중력, 전문적인 지식은 이들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들이부은 노력으로 힘겹게 얻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이 남을 위해 살아간다는 사실 때문에 이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치부하며 이들의 활동이 전문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른바 이 ‘바닥’에 좋은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 들어오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들이 더욱 노련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려고 들지도 않을 겁니다. 세상이 나아지는 데에도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게 될 겁니다. 제 마음속 답답함의 정체입니다.